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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36)화 (436/1,004)

436화 사고를 치려거든 크게 쳐야죠

황제는 이반반과 엎치락뒤치락 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반반은 황제를 가로막고 침대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조계안에게 말했다.

“전하, 저는 손을 뗄 수가 없으니 좀 도와주십시오. 폐하의 버선을 좀 건네주십시오. 폐하께서 감기에 드시면 안 됩니다.”

“이 영감탱이가, 번거롭기는.”

조계안은 입으로는 귀찮은 척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의 발은 성실했다. 그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의 버선을 집었다.

“자…….”

조계안은 양말을 이반반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그는 받아 들지 않고 호들갑스럽게 자기의 뺨을 쳤다.

“아이고, 제 기억력 좀 보세요. 폐하께서 약을 드실 시간이 되었군요. 폐하의 옥체에 관련된 일이니 지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 가서 폐하의 약을 달여와야겠습니다. 전하, 폐하를 부탁드립니다. 폐하의 옥체가 허하다 보니, 신의가 휴식을 잘 취하라고 했습니다. 지치셔도 안 되고, 화를 내셔도 안 됩니다.”

이반반은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뛰어나갔다. 조계안에게 말할 기회라고는 전혀 주지 않았다.

“저 영감탱…….”

조계안은 버선을 들고 퉁명스럽게 욕을 한마디 했다. 그는 원래 손에 든 버선을 황제에게 던져주려고 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두 눈이 벌게지도록 화가 난 황제가 눈에 들어왔다.

조계안은 마음이 불편해져서 도도하게 말했다.

“됐어요, 됐어요. 아우가 잘못했어요. 황형, 화내지 마세요. 얼마나 큰일이라고 화까지 내요?”

‘무능하다고 욕먹었는데 화가 안 날 리가!’

황제는 옆에 둔 베개를 들고 조계안을 내리치려고 했다. 그런데 조계안이 갑자기 쪼그리고 앉더니, 버선 입구를 벌리고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황형, 어서요. 발 들어요.”

황제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러면 어떻게 화를 내겠는가.

마음속의 노기가 순식간에 전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입꼬리는 말을 듣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몸은 머리보다 반응이 빨랐다.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않았는데, 발을 먼저 들고 있었다. 조계안이 그에게 버선을 잘 신겨 줄 수 있도록 했다.

조계안은 굳은 얼굴로 황제에게 버선을 신겨주었다. 그리고 당장 싫은 티를 내면서 이불을 끌어 손을 닦았다.

“다 큰 사람이 아직도 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니. 황제가 되었다고 손발을 못 쓰는 것도 아닌데. 앞으로 이런 일은 혼자 하면 안 됩니까?”

황제는 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런 아우는 도저히 예뻐해 줄 수가 없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다음부터는 네가 친 사고 때문에 사람들이 짐을 찾아오게 하지는 마라.”

황제는 퉁명스럽게 조계안의 얼굴을 쳤다.

“제가 무슨 사고를 쳤다고요?”

조계안은 손을 닦고 나서 이불을 던졌다. 그리고 느릿하게 일어나 걸상에 앉았다.

“황성사 말이다!”

황제는 언짢게 조계안을 노려보았다.

“애초에 짐이 뭐라고 했느냐? 넌 또 짐에게 뭐라고 대답했었지? 조정의 그 대신들이 황성사를 얼마나 싫어하고 경계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잖느냐.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고, 황성사가 여태까지 활동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짐이 황성사를 폐지하기를 바란다.

그때 너는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않았느냐? 만반의 준비 없이는, 절대 조정 대신들에게 짐이 황성사를 다시 쓸 생각임을 알리지 않겠다고. 그런데 네가 또 어떻게 했느냐?”

“황형, 그건 제게 물으실 게 아니라 조정의 그 대신들에게 물으셔야죠. 양국 비무 때 그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데요?”

조계안은 시선을 내리깔고 음산하게 코웃음 쳤다.

