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463)화 (463/1,004)

463화 삼차전 비무의 시작

육장봉이 죽지 않으면 북요인들은 결국 주나라에 짓눌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나라 사람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없게 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상황은 반대였다. 소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너무 커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소영화는 북요 주둔지에 돌아와 육장봉의 조건을 수락하라고 야율융진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전하, 육장봉이 크게 다쳤습니다. 저희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그가 다시 멀쩡히 회복한 이후에 죽이려 한다면 어려울 겁니다. 전하, 주나라에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장군은 육장봉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비무에서 육장봉을 죽일 수만 있다면, 전하께서 가장 큰 공신일 것입니다. 그런 성과를 가지고 저희가 돌아가면 감히 어느 황자가 전하와 다투겠습니까?”

소영화의 설득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야율융제는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갔다. 공로가 있으면 빼앗으려 했지만 앞에 내세워 책임을 지우려고 하면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육장봉이 부상을 입었다는 것은 너희의 추측일 뿐이다. 진위는 아무도 모른다. 육장봉이 다쳤다 해도 어쩔 것이냐? 육장봉은 상처를 입고도 너희들을 마음껏 놀릴 수 있잖았느냐? 너희들은 어째서 비무 시간을 앞당기면 그를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냐? 만약 육장봉이 죽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

야율융진은 소영화와 이야기하고 있지만 눈길은 수시로 신호를 바라보았다.

신호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서 말을 하지 않자 야율융진은 말을 이었다.

“소 상장군, 우리가 삼차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삼백 명은 모두 함께 훈련했으므로 일단 열 명이 줄어들면 전에 훈련했던 포진식을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실력이 크게 줄어들 될 것이다. 삼차전 비무는 내가 주 책임자로서 모든 이를 책임져야 한다. 누구도 헛되이 희생시킬 수 없다.”

신호는 야율융진의 뜻을 금방 이해했다. 야율융진은 공로만 원할 뿐, 책임은 싫은 것이었다.

탐욕과 무능으로 똘똘 뭉친 이가 바로 그들, 북요의 황태자였다.

신호는 경멸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황태자를 어찌 하겠는가. 그가 할 수 있는 건 야율융진이 한발 물러서게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면 공로를 얻을 생각도 말아야 한다.

야율융진은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다. 신호는 예의를 차리지 않고 소영화를 쫓아낸 다음 비밀스럽게 야율융진과 일각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각 뒤, 야율융진은 삼차전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고질병이 재발한 것이다. 북요는 하는 수 없이 싸움을 눈앞에 두고 장수를 바꾸어야 했다.

약속했던 시간이 되었다.

소영화는 나아가 주나라의 관리와 교섭했다.

주나라의 관리는 혼자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육장봉에게 물었다.

“대장군, 북요에서 삼차전의 주장(主將)을 신호로 바꿨습니다. 부장(副將)는 소영화입니다. 황태자는 고질병이 재발하여 주둔지에서 휴양한다고 합니다. 소 상장군은 황태자의 병세가 심각하여 북요의 어의만이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내일 비무를 진행하고 하루빨리 북요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주나라에 대한 보상으로, 삼차전에서 그들이 열다섯 명까지 제하고 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야율융진은 잘도 도망치는군.”

북요에서 보낸 국서와 맨 위쪽에 적혀 있는 신호의 이름을 본 육장봉의 눈빛은 섬뜩했다.

그와 신호 사이의 은원도 이제 끝맺을 때가 온 것이다.

* * *

그렇게 삼차전 비무가 앞당겨졌다. 하지만 주나라에게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육장봉과 친위대 열두 명을 제외하고 삼차전에 참가하는 주나라 병사들은 줄곧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암암리에 훈련하면서 새로운 무기를 익히고 있었다.

금방 새로운 무기에 익숙해진 그들은 저마다 상태가 아주 좋았다. 도리어 시간을 당겨 비무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유리한 일이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바람이 따뜻하고 햇빛은 따사로웠다.

육장봉은 광명갑(光明甲)을 입고 기병 삼백 명을 거느리고 비무 전장에 나타났다.

삼차전 비무 전장은 여전히 밀림이었다. 하지만 어제의 그 심산(深山)은 아니었다.

