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화 지금 널 죽일 수는 있다!
육이는 말을 채찍질하며 앞장서서 북요인들을 덮쳤다.
“형제들아, 죽여라! 적의 수급 하나에 오십 냥이다! 잊지 말고 수급을 챙기거라. 그 수급을 성문 입구에 쌓을 것이다. 저 못난이들에게 우리 육가군의 용맹을 보여 주자!”
“죽여라!”
육이의 말은 간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명성과 이익을 콕 찍어 말해 사람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한편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육이의 말이 떨어지자 그 뒤에 있던 주나라 병사들이 용맹하게 호응하며 군마를 타고 미친 듯이 앞으로 돌진했다. 곧 두 군대의 거리가 좁혀졌다.
슉!
최전방에서 달리던 육이가 몰래 화살을 한 방 날려 북요 병사 한 명을 넘어뜨렸다.
육삼이 약속이나 한 듯이 앞으로 나아가 그 병사가 쓰러지는 순간 상대방의 머리를 베어 육이에게 던져 주었다.
“통쾌하구나!”
피가 밀림 속에 흩뿌려지면서 낙엽을 붉게 물들였다.
육이와 육삼의 협공은 주나라 전사들의 피를 끓게 했다. 모두들 앞으로 돌진하여 그들처럼 완벽한 일격을 가하고 싶어 했다. 현상금이 없어도 좋았다.
“형제들! 함께 돌격하라! 모두 손잡고 북요 개자식들의 수급을 베자. 함께 돈을 나누자!”
우두머리가 외치자 소대원들이 잇달아 따라갔다.
밀림에서는 백 명이 모여 작전을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열 명씩 한 개 소대가 가장 적합한 배치였다. 빠르고 민첩하게 영활하며 진격할 수도, 방어할 수도 있었다.
육이 뒤쪽의 삼백 명은 즉시 서른 개 소대로 나뉘었다. 지형에 익숙하고 야외에서 행군하는 데 능한 이들은 말을 버리고 밀림 속에 뛰어들었다. 지름길로 달려가서 북요인들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육이는 그들이 각자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있었다. 밀림 속에 있을 때는 그들에게 집단행동을 요구하지 않았다. 소대 단위로 뭉쳐 다니고 단독 행동은 하지 않도록만 지휘했다.
이 밀림 속에서는 북요인뿐만 아니라 수림 자체도 위험요소였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우수한 전사들이었다. 그는 전원의 안전을 보장해야 했다. 한 명이라도 헛되이 희생시켜서는 안 되었다.
삼백 명이 분산되어 밀림 속으로 뛰어들자 마치 맹호가 숲을 이룬 것 같았다.
소영화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밀림 속을 한참 뛰었다. 주나라 장병들이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자 그는 득의양양한 모습이었다.
밀림 밖에서는 주나라인들이 무기로 잔꾀를 부려 순간의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밀림 속에 들어서서 개개인의 실력을 겨룰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그들이 바로 왕이었다. 주나라인들은 제대로 뒤따라오지도 못하니 싸우는 건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소영화는 주나라인들을 완전히 따돌렸다고 여기고 즉시 명령을 내렸다.
“모두 제자리에 휴식. 우리는…….”
슉! 슉!
갑자기 밀림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화살은 아주 정확히 촉 하나당 말 하나씩을 맞추었다. 말 두 마리가 활에 맞았다.
쿵!
그런 소리와 함께 군마가 넘어졌다. 말 등에 타고 있던 중갑옷을 입은 북요 병사도 바닥에 쿵 떨어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슉, 슉……!
밀림 속에서 화살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소영화는 사방을 훑어보았지만, 원하는 목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소영화는 낮은 목소리로 저주를 퍼붓고는 명령했다.
“말에서 내려 갑옷을 벗어라! 흩어져 숨는다!”
북요의 이백여 명의 전사들 가운데서 단 선봉대의 오십 명 전사들만 중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 갑옷은 주나라의 공격을 막아 내는 방어선이었다.
하지만 지금 주나라인들은 정면 공격을 전혀 하지 않고 밀림 속에 숨어서 습격만 했다. 중갑옷을 입고서 밀림 속에서 움직이는 건 전사들에게 있어서 부담이었다.
그래서 소영화는 작전 전략을 수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중갑옷을 벗어 던지자 북요인들은 병사나 군마나 모두 편해졌다.
기습 공격을 받은 뒤 상황을 추스르려면 당연히 반격해야 했다.
