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화 그 약을 꼭 가져야만 하나요?
손불사가 말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입 밖에 낸 이상 포기할 수는 없었다.
육비우가 그의 사촌 아우라서는 아니었다. 그가 주나라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었다. 주나라를 위해 싸운 모든 장병은 가장 좋은 것을 사용할 권리가 있었다.
육장봉은 주변 사람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백만 냥!”
월령안은 냉소했다.
“황금으로요! 저는 황금만 받을 거예요. 내놓을 수 있으세요?”
“당신이나 나나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을 말하시오.”
월령안은 완전히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그 약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재를 소모했는지 아세요? 오 년! 오 년이란 시간을 들여서 모든 약재를 구했어요. 그리고 거금을 내고 손불사에게 부탁해 약을 만들었고요. 그 약 하나에 원가만 수십만 냥이 들었어요. 제가 백만 냥을 부른 거는 하나도 비싼 게 아니에요.”
물론, 은으로 계산한 가격이지 금은 아니었다.
월령안은 일부러 그 부분은 말을 똑똑히 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증명할 수 있어. 그 약의 원가는 정말 비싸.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물건이잖나.”
한쪽에 움츠리고 있던 손불사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한마디 덧붙였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약을 가져오시오.”
“돈과 약을 동시에 교환해요.”
월령안은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게 중요하니 억지는 그만 부리시오.”
여기에서 지체했다가 육비우가 죽기라도 하면, 군대 안에서는 월령안이 육비우를 죽인 거라고 소문 날 것이다.
설령 육비우의 죽음이 월령안과 무관하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많은 사람의 눈에는 죽어 가는 사람을 구하지 않은 월령안이 육비우를 죽인 원흉으로 비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월령안은 입이 열 개라도 해명하지 못할 것이다.
“돈도 없으면서 무슨 사람을 구한다고 하세요?”
월령안은 오만하게 콧방귀를 뀌고는 차갑게 비웃었다.
“육 대장군, 우리 주나라에서 해마다 치료비가 없어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멀리도 말고 천자의 발치에 있는 변경만 놓고 말해 봅시다. 얼마나 많은 집에서 큰 병이 들어도 치료할 돈이 없어서 죽기만 기다리는 줄 아세요? 변경의 아무 의원이나 잡고 물어보세요. 돈을 내놓지도 않는 사람을, 그들 중 백만 냥이나 되는 약을 거저 줘서 목숨을 구해 주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월령안, 억지는 그만 부리시오.”
육장봉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잘 알잖소. 지금은 상황이 다르오.”
월령안는 얼굴을 돌리고 대화를 거부했다.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그 약이 하나밖에 없고, 구하려면 또 오 년이라는 세월을 들여야한다고요. 전 그걸 제 가족에게 줄 거예요. 영감님에게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 저는 꼭 영감님을 위해 남겨 둘 거예요.”
“상인으로서 자기 손에 있는 약을 가장 비싼 값에 바꿔야지. 육비우는 기다리지 못하오. 당신 집의 어르신은 기다릴 수 있소. 내가 약속하겠소. 양국 비무가 끝나면 전국을 다 뒤져서라도 약을 구해 주겠소.”
육장봉은 참을성을 가지고 설득했다.
월령안이었으니 육장봉도 이렇게 나온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는 쓸데없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바로 재산을 몰수하게 했을 것이다.
“전국을 뒤진들 무슨 소용이 있는데요?”
월령안은 싸늘하게 웃더니, 새빨개진 눈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 약에 들어가는 것 중에는 갈고(蝎蠱) 껍질이 있어요. 갈고 한 마리를 얻으려면 먼저 독전갈 수십만 마리를 구해야 해요. 그다음 육영지(肉靈芝), 천산설련(天山雪蓮) 등을 이용해 오 년간 기르고, 다시 그들을 한데 모아 놓고 싸움을 시켜야만 갈고 한 마리를 얻을 수 있어요.
다른 약을 다 찾는다고 쳐요. 갈고는 어떻게 찾으려고요? 저희 영감님이 오 년을 더 기다릴 수 있나요?”
월령안은 손을 들어 곧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훔쳤다.
“저도 알고 있어요. 육 대장군에게는 권세가 있으니까, 일개 상인인 저는 대항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거절할 자격도 없다는 걸 말이에요. 주나라 안에서 무릇 육 대장군이 원하는 거라면 못 가질 게 없겠지요. 저도 더는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한마디만 묻겠습니다…….”
월령안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그 약을 꼭 가져야만 하나요?”
‘단시일 내에 절대 두 번째 약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걸 아는 상황에서도, 기어코 가지려는 건가요? 내 마지막 남은 희망을 꼭 빼앗아 가야 하겠나요?’
“그렇소!”
육장봉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가져야만 했다.
한 명은 대비용으로 갖고 있으려는 것이고, 다른 한 명은 지금 당장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손불사도 같은 생각일 거라 믿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다급한 상황에서 그 약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아요. 드리지요!”
월령안은 한 걸음 뒤로 휘청거리더니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녀 눈 속의 빛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한 번도 눈꺼풀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령안.”
수횡천이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으며 수횡천을 밀어냈다. 휘청거리며 앞으로 다가가 육장봉에게 읍을 했다.
“육 대장군, 소원 성취를 축하합니다.”
육장봉은 가슴이 덜컹했다. 자신이 월령안에게 상처를 주었고, 실망하게 만든 걸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녀가 성미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전군이 육비우 때문에 월령안을 원망하게 할 수 없었다.
그가 지금 내린 결정은 확실히 월령안의 이익에 손해를 끼쳤다. 그러나 월령안에게는 가장 좋은 결정이었다.