어제 심산은 초목이 무성하고 사냥감이 많으며 장독(瘴毒)과 모기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산 자체는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반면 오늘 비무하는 밀림은 달랐다. 오늘의 밀림은 안쪽에 절벽도 있고 소택지(沼澤地 - 늪과 못으로 둘러싸인 습한 땅)도 있어 환경이 나쁠 뿐만 아니라 사냥감도 아주 적었다.

현재 비무는 주나라에서 열리니, 시합의 형평성을 위해 비무 장소는 북요가 지정했다.

주나라는 땅이 넓고 물산이 풍부하며 평원이 많았다. 주나라 병사들은 평원에서 싸우는 데 능한 편이고,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는 싸운 적이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북요인들이 이런 곳을 선택한 것은 그들이 주나라의 전사들뿐만 아니라 주나라의 환경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황제는 애당초 북요가 보내온 국서와 북요가 지정한 비무 장소를 보고 문무백관 앞에서 버럭 화를 냈었다. 하지만 산에 올라 탐험하는 사람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황제도 화를 내는 것 말고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만큼 북요의 정탐꾼이 주나라의 환경을 낱낱이 꿰고 있는 것이다.

장소를 선택한 후, 육장봉은 부대를 거느리고 산속에서 실전 훈련을 통해 그 산의 상황을 다소 파악했다. 하지만 그 훈련은 외곽에서만 진행되었고 직접 부대를 거느리고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밀림 속의 위험은 제쳐 두고, 육장봉은 그들이 굳이 밀림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북요인들이 그 넓은 밀림 안으로 들어가 숨으면 그들은 아예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고 봐야 했다. 만약 밀림 외곽에서 북요인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된다면 어차피 주나라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신호는 사람을 이끌고 육장봉보다 일각 늦게 도착했다.

신호는 일부러 위엄을 보여 주려는 듯, 늦게 도착했을 뿐만 아니라 백호를 타고 왔다.

백호는 도착하자마자 으르렁대며 포효했다.

호랑이는 밀림의 왕이다. 주나라의 군마가 아무리 훌륭해도 호랑이의 포효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놀라서 마구 날뛰었다. 정연하던 대오가 순식간에 흐트러졌고 기세도 한풀 꺾였다.

하지만 육장봉의 군마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다.

오늘 육장봉이 탄 군마는 조야옥사자였다. 온몸이 새하얀 것이 육장봉이 입고 있는 광명갑과 서로 어우러져 늠름하고 위풍당당했다.

백호를 탄 신호가 나타나자 주나라 관리들의 얼굴빛은 금세 변했다.

그들은 북요가 이번에 백호 한 마리를 끌고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북요가 너무 잘 숨긴 것인지 아니면 그들 가운데 누군가 북요를 도와 백호의 존재를 숨겼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나라 문관 몇 명은 서로 얼굴만 마주 보면서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그 육장봉도 조금 놀랐다. 북요인들이 그의 눈을 속이고 백호 한 마리를 주나라에 끌고 왔다니. 하지만 놀란 것도 잠깐일 뿐, 그는 곧 평온함을 회복했다.

‘신호는 단지 호랑이를 탔을 뿐이다. 오늘 용을 타고 왔다고 해도 반드시 내 손에 죽어야 할 것이다.’

신호는 육장봉이 무심해 보이자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잊지 않고 주나라의 병사들을 비웃었다.

“겁쟁이 녀석들!”

신호는 갑옷을 입지 않고 상체를 드러낸 채 하체에는 호피를 두르고 있었다. 육장봉이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다고 확신한 것이었다.

반면 소영화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뒤에 있는 전사와 마찬가지로 중갑옷을 입었다. 그는 중갑옷을 입고서야 안심하고 비무에 나설 수 있었다.

육장봉이 상처를 입었다 해도 결국 육장봉이었다. 신호는 육장봉을 무서워하지 않지만 그는 아니었다.

백호가 가져다준 위압감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 주나라의 병사들은 군마를 달래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효과가 거의 없었다. 군마들은 여전히 불안해하며 계속해서 움직였다.

