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화 너희 북요는 이제 끝장이다
관람석에서 그 모습을 본 주나라의 관리들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대장군, 조심……!”
하지만 그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장봉은 귀신처럼 신호의 등 뒤에 홀연히 나타났다.
그는 어느새 차가운 빛이 감도는 비수를 들고 있었다.
육장봉은 민첩하게 신호의 머리를 잘랐다. 고요하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었다.
신호가 죽었다!
육장봉은 신호에게 발악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그의 머리를 단칼에 베어 한쪽에 있던 백호에게 던져 주었다.
백호는 복부에 큰 자상을 입었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저 힘을 잃고 제자리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맹수는 부상을 입었을 경우 흔히 먹이를 먹어 체력을 유지하려 한다.
신호의 머리가 백호 앞으로 굴러갔다. 백호는 힘겹게 눈을 뜨더니 신호의 머리를 한입에 덥석 물었다.
얼마 안 되어 신호의 머리는 백호에게 뜯겨 흉측해졌다.
“욱……!”
관람석에 앉아 있던 주나라 관리들은 참지 못하고 한쪽에서 토하고 말았다.
북요의 관리들도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그중 두 명이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자마자 동료가 거칠게 눌러 앉혔다.
북요 귀족들은 맹수를 기르기를 좋아했다. 맹수의 야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맹수에게 생고기를 먹였다. 때로는 산 사람이나 산 동물을 던져 주면서 사냥 능력을 훈련시키기도 하고 인육의 맛을 익히게도 했다.
짐승이 사람을 먹고 사람이 짐승을 먹는 것은 북요에서 예사로운 일이었다. 북요의 관리들뿐만 아니라 북요의 어린이들도 맹수가 사람을 먹는 것을 보면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오히려 갈채를 보냈다.
하지만 지금 북요인들은 갈채를 보낼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지난날 그들이 길들인 맹수는 모두 주나라인을 먹었다.
지금 육장봉은 북요 대원수의 머리를 곧 죽게 될 백호에게 먹였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이길 수 없는 게 아니었다면 그들은 진작 내려가서 육장봉과 사생결단을 냈을 것이다.
‘우리 북요를 욕보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북요의 관리는 화가 나서 얼굴이 뒤틀리고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육장봉을 산 채로 삼킬 듯이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하지만 육장봉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북요의 관리들은 제자리에 그대로 굳어서 꼼짝달싹 못 했다. 화난 채로 굳어버려 괴이한 표정이었다.
‘못난 놈들!’
주나라 관리들은 그 광경을 보고 말할 수 없는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육장봉은 곧 눈길을 거둬들였다.
육장봉은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비수를 쥐고 한쪽에 있는 조야옥사자에게로 유유히 걸어갔다.
조야옥사자는 주인을 알아보고 달그락달그락 달려왔다. 애교를 부리듯 머리를 숙여 육장봉의 팔에 비볐다.
육장봉의 차가운 눈빛도 살짝 따뜻해졌다. 수중의 비수를 깨끗이 닦아 손목 부분의 홈에 찔러 넣고는 손으로 조야옥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야옥사자는 더 살가워지더니 즐겁게 투레질했다.
“대장군의 말은 아주 똑똑하군. 대장군도 말을 잘 대해 주고.”
주나라의 관리들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모두 여유로운 표정으로 비무 시작 전의 긴장과 걱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삼차전에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소식이 빠른 조(曹) 대인은 들은 소식을 슬금슬금 옆에 대고 속삭였다.
“그분이 선물했다더군. 아내가 귀여우면 처갓집 문설주도 귀엽다고 하잖소.”
조 대인의 말에 옆에 있던 관리는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그분?”
“대장군 부인 말이오!”
“대장군께서 재혼하신 것이오?”
“재혼은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게. 대장군 부인은 줄곧 하나뿐이었소.”
“월 가주? 대장군께서 아내를 버리셨던 것 아닌가?”
