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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44)화 (444/1,004)

444화 비우 도련님을 구해 주십시오

칠 년 전 일을 떠올리자, 월령안은 갑자기 우울해졌다. 조금 피곤한 어투로 물었다.

“대인, 계속 심문하실 겁니까?”

“지금 다 죽어 가는 꼴을 보아하니, 내가 네 입에서 무슨 말을 묻겠느냐? 가서…… 설옥고를 가져와라.”

조계안은 월령안의 손등에 남은 상처를 보았다. 피가 계속 배어 나오는 데다가 부어오르기까지 하자, 화가 치밀었다.

‘이 바보 같은 여자가. 다쳤는데 왜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거야? 아프다는 소리를 못 하나? 좀 약한 척하면 안 돼? 내 앞에서 약한 척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작은 상처일 뿐입니다. 대인께서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월령안은 매우 지쳤다. 반복적으로 심문을 받느라 몸이 지쳤고, 조계안의 변덕스러움에 마음이 지쳤다.

무엇보다도 칠 년 전의 일을 떠올리자, 마음이 괴로웠다.

“작기는 뭐가 작아. 작은 상처라도 죽을 수 있다. 웬 헛소리가 그리 많으냐? 내가 물어볼 때는 어째 한 글자도 더 말하지 않더니.”

조계안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월령안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조계안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그녀는 조계안이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어색해서 인정하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렇게 어색해했더라면, 그냥 웃어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조계안을 상대할 때는 그게 안 됐다. 그의 말에 악의가 없는 줄을 알면서도, 듣고 있으려면 짜증이 났다. 심지어 저도 모르는 새, 최대한 악의적으로 조계안의 매 한마디, 매 한 글자를 가늠할 정도였다.

그녀는 이렇게 하는 게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마치 조계안을 싫어하는 것을 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월령안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계안도 자존심을 내려놓기 싫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양손으로 팔짱을 낀 채 입을 다물었다.

시위가 약을 가지고 들어올 때까지, 취조실은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대인, 설옥고는 다 써서 보통 상처약만 남았습니다.”

“가져오너라.”

조계안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설옥고를 어디에 썼는지를 떠올리자, 순간 퉁명스럽게 말이 나왔다.

시위는 놀라서 흠칫하더니, 서둘러 조계안에게 약을 건네주었다.

약을 받은 조계안은 강아지를 부르는 것처럼 월령안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 약 좀 바르자.”

‘이 사람이 진짜……. 이러면 정말 싫어할 수밖에 없잖아.’

월령안은 조계안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조계안이 다스리는 곳이었다. 버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월령안이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다가가려 할 때였다. 시위가 문밖에서 말했다.

“대인, 대장군의 호위병 육이가 만나 뵙기를 청합니다. 사람 목숨과 관련된 일 때문에 지금 당장 월 가주를 데려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게 본왕(本王)하고 무슨 상관이냐? 꺼지라고 해!”

이 말을 들은 조계안은 벌컥 성을 냈다. 심지어 외부인 앞에서 쓰지 않는 자칭까지 말하고 말았다.

시위는 뒤로 물러나 전전긍긍하며 말했다.

“대인, 육이는 혼자 오지 않았습니다. 무림맹주 수횡천과 함께 밖에 있습니다. 육이 말로는 북요와 비무를 한 병사가 생명이 위급하다고 합니다. 월 낭자께서 손 신의를 데리고 가서 사람을 구해 주셔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대인이 월 낭자를 데려가지 못하게 막으면, 무조건 쳐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황성사 시위들이 수횡천을 막아내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 나한테까지 협박이야?”

조계안은 손에 든 약병을 힘껏 쥐어 깨뜨렸다. 깨진 자기 조각이 손바닥을 긁었다. 피와 가루약이 섞여서 떨어졌다.

하지만 조계안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당장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오늘 내가 다시 한번 수 맹주를 만나야겠군.”

