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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39)화 (439/1,004)

439화 형수님께서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몇몇 문관은 한데 엉켜서 다투었다. 도저히 서로를 설득하지 못했다.

황실을 대표해서 나온 친왕이 나서서 제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다.

“대장군, 이렇게 싸우는 것도 적절하지 않소. 이 일은 장군의 뜻대로 하시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들이 말을 타고 오지 않았나? 가서 지금 당장 군마 백 필을 우리에게 준다면, 내가 책임지고 그들의 요구를 승낙하겠다고 전하시오.”

“저…… 북요인이 허락할까요?”

“대장군, 정말 저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실 겁니까?”

병부와 홍려사의 관리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들은 모두 동의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럼 그들이 군마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거라고 생각했소?”

북요인은 문서로 만든 조약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구두상의 약속을 어떻게 믿겠는가. 일차전이 끝나기만 하면, 바로 딱 잡아뗄지도 몰랐다.

병부의 사람은 잠시 멍해졌지만, 바로 육장봉에게 예를 올렸다.

“소관이 지금 바로 그들과 협상하겠습니다.”

“음.”

육장봉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가 어떠하든, 반 시진 후에 시합은 계속할 거라고 전하시오.”

“네, 대장군.”

육장봉의 이 말이 있자, 병부든 홍려시의 관리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단지 속으로 묵묵히 찬사를 보냈을 뿐이다.

‘대장군은 역시 대장군이구먼. 패기가 넘쳐.’

주나라의 관리가 물러가자, 암위가 조용히 나타났다.

“장군, 황궁에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이냐?”

육장봉은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조계안이 있는 이상, 큰일은 없을 테니까.

“조왕 전하께서 궁문을 봉쇄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장 부승상과 육부의 상서들을 모조리 황궁에 가두고 계십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저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조왕 전하께서는 황궁에서 자리를 잡고, 새 한 마리도 날아가지 못하게 하고 계십니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암위의 등줄기는 마치 끝까지 당긴 활시위처럼 잔뜩 긴장해 있었다. 언제든지 출전할 기세였다. 황궁의 긴장된 분위기에 겁을 먹은 게 틀림없었다.

반면, 육장봉은 아주 평온했다. 그는 눈썹도 움직이지 않고 물었다.

“월령안은?”

암위는 육 대장군이 궁중의 일을 상관하지 않고, 월령안의 일만 물을 줄은 몰랐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월 낭자는 조왕 전하께서 황성사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내 명령을 전해라. 전군에 계엄령을 내리고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간다. 내 명령 없이는 아무도, 특히 북요인은 군영을 드나들 수 없다.”

육장봉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조계안은 미리 상의하지도 않았고, 나중에라도 사람을 보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몇 가지 단서만으로, 육장봉은 무슨 일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그는 조계안에 협력해야 했다. 그는 북요인을 여기에 잡아둠으로써, 북요인이 황궁의 이상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했다. 이들이 혼란한 틈을 타서 한몫 얻으려고 수도를 어지럽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네, 장군.”

육장봉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암위의 긴장한 몸이 점차 풀어졌다.

암위는 명령을 받고 물러갔다.

호위병은 막사 안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그제야 들어와서 보고했다.

“대장군, 비우 도련님이 뵙고 싶답니다.”

“안 만나겠다.”

육장봉은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

호위병은 쓴웃음을 짓고 한마디 덧붙였다.

“비우 도련님 말씀이, 월 낭자가 보냈다고 합니다.”

육장봉은 미간을 잠깐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들라 해라.”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월령안의 체면은 봐줘야 했다.

육비우 본인도 넷째 형님의 마음속에서 자기는 아무 지위도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친위대는 고사하고, 보초병보다도 못할 것이다.

속으로는 낙심했지만, 지금 이 지경이 된 것도 결국 자초한 일이었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육비우는 지휘 막사로 들어갔다. 냉담한 표정을 지은 육장봉을 보자, 마음속 씁쓸함을 억누르고 점잖게 예를 올렸다. 말투는 살가우면서도 공손했다.

“형님, 형수님께서 형님을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형수님?’

이 호칭에 육장봉의 차갑고 딱딱한 얼굴이 어느 정도 부드러워졌다. 육비우를 바라보는 눈빛도 그렇게 짜증스럽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형님, 제가 주나라를 대표해 아홉 번째 시합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육비우는 조금 전에 입구에 서 있었다. 보초병은 그를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만, 그렇다고 쫓아내지도 않았다.

그때 막사 안에 있던 몇몇 관리의 목소리가 매우 커서, 밖에서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원래 넷째 형님에게 공을 세워 죄를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지금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놓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육장봉은 육비우를 힐끗 스쳐보더니 거절했다.

“안 된다.”

“형님, 저와 소씨 가문의 혼사는 폐하께서 내려 주신 겁니다. 얼마 전에 제 어머니도 예물을 보내서, 이 혼사는 이제 쉽게 물릴 수 없습니다. 저…… 이번이 제게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양국 비무에 참가해 결정적인 시합에서 이겨 큰 공을 세운다. 그러면 황제에게 어명을 거두어들여 달라고 간청할 수 있었다.

“물리지 못할 걸 알거든, 순순히 돌아가서 혼사나 치르거라.”

그래도 육비우의 ‘형수님’이란 호칭에, 육장봉은 모처럼 몇 마디 더 해 주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네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냐?”

육비우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님, 제 누이동생을 이부 우시랑의 차남에게 보내려고 합니다. 벌써 사주까지 맞춰 보았다고 합니다.”