북요의 선봉부대는 중갑옷을 벗은 뒤 즉시 밀림 속에 뛰어들어 주나라 장병들의 종적을 찾아다녔다. 그들을 단독으로 찾아내어 일일이 사냥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주나라의 장병은 일대일 싸움에 연연하지 않았다. 기습한 후 결과도 확인하지 않고 곧 밀림 속으로 숨어들어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육장봉은 밀림에 들어간 순간, 우리는 사냥꾼이고 저들은 사냥감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냥감을 사냥할 때는 조급해하지 말고 충분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주나라인들은 이미 여러 해 동안 기다렸다. 이 정도 시간은 얼마든지 더 기다릴 수 있었다.
주나라 병사들은 충분한 인내심을 가지고 밀림 속에서 북요인들을 천천히 몰아 죽였다. 하지만 육장봉은 신호와 함께 천천히 놀 인내심이 없었다.
육이가 사람들을 이끌고 밀림 속에 들어가자, 육장봉은 자신의 실력을 더는 감추지 않았다. 그는 말 등에서 뛰어들어 살기를 내뿜었다. 모든 공격이 신호의 약점을 찔렀고 검은 집요하게 신호의 얼굴을 노렸다.
신호는 낭패한 기색으로 연신 물러났다. 동작이 세련되고 기세가 강한 육장봉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부상당한 게 아니었다니!”
“내가 다쳤다고 누가 그랬지?”
군마라는 ‘짐’이 사라지자 육장봉은 동작이 더 빠르고 강력해졌다. 백호라는 조력자가 있었음에도 신호는 그의 공세를 피할 수 없었고 얼마 안 되어 몸에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신호는 노하여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철추를 험악하게 휘두르며 말했다.
“네놈! 일부러 실력을 숨기고 나를 속였구나!”
“아니. 가지고 논 거다!”
장검과 철추가 맞부딪쳤다. 육장봉은 공중에서 회전했다. 온몸의 먼지와 마른 나무들이 강한 바람에 날리며 춤을 추었다.
육장봉은 발끝으로 착지하여 몸을 가누더니 또다시 앞으로 뛰어올랐다.
이번에 그의 공격은 신호가 아니라 그가 타고 있는 백호를 향했다. 그의 검이 백호에게 닿으려는 순간, 검로가 비틀리며 신호의 얼굴로 휘둘러졌다. 신호가 그 공격을 방어하려는 순간, 검이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넘어갔다.
푸욱!
육장봉은 왼손으로 백호의 눈을 찔렀다.
그러다니 다시 검을 빼어 훌쩍 물러났다.
일련의 일들은 마치 수천수만 번은 훈련한 것 같았다.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백호에게서는 피가 샘솟듯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육장봉은 이미 멀리 떨어져 있어 백호의 핏방울이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백호는 부상을 당하자 천지를 뒤흔들듯이 포효했다. 산과 들판을 뒤흔드는 소리에 밀림 속의 말들이 놀랐고 불안해서 울부짖는 바람에 자신의 종적을 드러내게 되었다.
밀림 속에서는 새로운 사냥이 시작되었다!
육장봉은 백호에게 일격을 가한 후에도 멈추지 않고 은밀히 화살을 날렸다.
슉!
그런 소리와 함께 손바닥만 한 수전(袖箭)이 육장봉의 팔목에서 날아가더니 백호의 앞발에 명중했다.
백호는 부상을 입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신호가 아무리 얼러도 소용없었다. 심지어 백호가 들썩이는 통에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수전이 날아오자 신호는 백호를 도와 피하려고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수전이 백호의 앞다리에 박혔다. 백호는 앞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무릎을 꿇었다. 백호는 고통에 못이겨 또다시 하늘을 뒤흔드는 포효를 내질렀다.
그 순간, 육장봉도 공격을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백호는 이미 사람을 태울 수 없었다. 신호는 하는 수 없이 몸을 던져 백호 등에서 뛰어내리며 육장봉의 공격을 피했다.
“육가놈아, 잘난 척하지 마라!”
신호라는 짐이 없어지자 백호는 육장봉이 앞으로 다가오는 순간 갑자기 달려들었다. 예리한 발톱과 이빨로 육장봉을 물어뜯으려 했다.
하지만 육장봉의 검은 백호의 발톱과 이빨보다 빠르고 날카로웠다.
슉!
백호가 뛰어오르는 순간, 육장봉의 검이 그 복부를 베었다.
