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437)화 (437/1,004)

437화 육장봉은 지지 않을 거예요

“신호는 아주 끈질긴 놈이라, 다섯 번째 시합을 물고 늘어질 겁니다. 우리가 규칙을 어겼다며 육장봉더러 물러나라고 압력을 넣겠죠. 예상대로라면 우리는 아마 시합을 한 차례 더 치러야 할 겁니다.”

조계안은 원래 비무 참가자가 아니었다. 북요인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다행이지만, 알아차렸다면 다섯 번째 시합은 무효가 될지도 몰랐다.

“장봉이와 그 신호라는 자에게 어떤 은원이 있느냐?”

황제도 더는 비무의 일을 묻지 않았다. 육장봉에게 맡긴 이상, 함부로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조계안은 순간 멍해졌다가 눈을 감았다.

“그때, 저와 육장봉이 북요에 있을 적에 청주의 사람에게 팔렸던 적이 있습니다. 북요가 우리의 종적을 발견하고 전력을 다해 우리를 잡아들이려고 했죠. 우리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현음 고모님이…… 신호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이에요.”

“뭐라고? 현음 고모님이…….”

황제는 놀라운 얼굴로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조계안은 눈을 뜨지 않았다. 그저 고통스럽게 고개만 끄덕였다.

“짐이 무능하구나!”

황제는 울먹였다. 그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아름답고 뿌리가 없는 여인이, 아름답고 뿌리가 없으며 조국이 약세에 처한 여인이 한 남자에게 자기 아들과 조카를 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것도 없는 여인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으리라.

* * *

조계안은 평소에 황궁에 머무는 시간이 아주 적었다. 하지만 황궁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누렸다. 그가 명령을 내리면 궁녀든, 내관이든, 금군이든 모두 바로 그 명령을 수행해야 했다. 또한, 절대 조금이라도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조왕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난폭함은 황궁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황궁에서 오래 지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황제에게 밉보이거나, 황제의 명령을 어길 수는 있었다. 그러나 절대 조왕의 명령을 어겨서는 안 됐다.

황제의 명령을 어기면 그나마 사정할 수라도 있었다. 어쩌면 황제가 마음이 약해지거나, 조왕의 기분이 좋기라도 하다면 무사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조왕에게 밉보여서 그의 기분을 거슬렸다면 얼른 자결하는 게 나았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맛보게 될 테니까.

“지금부터 황궁에 전면적으로 출입 금지 명령을 내린다. 그 누구도 드나들 수 없다. 태후와 황후까지 포함하여, 성지 없이는 궁문을 나설 수 없다. 이를 어기는 자는 전부 죽인다!

궁중 내관, 궁녀, 금군은 당직 때만 담당한 구역에 나타날 수 있다. 귓속말해서도 안 된다. 이를 어기는 자는 전부 죽인다!

궁중의 모든 당직 인원들은 당직 시간이 아닐 때는 방문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어기는 자는 전부 죽인다!”

조계안은 난각 밖에 서서 덤덤한 표정으로 금지령 세 항목을 선포했다. 매 항목을 말할 때마다 차가운 살기를 풍겼다.

“네!”

금군은 조계안의 명령을 듣자,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궁문을 봉쇄했다.

이제 아무도 황궁을 드나들지 못하게 되었다. 또 비빈들도 후궁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었다.

그의 금지령 세 항목은 당장 황궁의 구석구석까지 전해졌다. 황궁의 관사 내관과 관사 상궁들이 가장 빨리 소식을 받았다.

궁에서 관사의 위치까지 오른 사람들은 모두 세상 물정에 훤한 사람들이었다. 이 평범하지 않은 세 금지령을 들은 총관 내관과 상궁은 황궁에 큰일이 벌어졌음을 알아챘다.

그들은 고종 황제의 재위 시절, 궁중에 일던 피바람을 떠올렸다. 모든 총관 상궁과 내관은 지체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수하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수하의 궁인에게 금지령을 전달하며, 얄팍한 속셈은 거두라고 엄격하게 당부했다.

