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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45)화 (445/1,004)

445화 값을 말해 보시오

그녀는 수횡천이 정말 걱정스러웠다. 설령 수횡천이 그녀보다 무예가 강하고, 나이도 더 많을지라도 그랬다. 세상 물정에 대해서라면 그녀의 눈에는 수횡천이 애송이처럼 보였다.

특히 수횡천이 잠한성에게 당한 뒤로는 더욱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또 속아서 자기 성씨도 까먹을 것 같았다.

수횡천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 난 괜찮다. 시간이 늦었어. 일단 성 밖으로 나가자. 육비우가 손 신의를 기다리고 있어.”

“좋아요.”

월령안은 잠깐 멈칫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가 육비우를 육장봉에 떠넘긴 건 순전히 골칫거리를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육비우를 정말 비무대에 올릴 생각은 없었다.

오늘 양국에서 내보낸 아홉 명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육비우가 비무대에 나선 것은 죽음을 자초한 꼴이었다.

육장봉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육장봉이 육비우를 비무대에 올리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모질게도 육비우를 내보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육장봉의 친필 명령서가 있어, 월령안 일행은 한밤중에도 순조롭게 성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육이는 상세한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월령안은 듣기만 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육이와 함께 명월산장으로 가서 손불사에게 부탁하는 것을 거절하지도 않았다.

손불사는 귀족이나 관리의 병을 봐 주지 않았다. 그를 설득하여 육비우를 치료하려면 월령안이 있어야만 했다.

일행은 명월산장에 최대한 빨리 도착해서, 단잠에 빠진 손불사를 침상에서 끌어냈다.

손불사는 대단히 불쾌했다. 그래도 월령안이 거금을 내자, 마뜩잖아하면서도 동의했다.

손불사는 약을 가지러 갔다. 월령안은 그 틈에 계산서를 써서 육이에게 건넸다.

“이건 진료비예요.”

“이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육이는 계산서에 열거된 진찰비와 진귀한 약재를 보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방금 제가 손 신의와 얘기하는 걸 다 들었잖아요? 제가 사기라도 친다는 거예요?”

월령안은 차가운 얼굴로 되물었다.

“하지만 이건…….”

분명 듣기는 했다. 들을 때는 마음속으로 월 낭자가 돈도 많고 씀씀이도 호방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진찰비를 그들이 내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지 못하겠으면 지금 당장 가세요.”

‘육이는 뭐 하자는 거야? 내가 봉으로 보이나? 자기들을 도와서 손불사에게 부탁하고, 진찰비까지 대신 내줄 거로 생각했나? 이놈들이 까먹었나? 난 이제 육씨 가문과 아무 상관이 없거든. 심지어 육비우와는 원한까지 있다고. 내가 왜 육비우를 위해 거금의 진료비를 대야 하지? 육비우가 주나라를 대표해서 비무에 출전했고, 게다가 이기기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앞서 전사한 네 사람이 훨씬 위대한 거 아닌가?’

“월 낭자, 이 일은 소인이 결정할 수 없습니다. 대장군께 여쭤보겠습니다.”

이 진료비를 합치면 이삼만 냥은 되었다.

‘무슨 의원을 부르는데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해?’

“괜찮아요. 계산서는 잘 받아 두세요. 군영에 도착하면 대장군께 먼저 물어보세요.”

월령안은 아주 대범했다. 육이가 빚을 떼먹을까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월 낭자, 감사합니다.”

육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계산서를 잘 챙겼다. 속으로는 조금 상심했다.

예전 월 낭자는 그들에게 성심성의껏 대해 주었다. 돈뿐만 아니라 힘도 보태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래. 사람이 욕심이 지나치면 안 되지. 어쨌든 월 낭자가 힘을 써 주었잖아. 그게 어딘데.’

조계안이 파견한 여자 시위는 명월산장에 들어간 뒤부터는 줄곧 구석에 서 있었다. 한 쌍의 눈은 월령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길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온통 싫은 기색과 까칠함뿐이었다. 그 눈빛의 존재감이 하도 강렬해서,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지금 월령안과 육이의 대화를 들은 그녀는 경멸의 눈빛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수횡천과 육이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월령안은 담담함을 유지하고 그저 못 본 척했다.