“젊은 부부가 떨어져 살면서 갈등이 있었을 뿐일 거요. 그렇지 않고서는 육 대장군이 친위대를 시켜 다시 예물을 보낼 이유가 없잖소.”
감사 인사를 전하느라 육장봉과 인연이 있었던 조 대인은 저도 모르게 뽐내고 말았다.
“봤소. 저 조야옥사자는 한 쌍이었지. 월 가주가 타고 다니는 건 다른 조야옥사자라네. 월 가주가 조야옥사자를 타고 거리에 나간 적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봤었을 거야.”
조 대인은 눈처럼 하얀 조야옥사자를 가리키며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손가락을 움직여 다시 육장봉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장군이 입고 있는 광명갑을 봤나? 사실 오늘 이 자리에는 광명갑을 입기에 적합하지 않잖아. 대장군 호위병의 말에 의하면 이 광명갑은 월 가주가 예전에 보냈던 선물이라고 하네. 대장군이 일부러 사람을 보내 가져온 거라네.
오늘 승리하게 된다면 그 절반은 월 가주의 공이라며 그녀와 함께 이 영광을 누리겠다고 했다네. 그리고 전에 육 칠공자가 부상당했을 때에도 역시 월 가주가 의사도 약도 보냈었다고 하네. 육 대장군이 전에 북요인을 두드려 팬 게 어째서인지 아는가?”
“그분을 위해 분풀이하느라고?”
“그래! 그게 아니라면 육 대장군이 왜 굳이 북요 병사들을 찾아가 직접 때렸겠는가?”
“그렇게 금슬이 좋다면, 애초에 왜 이혼했지?”
“대장군께서 다 뜻이 있어 그런 거라네. 대장군께서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과 같을 수는 없지.”
물론 조 대인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알 턱이 있나?’
하지만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무언가 있는 것처럼 턱 끝을 들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주나라의 관리들은 당황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 대인이 말할 게 뭐가 있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모른다고 하면 체면이 상할까 두려워 모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맞네. 맞네. 맞지. 대장군과 같은 영웅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는 분명 다를 거야. 대장군께서는 영민하고 용맹하며 멋있기까지 하시지. 대장군과 월 가주는 과연 부부 금슬이 좋군. 이 말, 이 갑옷을 보게. 대장군과 아주 딱 어울리는군.”
‘어떤 일이 있어도 일단 칭찬부터 하고 보자. 이러면 넘어갈 수 있을 거야.’
“대장군과 월 가주는 참으로 이상적인 한 쌍이군 그래. 오늘 월 가주가 대장군을 위해 군마와 갑옷을 준비해 주지 않았다면 대장군께서도 결코 이렇게 쉽게 이길 수가 없었을 거야.”
“저 광명갑의 재질은 내가 보기에 아주 남달라 보이더군. 대장군이 갑옷을 입어도 전혀 둔중해 보이지 않았어. 평소와 마찬가지로 날렵했다니까.”
“듣건대 설선사(雪蟬絲)로 만들었다고 하더구먼.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다네. 내가 몰래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갑옷 한 벌의 제조비는 주나라 장병들의 일 년 동안 군량과 급료의 지출과 맞먹는다고 하더군.
대장군이 그 무슨 개망나니 같은 신호의 머리를 벤 비수도 듣자 하니 백벽(百辟) 비수 중의 용린비(龍鱗匕)라고 하더라고. 이것도 역시 월 가주가 선물한 것이라네.”
조 대인은 그사이 육 대장군의 친위대와 친분을 쌓아 들은 게 많았다. 그는 짐짓 비밀스럽게 말했다.
“월 가주가 그날 보내온 목숨을 살리는 약도 수십만 냥이나 된다고 들었다네. 많은 인력, 재력을 쏟아부어야 겨우 한 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래는 자기가 쓰려고 남겨 두었던 거라네.
그런데 그런 약을 대장군이 요구하자 월 가주가 당장 보내왔다지 뭐야. 그야말로 대장군을 언제나 마음속에 두고 있는 것이지. 이런 부인이 있으니 저런 무뚝뚝한 사람도 부드러워질 수밖에.”
