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화 내가 잘못했나?
월령안은 육십이의 말을 가로챘다.
“저는 그때 당신네 대장군의 부인이었어요. 여러분은 밖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잖아요. 제가 집에서 일상 사무를 처리하고, 여러분을 위해 그런 것들을 준비하는 건 원래 제 의무 중 하나였어요.”
그때 그녀는 오직 훌륭한 아내가 되고 싶었다. 육장봉이 전선에서 걱정하지 않도록, 그를 위해 집안일을 처리하고 부하들을 다독여 주었다.
그녀가 원한 것은 사실 매우 간단했다. 그들의 생각처럼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았다. 단지 좋은 아내, 훌륭한 안주인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혼인은 육장봉 쪽이 매우 기우는 혼사였다. 육장봉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거론할 때, 그가 아내를 잘못 맞아들였다는 소리가 나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육장봉의 체면을 살려 주고 싶었다.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좋은 아내, 현명한 내조자를 얻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녀는 시집가 본 적이 없으니 남의 아내 노릇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 방법을 가르쳐 줄 웃어른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아내, 훌륭한 장군 부인이 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당시 그녀가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방법은, 가장 좋은 것이라면 모조리 그에게 주는 거였다.
그리고 그녀의 방법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월령안은 먼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목소리가 아득하고 공허하게 울렸다.
“믿든 말든, 애초에 당신네 장군과 여러분에게 물건을 보낸 건 잘 보이려는 이유는 정말 아니었어요. 그 물건을 받고 저를 위해 좋은 말을 해 주길 바라는 생각 같은 것도 없었어요. 그 물건들을 전선에 보냈던 건 단지 여러분이 쓸지도 몰라서였어요. 전선의 싸움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여러분이 잔걱정을 하지 않게 해 주고 싶었거든요.
여러분의 보답을 원한 적은 없어요. 설령 제가 잘해 준 걸 기억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었어요. 그때 저는 대장군 부인으로서의 직책에 최선을 다했으니까, 저 자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거로 충분해요. 그때 전 여러분에게 잘해 주고, 살갑게 굴었지요. 제 수하들에게도 모두를 존중하고, 예의를 차려야 한다고 분부했고요. 그게 비위를 맞추거나, 어떤 편의를 얻기 위해서는 아니었어요.
제가 그렇게 한 건 우리가 서로 만난 적이 없어서, 여러분이 저라는 사람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어요. 하인의 실수 때문에 혹여 선입견을 품고, 저를 권세나 이득이나 따지고 각박하며 거만하게 구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서였어요. 당신네 장군과 여러분 앞에 저의 좋은 면만 보여 주고 싶었거든요. 오해 때문에 여러분이 저를 미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어요.
그때는 저는 당신네 장군에게 시집가면 평생 그러고 살 줄 알았어요. 저는 모두와 화목하게 지내고 싶었고, 모두가 저를 싫어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것도 훗날 당신네 장군이 가운데 끼어서 힘들어할까 걱정했기 때문이죠.
만약 당시 제가 했던 모든 게 여러분에게 부담이 되었다면 이 자리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폐를 끼쳐 죄송했어요.”
월령안은 눈을 감고 육십이에게 허리를 숙였다.
‘이제부터는 각자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거야…….’
* * *
육삼은 명령을 받고 군영 밖에 약을 가지러 갔다 오는 길이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월령안의 이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줄곧 월 낭자를 오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한 모든 일을 줄곧 최대한 악의적으로 넘겨짚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월령안이 장군을 좋아하기는 했다. 그러나 육장봉과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변경의 육장봉을 사모하는 모든 낭자들과 마찬가지로 길거리에 숨어서 훔쳐보는 정도였다. 도에 지나친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고, 육장봉의 생활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월령안이 정말로 육장봉의 인생에 나타난 것은 그와 혼인하고 난 뒤였다.
애초에 두 사람의 혼사가 어떻게 성사되었든 간에,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시집와서 육씨 가문의 안주인이 되었다.
장군 부인으로서 장군에게 편지와 옷가지를 보내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심지어 장군을 대신해 그들에게 음식물을 보내주고, 장군 대신 그들을 다독이는 것도 장군 부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시집온 뒤 삼 년 동안 오직 가주 부인의 본분을 다했을 뿐이었다. 꼭 뭐라고 평가해야 한다면,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했고, 여느 가주 부인보다 더 직책에 충실했을 뿐이다.
잘하고, 책임을 다한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되려 이를 가지고 그녀를 비웃은 그들이 비열하고 파렴치한 것이었다.
육삼은 자조적으로 피식 웃고는 잠깐 망설이다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월 낭자, 저…… 저희 열두 친위대는 낭자께 죄송하다는 말을 빚졌습니다.”
육삼은 그 말을 하고 나자 온몸이 홀가분해졌다. 아무 주저도 없이 월령안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월 낭자, 죄송했습니다!”
월령안은 허리를 최대한 낮춘 육삼을 보고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래, 괜찮아.’
언젠가 자신이 육장봉을 좋아하지 않는 날이 오면 심장 박동이 멎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보니, 과거의 자신은 걱정이 지나쳤다.
지금 이 순간만 해도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지 않은가.
육삼은 의아했다.
‘이렇게 쉽게 날 용서해 준다고?’