하인은 주인을 닮는다.

조계안의 수하라면 조계안과 성미가 똑같을 것이다. 그녀는 진작 익숙해졌다.

손불사는 책임감이 있는 훌륭한 의원이었다. 기왕 진료하겠다고 대답했으니, 더는 꾸물대지 않았다. 월령안과 육이가 이야기를 끝내자, 손불사가 땀투성이가 되어 달려왔다. 그 뒤로는 약 상자를 든 송언이 따라왔다.

손불사를 데리고 가려면 말을 타기는 어려웠다. 일행은 마차 두 대를 나누어 타고 군영으로 달려갔다.

한 시진 뒤, 마차가 군영에 멈췄다. 그러자마자 육삼이 달려왔다.

“월 낭자, 손 신의! 드디어 오셨군요……. 군의가 더는 방법이 없답니다. 손 신의, 어서 빨리 봐 주십시오. 비우 도련님이 버티지 못할 거 같습니다.”

육삼은 첫 번째 마차를 맞이하면서, 내리는 사람 중에 월령안이 없자 그만 깜짝 놀랐다. 어찌 된 영문인지 놀라는 와중에 월령안과 여자 시위가 뒤쪽 마차에서 나왔다.

육삼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바로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있는 여자 시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월 낭자, 낯선 얼굴입니다만?”

“황성사의 시위예요. 조 대인이 저를 감시하라고 보냈어요.”

월령안은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소개했다.

육삼은 듣자마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당장 여자 시위 앞을 가로막았다.

“죄송합니다. 여기는 군사 요충지입니다.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는 전하의 명을 받고 범인 월령안을 감시하러 왔습니다. 월령안이 가는 곳이라면 저도 따라가야 합니다. 제가 못 들어가면, 월령안도 못 들어갑니다.”

여자 시위는 도도한 표정으로 손을 휘저어 육삼을 툭 쳤다. 그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태도였다.

육삼은 피식 냉소를 지었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한쪽에 있는 병사를 불러왔다.

“이 시위를 끌고 가라. 군중의 규칙을 좀 가르쳐 주어라.”

“네.”

병사가 앞으로 다가가 사람을 붙잡으려 했다.

여자 시위는 무공이 약하지 않아서, 바로 피할 수 있었다.

“무례하다! 감히 나를 건드려! 나는 황성사 시위다. 대인의 명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여긴 군영이다. 황성사라도 여기서는 소용없다.”

육삼은 여자 시위에게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고 다시 명령을 내렸다.

“몇 명 더 와서 붙잡아라. 생사는 따지지 않겠다.”

육삼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자, 육이는 담담하게 일깨워 주었다.

“웬만하면 적당히 해라. 월 낭자는 황성사에 돌아가서 조사를 받아야 해. 사람이 죽으면 그놈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대신 월 낭자를 번거롭게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괜찮습니다. 나중에 어디서 떨어져서 죽었다고 하면 되니까요.”

육삼은 말을 마치고 월령안에게 친절하게 다가갔다.

“월 낭자, 이렇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월령안은 적절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긴 군영이에요. 상업계의 규칙은 여기서 쓸모가 없죠. 될지, 안 될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육삼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비위를 제대로 못 맞춘 거란 말이지? 이러면 월 낭자에게 좋은 무기를 선물해 달라고 부탁할 수 없잖아? 아무래도…… 안 되겠지.’

육삼은 고개를 푹 숙였다. 바로 풀이 죽어 사람들의 뒤를 따라갔다.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그 시절 월 낭자가 그들과 장군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때, 얼마나 고생했을까. 이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온갖 열정과 심혈을 쏟아부었건만, 결국 무시, 조소와 경멸로 돌아오다니. 정말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그래도 월 낭자보다는 조금 나았다. 월 낭자는 성격이 좋았으니까. 비록 그의 호의는 받아 주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를 비웃거나 경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월 낭자는 어떤 일을 당했던가. 그때 그들은 월 낭자를 적지 않게 경멸하고 비웃었다.

