469화 곧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갤 것이다
형부 시랑이 말을 마치자 대리시 소경은 조계안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말을 이었다.
“전하, 월령안은 조정의 중요한 범인입니다. 최 대인은 우리가 범인 월령안을 끌고 가려는 것을 여러 번 막았습니다. 소인은 최 대인과 월령안이 아주 내밀한 아닌지 의심됩니다.”
“내밀한 사이인가?”
조계안은 미소를 지으며 최일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최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리시 소경은 이 일로 최일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화두를 돌렸다.
“물론, 최 대인은 명문 사족 출신이므로 소인은 최 대인이 결백하다고 믿습니다. 월령안과 한 패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다만 최 대인은 월령안과 사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 월령안과 관련된 사건을 공정하게 심리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신은 전하께서 월령안과 관련된 사건을 모두 대리시에 넘겨 심리하게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계안이 웃는 듯 마는 듯 최일을 바라보았다.
“최 대인,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 두 사람은 욕심이 과했다. 월령안을 끌고 가려 할 뿐만 아니라 최일의 권리마저 빼앗으려 했다.
‘이놈들이 최일을 하루 이틀 알고 지내나? 정말로 최일을 마구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최일이 나약하게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최일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하, 제(齊) 소경의 처는 소씨로 소씨 가문의 방계입니다. 소인은 제 소경이 소씨 가문과 사적 교분이 두텁다고 의심되어 소씨 가문과 관련된 사건을 공정하게 심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魏) 시랑은 일찍 북요의 사신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소인은 위 시랑이 북요와 내통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 위 시랑 아버지는 일찍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소인은 위 시랑이 금나라와 내통했다고 의심됩니다.”
‘그냥 뜬구름을 잡는 거잖아. 다 같은 문관이다. 게다가 나는 장원 출신이거든. 두려워할 거 같아?’
위 대인은 화가 난 나머지 웃고 말았다. 그러고는 최일을 삿대질하며 말했다.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구실을 만들어 내는군. 최 대인, 우리는 일심으로 나라를 위했네. 나의 부친께서도 금나라에는 어명을 받고 가셨던 것이고.”
최일은 변함없는 표정에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대리시에서 공문서에 도장을 찍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대리시경뿐입니다. 형부도 마찬가지로 형부의 도장은 줄곧 형부 상서가 보관했습니다. 대리시경은 얼마 전에 파직당하고 형부 상서는 황궁에서 폐하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소인은 두 분 손에 든 공문서의 인감을 누가 찍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월령안은 적국과 내통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월령안의 작은 행동 하나 때문에 우리가 양국 비무에서 패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장군이 있으니 우리가 패배하지는 않겠지만 막심한 사상자를 내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월령안의 이 사건은 중차대하므로 특별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대리시와 형부에서는 특별한 사건은 특별히 처리하는 준칙이 있습니다. 공문서에 찍힌 인감은 대리시와 형부 관리들이 표결로 팔 할 이상의 관리들이 동의하여 서명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리시와 형부 둘 다 등록해 놓았으므로 최 대인의 사건은 그곳으로 가서 조사할 수 있습니다.”
형부 위 시랑은 떳떳하게 말했다.
“두 개 부의 팔 할 관리가 동의했다. 쯧쯧쯧……”
조계안은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무척이나 아픈 모양새였다.
‘척결하려면 좀 힘들겠는데. 동시에 이렇게 많은 관리를 숙청하면 어디에 가서 인원을 보충한단 말인가? 보충된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정말 번거롭군. 그래서 나는 이런 사무를 처리하는 게 싫어. 골칫덩어리잖아.’
조계안의 몇 안 되는 친구로서 최일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곧장 알아채고 낮은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다음달이면 과거 시험을 볼 겁니다. 거기서 백 명을 더 채용할 수 있습니다.”
“그걸 잊을 뻔했군.”
근심이 없게 되자 조계안은 탁자를 두드리며 제 소경과 위 시랑을 가리켰다.
“두위, 사람을 잡아서 황성사에 맡기거라. 황성사에 말해 형부와 대리시에 가서 명단을 가져다가 명단대로 사람을 잡아들이도록 해라. 내일 날이 밝기 전까지 그들 선조 십팔 대까지 무슨 일을 범했는지 알아야겠다.”
“네, 전하.”
두위는 마음속으로 조계안의 행동 규모에 놀랐지만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손을 들어 뒤쪽 금군더러 제 소경과 위 시랑을 잡으라고 명령했다.
“전하, 저희는 공정하게 법을 집행했는데 무슨 잘못이 있다는 겁니까?”
제 소경과 위 시랑은 금군에게 제압당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황성사는 더욱 두렵지 않았다.
장 부승상이든 상서 대인 여섯 명이든 모두 황성사 재가동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모든 관리들은 같은 입장이었다.
조계안은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조왕 전하입니다.”
제 소경과 위 시랑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계안은 코웃음을 쳤다.
“황성사에서 사람을 잡겠다는데 너희들에게 이유를 말해 주겠느냐? 너희들이 뭐나 되는 줄 아니냐? 입을 틀어막고 잡아가거라. 반항하는 자 사살해도 된다.”
황성사는 관리를 체포할 때 이유가 필요 없었다. 일단 사람을 잡아 데려가 조사하면 죄명이 생겨났다.
만약 심문 과정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건 죄가 두려워 자살한 것이었다.