조계안은 나가기 전, 월령안을 차갑게 힐끗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는 조계안, 이 미치광이를 조금도 거들떠보고 싶지 않았다. 그에 대한 선입견이 너무 깊어서인지, 아니면 그가 정말 미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조계안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암황이 저리 제멋대로에 자기중심적이라니. 어떻게 그 자리를 지켰는지 몰라? 타고난 팔자가 좋은 건가?’

“떠날 생각을 하지 말고 고분고분 있어.”

월령안의 온순하게 물러서는 모습에 조계안은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는 시위에게 그녀를 잘 지켜보라고 눈짓하더니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의 걸음에서는 음침하고 차가운 살기가 묻어났다.

* * *

조계안과 수횡천은 끝내 한판 붙지 못했다.

조계안이 나오자마자, 육이가 바로 다가와 재빠르게 말했다.

“전하, 다친 사람은 비우 도련님입니다. 결승전에 북요인이 수를 쓰지 않은 보통의 사람을 내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비우 도련님은 저희 열두 친위대가 나가면 삼차전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해서, 자청해서 저희 대신 나갔습니다.

결승전은 매우 치열했습니다. 둘 다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비무대를 모두 때려 부쉈습니다. 물론, 비우 도련님의 재주는 전하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신호의 호위병을 겨우 상대했습니다. 후반전에 들어 비우 도련님은 체력이 달려, 신호의 호위병에게 일방적으로 맞기만 했습니다.

비우 도련님은 몇 번이나 신호의 호위병이 휘두르는 채찍에 얻어맞아 나가떨어졌고, 바닥에 떨어져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비우 도련님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뜻밖에도 비우 도련님은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나중에는 상대방의 빈틈을 파고들어 단숨에 상대방을 죽이기까지 하셨지요.

비우 도련님께서 우리 주나라를 위해 첫 승리를 따내셨지만, 많이 다쳤습니다. 군의가 보더니 고개를 젓더군요. 신의의 도움이 없으면 비우 도련님은 오늘 밤을 넘기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소인이 나올 때 비우 도련님은 숨이 거칠었습니다. 대장군께서도 어쩔 수 없이, 전하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장군께서는 지금 비우 도련님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전하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육이는 울먹이며 조계안에게 큰 예를 올렸다.

“전하께 부탁드립니다. 육씨 가문의 역대 충신들을 봐서라도 비우 도련님을 구해 주십시오.”

육이가 선수를 치느라 저자세로 나왔다. 심지어 육씨 가문의 역대 충신까지 들먹이며 말했다.

이렇게 되자, 조계안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육비우 그 못난 놈을 아무리 싫어해도, 그 역시 육씨였다. 그의 친아버지, 큰아버지, 삼촌, 할아버지 모두 주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제는 육비우도 주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다.

그러니 육비우가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조계안은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망할 자식! 너희 대장군을 따라다니면서 좋은 것은 배우지 않고 나쁜 것만 골라 배웠구나.”

육이는 만나자마자 말을 한가득 쏟아냈다. 말하는 속도도 빠르고 급해서, 조계안에게 말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그는 화가 치밀었지만, 육이에게 터트릴 수도 없었다.

“전하, 용서하십시오. 소인이 마음이 급해서 그랬습니다.”

육이는 시원하게 잘못을 인정했다. 조계안이 그를 괴롭히려고 해도 꼬투리를 잡지 못하게 말이다.

“나는 너희 육씨가 정말 싫다!”

조계안은 화가 나서 육이를 발로 걷어찼다.

육이는 피하지 않고 조계안이 차게 내버려 두었다. 때려도 반격하지 않고, 욕해도 맞받아치지도 않았다.

조계안도 육이에게 화풀이할 생각은 없었다. 한 발 걷어차고는 그만두었다.

“됐다. 그 꼬락서니 집어치워라. 육장봉이 사람을 데려가려는 거잖아. 데려가라, 데려가…….”

“전하, 감사드립니다. 전하의 큰 은혜를 소인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육이는 앞으로 나아가 조계안에게 대례를 올렸다.

