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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38)화 (438/1,004)

438화 귀국의 선전 포고를 기다리겠네

소영화는 속으로 화가 났다. 그러나 육장봉과 따질 수 없어,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대장군, 말 돌리지 마시지요. 우리는 지금 중요한 일을 상의하고 있소이다.”

역시, 육장봉은 그를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소영화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우리는 상의할 중요한 일이 없소.”

육장봉은 시선을 거두고 냉소를 지었다.

“소 상장, 내게 이간질은 소용없소. 북요와 주나라가 무슨 사이인지, 그쪽이나 나나 다 잘 알지. 당신이 말한 모든 말을 나는 전부 믿지 않소.”

소영화는 겨우 침착함을 유지하며, 일부러 자신 있게 말했다.

“대장군께서도 내가 속이려는 게 아님을 잘 알고 계시지 않소? 그쪽 사람들의 협력 없이, 우리가 어떻게 네 시합을 쉽게 이겼겠소? 그쪽 사람들의 실력도 약하지 않은데, 아니 그렇소?”

“호오, 그럼 누가 협력했소?”

육장봉이 되물었다.

“그건…….”

소영화는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 그나마 제때 정신을 차려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름을 삼켜버렸다.

그는 화가 나서 얼굴마저 일그러졌다.

“육 대장군, 좋은 수였소.”

“이름도 말하지 못하지 못하잖나. 나도 계략에 빠진 척하고 싶지만, 정말 난감하군.”

육장봉은 말로는 난감하다고 했다. 그러나 덤덤하다 못해 무표정한 얼굴은 어떻게 보아도 그를 비웃는 것 같았다.

아니, ‘같았다’라는 표현은 맞지 않았다.

육장봉은 그를 비웃고 있었다.

소영화는 울화통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도 주나라의 관리와 교류하는 게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육장봉처럼 아무 수도 안 먹히면서, 입은 살아 있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소영화는 화가 나다 못해 이제 더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는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육장봉, 지금 양국 전쟁을 일으키자는 건가?”

“나야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지. 소 상장은 어떤가?”

육장봉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자세로 여전히 소영화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영화는 화가 나서 실소했다.

“우리 북요가 두려워할 것 같나?”

“좋군. 귀국의 선전 포고를 기다리겠네.”

육장봉은 일어서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대장군…….”

주나라의 관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까까지 상의하더니 왜 갑자기 전쟁을 한다는 거야?’

‘이까짓 일로?’

주나라의 관리는 속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감히 육장봉의 체면을 깎을 수도 없었다. 다만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서, 육장봉을 사적으로 설득하려고 했다.

육장봉이 이렇게 사람을 데리고 성큼성큼 가 버리자, 소영화와 북요의 관리는 한참이나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육장봉은 뭐 하자는 거지?’

‘간다고 하더니 정말 갔네? 협상을 전혀 하지 않고?

‘우리 체면을 아주 무시한 거 아냐?’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지?’

소영화는 멍하니 선 채, 떠나간 육장봉의 뒷모습을 바라보느라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상장군, 이제 우린 어떻게 합니까?”

북요의 관리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어떡해야 하는지 난들 알겠나? 주나라 놈들은 아무것도 통하지 않아서 협상 자체가 안 되는데! 이젠 나도 신경 안 쓰겠네. 저지른 사람이 책임지라고 해라. 내게 떠밀 생각을 하지 말고.”

소영화는 정신이 들자, 부끄럽다 못해 화가 났다. 바로 소맷자락을 떨치며 성큼성큼 떠나갔다.

육장봉은 그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토록 망신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딱 한 번 있었다.

그는 남상권 앞에서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래도 그와 남상권 둘뿐이었다.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나는 체면도 없는 줄 아나?’

소영화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그로서는 육장봉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원한을 대황자와 소 승상에게 묵묵히 새겨 두었다. 그 둘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 바람에 육장봉이 반격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가 이렇게 망신을 당할 일도 없었으리라.

소영화는 손을 놓고 물러서 버렸다. 이제 북요의 관리들은 대황자와 신호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소영화의 배후에는 소 황후가 있었다. 그는 팽개치고 모르는 척할 수 있어도 그들은 아니었다. 이번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들이 첫 번째로 문책을 당할 것이다.

북요의 관리는 소영화와 육장봉이 협상한 과정을 여실히 대황자와 신호에게 말해 주었다. 조금도 부풀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영화와 육장봉의 협상이 결렬된 것은 소영화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육장봉이 너무 지나쳤고, 전혀 이치가 통하지 않았으며, 방자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그들이 예전에 주나라를 대할 때와 맞먹을 만했다.

“대원수, 무슨 대책이 있나?”

대황자 야율융진의 얼굴은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부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드리웠던 경박함은 신중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예전처럼 기분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신호는 대황자를 힐끔 보고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패전국입니다. 패전국은 패전국다운 자세를 보여야지요. 예전에 주나라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굽실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서러움을 좀 당하는 것은 별일 아닙니다. 아무튼 우리가 조금 휴식을 취하면, 이번 원한은 갚을 수 있을 겁니다.”

“대원수의 말이 맞네.”

야율융진은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지만, 감탄하는 기색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주나라의 사신으로 파견되면서, 그는 비록 주 책임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신호는 군대 안에서 아주 명망이 높았다. 대황자인 그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수행하는 병사들은 그에게 공손하게 대했지만, 다들 신호에게 더 치우친 게 뻔히 보였다.

주나라에 도착한 뒤, 그는 늘 신호의 기세를 꺾으려고 생각했다. 처음에만 해도 신호는 사사건건 양보했다. 사절단도 그의 뜻을 우선 따랐다.

하지만 그 기쁨도 얼마 가지 못했다.

