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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35)화 (435/1,004)

435화 짐이 꾀병을 부릴 필요가 있겠느냐

이반반이 당장 달려와 황제를 부축하며 소리를 질렀다.

“어의, 어의……. 어서, 폐하께서 쓰러지셨다. 어서 어의를 불러라!”

‘폐하께서 쓰러지셨다고?’

장 부승상을 비롯한 이들은 아직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원래는 황성사를 움직이는 데 조왕도 참여했음을 황제가 모르는 틈에 황성사를 탄핵할 셈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제거하는 도구로 황성사를 쓰는 사람이 있다고 주장하려 했다. 육장봉이 사사로이 황성사 시위를 움직인 것이 바로 그 예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를 구실로 황제가 황성사를 해산하는 명령을 내리도록 압력을 넣으려 했다.

그런데 막 운을 떼었을 뿐인데, 황제가 쓰러져 버렸다.

‘이제부터 어떡하지?’

장 부승상과 육부 상서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와 동시에 긴 탁자 위에 쓰러진 황제를 바라보았다.

‘폐하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아 젊고 기운이 넘칠 시기인데, 어찌 바로 쓰러진단 말인가? 우연치고는 너무하지 않은가? 폐하는 분명 쓰러진 척하는 거야.’

장 부승상을 비롯한 이들은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반반이 눈치를 주는 것도 무시했다. 고집스럽게 남아서 어의가 진맥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어의가 왔다. 그들은 일부러 이반반을 따돌리며, 그의 말을 잘랐다. 이반반이 어의에게 암시해 줄 기회를 차단한 것이다.

황제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어의를 불렀으니, 태의원에서 의술이 가장 뛰어난 송 원정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

그는 황제 옆에 있는 장 부승상을 비롯한 이들을 보고 은근히 불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다가가 황제의 맥을 짚었다.

청희 장공주의 일로 큰 좌절을 맛본 뒤, 그는 예전처럼 열정 넘치고 단순하던 어의가 아니게 되었다. 황궁에서 오래 지내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웠다.

사람들의 감시를 받으면서 송 원정은 진지한 얼굴로 황제의 맥을 짚었다. 맥을 짚은 순간, 황제가 꾀병을 부리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송 원정은 시치미를 떼고 심각한 얼굴을 했다.

“폐하께서 어찌 되신 건가?”

송 원정이 손을 거두자, 장 부승상이 재빨리 물었다. 또한 은근하게 위압감을 풍기며 송 원정에게 겁을 주려고 했다.

현임 부승상답게 그의 위엄은 실로 굉장했다. 반면, 송 원정은 금방 취임한 원정이었다. 평소에 높은 관리를 볼 기회가 아주 적어서, 일순간 정말로 겁을 먹고 말았다.

송 원정이 긴장하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자, 이반반은 속으로 이번 일은 틀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 부승상과 육부 상서들이 방해하고 있어서 뭐라고 눈치도 줄 수 없었다. 그저 속으로 송 원정이 기지를 발휘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송 원정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장 부승상에게 쉽사리 말려들지 않았다. 잠깐 침묵하다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폐하의 옥체는 아주 건강하십니다…….”

장 부승상은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송 원정의 말소리가 들렸다.

“폐하께서는 손 신의의 약을 드시고 정력이 더욱 왕성해지셨습니다. 다만 자극을 받으시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기혈이 거꾸로 솟구쳐 쓰러지신 겁니다.”

“그렇다면 왜 얼른 약을 써서 깨우지 않는가?”

장 부승상이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황성사를 제어하는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그는 황제에게 빠져나갈 기회를 줄 수 없었다.

이반반은 병부상서에게 가로막혀 있었다. 송 원정에게 신호를 주고 싶었지만, 송 원정은 그를 등지고 있었다. 그의 손동작을 아예 볼 수 없었다.

이반반은 절망하여 묵묵히 눈을 감았다. 속으로 몰래 외쳤다.