월 낭자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었다. 월 낭자라는 장군 부인과 이혼한 게 장군에게는 손해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친위대에게는 큰 손해라는 것은 알았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월 낭자가 장군에게 시집온 삼 년 동안이 그들에게는 가장 풍족한 삼 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 삼 년 동안, 몸은 전선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다. 심지어 변경에 있을 때보다 더 풍족하게 보냈다.
월 낭자는 신경을 써서 그들을 대해 주었다. 설령 그들의 부모나 아내라도 그 정도는 못 했을 것이다.
모든 진심 어린 호의는 저버려서는 안 된다.
육삼도 월령안이 이제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필요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한 마디를 얹고 말았다.
“월 낭자는 그때 정말 잘 해내셨습니다. 월 낭자는 제가 본 중에 가장 훌륭한 장군 부인입니다.”
월령안은 육삼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저도 모르게 웃었다.
“감사해요.”
육십이는 옆에 서서 육삼과 월령안을 번갈아 보았다. 결국, 이해가 안 되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월 누님, 저도 사과해야 할까요?”
“아니에요. 육삼 형님이 장난치는 거예요.”
월령안은 육십이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눈빛은 평온하기만 할 뿐, 아무 감정 기복도 없었다.
육삼은 마침 어두운 곳에 서 있었다. 환한 불빛 아래 드러난 월령안의 평온하고 담담한 미소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낭자는…… 이미 내려놓으셨구나.’
육삼은 저도 모르게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장군께서는 지금 일편단심 장군만 좋아하고 모든 걸 헌신하던 월 낭자를 잃으셨네요.’
* * *
막사 안, 모든 사람이 밖의 대화를 듣고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육장봉은 월령안과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이 가림막을 걷고, 가볍게 손을 들면 월령안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가림막 안에 서서 있었을 뿐이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불빛을 통해 바닥에 거꾸로 비친 검은 그림자를 보며 눈을 감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월령안에게 상처를 주었다.
지금은 월령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여전히 상처를 주고 말았다. 심지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했다.
‘내가 잘못했나?’
하지만 설령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해야만 했다.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육장봉이 생각에 잠긴 사이, 육삼이 걸어 들어왔다.
“대장군, 약을 가져왔습니다.”
육장봉은 막사 밖을 내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냉담하게 말했다.
“손 신의께 드리거라.”
육장봉은 말이 끝나자, 가림막을 걷어 올리고 밖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막사 안 모두는 또 한 번 침묵했다. 특히 손불사는 쥐구멍에 숨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지경이었다.
육삼이 건네준 약을 받은 손불사는 저도 모르게 자문했다.
“내가 잘못했나?”
순간 입이 먼저 움직였었다. 그 말을 하지 말아야 했다.
“의원으로서는 잘못이 없으십니다.”
육이, 육삼은 뒷간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른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손불사에게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손 신의, 감사합니다. 그리고 폐를 끼쳤습니다.”
“어휴, 내가 마음이 약해지지 말아야 했는데.”
손불사는 손을 내저으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미약한 호흡만 하는 육비우를 보면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쉽게 물러졌다.
쓰러진 젊은이를 보노라면 마치 아들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젊은이가 사경을 다투는 것만 보면 늘 저도 모르게 만약 그때 누군가 자기 아들을 도와주었다면, 아들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금치 못했다.
그가 도와준다면 이 젊은이는 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에게는 그럴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손불사의 곧은 등이 살짝 구부러졌다. 그는 일순간에 확 늙어버린 듯했다.
한쪽에 서 있던 송언은 뭐라고 위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월령안의 상처받은 표정이 떠올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그럼 월 누님은 무엇을 잘못했길래?’
그녀는 오 년의 시간을 들여서 목숨을 구하는 약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건 저기 누워 있는 육씨를 위해 만든 게 아니었다.
이 육씨는 영웅이었다. 모두 그를 존경하고, 그가 주나라를 위해 헌신한 데 감사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월 누님에게 약을 강요할 이유는 될 수 없었다.
송언은 입술을 깨물었다. 고집스럽게 구석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불사에게 다가가서 도와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손 신의뿐만 아니라 육비우도 싫어졌다. 비록 이 사람이 주나라를 위해 싸웠고, 모두가 그에 대해 감탄하고 영웅이라고 여기지만, 여전히 좋아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은 군영 내 다른 육씨 성을 가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쁜 놈이었다. 모두 월 누님에게 강요하고, 그녀의 희망을 망가트린 나쁜 놈들에 불과했다.
막사 안의 분위기는 답답하고 무거웠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 자기 일만 묵묵히 했을 뿐,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육이와 육삼은 잠시 서 있었지만, 더는 견디지 못했다.
두 사람은 지휘 막사에서 나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둘 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월 낭자가 이번에는 심각해 보이던데.’
‘이번에는 장군께서도 월 낭자를 어찌 못하실 것 같군.’
* * *
육장봉은 월령안을 달래지 않았다. 그럴 의도가 없는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다.
육장봉이 쫓아 나오자마자 월령안은 그를 보고는 제자리에서 기다렸다. 그가 앞으로 다가오자, 그녀는 먼저 그에게 예를 올렸다.
“대장군.”
목소리는 조금 쉬어 있었지만, 불만이나 분노, 불평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방금 막사에서 말다툼 따위는 벌어진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조금 전 슬픔 때문에 거의 무너져 내리던 사람은 그녀가 아닌 듯싶었다.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육장봉은 당황했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결국 단 한마디만 나왔다.
“미안하오.”
지금 이 순간, 모든 변명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과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