이번 비무에서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 바람에 그의 위엄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 신호의 기세를 꺾기는커녕 앞으로는 신호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야율융진이 낮은 자세로 나오자, 신호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도 우쭐거리지 않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주나라의 관리와 잘 말씀해 보십시오. 앞서 여덟 차례 시합을 따져 보면 비긴 상태입니다. 그럼 아홉 번째 시합에서 우리 모두 사람을 바꾸는 게 어떻겠습니까? 보통 병사를 시합에 내보내도록 하지요. 이게 우리 북요의 유일한 요구라고 하십시오. 그 대가로 주나라에 군마 백 필을 더 줄 수 있으니, 잘 생각해 보라고 하십시오.”

“그래도 되겠나? 만약 우리는 평범한 병사로 바꿨는데, 주나라가 바꾸지 않으면 어떡하나? 만약 우리가 평범한 병사로 바꿨는데, 우리가 지면 어떡하나?”

야율융진은 습관적으로 신호의 말을 반박했다.

“우리 북요의 용사가 어떻게 지겠습니까?”

야율융진의 사소한 수작으로는 신호를 속일 수 없었다. 그러나 신호는 그까짓 수작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육장봉은 총명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규칙을 지키기만 한다면, 그자도 규칙을 지킬 것입니다. 우리가 군마 백 필을 내놓는데, 일차전에서 지더라도 육장봉은 손해를 보는 게 아닙니다.”

일차전에서 북요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여기서 이겨야만, 앞서 육장봉의 손에 패한 치욕을 씻고, 다시 사기를 북돋을 수 있었다.

* * *

북요의 평범한 관리는 육장봉과 직접 대화할 자격이 없었다. 설령 육장봉이 그들을 만나준다고 하더라도, 감히 육장봉과 교섭할 용기가 없었다.

북요 관리 마음속에는 육장봉은 강하고 방자한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육장봉이 있는 한, 그들은 우쭐거릴 수 없었다.

신호의 당부가 있었으니 북요 관리도 감히 거들먹거리지 못했다. 그들은 주나라 홍려시의 관리를 찾아가 좋은 말로 그들의 요구를 제시했다.

그리고 주나라 쪽에서 불만을 품을까 봐, 말을 마치고 비굴하게 덧붙였다.

“물론, 우리는 귀국과 상의를 하려는 것이오. 귀국이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의는 없소.”

북요인이 이토록 비굴하게 부탁하고, 아부하듯이 읍을 하자, 주나라의 관리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들은 자기가 술에 취한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오랫동안 북요와 교류했던 홍려시 관리는 더욱 어리둥절했다. 막사를 어떻게 나갔는지도 몰랐다. 온몸이 공중에 둥둥 뜬 기분이었다.

예전에 자기들 앞에서 으스대고, 손가락질하며, 욕하던 북요인이 조심스럽게 아부하는 것을 본 기분은…….

“참으로 통쾌하구나!”

홍려시의 관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가 높고 날카로웠다.

육장봉은 조(曹) 대인에게서 보고를 듣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흐름이 끊겼다. 저도 모르게 그 지나치게 흥분한 관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대, 대, 대장군…….”

그 관리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고는 깜짝 놀라 다리가 나른해졌다. 조 대인이 그를 잡지 않았더라면, 땅에 주저앉을 뻔했다.

“대, 대장군, 제가……. 아니, 소관이, 소관이…….”

유씨 성을 가진 관리는 겁을 먹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는 아직도 자기 막사 안에 있는 줄 알았다. 자기 일행이 육장봉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괜찮네.”

육장봉은 그걸 따질 생각은 없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유 대인 때문에 흐름이 끊긴 화제를 다시 이어 나갔다.

“말해 보시오. 어떻게 생각하시오?”

“무엇보다도 승리가 중요하네. 승리를 위해서라면 다른 건 양보해야지.”

황실을 대표해서 나온 친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세상에 어디 완벽한 승리의 비결이 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손에 들어온 이익이야말로 진짜입니다.”

호부와 병부의 두 관리는 북요인이 내건 군마가 탐이 났다.

군마는 비쌌다. 게다가 좋은 군마는 돈이 있어도 사지 못했다.

보통의 군마라면 백 필은 많지 않은 수였다. 하지만 북요의 군마는 인내력이 좋기로 유명했다. 주나라에는 그런 말이 아주 부족했다.

그리고 북요의 요구도 지나친 게 아니었다. 양쪽에서 모두 사람을 바꾸자고 했다. 게다가 직접 고르라고 했다. 이것도 공평한 셈이었다.

“북요인이 정말로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습니다. 군마 백 필을 내놓는 대가가 겨우 아홉 번째 시합에서 사람을 바꾸는 것이라니요. 그들은 기존의 선수로 시합을 치르면, 승산이 없음을 알아챈 것입니다. 이번 시합은 우리가 당연히 이길 겁니다. 전마 백 필 때문에 그런 모험을 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홍려시와 예부의 관리는 이기고 싶었다. 그들은 이토록 간절하게 북요를 이기고 싶고, 짓밟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 이기면, 더는 북요인에게 아부할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북요인이 그들의 눈치를 보며 일해야 했다. 이런 기분은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이런 시기에 감히 육 대장군의 발목을 잡는 자는, 바로 그들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북요인은 원래의 규정대로 아홉 번째 시합을 치르려 하지 않을 게 뻔합니다.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계속 질질 끌 겁니다. 북요인이 여기서 버티고 나가지 않는다면, 시간이 흘러서 무슨 사달이라도 나면 어떡합니까?

“그깟 북요인이 뭐라고. 안 가겠다면 안 가고, 시합을 하지 않겠다면 안 해도 됩니까? 우리 대장군께서 동의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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