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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58)화 (458/1,004)

458화 어떻게 이렇게 염치가 없지?

육장봉이 모든 일을 마쳤을 때는 날이 점점 밝아오고 있을 무렵이었다.

육장봉은 피 냄새를 가득 안고 대장군부로 돌아왔다. 그는 곧바로 목욕한 뒤 옷을 갈아입고 서재로 갔다.

육장봉은 책상에 앉지 않고 육삼이 황성사에서 메고 온 나무의자에 앉았다.

낡고 작은 의자는 서재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차분하게 앉았다.

“장군!”

암위가 모습을 드러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친위대가 돌아왔습니다. 임무를 제대로 완수했으며, 또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행적을 노출하지도 않았습니다.”

“음.”

육장봉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때 구리파(九里坡) 사건은 누가 처리했었지?”

월령안이 말한 그 지하 투수장은 바로 구리파에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이 적지 않게 죽자 그때 당시 관아도 사건을 중히 다뤘다. 그리고 관아는 구리파에 생긴 일이 사교의 짓이며 강호 싸움인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당시 모든 증거, 심지어 현장도 모두 강호 사교의 짓으로 드러났다. 관아의 조사에 따르면 그 사건과 세가의 공자들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했다.

“장군께 아룁니다, 구리파 사건은 형부와 대리시가 손잡고 수사했습니다. 공문서 상의 구리파 사건 처리 과정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모든 증거는 깔끔하게 사교 집단인 화련교(火蓮敎)를 가리켰습니다.”

암위가 하룻밤 안에 조사해 낼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사건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당시 그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은 그 사건 뒤 일 년간 연이어 사망 또는 실종됐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한 명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음.”

육장봉은 이런 결과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조계안이 준 명단에 적힌 이름의 주인과 그들의 뒷배를 포함한 무리는 조정의 반절에 달하는 세력이었다.

이렇게 많은 세력가들이 힘을 합쳐 한 가지 일을 감추려 했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매우 쉬웠을 것이다.

내막이 어떠한지 뻔히 알면서도 그들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증거가 없고 증거가 있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추궁한다면 역으로 당한다.

이것이 바로 월령안이 복수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심지어 아무 일도 없는 척,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척해야 했다.

원수가 너무 많고 강했고, 배후 세력 범위가 너무 넓어 월령안으로서는 대적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황제조차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세력이었다.

“그들을 계속 주시해. 상황이 있으면 수시로 보고해라. 이 보고는 육일을 거칠 필요가 없다.”

아무리 풀을 베어도 뿌리를 뽑지 않으면 봄에 다시 살아난다. 그 무능한 공자 몇몇을 혼내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들을 두둔하는 가족들을 제거하지 않고서야 월령안은 영원히 편히 지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손을 쓴 이상, 월령안 앞에는 어떤 위험도 없을 것이다.

* * *

하룻밤 사이, 서른 명에 달하는 고관대작의 아들들이 비인간적인 일을 당했다. 궁형(宮刑 -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을 당했는가 하면 절반 이상은 불구가 되었다.

아침 일찍 이 소식을 접한 조계안은 예상했다는 듯 분통을 터뜨렸다.

“육장봉, 이 뻔뻔한 자식!”

이렇게 큰일을 저지르고 육장봉은 나몰라라 떠났다. 하지만 그는 남아서 뒷수습을 해야 했다.

‘악인을 응징하는 영웅은 육장봉이고, 골칫거리를 수습하는 사람은 조계안이라니.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염치가 없지?’

조계안은 생각할수록 울화통이 터졌다. 육장봉에게 당장 따지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육장봉 때문에 멍들고 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모자로 가리고 날이 밝기도 전에 서둘러 장군부로 향했다.

조계안은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도착한 때가 좋았다. 육장봉이 막 서재에 들어가려던 순간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도망가려고?”

조계안은 육장봉을 서재에 확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육장봉은 잠깐 멈춰 생각했다.

‘뭘 따지고 싶은지는 알지만, 순순히 인정할 수는 없지.’

“증거는?”

육장봉은 서재로 들어갈 때 한 걸음도 휘청거리지 않았다. 조계안에게 떠밀려 들어간 게 아니었다.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서재에 놓여 있는 낡은 의자를 한눈에 알아본 조계안은 조소가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본체만체할 때는 언제고. 이제 그 사람이 앉았던 헌 의자도 모으나? 정말 몰라보았네. 그 육장봉이 이렇게 사랑꾼이라니.”

육장봉은 듣는 척도 않고 조계안이 말하는 헌 의자에 앉았다.

“주나라와 북요의 이차전에서는 제가 직접 군대를 지휘했습니다. 지난밤, 저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북요인들을 사냥하다가 북요 대원수 신호에게 부상당했지요. 조왕 전하, 일품 대장군을 모함하다니. 그 결과가 어떨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너……, 이 뻔뻔한 놈!”

조계안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육장봉을 어찌할 수가 없어 씩씩거리며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는 쓰고 있던 모자를 한쪽에 던져 놓더니 멍든 얼굴을 드러내 보이며 말했다.

“내가 별별 인간을 다 봤지만 너만 한 철면피 얌체는 진짜 처음이다. 아니, 북요인을 끌어들여 증인으로 세우다니. 어떻게 그렇게 후안무치 할 수 있냐?”

“흥, 이미 나에게는 범행 시각에 그 자리에 없었다는 완벽한 증거가 있다. 나하고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화련교를 찾아가지? 구리파 사건은 화련교 소행이라고 하던데.”

육장봉은 조계안의 말에 영향을 받지 않고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일을 크게 저질러 놓았으니 변경 전체가 혼란스러울 거다. 넌 내가 구리파 사건을 조사할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조계안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보다, 황형에게 어떻게 해명할지는 생각해 봤어?”