“네놈의 그깟 감사가 아쉬울 것 같으냐.”

조계안은 코웃음 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몸을 돌리는 찰나 수횡천을 흘겨보며 냉소를 지었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육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계안을 따라갔다. 그리고 수횡천에게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손짓했다.

수횡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황성사에 들어가지 않았다.

조계안은 불쾌하긴 했지만, 대국을 고려해 육이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았다. 황성사에 들어가자마자 월령안을 데려오게 했다.

월령안의 표정은 기쁨도 분노도 없이 차분했다. 그녀는 조계안에게 예를 올리고 한쪽에 서 있었다.

조계안의 눈에 떠오른 차가운 기운이 조금 옅어졌다. 그는 월령안을 가리키며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여인은 황성사의 중요한 용의자이다. 데려갈 수는 있지만, 시위가 옆에서 열두 시진 내내 지켜보아야 한다.”

조계안이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자, 평범한 얼굴을 한 여인이 어두운 곳에서 나왔다. 그녀는 조계안에게 예를 올렸다.

“대인.”

조계안이 육이 앞에서 명령했다.

“월 가주에게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말고 지켜보아라. 월 가주가 네 눈에서 멀어지면, 내가 너의 눈을 파 버릴 거다. 알겠느냐?”

이 말은 그 여자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육이와 월령안에게 하는 말이었다.

육이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임무는 월 낭자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 군대 안, 그들의 장군 눈앞까지 모셔 가는 것이었다. 다른 건 장군이 알아서 할 것이다.

조왕의 부하는 말할 것도 없고 조왕조차도, 그들 장군을 상대로는 뭐 하나 얻어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장군은 정탐꾼 하나 정도는 쉽게 해결할 것이다.

인명 구조는 화재 구조처럼 신속해야 한다. 조계안은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지 않았다. 사람을 붙이자마자 바로 육이에게 월령안을 데리고 가게 했다.

월령안은 조계안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육이와 함께, 아니 육이를 거느리고 밖으로 나갔다.

육이는 감히 월령안보다 앞서 걷지도 못했다. 일찌감치 한쪽으로 비켜서서 월령안이 먼저 나가게 했다.

조계안이 월령안에게 딸려 보낸 여자 정탐꾼은 육이보다 쌀쌀맞고 오만했다. 그녀는 월령안의 뒤를 따라갔지만, 표정은 거만했다. 월령안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범인을 보는 듯했다.

물론 월령안이 지금 범인이라는 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계안은 불쾌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음침한 눈으로 육이와 정탐꾼을 번갈아 훑어보더니, 결국 시선을 육이에게 떨구었다.

‘육이 저놈은 너무 알랑거리잖아! 육장봉은 호위병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야? 이런 친위대가 나갔다가, 정말 우리 주나라의 체면이 훼손되는 건 아닌가? 육장봉에게 친위대를 잘 단속하라고 단단히 일러야겠군. 남들 앞에서 체면을 잃지 말라고 말이야.’

조계안은 보면 볼수록 육이의 굽실대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그는 육이를 불러세워 한바탕 두들겨 패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대신 음침한 표정으로 시위에게 정서를 끌어내라고 명령했다. 직접 정서를 심문할 작정이었다.

그가 언짢으면, 누구도 편하게 지낼 생각을 말아야 했다.

* * *

월령안은 황성사를 나오자마자, 입구에 서 있는 수횡천을 보았다. 금세 눈앞이 환해져서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수 오라버니.”

월령안은 손을 뻗어 수횡천에게 인사하려 했다. 하지만 손을 절반쯤 내밀었을 때, 손등에 생긴 상처가 떠올라 얼른 거둬들였다.

“령안아, 괜찮아?”

월령안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자, 수횡천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월령안 혼자 자기에게 달려오게 하지 않았다.

육이는 한쪽에 서서 묵묵히 외면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대장군에게는 절대 알릴 수는 없었다.

“전 괜찮아요. 수 오라버니는요? 군영에서 무슨 손해 본 건 없었죠?”

월령안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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