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화 육장봉도 이제 끝이군
월령안은 외로움에 사무쳐 슬프게 울었다. 얼굴의 화장이 다 지워지도록 울었다.
한참을 울던 그녀는 마침내 평온을 되찾았다.
그녀는 회색 옷을 입은 하인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안방으로 돌아가 세수를 하고 화장을 다시 했다.
다시 나온 월령안은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다. 방금 전에 그렇게 고통스럽게 울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 아저씨, 영감님이 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누구예요?”
회색 옷을 입은 하인은 몰래 탄식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했다.
“육 대장군입니다.”
그는 내심 육장봉의 편을 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주인은 월령안이었다. 그는 그녀를 속일 수 없었다.
“육장봉이었군. 참 한가하기도 하시지.”
월령안의 말투가 묘한 기운을 띠었다.
서씨 하인은 육 대장군이 앞으로 월령안한테 더욱 대접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육장봉은 영감님과 무슨 얘기를 했나요?”
월령안이 물었다.
하인은 대화 중 노인의 신분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 사실대로 말했다.
“육 대장군은 아가씨께서 군영에 가시기를 바랐습니다. 지금 변경은 아가씨께 너무 위험하다고요.”
“참, 아직도 단념하지 않았다니.”
월령안은 조소 어린 말투로 말했다.
“제가 경성에 있는 게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아는데 왜 수 오라버니를 돌려보내지 않을까요? 수 오라버니가 옆에 있으면 아무도 저를 다치게 만들 수 없을 텐데. 결국 육장봉의 이기심 때문이죠.”
‘과연 육 대장군을 미워하시는군.’
회색 옷을 입은 하인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어. 이제 겨우 시작인 것 같으니……. 육 대장군도 갈 길이 아직 멀었군.’
“육장봉이 아주 한가한가 봐요. 우리 집안일에 참견을 다 하고. 그럼 저도 그분의 열정에 보답을 해 드려야겠죠.”
월령안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그 눈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육씨 가문 사부인에게 육비우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좀 흘려 주세요. 육비우가 죽으면 육씨 가문 넷째 집안도 망할 거고, 그러면 앞으로 아무 이득도 보지 못할 거라고요. 그리고 또 제가 예전에 어떻게 육씨 가문 저택을 이용해 돈을 벌었는지 암시해 주세요. 대충 흉내 낼 수 있게 말이에요.”
육씨 가문 사부인의 어리석음과 탐욕은 결코 월령안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 * *
육장봉은 월령안이 노인이 떠난 것까지 모두 그를 탓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명월 산장을 나가면서 육장봉은 육이가 전해 온 소식을 받았다. 신호가 사람을 데리고 밀림 속에서 육장봉의 종적을 수색하고 있으며, 기회를 틈타 그를 죽이려는 것 같다고 했다.
소식을 받은 육장봉은 육삼을 남겨 명월 산장을 지키게 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월령안이 군영으로 피신하려 하지 않는다면 수횡천에게 전갈을 보내 월령안의 곁에 남아서 보호하라고 해라. 반드시 기억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월령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알겠느냐?”
“네, 장군.”
육삼은 변경의 혼란한 정세를 떠올리더니 몰래 한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정신을 바싹 차렸다.
육삼은 워낙 듬직하고 운도 좋았다. 그런 육삼을 월령안의 곁에 남겨 둔다면 육장봉도 한결 마음이 놓일 듯했다.
육장봉은 육사를 포함한 친위대 일부를 거느리고 밀림으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다시 위장한 뒤 또 시간을 조금 들인 후에야 밀림 속에 단단히 숨은 육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육이 몸의 상처를 보고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상황이지?”
“북요인들이 비겁한 수를 썼습니다. 그놈들이 사전에 밀림 속에 사냥개 약 서른 마리를 풀어 놓더군요. 사냥개 무리는 냄새를 맡고 사람을 찾아다니는데, 후각이 좋아 우리가 아무리 잘 숨어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육이는 그날의 전투에 대해 말하자 마음이 몹시 울적해졌다.
