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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68)화 (468/1,004)

468화 너무 늦게 손을 썼어

관리로서 바른 길을 걷지 않고 샛길만 걷는다면 멀리 가지 못한다.

장 부승상은 그때 당시 그것을 깨치지 못했기에 승상 자리를 잃었다. 출신, 재능 등 모든 면에서 그보다 뒤떨어진 소희에게 평생 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장 부승상이 그걸 깨달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 밖으로 그 많은 세월 동안 장 부승상은 나이만 들었을 뿐이었다.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했기에 멀쩡한 아이도 기어코 잘못 가르치고 말았다.

노인의 이 말을 기다리던 황제는 흥분하여 말했다.

“계안, 어서 가서 장 부승상을 데려오너라. 짐이 깨어났다고 말이다.”

노인이 자리를 지키고서 장 부승상 등을 제압하게 되었다. 그러자 조계안도 그들이 소란을 피울까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반반에 눈짓해 그더러 사람을 데려오라고 시켰다.

이반반이 사람들을 데려오기 전에 조계안은 급히 난각을 떠났다.

조계안이 난각 밖으로 나서는 순간, 노인은 갑자기 눈을 뜨고 조계안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차갑고 온기도 없었다.

조계안은 등이 오싹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너무 많이 생각한 건 아닐까? 왜 자꾸 황숙이 나를 싫어하는 거 같지?”

조계안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에 대한 노인의 태도를 곰곰이 생각해 보려는데 한 내관이 급히 다가왔다.

“대인, 순천부 최 대인이 전해 왔습니다. 형부와 대리시에서 관병을 이끌고 순천부를 포위했답니다. 최 대인더러 적과 내통하고 나라를 배신한 범인 월령안을 내놓으라고 한답니다.”

“적과 내통하고 나라를 배신했다? 무슨 내통이고 무슨 배신이라는 거냐?”

조계안은 그에 대한 노인의 태도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리시에서 북요 첩자 몇 명을 붙잡았답니다. 그중 한 명은 월씨 가문 집사라고 합니다. 그 집사는 사적으로 북요와 여러 해 동안 왕래하고 북요에 수많은 소식을 보냈다고 합니다. 대리시의 사람은 그의 저택에서 월 낭자의 친필 편지를 가득 수색해 냈다고 합니다. 그 편지들은 암호로 되어 있지만 대리시에서 형부의 도움을 받아 모두 해독했다고 합니다. 월 낭자가 북요와 왕래한 것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내관은 말주변이 좋아 곧바로 사실을 정확하게 설명했다.

그 말을 듣고 조계안은 웃고 말았다.

월령안은 조정과 무관한 것 같지만 황제와 관계가 아주 깊은 사람이었다.

월령안에게 칼을 들이대면 직접적인 피해는 보지 않고, 야심을 드러내지 않고도 황제의 태도를 떠볼 수 있었다.

월령안을 골라 손쓴 것은 아주 영리한 선택이었다. 그마저도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너무 늦게 손을 썼다.

만약에 그들이 하루라도, 아니 한 시진이라도 빨라서 육장봉의 소식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면 그는 직접 사람을 잡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감히 나 조계안 앞에서 날뛰는지 한번 보자꾸나.’

갑자기 일이 터졌기에 조계안은 황성사로 되돌아가서 사람을 움직일 시간이 없었다. 바삐 궁 밖으로 나가면서 어디에서부터 병사를 이끌고 가야 순천부로 가장 빨리 갈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이때 갑자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조계안은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두위?”

“소인 전하를 뵙습니다!”

두위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조계안에게 예를 올렸다.

육 대장군이 광분하는 모습을 본 뒤로부터 두위는 지금 어떤 경우도, 어떤 사람 앞에서도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너로 하자. 사람 이백 명을 거느리고 나를 따르거라.”

조계안은 두위에 대한 인상이 조금 남아 있었다.

예전에 육장봉은 두위를 파견해 영녕후부를 지키게 했다.

두위가 육장봉의 눈에 든 것을 보면 충성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능력도 뛰어나리라.

조계안은 육장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안목은 정말 높게 평가했다. 보통 사람은 그의 눈에 들 수가 없었다.

“네, 전하!”

두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일각도 안 되어 모든 것을 안배했다.

조계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쓸만했다. 마침 보군사에 지휘사가 없었다. 나중에 두위를 승진시키면 될 듯싶었다.

조계안은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금군 이백 명을 거느리고 가장 빠른 속도로 순천부에 도착했다.

순천부 밖은 아수라장이었다. 순천부의 포졸들이 형부의 관졸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순천부 입구의 돌사자 두 마리가 모두 박살 났다.

“이게 무슨 짓들이냐!”

조계안은 말 등에 앉아 호통을 쳤다. 그리고 곧바로 손을 들어 두위에게 명을 내렸다.

“모두 제압하라.”

“네.”

두위는 대답하고 말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금군을 거느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너희들……!”

싸움을 벌인 포졸과 관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두위는 금군을 거느리고 그들을 제압했다. 다음 그 자리에서 그들의 손발을 묶었다.

“사람을 거느리고 관아에 쳐들어가다니. 너희들의 기세가 점점 더 대단해지는구나.”

조계안은 두위가 사람들을 제압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느긋하게 말에서 내렸다.

팍!

조계안은 형부 사람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무슨 담으로 감히 순천부 문 앞에서 소란을 피워?“

그 사람은 비명을 질렀지만 감히 피하지 못하고 조계안의 발치에 꿇어앉아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대인 살려 주십시오. 소인은 명을 받고 일한 것뿐입니다. 소인이 어찌 감히 소란을 피우겠습니까.”