“그들이 뭘 했는데?”

황제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는 있었다.

조계안은 황제가 비무에 관한 소식을 받았다는 말을 듣자,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형, 앞서 네 차례 시합은 아주 기가 막혔지요?”

황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반반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조계안이 비무에서 보여준 활약을 떠올렸다. 곧 얼굴에 웃음이 드리웠다.

“짐도 네가 비무대에서 북요의 위세를 꺾은 것을 알고 있단다. 짐은 네가 자랑스럽구나.”

“자랑스럽다고요? 황형, 수치를 느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조계안은 오싹하게 웃었다.

“저는 황실 사람이잖아요. 제 목숨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그런데도 비무대에서 목숨을 걸고 북요의 야만인과 싸워야 했습니다. 황형, 이 일이 굴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황제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부끄럽고 미안한 얼굴로 조계안을 바라보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조계안을 자랑스럽게만 여겼다. 그때 얼마나 위험했을지는 잊고 있었다.

북요에서 이번에 비무에 참가시킨 사람들은 모두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칼도, 창도 그 살갗을 뚫을 수 없고 힘도 대단히 셌다. 황제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조계안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보통사람이었다. 보통사람이 북요의 괴물과 마주했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당연했다.

“계안아, 짐은…….”

“황형,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묻지 않으세요?”

조계안은 더없이 악랄하게 웃었다.

황제의 시선이 어두워졌다. 바로 기가 죽어 물었다.

“누가 손을 쓴 것이냐?”

황제의 이런 모습을 보자, 조계안의 말투도 부드러워졌다.

“군에서 손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죠. 육장봉이 홍려시의 조(曹) 대인을 구해줬습니다. 조 대인이 말하기를 소 승상의 장남 소여방과 영녕후의 차남이 막역한 사이라고 했어요. 두 가문에서도 교류가 있었고요. 하지만…….”

“말해라. 짐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없다.”

황제는 웃어 보였다. 그 미소는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칠 년 전, 소여방과 영녕후의 차남이 갑자기 왕래를 끊었어요.”

조계안은 일부러 어조에 힘을 실어 칠 년 전임을 강조했다.

“칠 년 전이라고?”

황제의 안색이 또 어두워졌다.

‘계안이가 이렇게 많이 이야기하는 게 역시 월령안을 위해서인가?’

조계안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칠 년 전!”

황형이 칠 년 전의 일을 꺼내기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칠 년 전의 일과 마주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뜻을 따를 수 없었다.

조계안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했다.

“조 대인이 말하기를, 소여방과 영녕후의 차남이 교류할 때, 변경의 여러 가문에 시녀가 죽는 사건이 자주 벌어졌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고 적고는 가리지 않았고요. 가장 자주 벌어졌을 때는 한 달에 시녀가 열몇 명이나 죽었다더군요. 그러나 칠 년 전, 둘이 왕래를 끊은 뒤로는 시녀들이 빈번하게 죽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하지요.”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황제는 얼굴을 굳혔다. 온몸에서는 불쾌하다는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조계안은 못 본 척 정색하며 말했다.

“황형, 전 그때의 일을 조사하고 싶습니다.”

황제는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늘어놓은 이유가 결국에는 월령안 때문이구나.”

“황형, 도망친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황형은 정말…… 그때의 진실을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조계안의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사람을 유혹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로는 황제를 움직일 수 없었다.

황제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짐은…… 알고 싶지 않다.”

조계안은 눈에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제가 알고 싶습니다. 왜 소여방과 영녕후의 차남이 교제할 때, 변경에서 그토록 많은 시녀가 죽었는지, 소씨 가문과 영녕후는 도대체 무슨 사이였는지, 제가 꼭 알아낼 겁니다.”

“꼭 조사해야겠느냐?”

황제는 매섭게 조계안을 노려보았다.

조계안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꼭 조사해야겠습니다!”

황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하지만 또 조계안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심술을 부리듯 말했다.

“네 맘대로 해라! 조사할 테면 해!”