물론, 제 잇속을 차리려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다. 그들은 황궁에 큰 소란이 난 것을 알자, 몰래 소식을 황궁 밖으로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움직이자마자 이반반에게 잡혔다.

“평소에 수상하게 굴더니 멀쩡한 놈이 아닌 줄 알아보았느니라. 역시, 내게 잡혔구나!”

잡힌 사람은 안색이 잿빛이 되었다. 입을 열고 변명하려고 했지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증인과 증거가 다 있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이젠 빨리 죽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함정입니다! 저희를 잡으려고 판 함정이에요.”

하지만 그의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이반반의 냉소뿐이었다.

이반반의 행동은 신속했다. 또한 그는 황궁의 구석구석에 감시자를 두고 있었다. 조계안이 명령을 내린 지 한 시진도 되기 전에, 황궁 밖으로 소식을 전하려던 사람을 네 명이나 잡아들였다.

이반반은 이 네 명을 잡아들인 후, 별다른 소식을 받지 못했다. 그는 난각으로 돌아와 황제와 조계안에게 보고했다.

“폐하, 전하. 이 간첩 넷 중에서 한 사람은 황후궁의 내관입니다. 그리고 다른 세 명은 잡자마자 바로 죽어버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황후라고?”

황제는 눈을 감고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짐의 황후가 그랬다고!”

그는 줄곧 황후를 존중했고, 그 어려움을 헤아렸다. 심지어 황후가 지위를 다질 수 있도록, 적자를 낳기 전까지 다른 후궁들이 회임하지 못하게 했다.

황제는 황후도 그를 같은 마음으로 대한다고 늘 여겨왔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을 뿐이다.

“여인은 옷과 같지요. 낡은 것을 없애지 않으면 새것이 오지 않습니다. 황형,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나중에 황후를 폐하면 되잖아요.”

조계안은 위로 한마디를 건네고 일깨워 주었다.

“황형, 장 부승상과 육부 상서들은 아직 황궁에 있어요. 사람을 파견하여 그들의 집에 말을 전하십시오. 대인들이 황궁에서 폐하를 수행해야 하니,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라고요. 믿을지 말지는 상관하지 말고요. 우리는 이유를 댔으니까요. 그들이 함부로 나온다면 저는 그놈들의 발톱을 뽑을 겁니다.”

“이반반, 사람을 보내거라.”

황제는 씁쓸한 얼굴이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굳센 의지를 담고 있었다. 황후의 일 때문에 상심하기는 했지만, 타격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네, 폐하.”

이반반은 허리를 굽히고 물러갔다. 그러자 황제와 조계안 두 사람만 남았다.

황제는 곧 황후의 일을 내려놓고, 조계안과 앞으로 할 일을 상의했다. 둘이 전체적인 흐름을 그렸을 때는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황제는 피곤한 얼굴로 미간을 문질렀다. 성 밖 군영에서 아직 소식이 없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계안아, 장봉이 쪽에서는 아직 소식이 들어온 게 없느냐?”

“육장봉은 지지 않을 거예요.”

조계안은 황제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꿋꿋하게 말했다.

“현음 고모가 북요에 계시니 육장봉은 질 수 없어요.”

“날이 저물었구나.”

황제는 창밖의 어둠침침한 하늘을 바라보더니 걱정을 거두지 못했다.

조계안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침묵을 지키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것도 이상하군.’

* * *

변경, 군영.

양국 비무의 첫날부터 북요는 끊임없이 트집을 잡았다. 그리고 휴식을 요구하며 잠시 시합을 중단했다.

이 요구는 과분하지 않았다. 주나라는 주인 된 도리로 손님을 편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했다. 그래서 북요인의 요구를 허락했다.

그러나 북요인은 뒤로 갈수록 더욱 무리한 요구를 제기했다. 다섯 번째 시합의 결과를 취소하자고 요구했다.

“다섯 번째 시합에 참가한 주나라의 병사는 확실히 사전에 제출한 묘사대로 얼굴에 흉터가 있었소. 하지만 그자의 몸집을 보나, 수법을 보나, 모두 군대 내에서 나온 것이라 보기는 어렵소.

