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화 월령안의 회상
“그자들은 신나게 놀기 위해 성 밖 은밀한 곳에 지하 투수장을 세웠어요. 투수장에는 남자, 여자 그리고 짐승이 있었어요. 대다수 남자는 밖에서 사 온 노예거나 불법 광산에서 데려온 건장한 노동자였어요. 그들은 맹수와 싸움을 해서, 피와 목숨으로 귀공자들의 웃음을 자아내야 했어요.
투수장에 있는 아가씨는 훨씬 더 신경을 썼죠. 그 귀공자들은 바깥의 아가씨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거기 들어가는 아가씨는 모두 각 가문에서 고른 자태가 빼어난 시녀들이었어요.
왜냐하면 짐승과 싸워서 이긴 남자나 야수에게 상으로 주어야 했거든요. 그뿐만 아니라 그 귀공자들이 노리개로 삼아 데리고 놀아야 하니까요. 그 지하 투수장에 끌려간 아가씨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고통스러웠죠.
불행하게도 제가 열한 살 나던 해, 소씨 가문에 기거하면서 의지할 곳 없던 제가 그들의 새로운 사냥감이 되었던 거예요. 그해…….”
“령안, 그만해요!”
최일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월령안의 말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의 그녀는 생기 없는 인형 같았다.
월령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칠 년 전 그 지하 투수장에서 겪었던 모든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로 기억해요. 전 그날 일을 아주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 낮에 소함연이 저를 연못에 밀어 넣는 바람에, 저녁이 되자 열이 올랐던 날이었어요. 의원이 약을 처방해 주었고, 저는 약을 먹은 다음 곯아떨어졌지요.
소씨 가문에서 전 줄곧 전전긍긍하며 지냈어요. 그래서 평소에는 절대 깊이 잠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아무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버렸어요. 제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낯선 방에 있었고, 그 방에는 저 말고도 다른 소녀 하나가 있었어요. 그 소녀는 저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였지만, 사실은 열다섯 살이었죠.
그 방은 햇빛이 들지 않고, 계속 희미한 불이 켜져 있었어요. 방 안에는 침상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고, 매우 누추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유괴되어 팔려 온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방에 있던 소녀가 끌려나갔어요. 다시 돌아왔을 때는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었고, 거의 벌거벗은 상태였어요. 그제야 단순히 유괴를 당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 놀라서 머릿속이 텅 비었죠. 그냥 몸을 꼭 감싸 안고 웅크린 채 있을 뿐, 울면서 소리도 내지 못했어요. 그때 저는 모든 게 무서웠죠.
얼마나 지났을까. 그 소녀가 고통스럽게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줄곧 어머니와 둘째 오라버니를 부르면서 아프다고, 무섭다고 말했어요.
소녀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서 다가갔어요. 그 애는 숨이 곧 끊어질 것 같았어요. 온몸을 옹송그린 채 아프다고, 무섭다고 중얼거렸어요. 평소 제가 다쳤을 때마다 어머니가 사탕을 주시던 일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몸에 감추어 두었던 사탕을 꺼내 모두 걔한테 먹였어요.
또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우리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더군요. 할멈 하나도 같이 따라왔어요. 그 할멈은 그 소녀의 옷을 벗기고 여기저기 살피더니, 약 한 병을 던져 주면서 상처에 바르라더군요. 살 수 있으면 살게 놔두고, 죽으면 끌어내다 묻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또 상등품 하나가 더 있으니, 내일 그 도련님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했어요. 그들은 먹을 것과 연고를 주기는 했지만, 그 소녀에게 약을 발라 주지는 않았어요. 우리의 생사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 저는 지금과 달리 겁이 많은 데다가 그 상황이 매우 두려웠어요. 사람들이 들어오자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그들이 다 간 다음에야 조용히 다가가서 음식을 먹었죠.
전 음식을 먹고 나서 그 소녀에게 음식도 먹이고 약도 발라 주었어요. 약을 바르고 음식을 먹고 나니까, 그 소녀도 기운이 생겼는지 정신을 차리더군요.
그 애가 정신을 차린 다음 네가 혹시 사탕을 먹여 줬냐고 물었어요. 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어요. 그 소녀는 겨우 열다섯 살이었어요. 그때 키는 저보다도 작았어요. 그래도 마치 언니처럼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처음으로 사탕을 먹어 보았는데 너무나 달콤했다고요.
그 소녀는 치수현(雉水懸) 현령(縣令)의 서녀라고 했어요. 이름도 없고, 생모가 지지(之之)라고 불렀대요. 생모가 기루 출신이라, 정실이 지지를 용납하지 못했고, 아버지도 그녀를 외면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둘째 오라버니가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 지지를 귀족에게 선물했대요. 그리고 그 귀족이 지지를 여기에 데리고 왔다고 했어요.
제가 줄곧 말을 하지 않으니까, 지지는 제가 벙어리인 줄 알았어요. 지지는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기 오는 귀한 분들은 다 악귀, 그것도 사람을 잡아먹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악귀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저한테는 꼭 도망쳐야 한다고 했어요.
지지는 그렇게 말하다가 나중에 절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어요. 자기는 더럽지 않다고, 천박하지 않다고, 자기 어머니도 더럽지 않다고 말했어요. 나중에는 또 자기가 더러워졌다고, 어머니를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했어요.
그렇게 슬프게 우는 사람은 처음 보았어요. 마치 제가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비명횡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와 똑같았어요. 그렇게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비참하기 이를 데 없이, 아무 희망도 없는 것처럼 울었어요.