북요인들이 사냥개를 준비한 것은 사냥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들을 찾는 데 쓰기 위해서였다.
다행히도 어제 육장봉이 그들을 거느리고 북요인과 접전을 벌여 그들의 전력을 절반이나 줄여두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북요 전사 백 명과 서른여 마리의 사냥개를 상대로 틀림없이 큰 손해를 보았을 터였다.
“어제 북요인들이 우리를 찾지 않고 왜 무작정 사냥감만 찾는가 했더니. 알고 보니 그들이 밀림 속에 있는 사냥개를 찾지 못했던 모양이군. 북요인, 이 거지 같은 자식들은 오로지 더러운 수작만 쓴단 말이지. 상종하지 못할 것들이야."”
육사는 화가 나서 말했다.
“장군, 우리 영역에 사냥개를 풀어 놓는 일은 북요인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분명 누군가 그들을 도왔을 겁니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피로도 모자라 눈물까지 흘릴 수는 없습니다!”
육오도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었다.
그 외 육이를 포함한 이들은 한동안 침묵했다.
이번뿐이 아니었다. 북요와 싸우던 삼 년 동안, 조정의 문관들은 항상 이러했다. 그들을 지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안간힘을 다해 그들을 가로막았다.
사실 많은 형제는 북요인이 아니라 같은 편주나라 사람의 손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원한을 이제 갚을 수 있을까.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르고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이때, 육십이가 상한 팔을 들고 소심하게 입을 열었다.
“대장군, 전에 정했던 규칙대로 상처 개수에 따라 뛰어야 할까요?”
육십이의 몸에는 상처가 가장 많았다. 다친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줄곧 최전방에서 싸웠다. 상처를 싸매고도 보이는 상처가 수십 개나 되었다. 얼핏 보아도 육장봉의 규정대로 한다면 육십이는 적어도 이백 바퀴는 뛰어야 하리라.
육십이가 이 일을 걱정할 만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무거운 분위기를 보고도 벌로 뛸 일만 걱정하다니. 모두들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육장봉은 그를 힐끗 훑어보았다. 그의 바보 같은 모습을 보자 육장봉은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월령안은 육십이의 어떤 점이 좋다는 거지? 왜 육십이를 특별히 잘 대해 주지? 이렇게나 멍청한데.’
육장봉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육십이 외에 다른 사람은 벌을 받을 필요가 없다.”
“대장군, 저는…….”
육십이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급히 변명하려 했지만 사냥개의 울음 소리에 중단되었다.
“아우……! 아우……!”
육장봉은 빠르게 일어서서 전투 태세로 들어갔다.
“육이, 신호를 보내라. 모두 집합한다."”
북요인들이 싸움을 걸어오싸움을 걸어왔으니 받아 줄 것이다. 그들은 북요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육사, 육오, 너희는 육이를 엄호하라. 육육은 남아서 부상자를 돌보거라. 나머지는 나를 따른다.”
육장봉은 신속하게 인원을 배치한 후 사냥개가 울부짖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는 몇 번 오르내리는가 싶더니 금세 밀림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대장군께서 저에게는 아직 임무를 안 주셨어요. 저도 공을 세워 속죄하려고 합니다.”
육십이가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이 불쌍하고 막막해 보였다.
육이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 주었다.
“생각하지 마라. 월 낭자가 장군을 용서하기 전에는 네가 속죄하긴 어려울 테니.”
“어? 왜죠?”
육십이는 망연하기만 했다.
“생각하지 마. 넌 아마 영원히 모를 테니까.”
‘이 정도까지 말했는 데도 육십이가 깨닫지 못하면 별 수 없지.’
월 낭자가 육십이를 남달리 대하던 것을 떠올린 육이는 망설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월 낭자가 정말로 병기를 만들어 주시면, 절대 장군께 보여서는 안 된다. 왜냐고 묻지 말고 그대로 해. 알았지?”
“아? 그래……, 장군님이 질투하는 거였구나!”
