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화 칠연발 쇠뇌
인사? 그런 건 없었다.
전쟁터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었다. 목숨을 목전에 두고 예의를 차릴 사람은 없었다.
북요에서 화살을 쏘자, 주나라 선봉대의 병사들도 신속하게 그들이 새로 마련한 무기를 꺼냈다.
탓!
그런 소리와 함께 ‘쇠우산’들이 펼쳐지며 앞과 위를 막았다. 펼쳐진 쇠우산은 각각 하나로 이어져 일말의 틈새도 없이 자신과 뒤에 있는 동료들을 모두 그 속으로 품었다.
북요의 하늘을 뒤덮은 듯한 화살비는 ‘쇠우산’에 맞아 대개는 튕겨 나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운’이 좋은 일부 화살만이 쇠우산 사이를 파고들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소영화는 주나라가 내놓은 무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주나라의 저 무기는 어쩐지 우리 무기 맞춤형으로 만든 거 같은데?’
“퉤!”
관람석, 북요 관리가 화가 나서 주나라의 관리에게 침을 뱉었다.
“제기랄. 우리 비밀무기가 유출됐잖아. 주나라 이 소인배들. 그러고는 무슨 군자냐. 군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게 군자가 할 짓이냐?”
주나라의 관리들도 지려 하지 않았다.
“당신네 북요만 신무기를 쓸 수 있나? 우리 주나라가 신무기를 쓸 수도 있는 거요. 무슨 비밀무기 유출을 들먹이는지. 자기 기량이 안 되는 걸 그냥 고분고분 인정하시지. 지고도 인정할 용기조차 없는 게 더 꼴불견이지!”
“진실은 진실로, 신용은 신용으로 대해야지. 우리 주나라가 군자인지 아닌지는 우리 주나라인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당신네 북요는 본인들이 소인배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가?”
“전쟁터에서는 각자의 재간으로 겨루는 거지. 우리는 당신네 북요가 남보다 못한 걸 인정하는지 여부는 신경 쓰지 않소. 아무튼 사실이 눈앞에 있으니까 말이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고 우리 주나라에 덤터기를 씌우려 하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요.”
“듣건대 귀국 황태자는 매번 지려고 할 때마다 고질병이 도진다더군. 사실이오?”
“귀국 황태자의 고질병은 정말 때를 잘 맞춰 도지는군. 귀국 황태자의 고질병이 혹시 신통하게 미래를 점지하는 건 아니겠지?”
말싸움에서 주나라의 문관들은 그 누구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북요인들이 한마디 하자 주나라 관리들은 몇십 마디를 돌려주었다. 특히 야율융제의 고질병이 재발한 것도 언급하면서 비꼬아 말하자 북요 관리들은 더욱 분통이 터졌다.
황태자의 고질병이 발작하는 게 미묘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들 스스로도 변명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일은 알고도 모른 척해야만 한다.
“건방진 것들! 사악한 묘기에 지나지 않은, 고작 그런 무기를 가지고 신무기라고. 그 잘난 물건을 우리 북요에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아.”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놈들. 우리 신호 대원수가 주나라 무장들을 도살할 때 어느 구석에 숨어 있었는지도 모를 것들이? 그 대단하다는 육씨 가문 사람들은 다 우리 신호 대원수 손에 죽은 거잖아!”
“우리 대원수는 초원의 독수리다. 용맹스럽고 천하무적이지. 당할 자가 없거든. 너희들도 죽기만을 기다려야 할 거다!”
북요의 관리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주나라의 관리에게 맞대응을 했다.
말싸움에서 이기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기세에서 질 수는 없었다.
비무는 막 시작되었다. 주나라가 비록 무기의 우세로 잠시 앞섰지만 북요가 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신호 대원수가 있었다.