‘폐하, 소인은 여기까지 밖에 도울 수 없습니다.’

이반반이 황제의 꾀병이 실패하리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송 원정이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기혈이 거꾸로 솟구쳤으니, 폐하께서는 지금 안정이 필요합니다. 만약 강제로 폐하를 깨운다면 수명에 영향이 갈지도 모릅니다.”

이반반은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그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병부상서를 신경 쓰지 않고,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의 수명에 지장이 가서는 절대 안 됩니다. 장 부승상, 폐하의 존귀한 옥체에 약간이라도 손상이 가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반반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장 부승상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폐하의 옥체는 존귀하니, 우리도 옆에서 폐하를 지키겠네.”

“장 부승상께서는 공무로 바쁘시잖습니까. 폐하께서는 안정만 취하시면 된다니, 소인과 송 원정만 있으면 되겠습니다.”

이반반은 몰래 이를 악물었다.

‘이러니 폐하께서 장 부승상을 좋아하실 리가 없지. 장 부승상 이 사람도 너무 눈치가 없어.’

그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려고 황제의 체면도 봐주지 않았다. 폐하가 항상 자기와 맞먹으려는 사람을 과연 승상으로 임명하겠는가. 참 생각이 없었다.

“폐하의 옥체는 종묘사직에 관계되니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지. 우리는 여기서 폐하께서 깨어나실 때까지 지키겠네.”

장 부승상도 이반반과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낮은 걸상을 옮겨와 침대 앞에 지키고 앉더니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육부 상서들도 일제히 장 부승상의 뒤에 앉았다. 장 부승상과 행동을 함께하겠다는 뜻이었다.

‘괘씸하다!’

이반반은 속으로 욕을 했지만, 이 일곱 명을 어쩌지는 못했다.

이 일곱 명은 조정의 기둥이자, 일품 대신이었다. 그와 같은 내관의 말을 들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바로 이때, 침대에 누워 꾀병을 부리던 황제도 울화가 치밀었다.

‘육부 상서들을 모두 데리고 오다니. 장 부승상은 오늘 내 입에서 황성사를 포기하겠다는 말을 꼭 들으려고 작정했군.’

황제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난각 밖에서 거침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가 쓰러지셨는데 바로 내게 알리지 않다니. 똑똑히 들어라. 폐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네놈들을 모조리 순장하겠다!”

벌컥!

금색 이무기가 수놓인 검은 옷을 입고, 은색 가면을 쓴 조계안이 급한 발걸음으로 난각에 들어왔다.

그는 난각에 들어서자마자 장 부승상을 비롯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화를 냈다.

“바로 네놈들이 황형의 화를 돋우어 쓰러지게 했구나?”

“신은…….”

장 부승상과 육부 상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계안에게 예를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예를 반쯤 올렸을까, 조계안이 거만하게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봐라. 저자들을 끌어내서 가두어라!”

‘뭐라고?’

장 부승상 등은 허리를 굽힌 채 그대로 굳어졌다.

‘내가 잘못 들었나?’

‘조왕이 방금 뭐라고 했지?

‘누구를 가둔다고?’

조계안이 명령을 내리자, 금군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신속하게 장 부승상 등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황제는 침대에 누워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호흡이 점차 가빠졌다. 침대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속으로 초조해했다.

‘계안이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장 부승상과 육부 상서는 손을 뒤로 돌린 채 포박당했다. 그들은 반항하지도 않았다. 그저 원래 자리에 서서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조왕 전하, 무슨 오해라도 하신 거 아닙니까?”

그들 모두 나이가 있다 보니 팔다리가 시원치 않았다. 당연히 이 금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만약 버둥거리다가 허리라도 다치면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리고 조왕이 정말 감히 그들을 가두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조정의 크고 작은 일에는 전부 그들의 허락과 지시가 필요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쓰러진다면 조정도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오해한 게 아니다. 황형께서 혼절하신 게 네놈들 탓이 아니냐. 어서 사람을 끌어내라. 무슨 일이든 황형께서 깨어나시거든 이야기해라.”

