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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55)화 (455/1,004)

455화 저놈들 것을 빼앗으면 되지

조계안은 월령안의 말을 듣자마자 즐거워졌다.

“너, 육장봉을 갖고 노는구나.”

“그럴리가요. 육 대장군은 영웅이신 걸요. 변방을 지키고 북요를 물리친 영웅이요. 저는 대장군을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월령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성의함이나 장난을 치는 기색도 없었다.

조계안은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일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그는 월령안의 영웅에 대한 존경심이란 게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

월령안은 두 사람의 이상한 표정을 무시했다. 호각을 도로 넣어 두고는 일어섰다.

“조 대인, 이젠 가도 괜찮을까요?”

“내가 거부한다면?”

조계안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책상 위에 발을 걸쳤다. 아주 거만한 모습이었다.

월령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럼 제가 대인께 우스운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만약 대인께서 웃으시면 절 보내 주시겠어요?”

조계안은 콧방귀를 뀌었다.

“말해 봐.”

“대인, 사실 지지라는 사람은 없어요.”

월령안의 말투는 경쾌하고 장난기가 다분했다.

“지지가 없는 사람…… 뭐?”

조계안은 갑자기 똑바로 앉았다.

‘지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그럼 월령안의 이야기 중에 지지가 당했던 일은 누가…….’

조계안은 눈을 부릅뜨고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날 놀리지 마! 아니, 차라리 지금이 농담이라고 말해!’

조계안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월령안, 너…….”

목소리는 떨려서 제대로 말이 되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농담이었어요. 조 대인, 즐거우셨나요?”

월령안은 조계안 옆에 다가가서 잠시 멈추더니, 이 말을 남기고는 취조실을 나섰다.

조계안은 월령안을 막지 않았다. 막을 힘도 없었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숨이 가빠 죽을 것 같았다. 마치 숨이 끊어질 듯, 전력을 다해 달린 개처럼 숨을 헐떡였다.

월령안의 이야기 덕분에 놀라 죽을 뻔했다.

‘월령안은 분명 악마일 거야!’

최일이 일어나 조계안 곁으로 다가가더니,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인과응보입니다. 월령안을 탓하지 마시죠.”

“꺼져!”

조계안은 초조해서 최일의 손을 밀쳐 냈다. 지금이라면 누구든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지라는 사람이 없다는 월령안의 말에 그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고, 누구를 죽여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월령안의 말이 맞았다. 소여방 같은 인간쓰레기에게 죽음은 오히려 너무 가벼운 벌이었다.

‘그리고 소함연, 영녕후의 차남……. 여기 관련된 놈들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반드시 죽어야 해!’

최일은 고개를 저으며 선뜻 나가 버렸다.

와장창!

그의 등 뒤, 취조실에서는 물건들을 깨부수는 굉음이 들려왔다. 최일은 한 걸음 멈칫했지만, 계속 앞으로 나갔다.

조계안은 줄곧 자기중심적이었고, 제멋대로였다. 남을 배려하는 법도 없었다. 월령안이 칠 년 전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걸 알면서도, 기어코 말하게 했다.

그러니 그녀에게 농락당한다고 해도 쌤통이었다.

‘하지만…….’

최일은 월령안을 재빨리 따라잡았다. 그녀가 마차에 오르기 전에 참지 못하고 물었다.

“령안, 정말 지지는…….”

“지지는 있었어요.”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에 올랐다.

“그렇지 않았으면 저도 육장봉에게 시집가지 않았을 거예요. 저도 염치라는 건 잘 알거든요.”

최일은 마차에 따라 오르지 않고, 밖에서 말했다.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지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지지의 충고와 보호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녀가 시간을 끌어 주지 않았다면, 월령안이 어떤 일을 당했을지 지금도 상상하기도 싫었다.

월령안은 그때 겨우 열한 살이었다.

‘짐승 같은 자식들!’

“하지만 저는 지지의 기대를 저버렸어요. 결국 지지가 원하던 모습대로는 살지 못했네요.”