우리 북요에서는 그자가 군적에 든 군인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소. 그러니 주나라에서는 다른 사람을 찾아 대체하시오. 우리는 다섯 번째 시합의 성적을 무효로 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오. 다시 겨룹시다.”

북요의 상장군 소영화가 대표로 나서서 주나라의 관리들에게 북요의 요구를 전달했다.

주나라의 관리는 북요인의 염치없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탁자를 내리칠 뻔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담담하게 말했다.

“앞서 네 시합에 참가한 병사들은 확실히 사전에 묘사한 대로 몸집이 컸소. 하지만 그자의 몸집을 보나, 수법을 보나, 모두 북요에서 나온 것이라 보기는 어렵소.

우리 주나라에서는 그자가 북요인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소. 우리는 앞서 네 시합의 성적을 무효로 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오. 다시 겨룹시다.”

주나라의 관리는 이 말을 듣고 즐거워졌다.

“그렇지, 맞소이다. 우리에겐 앞선 시합에 참가한 사람이 북요인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소. 다시 겨룹시다!”

황실의 종실을 대표하는 친왕은 몰래 육장봉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육장봉은 문인들이 말하는 멍청한 무장답지 않게, 대단히 교활했다.

“다섯 번째 시합에서 주나라가 왜 이겼는지 속으로 잘 알 거요.”

소영화는 육장봉의 뻔뻔한 모습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그들 북요인보다 더욱 이치를 따지지 않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육장봉이 처음이었다.

육장봉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앞선 시합에서 북요가 왜 이겼는지는 당신들이 가장 잘 알 거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었다. 육장봉은 한 글자도 더하지 않았고,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 소영화는 답답한 와중에도 트집을 전혀 잡을 수 없었다.

‘협박이 안 통하면 이익으로 유혹할 수밖에 없지.’

소영화는 기세를 낮추고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

“우리가 이긴 이유야 잘 알고 있지. 당연히 우리 북요 전사들이 우수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그대들이 신의를 지킨다면, 우리 북요 또한 공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리라 약조하겠소.”

소영화는 은근히 육장봉에게 뜻을 전했다.

‘주나라가 다섯 번째 시합의 성적을 없애기만 한다면, 북요는 주나라를 도와 앞선 시합을 함께 분석할 것이다. 하여 주나라가 시합에서 진 원인을 함께 찾아낼 것이다.’

소영화의 표현은 완곡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그 말뜻을 이해 못 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없었다.

그는 주나라가 네 차례 시합에서 진 것은 주나라의 관리가 나라를 배신하고 북요와 손을 잡았기 때문임을 은근히 드러냈다.

주나라의 문관은 소영화의 암시와 멸시로 가득한 말을 듣자, 하나같이 얼굴이 벌게졌다. 성격이 급한 몇몇은 화가 나서 호흡마저 흐트러졌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쪽이 결백하지 못한 데다가, 또 약점까지 잡혔다. 그들이 따지고 싶어도 용기가 없었다.

관리들은 화가 났고, 분개했다. 북요인들의 몰염치에 화가 났고 또 자기편의 못난 짓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덤덤한 얼굴로 소영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한기를 감추고 있었다.

소영화도 처음에는 앉아 있을 만했다. 오만하게 육장봉의 시선을 맞받아치며, 그가 타협하기를 기다렸다. 과연 누가 뒤에서 칼을 꽂았는지, 육장봉이 알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육장봉은 여전히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입을 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제 소영화는 육장봉과 가까이 앉아 있는 게 조금 불편해졌다.

육장봉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떨떠름함을 느꼈다. 육장봉이 그를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소영화는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뒤로 조금 움직여 육장봉과 거리를 둔 뒤, 먼저 입을 열었다.

“육 대장군, 아무 말씀도 없는데, 이게 무슨 뜻이오?”

“당연히 소 상장의 뛰어난 자태를 감상하는 중이지.”

육장봉의 말투는 오만불손했다. 일부러 끝음절을 길게 끄는 것이, 그를 모욕하는 중이라고 알려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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