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화 복수할 수가 없었어요
“그 남자들은 여기가 아주 익숙해 보였어요. 하나같이 흥분하고 격정에 넘치는 게, 행동거지도 방자했어요. 분명 약을 먹었을 거예요. 저는 우리에 있었는데, 누군가의 말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렸어요.
‘오늘은 아주 좋은 물건이 있어. 월씨 가문의 그 고아 계집애 말이야. 오늘은 모두 마음껏 그 계집을 가지고 놀자고. 놀다가 죽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월씨 가문 사람들은 다 죽었거든. 그 잘난 계집애의 생사를 상관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흰 두루마기에 가면을 쓴 남자들이 연이어 들어왔어요. 거의 이삼십 명은 되었어요. 그들은 이 층에 앉아서 저와 지지를 가리켰어요. 거리가 멀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안 들렸지만, 그들이 격렬하게 흥분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어요.
그 남자들이 이 층에 자리를 잡고 앉자, 아래 투수장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먼저 미친 소 한 마리가 나오더니 그다음에는 꾀죄죄한 남자가 나왔어요.
그들이 고함을 지르며 누가 이기는지 판돈을 거는 소리를 들었어요. 다들 아주 큰 돈을 걸었어요. 남자가 이긴다는 데에 거는 사람도, 소가 이긴다는 데에 거는 사람도 다 있었어요.
곧이어 사람과 소가 싸웠어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지고, 투수장은 사람과 소의 피로 온통 물들었어요. 저와 지지는 놀라서 서로 꼭 껴안았어요. 하지만 흰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들은 흥분해서 괴성을 질렀어요.
제 기억에 그 시합에서는 결국 남자가 이겼어요. 흰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들은 그 결과가 불만이었어요. 정상적인 공연은 싫으니까, 좀 자극적인 것으로 하자고 했어요. 소와 싸워 이긴 남자는 기뻐할 새도 없었어요. 사자개 한 마리가 투수장에 나타나서 그 남자와 소를 모두 잡아먹더군요.
사자개가 배불리 먹자, 사람들이 끌고 내려갔어요. 그 남자들이 더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며 아우성을 치자, 누군가 저와 지지를 내려놓았어요.
지지는 놀라서 온몸이 풀렸지만, 여전히 저를 위로했어요. 자기가 지켜줄 테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또 신신당부했어요. 여기서 나간 다음 모든 걸 잊고 깨끗하게 시집가라고요.
그때 저는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서 많은 게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지지의 말과 지지가 우리에서 나갈 때의 눈빛, 그리고 그녀가 몸을 가릴 수 있는 유일한 천이었던 그 얇은 비단을 제게 주던 것만은 줄곧 기억이 나요.
지지가 나간 다음, 저는 또다시 공중에 매달렸어요. 저는 우리에 갇혀서 그 짐승 같은 놈들이 수송아지를 내보내는 걸 봤어요. 그리고 지지에게……. 그들은 지지에게 만약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다음에는 발정 난 황소를 내보낼 거라고 말했어요.
흰 두루마기를 입고 귀신 가면을 한 사내들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어요. 그들은 지지의 비명은 완전히 무시했어요.
지지는 죽었어요. 아주 비참하게 죽었어요. 제 눈앞에서…… 죽기 전에 눈을 크게 뜨고 저를…….
그들은 죽은 지지를 끌고 간 다음, 저를 내려놓았어요. 지지를 죽인 수송아지는 훈련 비슷한 걸 받은 듯했어요. 그놈은 저를 보자마자 미친 듯이 돌진했으니까요.
그때 어디서 그런 용기와 힘이 생겼을까. 아까 그 소에게서 떨어져 나간 뿔을 주워서 그 수송아지의 눈에 꽂았어요. 위층의 그 귀신 가면을 쓴 사내들은 미쳐서 날뛰었어요. 제가 그들의 흥을 깨 버렸다고 불쾌해했거든요. 제게 벌을 줘서 더욱 자극적인 일을 벌이겠다고 했어요.