“월 가주는 대장군이 아니면 시집가지 않으려는 것인가? 우리 집 아들이 영리하고 용맹스럽지. 비록 육 대장군하고는 비길 수 없지만 역시 인물이 빼어난데. 내가…….”
“육 대장군을 상대로 사람을 빼앗으려고? 사는 게 귀찮은 겐가?”
조 대인은 즉석에서 목을 베는 동작을 해 보였다.
아들 자랑을 하던 관리는 깜짝 놀라 연신 고개를 저었다.
“상대할 수 없지! 건드릴 수 없지!”
주나라 관리들은 더는 한담하지 않고 불타는 눈빛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 대장군이 몸에 걸친 장비의 가치는 아마 국고의 절반과 비등할 것이다.
‘정말 뺏고 싶다! 아쉽게도 뺏을 수가 없네.’
북요 관리들은 한쪽에 앉아서 주나라 관리들의 말을 들으며 모두 생각에 잠겼다.
‘월 가주? 월령안 맞지? 기억하겠다! 육장봉은 어찌할 수 없지만 일개 여 상인마저 어찌할 수 없겠는가!’
* * *
육장봉은 주나라와 북요의 관리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조야옥사자를 다독인 다음 육장봉은 장검을 칼집에 꽂고 사전에 약속한 신호를 보냈다.
쉬익!
일곱 빛깔의 빛줄기가 연거푸 세 번 소리를 내며 공중에서 흩어졌다.
밀림 속, 육이는 사람을 거느리고 어두운 곳에 숨어 있었다. 기회를 노려 외톨이가 된 북요 병사를 습격하려는 중이었다. 신호가 터지는 것을 본 순간 육이는 더는 숨어 있지 않고 뛰쳐나가 일어나며 몸에 지닌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한편 높은 소리로 외쳤다.
“신호가 죽었다!”
육이가 쏘아 올린 신호탄은 밀림 속 각 은신처에 흩어져 있던 주나라 병사들에게 아주 잘 보였다. 그들은 눈을 반짝였다. 마음속의 흥분을 억누르며 동료들과 눈을 맞추고 소리 없이 외쳤다.
‘신호가 죽었다!’
신호는 한때 주나라 장병들의 악몽이었다. 신호의 명성은 주나라 장병들의 해골 더미로 쌓아 올린 것이었다.
옛날 주나라 사람들은 지금 북요인들이 육장봉을 두려워하듯 신호를 두려워했었다.
북요인들이 육장봉을 증오하는 만큼 주나라인들은 신호를 증오하고 그가 죽기를 바랐다.
지금 주나라 장병들 마음속의 악몽, 용맹한 장수 신호가 죽었다. 그것도 그들 대장군의 손에 죽었다.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호가 죽었다!”
어두운 곳에 숨었던 장병들은 간신히 흥분을 억누르고 은신을 유지했다. 하지만 북요 병사들을 죽일 때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득의양양하게 소리쳤다.
“신호가 죽었다. 우리 대장군의 손에 죽었다. 너희 북요는 이제 끝장이다!”
“너희들 주 책임자가 죽었다. 너희들은 졌어.”
주나라의 장병들은 전에는 기습만 하고 자리를 떴다.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고 깔끔하게 떠나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몰래 기습하고 이 한마디를 남기고야 자리를 떴다.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냐! 너희 황제가 죽어도 우리 대원수는 무사할 것이다!”
북요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것이 주나라인들의 음모라고 여겼다. 하지만 여러 차례 들으니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나라인들이 그들을 속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땅거미가 지는 데도 신호와 연락이 닿지 않았고 소식도 없었다. 북요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상장군, 대원수께 정말 일이 생기신 건 아닙니까? 왜 계속 연락이 안 됩니까?”
소영화는 마음속으로 불안했지만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다.
“그럴 리 없어! 주나라인들은 헛소문을 퍼뜨려 우리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것이다. 대원수의 실력을 모르느냐? 육장봉, 그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자식이 어찌 우리 대원수를 죽일 수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