그때는 겁이 나서 당황했고, 고열도 안 내려서 머리가 몽롱했어요. 덕분에 저는 바보 같아 보였어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감춰 두었던 사탕을 몽땅 주었어요. 방에서는 해를 볼 수 없었으니까 밖이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어요. 방문이 계속 잠겨 있어서 나갈 수도 없었죠.
끼니를 두 번 챙긴 다음이었어요. 무표정한 중년 부인이 오더니 저를 가리키며, 등 뒤에 서 있던 나이 든 시녀들에게 말했어요.
‘이 작은 계집애를 데리고 가서 깨끗이 씻겨라. 오늘 도련님들이 지명한 애야.’
그땐 나이가 어려서 모르는 게 많았지만, 지지의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두려웠죠. 저는 몸을 웅크린 채 놀라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때 겨우 기운을 조금 차린 지지가 나섰어요.”
월령안은 이야기하는 내내 줄곧 무표정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두 눈은 초점이 없이 멍했다. 하지만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자,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목소리도 떨려서 거의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최일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저지했다.
“령안, 제발 그만해요.”
조계안의 눈빛은 음침했다. 그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똑바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둔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한 글자도 내뱉지 못했다.
그 역시 월령안에게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계속 이야기해야만 했다. 그래야 어떤 놈들이 그녀를 해쳤는지 알고, 그 원수를 대신 갚아 줄 수 있었다.
월령안이 무너진 건 잠시였을 뿐이다. 그녀는 곧 평온을 되찾았다. 조계안과 최일에게 아무 감정이 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칠 년 전에 일어난 일을 계속 말해 주었다.
“그때 지지가 나서서…… 책임자로 보이는 중년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자신은 남녀 사이의 일에 대해 알고 있다고요. 자기 어머니는 강남의 명기였고, 방중술에도 능통하다고 말했어요. 그러고는 또 저를 가리키며 벙어리라고 험담했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소리도 내지 못하니까, 귀한 분들에게 귀여움을 받을 수가 없다고요.
지지는 계속 저를 깎아내리면서 자기가 대단하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제 눈에는 지지가 두려움에 떠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입을 벌려 말하려고 했는데, 지지가 저를 벙어리라고 부르면서 욕을 했어요. 저더러 쥐처럼 구석에나 웅크리고 있을 것이지, 밖에 나와 망신이나 당하지 말라고요.
저는 울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그 중년 부인은 지지의 말을 듣더니, 물건을 보는 것처럼 그 애를 훑어보았어요. 한참을 훑어본 뒤,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어요. 뒤를 따르던 하인에게 데리고 가서 깨끗이 씻긴 다음, 분을 발라서 몸의 상처를 감추라고 했어요.
그다음에는 다시 저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오늘 그 도련님들이 크게 놀 테니까, 아마 하나로는 부족할 거라고요. 저까지 데리고 가서 씻기라고 했어요. 만약 그 도련님들이 부족하다고 하면, 저까지 들여보낼 수 있게요.
지지가 또 나서서 저를 도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입을 열기도 전에 그 여자가 저지했어요. 지지의 꼼수를 눈치챈 거예요. 자기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신경 쓴다고 비아냥거렸어요.
그렇게 저와 지지는 함께 끌려갔어요. 씻기는 과정은 폭력적이고 수치스러웠어요. 씻는 기회를 틈타서 지지가 절 안아줬어요. 자기는 깨끗이 씻어서 이젠 더럽지 않으니까, 자기를 싫어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저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지지는 저를 안고 울었어요. 지지는 아주 강했어요. 저보다 훨씬 강했고 영리했어요. 조금 울더니 눈물을 훔치고 저에게 말했어요.
자기가 저를 위해 시간과 기회를 벌 테니까 꼭 도망쳐서 나가라고 했어요. 그리고 자기 몫까지 깨끗하게, 반듯하게 살라고 했어요. 여기에서 있던 일을 잊고, 좋아하는 남자를 찾아 시집가라고 했어요.
지지가 저를 또 다른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았어요. 지지는 자기뿐만 아니라 저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저 역시 자기와 마찬가지로 노리개로 전락해서, 결국 비참하게 죽게 될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지는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었어요. 발버둥이라도 쳐서 그 생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어요. 그때 저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월령안의 멍한 눈동자에 점차 초점이 생겼다. 그리고 경멸과 비웃음을 띤 눈으로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조계안은 월령안의 눈초리에 이상하게 가슴이 술렁였다. 분명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계안은 왠지 그녀가 언짢아하고 있으며, 자기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는 입술을 달싹였다. 변명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일부러 마주하기 싫은 과거를 끄집어내라고 한 게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일부러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는 단지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단지 그녀의 원수를 갚아 주고 싶었다. 황형의 핑계를 대어서라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계속하여 말을 이어 갔다.
“저와 지지는 깨끗이 씻은 다음 나갔어요. 우리 두 사람은 몸을 가리지도 못할 만큼 얇은 비단이 받았고요. 그리고 우리 둘은 황금으로 만든 우리에 갇혔어요. 황금 우리는 공중에 걸려 있었어요. 크기는 매우 컸지만 높이가 낮아서, 쪼그리고 앉을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에 갇혔을 때야 우리가 투수장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바로 아래가 시합장이었어요. 이 층에는 좌석이 일렬로 있었고, 저와 지지는 공중에 매달려 있어 그들보다 살짝 높은 곳에 있었지요. 하지만 사이가 꽤 떨어져 있어서 서로를 똑똑히 볼 수는 없었어요.
저와 지지가 우리에 갇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온갖 가면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들이 나타났어요. 흰 두루마기는 너무 커서 체형을 알아볼 수가 없었어요. 또한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