마차 안에 앉은 월령안은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지지는 여생의 희망을 그녀에게 맡겼다. 그녀가 그곳의 모든 걸 잊고, 혼인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지지의 기대에 어긋났다. 결국 지지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최일은 마차 밖에서 월령안의 중얼거림에 가까운 말은 듣지 못했다. 다만 낮고 억눌린 그녀의 울음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월령안은 그 나이에 감당하지 말아야 할 모든 것을 너무 많이 짊어지고 있었다.

최일은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 * *

휘영청 밝은 달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나무 그림자가 흔들거리며 춤을 추었다.

밤의 밀림은 고요하고 서늘한 기운으로 뒤덮였다. 한낮의 무더위도, 소란스러움도 물러가고 벌레 소리, 새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육장봉 일행은 밀림 속에 잠복해 있었다. 몸에는 수풀 색에 가까운 전투복을 입었다. 얼굴에는 약을 섞은 거무스름한 진흙을 발랐다. 이러면 모기에 물리는 걸 방지할 수 있었다. 또한 천연 보호색으로 위장하는 효과도 있었다.

일행은 밀림 속에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등 뒤의 수풀과 완벽하게 어우러져, 밀림 일부분이 된 듯했다.

갑자기 밀림의 나뭇가지와 잎이 움직였다. 가늘고 긴 새 울음소리가 울렸다.

육이는 귀를 기울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군, 암위입니다.”

“데려오너라.”

육장봉은 돌 위에 앉아 있었다. 달빛이 그의 얼굴에 내려앉아 거무스름한 진흙을 비추었다.

그러나 얼굴에 발린 진흙은 육장봉의 기세를 전혀 줄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야성과 사나움을 더해 주었을 뿐이다.

“대장군, 황성사의 소식입니다.”

암위는 육이에게 이끌려 밀림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육장봉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장군, 월 낭자가 성에 들어가자마자 황성사에서 데려갔습니다. 조 대인의 심문을 받으며, 월 낭자는 칠 년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암위는 한쪽 무릎을 꿇고, 월령안이 황성사에서 한 이야기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육장봉에게 들려주었다.

암위의 목소리는 단조롭고 딱딱했다. 개인감정도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칠 년 전 그 일이 월령안에게 가져다준 상처를 감출 수는 없었다.

암위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육장봉의 온몸에서 살기가 미친 듯이 폭발했다.

육장봉의 강력한 살기 때문에 암위는 뒷부분에 가서는 떨다 못해 제대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보고가 끝나지 않았고, 육장봉이 중단시키지도 않았다. 감히 멈추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말을 이어갔다.

“월 낭자는 지지란 사람이 없다고 한 건 농담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다음 월 낭자는 자리를 떴고, 조 대인은 취조실에서 미친 듯이 물건을 부쉈습니다. 소인이 자리를 뜰 무렵에는, 취조실이 완전히 박살난 채였습니다.

조 대인은 취조실을 봉쇄하고 한밤중에 입궁했습니다. 월 낭자는 최 대인과 함께 순천부 관아로 돌아갔습니다. 최 대인은 월 낭자를 순천부 관아 뒤채에 묵게 했습니다. 그리고 최 대인도 댁으로 돌아가지 않고 뒤채에서…….”

“육이!”

노기등등한 육장봉은 암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벌떡 일어서더니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육이는 경각심을 가지고 포권하며 예를 올렸다.

“예, 대장군!”

“명령이다. 일 각 후 출동한다!”

육장봉은 무표정한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육이의 곁을 스쳐 밀림 속 깊숙한 곳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밀림 속 깊은 곳에서 곰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명령을 받고 당장 집합한 장병 백 명은 밀림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흑곰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그들은 서로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들은 감히 말도 하지 못했다. 눈빛으로만 자신의 놀라움을 표현할 뿐이었다.

유독 육십이만 거리낌이 없었다. 깜짝 놀라서 말했다.

“대, 대…… 대장군께서 지금 흑곰을 들쑤신 건가요? 내일 사냥해서 곰 발바닥을 식량으로 쓰기로 했던 거 아니었나요?”