육장봉은 빠르게 장병들에게 다섯 걸음 후퇴하라고 명령했다.

군마는 뒤로 물러서자마자 백호의 위압감에서 벗어났다. 말들은 장병들의 위로를 받으며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들은 대오를 정돈하여 곧 진영 앞에 안정감 있게 다시 섰다. 백호 소동으로 한풀 꺾였던 사기가 되살아났고 심지어 전보다 사기가 더 강해졌다.

육장봉의 군대는 강적을 만날 수록 더 강해졌다.

신호는 초반 기세에서 육장봉을 압도하지 못하고 주나라의 병사들에게 심리적 압력을 주지 못하게 되자 얼굴빛이 다소 난감하게 흐려졌다.

그는 미래를 이번 비무에 걸었다. 지면 끝장이었다.

결코 져서는 안 되었다. 특히 육장봉에게 져서는 더욱 안 되었다.

신호의 눈가에 잔꾀를 부리려는 기미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백호를 앞으로 내몰았다.

바로 그때 전고(戰鼓 - 전투할 때 치는 북)가 울려 퍼졌다.

둥! 둥! 둥!

“삼차전 비무, 시작!”

연거푸 세 번을 울린 북소리가 멎는 순간, 삼차전 비무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이번 비무는 일방이 전멸되거나 항복해야 끝나는 방식이었다.

쉬익!

북소리가 멎는 순간 육장봉의 팔에 장착했던 수전(袖箭 - 소매 속에 감추고 용수철로 남몰래 쏘는 활)이 백호의 두 눈을 향해 날아갔다.

“육장봉!”

신호는 노하여 소리치며 철추를 휘둘러 수전을 격추시켰다.

“죽여라!”

육장봉의 이 공격은 작전 개시를 알리는 신호였다.

육장봉은 북요인들에게 밀림에 들어갈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그는 앞장 서서 백호를 탄 신호에게 곧장 달려갔다.

“죽여라!”

육장봉의 뒤쪽에 있던 삼백 명의 전사들의 기세도 육장봉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들은 육장봉이 앞장에서 달리는 순간 함께 말을 몰아 달려갔다.

백호는 몰려드는 기척을 듣고 노한 듯 연신 포효했다. 분명 처음에는 군마도 백호의 울음소리에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육장봉이 앞장서서 신호를 옆으로 몰아가자 군마가 받는 영향이 적어졌다.

게다가 주나라의 군마가 영향을 받는 만큼 북요의 군마도 백호의 위압감에 영향을 받았다.

백호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 상황이 같았다. 어느 쪽도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북요의 군마는 백호와 더 가까워 오히려 그들이 받는 영향이 더 컸다.

양쪽 군대는 한동안 혼란에 빠졌다가 육장봉과 신호가 멀어짐에 따라 재빨리 기세를 회복했다.

북요인들은 주나라인들이 먼저 공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전장에 나서는 순간 이미 수시로 응전할 준비를 하는 전사들이었다.

“준비, 사격!”

주나라의 장병이 공격해 오자 북요의 선봉대 병사들은 칠연발 쇠뇌를 설치한 다음 주나라의 장병들에게 활을 쏘았다.

칠연발 쇠뇌를 설치한 순간 북요 전사들은 모두 득의양양한 모습이었다.

이제 주나라 시골뜨기들에게 그들의 용맹을 보여 줄 때가 된 것이다.

칠연발 쇠뇌는 그들의 비밀무기였다. 전에 전장에서 패배하면서도 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바로 양국 비무에서 주나라를 확실히 압도함으로써 최소한의 손실로 승리를 거두려 했기 때문이었다.

슉! 슉! 슉!

칠연발 쇠뇌는 위력이 엄청났다. 궁수는 서른여 명뿐이었지만 화살은 장대비같이 죽죽 쏟아졌다. 그 기세는 사람을 크게 놀라게 할 지경이었다. 전혀 숨을 쉴 틈이 없었다.

이 광경을 본 황실을 대표해 출석한 친왕을 포함한 대주 관리들이 관람석에서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벌써 시작된 건가?”

‘아직 채 앉지도 않았는데 너무 갑작스럽잖아! 최소한 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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