그 수송아지는 끌려갔어요. 그리고 제게는 어떤 약을 먹였죠. 그해 저는 열한 살이었어요. 약을 먹고 난 뒤, 음침하게 생긴 사내가 손에 뱀 한 마리를 들고…….”
월령안은 여기까지 말한 후, 입꼬리를 올려 싸늘하게 웃었다.
그녀는 몸의 긴장을 푼 뒤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이게 바로 칠 년 전 일이죠. 제가 소씨 저택에서 나온 원인이자, 제가 소여방과 소함연을 파멸시키려는 원인이기도 해요.”
최일은 눈이 붉어진 채 월령안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늘어뜨린 손을 꽉 쥐었다.
조계안 또한 몇 번이나 몰래 숨을 골랐다. 그는 애써 차갑게 물었다.
“그다음, 그다음에는?”
“그다음요?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어느 정도 아실 텐데요. 누군가가 저를 구해 준 덕분에 그 생지옥에서 탈출했지만, 복수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저는 너무 약했고, 그들은 너무 강했으니까.
그들은 모두 고위 관리나 권력자의 자식이었어요. 제가 그들을 죽이려고 하면, 그들의 배후에 있는 가문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겠죠. 심지어 저는 그들이 누군지도 알 수 없었어요. 제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았다 해도, 그들의 가문은 명성을 위해 저를 가만두지 않았겠지만.
관아에 신고할 방법도 없었어요. 만약 제가 신고하면, 그 사람들의 배후 실력을 봤을 때 가장 먼저 죽을 사람은 저였어요. 게다가 이런 일이 소문 나면 제 명성에도 흠집이 생기잖아요. 저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현실은 제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저는 살아남았어요. 하지만 제 마음속의 분노는 어쩔 수가 없었어요. 거기를 떠나기 전에 절 구해 준 사람에게 말했어요. 그들이 여인을 노리개로 삼았잖아요? 그러니까 그들도 노리개로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좋은 일을 하나 했죠. 사실 몇 명 남아 있지도 않았어요. 당시 상황이 혼란스러워 태반이 도망쳤거든요. 몸이 약하거나,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혼절한 사람 몇만 남았어요.
그래도 저는 남은 놈이 얼마 안 된다고 아쉬워하진 않았어요. 몇몇이 남았든지, 설령 하나만 남았더라도 저는 복수하고야 말았을 테니까요.
전 그들을 가장 더럽고 문란한 남풍관에 팔아 버렸어요.
하지만 제가 탈출한 다음 투수장은 사라졌어요. 내막을 아는 모든 사람은 입막음을 당했어요. 지지 일가와 그녀의 둘째 오라버니가 줄을 대었다던 귀족도 모두 죽었어요. 더불어 그 더러운 남풍관도 흔적 없이 사라졌어요. 그 뒤로 오랫동안 변경에서는 어린애가 실종되는 일은 없었죠.”
월령안은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눈물이 말라 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기계적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예요. 그 뒤의 일은 저도 모릅니다. 그 사건의 뿌리는 너무 깊었으니까요. 저를 보호할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추기 전까지, 조사할 엄두조차 못 냈어요. 심지어 소여방 앞에서도 드러내지 못했어요. 저는 열병을 너무 심하게 앓았기 때문에, 모든 걸 잊은 척해야 했어요.
제가 능력을 갖추었을 때는 아무것도 조사해 낼 수 없었어요. 모든 단서가 없어졌거든요. 그때 당시 그 일에 참여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아낼 수 없었어요.”
그녀는 그때 훗날을 대비할 작정으로 그 자리에 남은 몇몇을 남풍관에 팔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세력은 너무 강했다. 그 남풍관의 흔적마저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소여방을 제외하면, 원수를 한 명도 찾아낼 수 없었다.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평온을 되찾았다. 아까처럼 멍하고 무감각하지도 않았다.