육십이는 말을 마치고 나자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다. 다시 이렇게 말했다.

“아니다……. 대장군께서는 혼자서 흑곰 굴을 들쑤신 건가? 그 굴에 큰 곰이 세 마리나 있는데 대장군이…….”

육십이는 다리가 풀려 버렸다.

‘혼자서 흑곰 굴을 들쑤시다니!’

“조용히 해.”

육이는 암위가 육장봉에게 무슨 보고를 했는지는 몰랐다. 그저 분명한 것은 그들 장군이 분노가 폭발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월 낭자가 낮에 끝내 군영에서 떠나면서, 장군의 분노는 줄곧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치 폭죽이라도 된 것처럼, 불을 붙이기만 하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암위가 방금 보고한 소식이 바로 도화선이었다. 장군의 분노는 완전히 폭발해 버렸다.

북요인은 그들의 주변에 흑곰 무리가 있었던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놈들이 먼저 장군의 분노를 받아 냈으니 망정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밤 북요인은 아주 비참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 * *

먼 밀림에서 이따금 흑곰의 포효가 들려왔다. 주나라의 수렵대뿐만 아니라, 더 먼 곳에 주둔한 북요 수렵대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차전에서 꼭 이겨야만 했다. 그리고 멋지게 이겨야만 했다. 그래서 이차전에서 북요 수렵대를 거느린 사람은 상장군 소영화와 신호였다.

또한 북요인은 자신들의 위치를 노출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수원을 찾아 평지를 골라 주둔했다. 그리고 주둔지에 불을 지펴 뜨거운 음식을 먹었다.

소영화는 이 소리를 듣자, 저도 모르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원수, 육장봉은 뭐 하자는 걸까요? 야밤에 곰 사냥이라니. 이차전에서 승부를 결정지어, 삼차전을 치르지 않으려는 걸까요?”

“아니다.”

신호는 손에 든 고기를 빙글빙글 돌렸다. 고기에서 떨어진 기름이 불에 튕기면서 탁탁 소리를 냈다.

그는 싯누런 이를 드러냈다. 고기의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한입 물어뜯었다.

소영화는 그런 신호가 약간 꺼림칙했다. 그래도 내색하지 못하고 살갑게 말했다.

“저놈들이 오늘 밤부터 큰 사냥감을 사냥하는데, 우리도 사냥해야 할까요? 이러다가 주나라 놈들이 큰 사냥감을 다 사냥하면 어떻게 합니까?”

“없으면 저놈들 것을 빼앗으면 되지.”

신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고기를 잔뜩 물고 있던 터라, 입을 벌리자 고기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소영화의 얼굴에도 가득 튀었다.

수렵이라고 해서 밀림 속의 짐승만 사냥하라는 법은 없었다. 사람도 사냥감이다.

그들 북요인이 주나라 사람을 사냥감으로 삼은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소영화는 얼굴에 침과 고기 부스러기를 잔뜩 뒤집어쓰자,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아부했다.

“대원수, 현명하십니다. 대원수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신호의 조상 십팔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한바탕 욕하고 있었다.

‘신호, 이 바보는 대황자 보고 어리석다고 하지만, 자기도 대황자 보다 별반 나은 게 없구먼.’

예전 그들 북요는 먹을 것, 마실 것, 미인이 없으면 그냥 주나라의 것을 빼앗으면 되었다. 아무튼 주나라 놈들은 간이 작아 그들과 싸워서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이길 수 있어도 감히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비교할 수가 없잖나?’

육장봉이 있으면 주나라 놈들은 상대하기 어려웠다. 주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것을 가로채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직도 주나라 놈들에게서 빼앗으려고 하다니, 그야말로 백일몽이었다.

그러나 소영화는 군대에서 별로 명망이 높은 편이 못 됐다. 수렵에 참가한 병사 백 명은 모두 신호의 명령만 듣고, 그의 명령은 듣지 않았다.

북요인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계속 먹고 마셨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사냥하는 소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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