북요인들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주나라인들 또한 육장봉 부대의 군사들이 기세가 드높고 살기가 하늘을 찌르며 자신감이 넘치는 것을 보고 위축될 리가 없었다. 양국 관리들은 관람석에서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격한 분위기는 아래쪽에서 싸우는 양국 병사들 못지않았다.
전장에서 북요의 일차 공격이 실패했다. 소영화는 신속하게 칠연발 쇠뇌를 내려놓고 대도로 바꾸어 직접 주나라 병사들과 정면승부를 하라고 명령했다.
그들 북요인들은 기마 민족으로서 특히 말을 타고 싸우는 데 능숙했다.
주나라가 북요와 기병으로 대결하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북요 병사들은 명령을 받고 쇠뇌를 내려놓았다. 다시 칼을 빼 들고 돌진했다.
하지만 그들이 쇠뇌를 내려놓고 원거리 공격의 우세를 포기하자 이번에는 주나라 병사들이 도리어 그 우세를 사용했다!
앞장에 서서 돌격하며 ‘쇠우산’을 펼쳤던 주나라 병사들은 신속하게 양쪽으로 이동했다. 가운데 공격을 책임진 병사들이 앞에 나섰다.
공격을 책임진 병사들의 손에 든 무기 역시 ‘우산살’이 가득 붙어 있는 쇠장대였다. 그들은 신속하게 그 쇠장대를 회전시켰다. 그러자 쇠몽둥이의 ‘우산살’은 긴 화살이 되어 날아갔다.
슈슈슉!
이는 북요에서 사용하는 칠연발 쇠뇌와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이 수많은 화살이 날아들었다. 하나하나가 매우 날쌨고, 마치 독사처럼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다.
다만 주나라가 쇠우산으로 방어했던 것과 달리 북요인들은 방어막이 없었다!
푸슉! 푸슉!
날아드는 화살은 대부분이 북요인들의 칼에 막혔고 적은 양의 화살만이 북요인을 적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정밀한 공격이 아니니 전부 맞힐 수는 없었다.
푸슉! 푸슉!
시간이 지나자 앞에서 돌격하던 북요 전사들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기 시작했고 얼마 안 되어 상당히 많은 병력이 쓰러졌다.
“철수한다! 즉각 철수해라!”
소영화는 수하의 전사들이 이대로 돌격해서 주나라 병사의 기를 여지없이 꺾으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반드시 퇴각해야 했다. 사거리 범위를 벗어나서 피해를 줄이는 게 우선이었다.
현재 그들은 주나라보다 열다섯 명이 적었다. 그런데 방금의 공격으로 스무 명 정도의 용사가 쓰러졌다. 더이상 사람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북요 병마가 신속하게 철수하자 주나라 장병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몰아 추격했다. 동시에 북요인들이 땅에 떨어뜨린 칠연발 쇠뇌를 주워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젠장!”
소영화는 주나라 장병들의 동작을 보고 얼굴이 새하얘졌다.
이번 공격에서 칠연발 쇠뇌는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의심할 나위 없었다.
칠연발 쇠뇌는 그들 북요의 장인들이 많은 심혈을 기울여 연구 제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칠연발 쇠뇌로 기사회생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지금 칠연발 쇠뇌가 주나라의 수중에 들어갔다. 주나라인들의 영리함으로는 곧 칠연발사 쇠뇌를 만들어 낼 것이고 나아가 그들 것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었다.
소영화는 칠연발 쇠뇌가 주나라인들의 수중에 들어간 후의 결과를 생각하고는 이를 악물고 열 사람을 불러냈다.
“너희…… 가서 쇠뇌를 빼앗아 오거라. 절대 주나라인들이 가져가게 해서는 안 된다.”
“네!”
지명된 열 명은 주저 없이 몸에 지닌 쇠뇌를 풀어 동료에게 넘겨주었다. 말 머리를 돌려 주나라인들에게 달려가서 칠연발 쇠뇌를 빼앗아 오려 했다.