육십이는 길게 숨을 들이쉬더니 곧 울상을 했다.
“하나같이 무슨 큰 비밀이나 있는 것처럼 감추니까 난 또 무슨 일이 있나 했지. 결국 장군께서는 월 누님이 나를 잘 대해 주니까 질투하는 거잖아. 그래서 나를 벌주는 거고. 억울해!”
육십이는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화가 났다.
“장군께서는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월 누님에게 그냥 얘기하면 되잖아. 월 누님이 돈이 얼마나 많은데! 그까짓 돈은 염두에도 두지 않을걸. 장군께서 입을 열면 월 누님은 체면 때문에라도 장군에게 병기 하나를 만들어 줄 걸? 말하지도 않으시고 장군님 혼자 울적해 하면 누가 알아주나?”
육십이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장군께서는 예전하고 같은 줄 아시나 보네. 아무 말을 안 해도 월 누님이 비위를 맞추려고 온갖 걸 다 갖다 바칠 줄 아나 봐. 장군께서 계속 이렇게 갑갑하게 굴고 아무 말도 하시지 않으면 월 누님이 조만간 장군을 버릴걸?”
육십이는 사실을 깨닫고 한참 육장봉에 대해 원망을 쏟아 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활발하고 기운차게 육육을 따라가 부상자를 돌보았다.
육십이는 더 이상 앞에서 돌격하지 않고 후방에 남을 생각이었다.
한편, 육이는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모두가 십이보다 영리하지 못하군. 누가 십이를 어리석다고 했지? 분명 누구보다도 똑똑하잖아! 아쉬운 건 육십이의 말을 장군께서 듣지 못하셨다는 거군. 우리는…….’
육이는 육사와 육오를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육십이가 아니라서 감히 장군 앞에서 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세 사람은 한숨을 내쉬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육 대장군의 명령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육장봉은 앞쪽에서 육칠과 육팔을 거느리고 달려가고 있었다. 때마침 사냥개를 이끌고 밀림 속에서 미친 듯이 그의 행방을 찾고 있던 소영화를 만났다.
“육장봉!”
소영화는 육장봉을 보자 눈이 번쩍 뜨였다. 즉시 신호에게 소식을 보냈다. 동시에 뒤를 따르던 병사들에게 사냥개를 이끌고 육장봉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육장봉은 대원수에게 큰 부상을 입었다. 달려들어 육장봉을 죽이거라. 육장봉을 죽이는 자에게는 승진을 약속한다!”
“육장봉을 죽이고 승진하자!”
소영화의 뒤를 따르던 북요 병사들은 하나같이 흥분에 들뜨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냥개를 앞세우고 육장봉 무리를 포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육장봉은 그들이 앞으로 달려드는 순간 한 걸음 물러섰다. 육칠, 육팔 둘이 앞에 나서게 하고 자신은 뒤쪽에 서서 검을 들고 움직이지 않았다.
소영화는 이런 육장봉의 모습을 보고 그가 상처를 입었다고 굳게 믿었다.
육장봉은 언제나 건방졌다. 그들 북요인과 대적할 때면 단칼에 해결하지, 결코 두 번에 나누어 손을 쓰지 않았다. 뒤쪽에 숨는 일은 더욱 없었다. 지금 그가 손을 쓰지 않는 것은 아마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육장봉도 이제 끝이군!’
소영화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북요인들은 지난밤 손실이 막심했다. 소영화의 곁에는 병사 다섯 명밖에 없었다. 만약 그들이 사냥개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그들 몇 사람으로는 결코 육칠과 육팔의 적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냥개의 도움으로 북요 병사들은 육장봉의 친위대원 둘과 가까스로 비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육장봉을 죽이기는커녕 그의 곁에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소영화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뒤쪽에 서서 음침하게 육장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멀리서 사냥개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영화가 데리고 온 사냥개도 이에 화답하듯이 덩달아 울부짖었다.
“왔다!”
소영화는 기척을 듣고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