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화 황숙께서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래도 대원수께서 계속 우리와 연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대원수를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누군가 불안해서 물었다.
소영화는 그 누구보다 더 불안했다. 하지만 입으로는 큰 비밀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대원수께서 따로 계획이 있으신 것이다. 이번 비무에서 육장봉을 죽이려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고 대원수께 폐를 끼치지 않으면 된다. 걱정하지 말거라. 대원수께서는 무사하실 것이다.
둘이 맞붙었다면 위험에 처하는 건 육장봉일 수밖에 없다. 육장봉은 부상당한 채 무리하게 전투에 참여한 것이니까. 지금은 우리 대원수의 적수가 될 수 없다.”
“맞아. 육장봉이 뭔 대수라고. 예전의 전투에서 이긴 것도 우리 대원수께서 출정하지 않은 덕을 본 거야. 우리 대원수께서 출정하셨다면 육장봉 그 녀석은 진작에 놀라 쓰러졌을 것이다.”
“주나라는 그들이 한번 이겼다고 대단한 줄 아는군. 우리 대원수가 금나라에 발목이 잡히지 않았더라면 주나라 그 겁쟁이들이 우리를 이길 수가 없었을 거다.”
소영화는 마음속 당황함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일어서서 최선을 다해 선동했다.
“오늘 밤은 다들 편히 쉬고 기운을 차리거라. 낮에는 우리가 지형에 익숙하지 못해 손해를 보았다. 내일은 주나라 그 겁쟁이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 우리 북요 용사들의 용맹함을 보여 주자고.“
소영화는 오늘의 실패에 대한 완벽한 핑계를 댔다. 북요의 용사들은 눈앞이 환해졌다. 생각할수록 그럴듯했다.
“상장군의 얘기가 맞습니다. 오늘 저희는 지형에 익숙하지 못해서 손해를 본 겁니다. 비무하는 곳이 주나라에 있으니 주나라인들은 일찍 입산했었을 겁니다. 우린 처음으로 입산하니 물론 큰 손해를 봤죠. 내일은 우리가 되갚아 줍시다!”
덩치만 놓고 보더라도 그들은 주나라인들보다 배나 튼실했다. 주나라인들이 지역적 우세를 빌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들을 죽일 수 있겠는가.
북요인들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낮에 주나라인들에게 패배한 울분을 털어버리고 모두 흥분하여 피바람을 일으킬 기세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육이는 죽음이 다가온 것도 모르고 잘난 척하며 오만방자하게 구는 그들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정말 죽음이 당장 코앞에 닥쳐왔는데도 모르고 있군.’
육이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조용히 숲속에 잠복해 있었다. 그의 시선은 소영화에게 가 있었다. 눈빛이 조금 어두웠다.
장군은 소영화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했다. 가장 적은 대가로 이번 비무를 이기려면 소영화가 열쇠라고 말이다.
육이는 제자리에 엎드려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머리를 굴렸다. 소영화를 어떻게 단독으로 만날지, 어떻게 북요를 배신하고 주나라를 돕게 만들지를 생각했다.
육장봉이 쏘아올린 신호탄은 육이에게 신호가 죽었으니 소영화를 쟁취하라고 알려 주는 것이었다. 또한 성안의 조계안에게 행동을 개시할 수 있다고 알려 주는 것이기도 했다.
멀리 성안에 있는 조계안은 물론 성 밖의 신호를 볼 수 없었다.
육장봉이 신호를 보내자마자 암위는 즉시 성안으로 달려가 조계안에게 소식을 알렸다.
이 소식을 들은 조계안은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입궁했다.
“황숙, 황형. 육장봉의 사람이 신호가 죽었다고 알렸습니다.”
“신호가 죽었어? 장봉이 죽인 것이냐?”
황제는 두 눈을 빛내며 흥분하여 말했다.
노인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저 빙그레 웃었다.
“십 년이 되었군.”
소년은 그때의 약속을 지켰다.
“맞습니다. 삼차전에서 육장봉은 양국 관리들 앞에서 신호의 머리를 베었답니다. 이로써 북요인들의 위세를 확 꺾었을 뿐만 아니라 꼬투리도 잡을 수 없게 했습니다.”
조계안은 암위의 보고를 듣고 기분이 날 것만 같았다.
밀림 속에서 신호를 죽였어도 그들은 똑같이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호를 죽이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만약 신호가 밀림 속에서 죽었다면 북요인들은 후안무치하게 또 소란을 피울 것이다. 주나라인들이 사전에 밀림 속에 매복해 음모, 계략을 써서 신호를 죽였다고 생떼를 쓸 것이다.
육장봉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실력으로 신호를 죽였다. 이제 북요인들이 아무리 낯짝이 두꺼워도 그렇게는 떠들 수 없을 것이다.
“신호가 죽었으니 북요인들은 경거망동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이제 움직일 수 있겠군.”
며칠 동안 병을 핑계로 대며 궁문도 봉쇄했다. 황제든 조계안이든 커다란 압력을 받고 있었다.
이 이상 시간을 끌면 조정의 대신들이 큰 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후궁의 여인들이 먼저 가만있지 못할 것이다.
황제는 황후에 대해서 이미 희망을 버렸다. 그래도 조정의 대신을 척결하는 동안 후궁에서 말썽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조계안은 이미 이틀 전에 정서의 입을 열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황제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살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그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노인을 힐끗 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황형, 장 부승상 쪽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병부와 이부, 호부의 관리들이 정서와 공모했다. 하지만 육부상서는 참가하지 않았기에 아무 죄도 없었다. 죄가 있다고 한다면 기껏해야 수하 사람들을 엄하게 다스리지 못한 것이었다.