백호는 허공에서 멈추었다. 여전히 몸을 날려 사냥감을 덮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육장봉은 더는 싸우지 않고 단칼에 백호를 넘어뜨렸다. 그는 곧바로 검을 거두고 뛰어올라 또다시 신호를 공격했다.
신호는 철추를 휘두르며 육장봉과 여러 수를 겨루었다. 그가 든 백여 근에 달하는 철추 두 개가 육장봉에게 전혀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혼란에 빠졌다.
“너, 넌 도대체 누구냐!”
“네 목숨을 취할 사람이다.”
육장봉은 기민하게 움직여 뛰어오르더니 신호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찍었다.
신호는 철추를 들어 막았지만 연거푸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육장봉은 또다시 검을 들고 신호를 덮쳤다.
신호는 세찬 기세로 살기등등하게 달려드는 육장봉을 보고 당황했다. 육장봉이 달려드는 순간 그는 극히 수치스러운 행동을 했다.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북요의 대원수라더니. 그저 그렇군.”
관람석, 주나라와 북요의 관리들은 육장봉과 신호의 접전을 구경하고 있었다. 모두 긴장하여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호가 허겁지겁 도망치자 주나라의 관리들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평가할 여유가 생겼다.
반면 북요 관리들은 얼굴빛이 무척 안 좋았다. 하나같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호는 그들 북요의 대원수로, 그들 북요의 장병들이 숭배하고 존경하는 강자였다.
신호는 북요에 있어서, 주나라에서 육장봉의 위치와 같았다. 만약 신호가 육장봉의 손에 죽게 된다면 그들 북요는 비록 전부는 아니어도 나라를 받치는 기둥의 절반이 내려앉는다 봐야 했다.
신호가 허겁지겁 밀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본 북요 관리들은 비분강개하는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되었든 신호가 죽지만 않으면 되었다.
신호가 육장봉에게 진 일도 그들 몇 명만 보았다. 그들 몇이 말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북요의 관리들이 기뻐하기는 아직 일렀다.
신호의 도주는 빠르지만 육장봉은 더 빨랐다.
육장봉은 빠르게 두 걸음을 달린 다음 공중에서 솟구쳐 회전하더니 신호의 앞에 사뿐히 착지했다.
“달아나려고 하느냐? 이 어르신께 물어는 보고 가야지?”
똑같은 말을 신호에게 되돌려 준 육장봉은 신호에게 손쓸 기회를 주지 않고 빠르게 발을 날렸다.
탕!
신호의 왼손에 있던 거대한 철추가 큰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신호는 화가 나서 또 다른 철추를 휘둘러 육장봉을 쳤다.
“애송이 자식! 다 컸구나. 잊은 건 아니겠지. 그때 여인의 사타구니에 숨어서 목숨을 부지했었다는 것을 말이야.”
“옛 이야기 밖에 할 게 없나? 신호. 너도 늙었군.”
신호의 말은 육장봉을 격노시키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침착하게 싸움에 응했다. 검술이 예리하고 날카로웠으며 서슬이 퍼런 살기를 띠고 있었다.
신호는 육장봉에게 밀려 거듭 후퇴하다 보니 처음 접전을 벌였던 전장으로 되돌아왔다. 밀림과는 점점 더 멀어졌다.
밀림 속에 숨어들지 못한다는 것은 육장봉의 그림자같이 달라붙는 공격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호는 당황했다. 철추를 더 빠르게 휘둘렀지만 사태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여태까지 지금과 같은 육장봉과의 격차를 느낀 적이 없었다.
신호가 또다시 철추를 휘둘렀지만 육장봉이 그 공격을 쳐 되돌렸다.
땅!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튕겨 나간 철추는 신호의 가슴팍에 내리꽂혔다. 강력한 충격에 신호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파밧!
육장봉은 그런 신호에게 또 한 번의 공격을 퍼부었다. 육장봉의 공격을 맞은 철추는 또다시 신호를 덮쳤다.
연속 두 번이나 강한 타격을 받았다. 신호의 몸이 아무리 튼튼해도 견뎌낼 수 없는 강도였다.
신호는 피를 토했다. 다리가 풀렸는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그때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이제는 후회되는군.”
“그때도 넌 나를 죽일 수 없었다.”
육장봉은 깔끔하게 신호의 손에 간신히 들려 있던 철추를 걷어차 날려 버렸다.
바로 이때,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신호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허리춤에서 짧은 비수를 뽑아 육장봉을 향해 찔렀다.
“하지만 지금 널 죽일 수는 있다!”
그 비수는 푸른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독이 묻어 있는 암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