이 열 명은 목표가 확실했다. 칠연발 쇠뇌를 주운 병사에게만 달려들었다. 우연이었을까. 칠연발 쇠뇌를 주운 사람은 모두 육장봉의 친위대였다.
이 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 주나라인들이 가진 북요인들의 수급에 열 개를 보태 주었을 뿐이었다.
처음 접전에서 북요는 벌써 서른여 명을 손실 보았다. 남은 병마는 이백오십 명뿐이었다. 주나라보다 오십 명이 적었다.
주나라 병사들은 이 작은 승리로 환호하지 않았다. 북요인들이 밀림 속으로 뛰어들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뒤쫓아갔다.
대장군은 그들의 임무는 북요 참전 병사들을 남김없이 학살해 북요인들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육장봉은 신호를 꼼짝도 못하게 했다. 신호는 백호의 도움으로도 육장봉의 공격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육장봉과 함께 밀림 밖에서 공방전을 벌이다 보니 북요인들을 지휘할 방법이 없었다.
소영화가 명령을 내려 북요 병사들을 밀림 속으로 철수시키고 주나라의 병마들도 잇달아 밀림 속으로 따라 들어가자 신호는 그야말로 기쁨 반, 걱정 반이었다.
주나라인들이 밀림 속에서 싸우는 것에 능하지 못하지만 사실 그건 북요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이곳을 삼차전 비무 장소로 고른 건 양쪽 모두에게 불리한 곳을 고른 것뿐이었다.
물론 주나라에 더욱 불리했다.
이곳은 산림으로 지형이 복잡하고 환경이 다양했다. 이곳에서 비무를 진행하면 주나라는 제 영역에서 싸우는 우세가 전혀 없었으며 그들 군대의 장점마저 발휘할 수 없었다.
그렇게 때문에 황제가 그렇게 화를 냈던 것이다.
회담에 참가한 주나라의 관리들은 북요가 이곳을 선택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장병들의 생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며 주나라의 체면도 전혀 괘념치 않았다.
그들은 너무 쉽게 대답했고 자신들이 대답한 조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병들이 헛되이 희생될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황제가 당시 조정에서 노발대발 했음에도 문무백관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사적으로는 하찮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같은 곳에서 북요인들은 싸울 수 있는데 왜 우리 주나라 장병은 안 되는 거야? 주나라 장병이 안 된다는 것은 장수가 무능하고 전사 역시 무능하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그런데 비무는 무슨 비무? 차라리 빨리 졌다고 인정하는 게 낫지.”
이 말은 황제의 귀에 전해졌다. 황제는 화가 나서 그 사람을 파면시키고 삼대 이하의 후손이 과거를 봐 관리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황제가 한 사람을 파면시킬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관리의 말은 입소문을 탔고 이에 동조하는 문인들이 적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네가 못 하면 그건 네가 무능력한 것이다.
황제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북요인들이 이곳을 선택한 것은 분명 함정을 준비한 것이었다.
북요인들은 회담 전부터 사전에 밀림의 복잡한 환경에 적응했을 거란 사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면 주나라는 비무 장소가 밀림이라는 것을 갑자기 알게 되어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작정하고 덤벼드는 북요인들과 어떻게 겨루겠는가?
하지만 육장봉은 평온한 기색으로 한마디도 불평하지 않았다. 묵묵히 부대를 이끌고 밀림 속으로 가서 훈련했다.
한 달이란 시간을 들여 많은 사상자와 부상자들을 내고서야 밀림 야외에서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을 훈련해 낼 수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 병사들이 실력을 보일 때였다.
육이를 비롯한 친위대들은 조정의 대신들이 어떻게 육장봉을 따돌리고 어떻게 덫을 놓는가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그동안 계속 마음속으로 울분을 참으며 이 격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승리를 거두어 문관이든 북요인이든 단단히 한 방 먹이려 했다.
그들은 실력으로 북요인들에게 알려 줄 것이다. 장군을 만나면 북요인들이 아무리 갖은 잔꾀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