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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56)화 (456/1,004)

456화 우리는 사냥하고 있습니다

주나라 병사 주둔지.

일각 뒤, 육장봉이 온몸에 피 냄새를 풍기면서 밀림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온몸에서는 음산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은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 달빛조차도 몰래 숨어 버릴 정도였다.

살기등등한 육장봉이 병사 백 명 앞으로 다가오더니,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 밤, 너희의 사냥감은 바로 북요인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병사 백 명이 한 사람이 된 것처럼,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든 병사가 살기등등하고 전의가 드높았다.

전의가 드높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지금의 장군은 언제든 벼락을 떨어트릴 것처럼 대단히 무시무시했다.

육십이라는 교훈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오늘 밤 그들이 지면 돌아가서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할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육장봉을 선두로 한 병사 백 명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밀림 속을 전진했다.

발아래의 부드러운 나뭇잎이 그들의 발소리를 숨겨 주었다. 구름 뒤에 숨은 달과 어지럽게 얽힌 나뭇가지는 그들의 모습을 숨겨 주었다.

신호와 다른 이들이 인기척을 듣고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육장봉은 이미 주나라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북요인의 주둔지에 접근해 있었다.

육장봉 일행은 어두운 곳에 서 있었고, 북요인들은 불빛 아래 있었다. 육장봉 일행은 북요인의 눈에 떠오른 놀라움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반면, 북요인은 고작 육장봉 일행의 그림자만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북요인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별반 주어지지 않았다. 육장봉은 바로 검을 휘두르며 먼저 신호에게 달려들었다.

“공격하라!”

“육장봉? 흥,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자식이 감히 내 앞에서 행패냐.”

신호는 입안의 고기를 잽싸게 뱉더니, 한쪽에 두었던 철추(鐵錐 - 병장기의 하나. 끝이 둥그렇고 울퉁불퉁한 여섯 자 정도 길이의 쇠몽둥이)를 집어 들고 응전했다.

“죽여라!”

육장봉의 뒤에 있던 병사 백 명은 마치 표범이 어두운 곳에서 뛰쳐나와 달려들듯, 북요 병사들에게 칼을 휘둘렀다.

“육 대장군, 이게 무슨 짓인가? 규칙을 깨려는 것이오?”

소영화는 검을 빼 들고 육이의 공격을 막아내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소영화의 물음에 육이가 냉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장군, 우리는 사냥 중 입니다!”

“네놈들이…… 어찌 감히?”

소영화의 동공이 확 커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육이를 바라보았다.

‘주나라 놈들이 우리를 사냥감으로 여긴다는 건가?’

“밀림 속 모든 생명은 사냥감입니다. 상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까?”

육이는 비웃으며 손에 칼을 더 빨리 휘둘렀다. 그때마다 소영화의 급소를 찔렀다.

소영화는 잠시 멍해진 사이에 기선을 제압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급급하게 방어만 할 뿐, 전혀 반격할 수 없었다.

북요의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오늘 밀림에 들어와서 환경에 적응하고, 사냥감도 수십 마리를 사냥했다. 저녁에는 고기로 끼니를 채운 뒤라, 다소 느긋해진 참이었다.

주나라 병사들의 맹렬한 공격에 북요의 병사들은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여러 명이 쓰러지고 있었다.

주나라 병사들은 승기를 잡고 추격했다. 북요 병사들은 할 수 없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주나라 병사들은 북요 병사들에게서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육장봉과 신호는 실력이 막상막하였다. 서로 견제하느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태로, 가까스로 비기고 있었다.

육십이는 맨 뒤에 떨어져서 육장봉의 공격을 얼핏 보았다. 그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장군은 왜 자기 실력을 억제하려고 하지? 이상하네? 싸우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아닌가?’

육십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싸움이 한창 치열하여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잠깐 정신을 판 사이, 누군가의 공격에 팔이 베였다.

“열 바퀴!”

육삼이 뒤에서 육십이에게 일깨워 주었다.

대장군이 세운 규정에 따르면, 사흘간의 수렵전을 치르고 난 뒤 남은 상처 하나당 열 바퀴를 뛰어야 했다. 이 멋모르는 병사들이 방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

육십이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바로 슬프고 분해 칼을 쳐들었다.