“어 그래. 그럼 너는 사람을 잘못 따랐군.”

조계안은 발을 들어 사람을 걷어차고는 순천부 관아로 걸어 들어갔다.

두위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조계안보다 한 걸음 앞서 뛰어 들어갔다. 조계안이 들어가기 전에 관아 내의 충돌을 제압하고 싸우는 쌍방을 갈라놓았다.

조계안이 안으로 들어설 때 최일은 공당에 초라하게 서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형부 시랑과 대리시의 소경(少卿)이 서 있었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한눈에 최일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렇긴 했다. 상대방은 작정하고 왔기에 순천부의 두 배나 되는 사람들을 끌고 왔다. 최일이 지금까지 막고 있은 것도 쉽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도 최일은 관복과 머리카락이 약간 흐트러졌을 뿐 다치지는 않았다. 잠깐 정리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 조계안에게 예를 올렸다.

“소인 조왕 전하를 뵙습니다.”

“전하?”

형부 시랑과 대리시 소경은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곧 정신을 차렸다. 두 사람은 금세 안색이 변하며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예를 올렸다.

“소인 조왕 전하를 뵙습니다. 전하……!”

조계안은 두 사람 옆을 지나쳐 최일을 부축하는 척했다.

“무슨 일이냐?”

형부 시랑과 대리시 소경은 조계안이 그들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안색이 난감해지더니 급히 몸을 돌려 친절하게 말했다.

“전하, 사실은…….”

“내가 너희에게 물었느냐?”

조계안은 공당에 앉아서 손이 가는 대로 탁자 위의 경목을 들어서는 탁 쳤다.

“최일, 네가 말하거라.”

“네, 전하.”

최일은 조계안을 보자 마음의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궁문이 봉쇄되고 황제의 생사가 불분명한 데다가 장 부승상과 육부상서가 황궁에 들어간 후 아무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아랫사람들은 이미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형부와 대리시의 이 만행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간을 보려는 게 분명했다. 만약 제압하지 못하면 앞으로 더 혼란해질 게 뻔했다.

조계안은 규칙에 맞추어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나타났다는 것은 적어도 이제는 황궁에서 손을 쓸 수 있다는 뜻이므로 이 사람들은 뜻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혼란해지기 전에 일이 정리될 것 같자 최일은 안도했다.

최일은 조계안의 성격과 태도를 알기에 과장하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로 양측의 충돌 상황을 들려주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형부와 대리시가 순천부에 와서 범인을 내놓으라고 했다는 얘기였다.

형부와 대리시가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했다면 순천부는 확실히 협력해야 했다. 하지만 순천부 쪽 사건이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때문에 최일은 형부, 대리시에게 반나절의 시간을 더 가지고 사건을 확실하게 심리하겠다고 했다.

형부, 대리시는 그런 최일의 말을 수긍하지 않았다. 그저 공문서를 들이밀며 최일더러 당장 용의자 월령안을 내놓으라고 했다.

최일은 논리적으로 그들의 맹점을 짚었다. 그 공문서에는 형부상서의 도장이 찍히지 않았으니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형부 시랑과 대리시 소경은 논리로는 최일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러자 직접 사람을 거느리고 순천부를 공격하여 월령안을 강제로 데려가려 했다.

물론 최일도 양보하지 않고 포졸을 시켜 막아서게 했다.

결국 쌍방은 싸우게 되었다.

형부와 대리시가 순천부보다 머릿수가 많아 결국은 순천부에 들이닥친 상황이었다. 조계안이 제때에 오지 않았더라면 형부와 대리시의 사람들은 월령안을 강제로 끌고 갔을 것이다.

무력 앞에서 도리는 하등 소용이 없었다.

조계안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 형부 시랑과 대리시 소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일이 말한 내용에 너희들이 보충할 것이 있느냐?”

조계안은 가면을 쓰고 있어 형부 시랑과 대리시 소경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신비한 조왕 전하가 자신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은 그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비록 마음속으로 조금 불안했지만 두 대인은 재빨리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실권을 장악하지 못한 조왕은 물론이고 황제 앞에 가도 그들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형부 시랑은 암암리에 대리시 소경과 눈을 맞춘 다음 앞으로 나아가 의젓하고 당당하게 조계안에게 예를 올리고 말했다.

“전하께 알려드립니다. 용의자 월령안은 다른 범인들과는 다릅니다. 그녀는 북요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양팔인 추수와 상천은 지금 북요에서 신임 남원대왕의 귀빈으로 있습니다. 그녀 수하의 집사는 최근 몇 년간 북요에 많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월령안 본인도 의심되는 점이 수두룩합니다. 마침 양국 비무 기간인데 그녀는 갖은 방법을 다해 군영에 나타났습니다. 소인은 그녀가 기회를 틈타 북요인과 거래를 하면서 우리 주나라의 극비 정보를 북요에 전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양국의 마지막 비무가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우리 주나라 장병의 안위를 위해, 또 주나라의 승리를 위해 첩자로 강력히 의심되는 자를 잡아들이고자 합니다. 전하께서는 소인이 즉시 용의자 월령안을 데리고 가서 심문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형부 시랑이 날카롭게 반박했다. 이치와 있고 근거가 있으며 조계안 앞에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훌륭한 신하의 모습이었다.

조계안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람들은 확실히 충분하게 준비해서 온 모양이었다. 월령안의 두 심복이 한 일까지도 확실하게 조사했다.

인증, 물증이 모두 있었다.

‘월령안, 이번 사건은 좀 어려울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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