황제는 이것만으로 그들을 파면시키고 엄하게 처벌할 수 없었다. 또 그 이유로 상서 여섯 명을 파면해 조정 대신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주나라 조정에는 그대로 재능이 있는 대신들이 필요했다. 조정 대신들이 실망하고 나라를 위해 힘을 쏟으려 하지 않으면 황제가 아무리 권력을 잡았다 해도 강산을 지켜낼 수 없었다.
장 부승상을 비롯한 육부상서를 위로하고 그들에게 은혜와 위엄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 조정의 대신들과 인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황제는 대답하지 않고 예의를 차려 노인에게 물었다.
“황숙,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다 죽어 가는 영감탱이야.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노인은 가타부타 말이 없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얼굴빛이 평온하고 태평한 모습이었다.
노인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하지만 황제는 감히 노인을 무시하지 못하고 성격 좋게 물었다.
“황숙, 장 부승상과 육부상서를 난각에 불러들이면 어떨까요?”
“그래. 그럼 이 늙은이가 자리를 비워야지.”
노인이 떠나가려 하자 황제는 곧 꼬리를 내리고 다가서서 비위를 맞추었다.
“황숙. 장 부승상 저자들은…… 오직 황숙만이 제압할 수 있습니다. 황숙께서 손을 놓으시면 짐과 계안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황숙께서 이 조카를 도와주십시오.”
그는 권력을 탈취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탈취할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만일 황숙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는 난폭한 방식으로 조정의 대신들을 진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일부 권력을 내놓으면서 조정 대신들의 마음이 어그러지지 않게 점차 인심을 사려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지금 황숙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난폭한 방식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황숙이 나서면 장 부승상은 두려워할 것이다. 그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육부상서의 수중에서 권리를 빼앗아 올 수 있었다.
장 부승상도 그렇게 하길 원할 것이다.
그는 가진 권력이 아무리 작아도 황제였다. 조정의 모든 대신들이 그와 등지더라도 육장봉만 있으면 누구든지 다 처리할 수 있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도 그 지경에까지 이르기를 바라지 않았다.
강산은 조정의 관리가 다스려야 한다. 신하를 마구 죽이는 일은 망국의 군주나 할 노릇이다.
그렇게 했다가는 적국의 습격을 받지 않아도 안에서부터 철저히 붕괴될 수 있었다.
“나 같은 영감탱이가 뭘 할 수 있겠나? 그동안 아무 일 없이 잘 지냈잖느냐?”
노인의 말투는 냉담하고 권태감이 섞여 있었다.
그는 이 황궁을 좋아하지 않았다.
황궁에 돌아오자 그는 더는 혼자가 아니라 조씨 강산을 지키는 돌이 되었다.
좋게 말해서 주춧돌이지 사실은 용상에 앉은 사람의 디딤돌일 뿐이었다.
“황숙, 수도에 오래 계셨으니 짐의 어려움을 알 것입니다. 장 부승상은 삼대 원로 대신으로 조정에서 위세를 많이 쌓았습니다. 그때 부황께서 갑자기 승하하시는 바람에 짐은 어떻게 제왕이 되어야 하는지 공부할 겨를도 없이 급작스레 황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처음 제위에 올라서 짐은 정사에 대해 전혀 몰랐고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정사에서 연신 실수를 범했고 장 부승상을 비롯한 권신들은…….”
그때는 버젓한 제왕이 장 부승상 같은 신하들로부터 연신 무능하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것을 떠올리자 황제는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답답했다.
처음 등극했을 때 장 부승상 등은 많은 함정을 파 놓고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잘못을 범하게 했다.
계속해서 실수만 반복하자 황제는 아무것도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조정의 대신들은 또 의견이 각각 달라 누구의 말을 들을지 갈피를 잡기도 힘들었다. 그때 그는 자신에 대해 거의 신심을 잃게 되었고 자신이 황제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소 승상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는 아마 모든 위엄을 잃었을 것이다.
때문에 비록 소 승상이 거듭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는 소씨 가문의 마지막 체면을 살려 주었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제왕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잘못을 범해도 그 결과를 헤아릴 수 없다. 하물며 제왕이 범한 과실은 아무리 가벼워도 백여 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초래했다. 심하면 수만, 나아가 수십만 백성 모두가 그의 잘못 하나 때문에 평온한 삶을 잃을 수도 있었다.
장 부승상같은 권신들은 백성들의 생사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백성들의 생사를 가지고 함정을 파 황제가 걸려들도록 했다. 수많은 백성들이 그의 잘못 때문에 살길을 찾아 헤매고 북요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고는 장 부승상 등은 실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눈치를 주었다. 당신이 우리 말을 듣지 않았기에 수많은 백성들이 헛되이 죽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다시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그들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동안 그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황제는 무능했던 때의 일을 꺼내기 싫었다. 몰래 숨을 들이마시고 진심으로 부탁했다.
“황숙, 황숙만이 장 부승상과 권신들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황숙께서 저를 도와주십시오.”
노인은 황제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암황령을 내놓았을 때 황실의 모든 것은 이미 그와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월령안을 떠올리고, 또 황제가 월령안을 싫어해 덫을 놓던 것을 떠올리자 노인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월령안을 위해 생각해야 했다.
“가서 장 부승상 그들을 데려오거라. 만나서 얘기나 해 보게.”
생각건대, 장 부승상 그 늙은 여우는 황제가 그에게 얼마나 불만스러워하는지 잘 알 것이다. 지금 물러나야 장씨 가문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의 손자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 부승상이 기대를 거는 장 오공자를 떠올리고는 노인은 순간 비웃음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