“내가 네놈들을 다 해치울 거야!”

그러나 목소리만 커서 되는 일은 없었다. 육십이는 첫 상처에 이어 가슴에 또 일격을 맞았다.

칼날이 그의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살갗이 밖으로 뒤집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스무 바퀴!”

또 육삼이었다. 뒤돌아보니 육십이가 또 다쳤다.

“이익, 저리 가요!”

육십이는 분에 겨워 울먹였다. 당장 눈을 부릅뜨고 육삼을 노려보았다.

탁!

나뭇가지 하나가 날아와서 육십이의 얼굴을 그었다.

“서른 바퀴!”

육삼은 칼을 휘둘러 앞에 있던 북요 병사의 팔을 베어 버렸다. 그 와중에 또다시 호의를 베풀어 한마디 일깨워 주었다.

육십이는 이제 화낼 힘이 없었다. 묵묵히 육삼에게서 멀어지더니 말없이 칼을 휘둘렀다. 더는 앞으로 돌진하지 않고, 꼼수를 써서 사람들 뒤에 숨어들었다.

‘앞으로 돌진하지 않고, 북요인과 싸우지 않는다면 상처를 입을 리가 없잖아? 난 정말 영리해!’

육십이는 몰래 득의양양했다. 이 기회를 틈타 슬그머니 수풀 속에 숨으려고 했다. 이때 육삼의 머리가 한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게으름 피우는 놈 하나 잡았네. 넌 열 바퀴 추가야. 난 열 바퀴 덜 뛰겠지.”

육십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전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주나라의 병사는 사전에 단단히 대비하고 왔다. 북요인을 불시에 덮쳐 그들에게 막심한 손실을 입혔다.

유일하게 내세울 만한 공적은, 북요의 대원수 신호가 육장봉을 중상을 입힌 듯했다는 것이다.

신호의 무기는 커다란 철추 두 개였다. 한 개에 무게가 백 근이 넘었다. 매번 신호가 철추를 휘두를 때마다 윙윙대는 바람 소리에 온몸이 으스스 떨릴 정도였다.

신호가 철추를 휘둘러 육장봉을 때렸다. 신호는 철추가 육장봉의 몸을 내리쳤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반걸음 물러서는 것 말고는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 뒤에 다시 맞붙었을 때도 육장봉은 여전히 움직임이 날랬다. 둘의 실력은 막상막하였으며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이에 신호는 의혹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육장봉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물러갈 때도, 주저하다가 결국 쫓아가지 않았다.

육장봉 일행은 갑자기 나타나더니 사라질 때는 더욱 신속했다. 신호가 잠깐 망설이는 사이, 그들은 뒤쫓을 최적의 시간을 놓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육장봉 일행은 밀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신호는 제자리에 서서 육장봉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소영화는 앞으로 나아가서 신호를 힐끗 보다가 저도 모르게 원망하고 말았다.

“대원수, 우리는 병사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그 외에도 전사 십여 명이 다쳤습니다. 아마 사냥은 하지 못할 듯합니다.”

“육장봉이 정말 다친 건가?”

신호는 소영화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중얼중얼 혼잣말할 뿐이었다. 마치 소영화에게 묻는 것 같기도, 스스로 묻는 것 같기도 했다.

“대원수, 무슨 말씀입니까?”

소영화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신호도 나이가 들었나? 육장봉이 자기와 싸우면서 줄곧 여유가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나?’

육장봉은 신호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신호 또한 육장봉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육장봉이 분명 내 철추에 맞은 느낌이 났어. 그런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단 말이지. 그 뒤에 싸울 때도 부상으로 인해 둔해지는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착각했을 리가 없어. 분명 맞았어. 심지어 그놈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그러나 신호는 생각할수록 점점 더 긍정적으로 말했다.

소영화는 두 눈을 반짝이며 흥분해서 말했다.