육장봉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의 냉담한 얼굴을 보자, 마음속으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월령안을 붙잡으려 했다.
“월령안, 약속하겠소. 내가 꼭…….”
하지만 육장봉이 움직이자마자, 월령안은 싸늘하게 피했다.
육장봉이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문밖에서 육십이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군, 월 낭자. 명월산장의 집사가 밖에 있습니다. 어르신의 분부대로 손 신의에게 약을 보내왔답니다.”
막사 안에 있던 모두가 조용해지더니 일제히 밖을 내다보았다. 이런 때 명월산장에서 무슨 약을 보냈을지, 다들 짐작이 갔다.
특히 월령안은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채로 여전히 웃고 있었다. 웃는 모습이 우는 모습보다 더욱 딱해 보였다.
“제가 괜히 소인배가 되었군요.”
월령안은 눈을 꼭 감은 채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제야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한순간 인생이란 게 정말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오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그 약을 겨우 한 첩 만들어 냈다. 이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수횡천은 탄식하며 앞으로 나가더니, 월령안을 뒤에서 받쳐 주었다.
“령안아, 어르신이 이렇게 하는 건 너를 위해서야. 너는 육비우를 구해야만 해. 주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주나라의 영웅이잖아. 구할 수 있다면 구해야만 해.”
“하지만…… 왜요?”
월령안은 눈물을 끊임없이 쏟았다. 마음속의 불평과 응어리 때문에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싶은 생각이 일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뜻대로만 될 수는 없잖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너나 나뿐만 아니라, 높이 군림하는 제왕 역시 마찬가지야. 이 세상에서 어떤 권리도 모두 제한을 받기 마련이야. 제멋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수횡천은 월령안의 등을 가볍게 다독이며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우리 아직 시간이 남았잖니. 어르신께서 지금 약을 내놓으신 걸 보면 따로 생각이 있는 게 분명해. 그분은 우리보다 오래 사셨고, 모든 걸 우리보다 더 잘 꿰뚫어 보셔. 령안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오라버니, 저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요.”
월령안은 고개를 저었다. 수횡천을 뿌리치고 혼자서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육장봉의 옆을 지나칠 때 한 걸음 멈춰 서서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나가 버렸다.
육장봉은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서 서 있었다. 그녀의 손등에 난 상처를 보고 붙잡으려고 했다. 손을 반쯤 내밀었지만, 멈추고 말았다.
월령안은 지금 화가 나 있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 * *
월령안이 막사에서 나왔다.
“월 낭자!”
육십이는 그녀를 보자,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것만 같았다. 기뻐하면서 달려오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한쪽에 놓인 촛불보다 더욱 밝게 웃었다.
육십이의 웃음을 머금은 단순한 얼굴을 보자, 월령안은 가까스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부가 많이 탔군요. 야위기도 하고요. 몸을 잘 챙기세요.”
“월 낭자, 왜 그러세요? 기분이 안 좋은가요?”
육십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월령안의 기분이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저으며 얼버무렸다.
“당신네 비우 도련님이 너무 많이 다치신 걸 보니 버티지 못할까 걱정되어서 그래요.”
“월 누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같은 사람들은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요. 비우 도련님도 비무대에 오를 때에는 죽을 각오를 했을 거예요. 비우 도련님은 아직 구할 방법이 있잖아요. 정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속상해하지 마세요. 비우 도련님은 나라를 위해 죽은 거예요. 죽어도 의미 있게 죽는 것이니 유감이 없을 거예요.”
육십이도 살짝 기분이 저조해졌으나, 잠시였을 뿐 곧 회복되었다.
월령안을 기쁘게 해 주느라, 육십이는 과장해서 떠들었다.
“월 누님, 제가 아직 말씀 못 드렸네요. 월 누님이 예전에 비우 도련님에게 보냈던 그 장창이 큰 공을 세웠어요. 만약 그 장창이 아니었다면 비우 도련님은 분명 이길 수 없었을 거예요. 월 누님은 참 대단해요. 다른 사람들 말대로라면, 비우 도련님의 이번 공로는 사실 누님의 공로가 절반인걸요.”
“이 년 전, 제가 전선에 보낸 우익은창(羽翼銀槍) 말인가요?”
월령안이 생각을 떠올려 보니 어렴풋이 인상이 있었다.
“네네, 맞아요. 바로 그 우익은창이에요. 정말 대단했어요. 그 장창만 아니었더라면 비우 도련님은 결코 이길 수 없었을 거예요.”
육십이는 비무대에서의 마지막 승부 장면을 떠올렸다. 얼굴에는 흥분된 표정이 역력했다.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하다니!’
모든 사람이 비우 도련님이 반드시 패배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비우 도련님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역습하여 상대방을 죽였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육십이의 환한 미소를 보자, 월령안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십이도 장창을 쓰나요? 쓰고 싶으면 제가 무 선생께 부탁해서 십이의 것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할게요. 육비우의 우익은창보다 더 좋은 거로 만들어 드릴게요.”
“저도 받을 수 있어요?”
육십이의 눈이 더욱 밝아졌다. 그러나 바로 다음 확 어두워졌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뭐예요?”
월령안이 물었다.
육십이는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다들 월 누님이 지금은 우리 대장군을 싫어하니까, 우리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다시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제가 누님에게 선물을 받아도, 누님을 돕지 못할 것 같아요.”
월령안은 육장봉의 친위대가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웃는 얼굴이 더욱 씁쓸해졌다.
“저는 그때 물건을 보내면서 여러분에게 잘 보이겠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여러분이 절 도와주기를 바란 적도 없고요.”
육십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하지만 다들 그렇게 말했는데요…….”
“그 사람들의 헛소리를 듣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