조계안과 최일은 월령안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녀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는 몰랐다.
“령안, 다 지나간 일이에요.”
최일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러나 월령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의 원수가 아직 다 죽지 않았는데 어떻게 지나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월령안은 시선을 내려 눈 속의 어두움을 감추었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들어 조계안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사실은 다 말했어요. 조 대인, 또 무엇이 더 알고 싶으세요?”
“월…….”
조계안은 위로의 말을 몇 마디 건네고 싶었다. 심지어 다가가서 월령안을 안아 주면서, 그가 있으니 앞으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냉정한 그녀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지금의 그는 월령안에게 어떤 약속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악랄하게, 월령안의 의사를 무시하고 마음속의 상처를 파헤치지 않았는가.
조계안은 눈을 감고 모든 걱정과 안타까움을 거두었다. 대신 냉철하고 절제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너를 구한 사람이 바로 명월산장에 사는 노인이란 거지?”
“네.”
이는 감출 것도 아니었고, 조계안에게 숨길 수도 없었다.
그때 그녀 곁에는 월씨 가문 출신의 하인도 없었다. 월씨 가문 출신의 하인이 없는 게 아니었다. 소씨 가문에서는 그녀가 월씨 가문 사람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왜 너를 구해 주었지?”
조계안이 또 물었다.
월령안이 되물었다.
“그분이 제 사부인걸요. 저를 구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때, 그녀도 노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왜 저를 구하셨어요? 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저를 구해 주신 건가요?”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이건 내가 너한테 빚진 거야.”
그때 그녀는 알지 못했다.
나중에 그녀는 노인의 내력이 범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어렴풋이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갔으나, 감히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미 모든 걸 잃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온정조차 잃기는 싫었다.
“그 노인이 네 사부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잖아. 심지어 그전까지 너희 둘은 만난 적도 없었어. 월령안, 그자가 왜 너를 구했느냐? 네가 말하지 않으면 내가 그자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조계안은 책상 위에 두 손을 얹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압박감이 느껴졌다.
월령안은 피하지 않고 조계안과 눈을 마주쳤다.
“조 대인, 욕심이 과하시네요. 전 대인께서 알고 싶어 하는 걸 이미 다 말했어요.”
“내가 언제 한 가지만 물어보겠다고 약속했느냐?”
‘기왕 입을 연 김에 끝까지 협조하면 안 되나? 옆에 내력을 모르는 사람을 두면 두렵지도 않나?’
월령안은 냉소했다.
“대인, 제가 지금 육장봉이 준 호각을 불면, 육장봉의 친위대가 저를 데리고 갈까요?”
“한번 불어 보시지.”
조계안은 월령안이 군영 입구에서 육십이에게 이미 호각을 던져 주었다는 보고를 들은 뒤였다.
‘누굴 속이려고?’
“좋아요.”
월령안은 목에 걸린 가는 끈을 잡아끌었다. 끈에는 호각이 매달려 있었다.
그녀가 호각을 불려고 하자, 조계안은 약이 바싹 올라 말했다.
“육십이에게 전부 준 게 아니었나? 어떻게 아직도 갖고 있지? 육장봉은 도대체 너에게 호각을 몇 개나 주었느냐? 육씨 가문의 호각이 언제부터 이리 흔해 빠졌어?”
‘난 하나도 없는데!’
지금까지 월령안을 제외하면, 호각을 가진 사람은 황제뿐이었고, 그나마 하나뿐이었다. 심지어 황제는 평소에 그걸 보배처럼 여겨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런데 월령안은 그 호각을 간식 꺼내듯 꺼내고 있었다.
‘육장봉, 미친 거 아니야?’
“돌려준 것 중 하나는 가짜예요.”
월령안은 호각을 거두었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물건인데 왜 육장봉에게 다 돌려줘야 하나요? 오기 때문에? 제가 바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