육삼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저지른 대로 다 받게 되어 있군. 그냥 때가 되지 않은 것뿐이었어.’

막사 밖에서 벌어진 실랑이는 사소한 일이었다. 조계안이 파견한 여자 시위를 제외한 다음, 일행은 곧 지휘 막사로 갔다.

육이가 한발 먼저 가서 육장봉에게 계산서를 바쳤다.

육장봉은 한 번 쳐다보고, 눈길을 월령안에게로 옮겼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싸늘한 눈매는 살짝 휘어 있었다.

“계산서는 잘 보관해라. 나중에 육비우에게 차용증을 쓰게 해.”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육장봉에게 공수하여 읍을 했다. 그녀는 예를 올릴 때, 일부러 다친 손을 아래쪽으로 두고 옷소매로 가렸다.

그래도 육장봉의 눈은 그 상처를 잡아냈다.

육장봉의 살짝 휜 눈매가 곧 찌푸려졌다. 그가 한 걸음 다가서며 말문을 열려고 했다.

이때 손불사의 말이 들려왔다.

“살릴 수는 있어. 하지만 약을 만들기는 어렵네. 지금 내 손에는 영감을 위해서 준비한 한 첩밖에 없거든.”

“무슨 뜻이에요?”

육장봉과 월령안이 동시에 손불사를 바라보았다.

손불사는 말을 마치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육장봉과 월령안의 시선을 마주하자, 그는 좀 난처해졌다.

그는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며 감히 월령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일부러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별일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영감을 위해 준비한 그 약으로 구할 수 있어.”

“그 약은 하나밖에 없어요!”

월령안은 이를 갈며 손불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망할 영감탱이, 입이 좀 무거우면 죽어? 당신이 말하지만 않았으면, 내 손에 목숨을 구할 약이 있는지 누가 알겠어?’

“그 약은…… 영감이 지금 쓸 것도 아니잖아.”

손불사는 방심했다가 월령안과 시선이 마주치자, 재빨리 피했다.

‘난 그냥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간절해서 그렇지.’

의원으로서 환자가 곧 죽게 될 걸 보았다. 구할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노인에게는 그 약이 사실 별로 쓸모가 없었다. 월령안에게도 말했지만, 그녀는 절대 희망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어휴…….’

의원으로서는 좋은 약이 허투루 쓰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었다.

“제가 그 약을 모으는 데 몇 년이 걸렸는지 아세요?”

월령안은 화가 나서 살인이라도 할 기세였다. 손불사가 대답하기도 전에 화를 벌컥 내며 소리 질렀다.

“오 년이요! 장장 오 년이란 시간을 들여서야 당신이 원하는 약재를 모두 구할 수 있었어요! 우리 집 영감님께서 또 오 년을 더 기다릴 수 있다고 확신해요?”

손불사는 저도 모르게 탄식하고 말았다.

“령안아, 영감의 몸은 너도 잘 알잖느냐. 목숨을 구하는 약을 쓰더라도 한두 달 더 살 수 있을 뿐이야. 그 약이 영감에게는 정말 큰 효험은 없어.”

“한두 달만 더 살더라도, 하루, 아니 한 시진이라도 더 산다 해도 효험이 있는 거라고요!”

그녀가 그렇게 많은 돈을 번 건 가족이 더욱 잘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돈으로 노인의 수명을 연장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많은 돈도 기꺼이 쓸 수 있었다.

“내 말은 못 들은 거로 하게.”

손불사는 자기가 좋은 마음으로 나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 입을 꾹 다물고 한쪽에 웅크리고 있었다.

막사 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모든 사람이 월령안이 약을 내놓기 싫어하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나 육장봉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

“말도 하지 마세요. 설령 제가 내놓더라도, 값을 치르지 못할 테니까!”

월령안은 육장봉의 말을 가차 없이 가로챘다.

육장봉은 표정도 변하지 않고 말했다.

“값을 말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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