“육장봉은 원래 시치미를 잘 뗍니다. 대원수께서 그렇게 느끼셨다면 상처를 입은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갑자기 철수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방금 그들의 기세로는 우리를 몽땅 죽이고도 남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들은 예정에 없이 갑자기 철수한 게 분명해.”

신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소영화는 더욱 흥분했다.

“대원수, 위풍당당하십니다! 그럼 우리가 승세를 타고 추격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육장봉의 부상을 틈타 그냥 육장봉을 죽여 버립시다! 육장봉은 지금 주나라의 기둥입니다. 육장봉이 죽으면 주나라의 기둥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예전처럼 주나라가 우리에게 공물을 바치게 할 수 있고, 더 많이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조급해할 필요 없네. 조금 기다려 봐……. 내 그 공격에 맞았으면, 보통 사람은 즉사했을 거다. 육장봉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내 철추에 얻어맞았으니 며칠 만에 낫기는 어려울 거다. 조금 더 기다려라. 육장봉의 부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디 두고 보자.”

신호는 손등에 묻은 피를 핥으며 음산하게 웃었다.

‘육장봉이 부상을 당하지 않았어도 상관없지. 이번에는 다쳐도 그놈을 지켜 줄 주나라 공주가 없으니까!’

* * *

육장봉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주둔지로 물러갔다.

“모두 흩어져서 잠복 해라. 움직여서도 안 되고, 북요인을 공격해서도 안 된다. 이틀 뒤, 원래 주둔지에 집합한다.”

육장봉은 나머지 사람을 육이에게 맡겼다. 자기는 분부 한마디만 남기고, 친위대를 거느리고 가 버렸다. 또한, 육십이를 남겨 육이를 돕게 했다.

육십이는 감히 원망의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육장봉이 떠난 다음 억울해서 말했다.

“대장군은 왜 나를 항상 버려 두시는 거지?”

마찬가지로 버려진 육이는 육십이에게 눈을 흘겼다.

‘나도 남겨졌는데, 내가 언제 불평을 하든?’

육이는 육십이를 무시했다. 당장 백 명을 분대 열 개로 나누었다. 분대마다 두세 명의 부상자를 배치했다. 가장 심한 부상자 둘은 자기가 소속된 분대에 두었다.

백 명은 분대로 나뉘어 밀림 속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이틀 뒤 양국의 수렵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사냥감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북요인이 아니기에 이번 경기의 승부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실력 발휘는 조금 전의 사냥으로 충분했다.

* * *

육장봉은 육삼을 비롯한 친위대를 거느리고 최대한 빨리 밀림을 떠나 변경 방향으로 달려갔다.

자정 무렵, 육장봉은 친위대를 거느리고 소리 없이 황성사에 나타났다.

“반 시진 내에 조왕을 만나야겠다!”

“대장군…….”

황성사의 시위가 앞으로 다가오자, 육삼이 막아 나섰다.

“반 시진밖에 없다. 어서 빨리 조왕 전하를 찾아오지 못할까!”

시위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장군, 정신 차리시죠. 여긴 황성사입니다. 대장군의 장군부가 아니라고요. 지금 월권행위를 하는 겁니다! 저희 조왕 전하께서 오시면 언짢아하실 텐데요.’

그러나 황성사 시위들은 육장봉이 전혀 거침없이 쳐들어오는 모습을 그저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심지어 취조실에 붙은 봉인 용지마저 무시하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 버렸다.

봉인 용지가 붙여진 취조실은 당연히 조계안이 월령안을 심문하던 곳이었다.

취조실은 난장판이었다. 벽까지 포함해서, 부술 수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박살 난 상태였다.

그러나 유독 월령안이 앉았던 의자만이 제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부수기는커녕 원래 자리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육장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의자에 앉았다.

육삼은 묵묵히 물러갔다. 그리고 육사를 비롯한 다른 호위병과 함께 입구를 지켰다.

그리고 반 시진 뒤, 조계안이 황성사에 나타났다.

“육장봉, 너 미쳤어? 북요인과 비무하는 거 아니었나? 성에 돌아와서 뭐 하려고? 성안이 아직 덜 소란스럽다고 생각하나? 그게 아니면, 내가 아직 덜 바빠 보여서 아니꼬운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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