조계안은 낮은 목소리로 웃고, 황제를 살살 달랬다.

“황형,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은 제가 직접 조사할 겁니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요.”

“짐이 걱정할 게 뭐가 있겠느냐? 나쁜 짓을 벌인 사람은 짐이 아니니라.”

기껏해야 망신이나 당하는 정도일 것이다. 어쨌든 그는 조계안 앞에서는 체면을 내세워도 소용이 없었다.

“조사할 테면 해 봐라. 여기서 짐의 눈을 어지럽히지 말고, 썩 물러가라.”

황제는 오만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더는 조계안을 상대하지 않았다.

조계안은 일어서서 황제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가볍게 웃었다.

“우리 황형은 세상에서 가장 착한 분인데, 어찌 나쁜 짓을 하셨겠어요.”

황제는 퉁명스럽게 조계안의 손을 찰싹 쳤다.

“됐다. 됐어. 어서 꺼져라.”

조계안은 신경 쓰지 않고 손을 거두었다.

“지금은 못 갑니다. 황형은 아주 위중한 상황이거든요. 제가 옆에서 지켜 드려야죠. 딴마음을 먹은 사람이 이 기회를 노리지 못하게요.”

“딴마음을 먹은 사람?”

황제는 이상한 점을 민감하게 알아챘다.

“장씨 가문의 오공자가 지금 황후의 친정 가문 출신의 아가씨와 선을 보고 있거든요. 이변이 없으면 두 집안은 사돈을 맺겠지요.”

조계안은 동정 어린 시선으로 황제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황형, 힘내세요!”

“짐은…… 아직 죽지 않았다!”

황제의 안색이 매우 나빠졌다.

“하지만 황형은 지금 쓰러져서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데요.”

조계안은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황제가 막 화를 내려 할 때였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그래서 장 부승상과 육부의 상서들을 모조리 가두었느냐?”

“기왕 사고를 치려거든 크게 쳐야죠. 황형, 어때요?”

조계안은 싱글벙글 웃으며 물어보았다. 어떻게 보아도 심술궂어 보였다.

“사고를 치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 북요인이 아직 변경에 있지 않으냐. 이런 시기에 네가 소란을 피운다면, 그놈들에게 수작을 부릴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겠느냐?”

황제는 가슴팍을 부여잡았다. 또 쓰러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 망할 녀석은 철 좀 들면 안 되나? 사전에 상의를 좀 하면 안 되나?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짐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지?’

조계안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했다.

“마침 북요인이 있으니 같이 잡아넣을 수 있겠네요. 북요인이 뭐 또 우리와 전쟁이라도 치르겠어요?”

“일을 이토록 크게 벌이다가 혹시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냐?”

황제는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일은 벌여야죠! 조정에서 딴마음을 품은 놈들을 숙청해야, 우리도 근심 없이 청주의 그 늙은이들을 상대하는데 전념할 수 있을 게 아닙니까.

그래야 누가 우리 뒤에서 발목을 잡거나, 등에 칼을 꽂을 걱정을 안 해도 되잖아요? 또다시 사 연패를 해서 제가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아도 될 테고요.”

조계안은 황제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가 결정하도록 몰아붙이기 위해, 우는소리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황제도 조계안의 기대에 부응했다. 잠시 생각한 뒤,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껏 하려무나. 모든 일은…… 짐이 뒷받침하겠다.”

‘까짓거, 황제인 내가 대신들 앞에서 고개를 좀 숙이면 될 게 아닌가. 어차피 처음도 아닌데. 할 수 있어.’

조계안의 음울한 시선에 한 줄기 온기가 드리웠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황형, 걱정하지 마세요. 전 절대로 함부로 나서지 않을 거니까요.”

황제는 웃어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어딘지 억지스러운 듯해서 아예 웃지 않기로 했다.

그는 지친 듯한 말투로 말했다.

“장봉이 쪽에는…… 다른 문제가 없겠지? 비무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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