육장봉은 피식 냉소했다.

“제 어머니마저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면서 비무대에 오르겠다고? 애초에 내가 뭐라고 했더냐?”

“형님, 죄송해요…… 저도 어머니께서 이렇게 어리석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 일을 알고 어머니를 즉시 장원에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제 혼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집에서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어머니를 몰래 보내 버렸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소씨 가문에 연줄을 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내자마자 소씨 가문에서 어머니를 다시 모셔왔습니다. 전 정말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그가 억지로 보내려 하자, 어머니는 죽느니 사느니 난리를 피웠다.

그가 아침에 육장봉에게 부탁하러 가기 전에, 그의 어머니는 벽에 머리를 박아 이마에 상처가 났다. 의원은 조금이라도 더 늦었으면 죽었을 거라고 했다.

어머니가 원망스럽기는 했다. 그래도 자기 어머니이기에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네 어머니 때문에 혼사를 거절하려는 거냐?”

육장봉은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

“전부 그런 건 아닙니다. 소씨 가문의 태도도 파혼하려는 이유입니다. 혼례를 올리지도 않았는데 소씨 가문에서는 제 집안일에 손을 댔습니다. 정말로 혼사를 치르면, 소씨로 성을 갈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정말로 두려웠다. 지금 그의 집은 자기 집이라고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일단 소씨 가문과 사돈을 맺게 되면, 자신은 뭐라고 말할 자격조차 없을지도 몰랐다.

육비우는 슬그머니 육장봉을 힐끗 쳐다보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또 뭐가 있느냐?”

육장봉이 캐물었다.

육비우는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가슴팍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함연이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함연이가…… 혼사를 거절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한테 시집오기 싫다고 했습니다.”

“참 잘났다.”

육장봉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됐다. 나가라.”

‘이렇게 배짱도 없는 놈이 무슨 비무에 나가겠다고. 육비우 이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육비우는 육장봉의 말을 듣자마자 거절당했음을 알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무릎을 꿇었다.

“형님, 저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정말 할 수 있습니다! 약속할게요. 꼭 이길 겁니다!”

“지면?”

육장봉이 되물었다.

육비우는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지면 죽음으로 사죄할 겁니다.”

“지면 어차피 죽을 거다.”

육장봉은 조금도 감동하지 않았다.

“형님, 개인전이라면 저도 형님 옆의 친위대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기회를 주세요. 꼭 이기겠습니다. 저를 믿어 주세요.”

육비우는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눈빛은 단호했다.

“형님, 형수님의 체면을 봐서라도 허락해 주세요. 형수님은…… 저를 나무라지 않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저, 저는 형수님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변방에 있을 때, 형수님께서 보내준 맛있는 음식을 그렇게 많이 먹고, 좋은 약도 그렇게 많이 썼는데, 형수님을 그렇게 대했습니다. 저는 진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육비우는 원래 월령안을 들먹여 넷째 형님의 마음을 약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말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월령안이 자신을 가만둘 리 없다고 여겼다. 마음껏 능욕하며 철저히 짓밟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쉽게 놓아주었다.

‘난 진짜 나쁜 놈이야!’

“형님, 형수님은 참 좋은 여인입니다. 예, 예전에는 제가 눈이 삐었어요. 형님,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육씨 성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육비우는 눈물을 글썽였다. 곧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좋다. 기회를 주마. 수횡천의 공격을 열 번 받아낼 수 있으면, 비무에 내보내겠다.”

월령안은 북요인을 매우 증오했다. 만약 육비우가 비무대에서 북요인을 이기면, 그녀의 속이 좀 풀릴지도 모른다.

반대로 육비우가 비무에서 죽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남을 탓할 수 없었다.

“형님, 감사합니다.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돌아가서…… 형수님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빌겠습니다.”

육비우는 얼굴의 눈물을 마구 닦아 내고는 잽싸게 일어섰다. 육장봉이 번복할까 두려워 얼른 밖으로 나갔다.

“형님, 지금 당장 수 맹주를 찾아가겠습니다.”

육비우는 귀신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날 듯이 뛰어갔다.

한편, 육십이는 막사 밖에서 육비우가 펄쩍펄쩍 뛰는 모습을 보고 울먹였다.

“둘째 형님, 제가 장군 곁으로 돌아갈 기회는 없는 건가요? 계속 군영에 남아 훈련해야 하나요?”

“너무 슬퍼하지 마라.”

육십이는 살이 쏙 빠지고 새까맣게 타 있었다. 육이는 그를 바라보며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 위로했다.

그러자 육십이는 진짜 하소연을 했다.

“둘째 형님, 전 군영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장군 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월 누님이 그립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저를 못 보셨으니까 분명 절 보고 싶어 하실 겁니다. 둘째 형님, 대장군께 좀 여쭤봐 주세요. 저는 언제쯤…….”

“육십이, 당장 군영 스무 바퀴를 뛴다. 시작! 뛰어!”

육장봉의 차가운 목소리가 막사에서 흘러나오며 육십이의 하소연을 중단시켰다.

“네, 대장군!”

육십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신체의 본능이 한발 빨랐다. 그의 몸은 당장 똑바로 서는가 싶더니 곧 달려나갔다.

육이는 그 자리에 서서 표범처럼 뛰쳐나가는 육십이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는 묵묵히 동정의 눈물을 찍어 냈다.

‘십이도 참. 하고 많은 말 중에 하필이면 월 낭자가 자기를 그리워한다고 했을까. 월 낭자는 장군한테도 그리워한다고 한 적이 없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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