“조계안, 다시 한번 말해 주지 나는 사흘 내내 성 밖에서 병사를 거느리고 사냥하고 있는 상태다.”

그말인 즉슨, 육장봉은 황제에게 해명을 할 필요가 없다.

설령 그가 황제에게 사실대로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 해도 황제는 믿지 않을 것이다. 황제는 그가 조계안을 도와 덤터기를 썼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뻔뻔하고 몰염치한……!”

조계안은 육장봉을 삿대질하다가 제풀에 지쳐 원망이 가득해서 손가락을 거두었다.

“좋아, 네가 저지른 일이지만 덤터기는 내가 대신 쓰지. 하지만 뒷수습에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육장봉은 잠깐 생각을 거치고 말했다.

“닷새! 닷새 안에 양국 간 비무의 결과가 나오겠지. 그때가 되면 북요인들이 더는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 닷새 뒤, 성 밖의 군사들을 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다.”

“확실하나?”

조계안은 즉시 바로 앉았다. 엄숙한 표정에 두 눈은 서슬이 퍼런 것이 살기가 서려 있었다.

“그래.”

육장봉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본래 그는 오 할밖에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어젯밤에 신호와의 접전을 거친 후, 칠 할의 자신이 있었다.

신호는 분명히 그가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었다.

“좋아. 그러면 내가 지금 입궁해서 황형하고 의논해 보지. 황형은 요 며칠 동안 거의 미칠 지경이었거든. 이 소식을 들으면 좋아할 거야.”

조계안은 결국 육장봉을 더 괴롭히지 못한 채 모자를 쓰고 떠났다.

육장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밖을 바라보며 냉담한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떠올렸다.

그는 조계안이 입궁하여 황제에게 어젯밤 일을 보고하기만을 기다렸다.

* * *

순천부 관아.

최일은 하룻밤을 자고 나서 하늘이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다.

밤새 약 서른 명 정도의 세도가 아들들이 궁형을 당했다. 게다가 절반 이상이 사지가 모두 불구가 되었다는데, 범인의 정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녕후부를 비롯한 이 세도가들은 서둘러 사람을 보내 범인을 수색했다. 그러면서도 순천부에 찾아와 고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순천부에 압력을 넣어 순천부윤 최일에게 하루 안에 진범을 잡아내라고 엄포를 놓았다.

최일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고 놀랐지만 빠르게 담담해졌다. 그의 빠르게 냉정을 되찾아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분명 잘했다고 손뼉을 쳤을 테니.

죄를 지은 자는 언젠가 마땅한 벌을 받는다. 하늘은 공평하니까!

최일은 담담한 표정으로 영녕후를 비롯한 고발인들이 욕을 하는 것이나 압력을 주는 것이나 모두 대응하지 않았다. 모든 과정에서 온화하고 친절하게 굴었으나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영녕후 등에게 약속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한마디만 했다.

“알겠습니다.”

최일은 그냥 못 들은 척하고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그냥 되는 대로 한두 마디 얼버무려 사람들을 보내 버렸다.

영녕후 등이 불쾌해서 골탕을 먹일까 걱정하지 않았다.

‘재간이 있으면 손쓰라고 해. 나 최일이 그런 걸 무서워하면 성을 갈아야지.’

최일은 그들을 그냥 보내 버리고 좋은 기분으로 월령안을 찾아갔다.

“령안, 좋은 소식을 알려 줄까요?”

“어젯밤에 누가 사고라도 당했나요?”

월령안은 정자 밖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평온한 표정은 냉담하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그녀에게 영향을 준 것이 분명했다.

“영녕후부 차남, 유 태후의 조카, 장 부승상의 손자를 비롯한 서른한 명이 모두 궁형을 당했어요. 그중 반수는 사지가 불구가 되었죠.”

이 사건은 대외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하지만 최일은 대수롭지 않게 월령안에게 들려주었다.

월령안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원로 고관대작들이군요. 그러니 제가 조사해도 나온 게 없고, 영감님도 저를 말렸지.”

월령안은 책을 들었던 손을 잠깐 멈칫했다. 씁쓸한 미소를 지은 것과 별개로 말투는 평소와 같이 명쾌했다.

“그런 일이 있는 걸 보니, 육 대장군이 어젯밤 귀성했나 보죠?”

최일은 월령안의 맞은편에 앉았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주나라와 북요의 이차전 비무가 어제부터 시작되었어요. 사흘간 밀림 속에서 사냥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주나라의 책임자는 육 대장군이죠.”

월령안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 사람 말고 누가 그런 일을 벌일까요.”

인정하기 싫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 변경에서, 그리고 주나라에서 그녀를 위해 그렇게 많은 세력과 등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육장봉 뿐이었다. 누구도 감히 그렇게 많은 세력과 등질 수 없었다.

노인조차 그렇게 하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육장봉은 매우 훌륭하게 해냈다. 무척이나 훌륭했다.

그 예전 령안의 꼬마 장군일 때도, 지금도 훌륭했다.

“그…….”

최일은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혀끝까지 밀려온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다.

어젯밤, 그는 월령안을 위로할 생각뿐이었다. 월령안을 위해 복수할 생각을 하지 못했으며 또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의 눈에 월령안은 연약하고 언제나 남자의 보호가 필요한 여인이 아니었다.

최일에게 월령안은 그녀 대신 화풀이해 줄 남자가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남자의 도움이 없어도 그녀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월령안이 능히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그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육장봉은 달랐다.

최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형언할 수 없는 씁쓸함과 달갑지 않은 마음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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