황성사가 처리하는 사건에 억울한 일은 없었다. 황성사에 들어가면 유죄든 무죄든 결국에는 모두 유죄가 되었다. 그게 누구든 결백하게 나올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문무백관이 황제가 황성사를 재가동하는 것을 반대하는 원인이었다.
황성사는 바로 황제 수중의 칼이었다. 황제가 황성사를 장악하고 있는 한 누구도 감히 그와 맞설 수 없었다. 황제와의 권력 다툼은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제 소경과 위 시랑은 놀라 멍해졌다. 급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전하, 저희는 조정의 관리입니다. 전하…….”
그들은 그렇게 외치다가 금군에 의해 입이 틀어막히고 강제로 끌려 나갔다.
두 사람이 끌려나가고 나서야 조계안은 비로소 느긋하게 말했다.
“나는 되거든.”
“이렇게 일을 크게 벌여도 괜찮겠습니까? 그들이 령안을 잡아들이기 위해 준비해 둔 증거는 충분합니다. 인증도, 물증도 모두 있어 령안이가 몸을 빼기 어려울 듯합니다.”
최일도 어깨의 힘을 빼고 시큰시큰한 미간을 문지르며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숙이 돌아오셨어. 어르신만 계시면 괜찮을 거야.”
사람의 명성은 아주 중요하다.
다른 건 몰라도 황숙의 이름을 내걸기만 해도 청주 그 늙다리들은 몸을 사릴 것이다.
곽씨 가문과 손을 잡고 곽 황후의 아들을 황위에 올려놓으려고 해도 황숙이 승낙할지 말지를 봐야 할 것이다.
“염(焰) 황숙? 그분이 돌아오셨나요?”
최일의 고요한 눈동자에 별빛이 흐르는 것 같았다.
황숙 조염은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라면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는 적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이었다.
“황숙이 천하를 주름잡을 때 그 바보들은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게 숨었지. 황숙이 계시는 한 아무리 큰 일도 일이 아니야.”
월령안의 이 사건은 확실히 처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처리할 수 없는 게 아니었다. 황숙이 월령안과 관련된 일을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마음이 놓이네요. 최근 며칠 성안은 평온해 보였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움직임으로 술렁이고 있습니다. 곽씨 가문은 빈번히 행동을 벌였지만 이전에는 아무도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어느 쪽에 줄을 대었는지 갑자기 지지자가 늘어났어요. 그중에는 심지어 군부의 사람까지 있습니다. 폐하께서 대장군 수중의 병권을 거두어들이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아니면 큰 재앙을 맞을 뻔했습니다.”
최일은 요 며칠 받은 암시적, 명시적 귀띔과 심지어 협박까지 떠올리자 형언할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며칠 동안 정말 폭우를 만난 듯 힘들었다. 그가 조계안을 알고 조계안이 비록 사람이 못되긴 해도 준비 없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 역시 하마터면 버텨 내지 못할 뻔했다.
그의 뒤에는 수많은 최씨 가족이 있었다. 설령 그 개인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문의 안전은 고려해야 했다.
“곧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갤 것이다.”
조계안은 최일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월령안이 사람들의 목표물이 되었어. 이번 일이 실패하면 그들이 분명 또 다른 일을 꾸밀 것이다. 그리고 영녕후와 같은 사람들이 칠 년 전의 일을 떠올릴 수도 있어. 그러면 틀림없이 월령안에게 마수를 뻗칠 거다. 그녀가 순천부에 남아 있으면 안전하지 못해. 입궁시킬 것이다. 궁에서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아울러 황제가 가까운 거리에서 월령안을 겪어 보게 할 수도 있었다.
칠 년 전의 오해가 풀렸지만 월령안에 대한 황형의 편견은 여전했다.
월령안에게 기회만 있다면 황제도 틀림없이 그녀의 진가를 알아보게 될 거라고 그는 믿었다.
‘이 조계안이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못할 리가 없지.’
* * *
월령안은 입궁하는 게 싫었지만 그렇다고 거절하지도 않았다.
어찌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겠는가.
거기에 노인의 신분도 꼭 확인하고 싶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때문에 월령안은 조계안의 제안을 바로 수락했다. 심지어 약간의 기대마저 가졌다.
조계안은 무언가를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눈썹을 치켜세운 채 월령안을 힐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숙의 신분은 비밀이었다. 설령 월령안이 이미 짐작하고 있더라도 밝힐 수는 없었다. 모두 시치미를 뗄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전, 최일은 몸에 지니고 있던 옥패를 꺼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서 그녀의 허리에 옥패를 매어 주었다.
월령안이 피했지만 최일이 막았다.
“령안, 궁중은 다른 곳과 다릅니다. 궁중에서 일이 생기면 숙태비(淑太妃)를 찾아가세요. 숙태비는 저의 어머님과 지기예요. 그분은 옥패를 알아볼 겁니다.”
“너무 귀한 거예요.”
‘게다가 최일의 이 행동은…….’
최일은 그녀에게 옥패를 그냥 건네줄 수 있었다. 꿇어앉아 옥패를 매어 주다니. 이건 마음이 있는 이성에게나 할 법한 행동이라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돌려주면 되죠.”
최일은 옥패를 매어 주고 일어섰다.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넓은 아량과 허심탄회함으로 가득 차 있어 연심이나 애정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잠깐 머뭇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