조계안의 일 처리는 참 깔끔했다. 한마디도 더 하지 않고 손을 들어 금군이 장 부승상 등을 데려가게 했다.

예부상서는 화가 났다.

“조왕 전하, 지금 이는 반역이나 다름없는…….”

조계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음산하게 말했다.

“황형께서는 멀쩡히 살아 계시거늘, 반역이라니 무슨 소리냐? 황형더러 죽으라고 저주하는 거냐? 내가 그전에 너를 죽일 수도 있다. 어떠냐?”

예부상서와 비교하면 장 부승상은 훨씬 품위가 있었다.

“전하, 왜 저를 겁박하십니까? 전하께서 저를 가두신다면 감히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신다면, 폐하께서도 깨어나신 뒤에 언짢아하실 겁니다.”

조계안은 가소롭다는 듯이 냉소를 지었다.

“난 한 번도 소란을 피운 적이 없다. 이 점은 황형께서 가장 잘 아실 것이다.”

“전하, 현명하십니다.”

장 부승상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황제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금군을 따라 떠나갔다.

육부 상서들도 이 상황을 보았다. 더는 반항하지 않고 오만하게 말했다.

“이 손 놓아라. 내 발로 가겠다.”

금군은 조계안을 힐끔 보고 그의 허락을 받았다. 그들은 여러 대인을 난처하게 하지 않고, 예의 바르게 그들을 ‘모셔’갔다.

‘너무 일을 키운 게 아니냐! 짐이 잘 알기는 무슨!’

황제는 화가 나서 입가가 떨렸다. 침대 안쪽에 놓인 손은 이불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렇게 하고서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

‘계안이는 일을 어떻게 수습을 하려고 이렇게 소란을 피운 건가?’

황제는 머리가 너무 아팠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게 들렸다. 장 부승상과 육부 상서들은 금군에게 잡혀 멀리 끌려가서, 이제 실내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황제는 그걸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죽은 물고기처럼 침대에 쓰러져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쓰러지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계안은 송 원정까지 내보냈다. 그다음 의자에 누워 다리를 꼬더니 느긋하게 말했다.

“황형, 누구 보라고 아직도 꾀병입니까? 사람들 다 갔습니다.”

황제도 더는 누워 있지 못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조계안을 삿대질하며 화를 냈다.

“너 이 녀석…… 말썽도 정도껏 피워야지!”

조계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우가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면, 황형은 아직도 꾀병을 부리고 있어야 했을걸요.”

“짐이 누구 때문에 꾀병을 부린 건데? 어? 너와 장봉이가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짐이 꾀병을 부릴 필요가 있었겠느냐?”

조계안은 그 말을 꺼내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황제는 화를 버럭 냈다. 심지어 제왕의 위엄도 신경 쓰지 않고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삿대질까지 하며 욕했다.

조계안은 비웃었다.

“당당한 제왕이 신하들에게 핍박당해 꾀병을 부리는 꼴이라니요. 우리에게 소란을 피운다고 말할 기운이 있으면, 자기가 얼마나 무능한지부터 돌이켜 보세요.”

“조계안, 다시 한번 말해 봐라!”

황제는 이를 악물고 역정을 냈다.

“황형이 무능한 걸, 말도 못 합니까?”

조계안은 두 다리 위치를 바꾸더니 다시 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제법 소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황제는 화가 나서 눈이 벌게졌다. 이마에서는 실핏줄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는 당장 조계안에게 달려들었다.

“짐이 무능…….”

이를 본 이반반은 바로 앞으로 다가가 황제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당장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폐하. 손 신의가 폐하의 옥체가 허하니 잘 쉬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 맨발로 땅을 밟고 계신답니까. 감기라도 들면 어쩌시려고요.”

“짐처럼 무능한 사람이 죽든 살든 무슨 상관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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