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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33)화 (433/1,004)

433화 내가 사람을 데려가도 되겠느냐?

육일도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영패를 거두었다.

“그렇다면 내가 억지로 쳐들어가도 탓하지 마라!”

그는 문을 지키는 관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대리시의 사람이 그를 못 들어가게 막을수록, 대리시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장군이 누구도 월 낭자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도 절대 월 낭자에게 일이 생기게 둘 수는 없었다.

육일의 맹렬한 공격에 관졸이 물러났다. 육일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지만, 딱 그만큼 밖에 갈 수밖에 없었다.

관졸이 얻어맞자, 그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바로 반격했다. 육일에게 칼을 휘둘렀다.

“대리시에 쳐들어온 놈이 있다! 어서 막아라!”

“궁수!”

뒤쪽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리시의 담장 위는 손에 활을 든 관졸들이 가득했다. 그들 손에 들린 활은 육일을 조준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온 궁수들이냐?”

궁수가 나타나자, 육일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함정이다!’

슉! 슉!

육일의 말에 대답한 것은 날아온 화살이었다.

육일은 더는 말하지 않고 검을 뽑아 화살을 쳐냈다.

* * *

대리시의 공당. 대리시 소경은 상석에 앉아 있었다. 정서는 왼쪽에, 월령안은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대리시 소경은 진작 정 장군을 격리했다. 그는 월령안과 함께 있어 줄 수 없었다.

세 사람 앞에는 모두 다과가 놓여 있었다. 대리시 소경은 월령안을 홀대하지 않았다.

그는 찻잔을 들고 가볍게 들이켰다.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월 가주, 궁수들이 출동했군요. 이런 때 과연 누가 찾아왔겠소?”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셨는데, 화를 당할까 두렵지는 않으신가요?”

월령안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아름다운 두 눈이 대리시 소경을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리시 소경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나는 일을 키우지 않았네. 단지 규정대로 월 가주를 불러들여 질문한 것뿐일세. 처음부터 끝까지 월 가주를 털끝도 건드리지 않았네. 누군가 오해하여 억지로 대리시에 쳐들어왔을 뿐이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일세.”

“육 대장군께서는 성 밖에 계십니다. 그분은 성으로 돌아오실 수 없습니다. 그분의 부하가 잘못을 저질러도, 기껏해야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지키는 셈이지요. 설마 이까짓 일로 육 대장군의 지위를 흔들 수 있을 거로 생각하셨나요?”

월령안은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 그 싸늘한 목소리에 서린 오만함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육 대장군의 사람이 강제로 대리시에 쳐들어왔지만, 이게 육 대장군의 잘못은 아니지요. 하지만 육 대장군이 만약 비무에서 진다면요? 그래서 우리 주나라의 체면을 잃는다면요?”

대리시 소경은 기분이 아주 좋은 듯했다. 그의 눈에는 온통 의기양양한 미소였다.

“당신들…… 정말 미쳤군요!”

월령안의 눈은 분노의 불꽃으로 번쩍였다.

“수많은 장사가 피를 흘려 얻어낸 주나라의 승리예요! 그런데 당신들은 사사로운 은원 때문에 같은 편에게 함정을 팠어요. 비무에서 우리가 지게 하다니. 주나라의 죄인이 되는 게 두렵지도 않나요?”

“우리가 왜 주나라의 죄인이 되겠나? 비록 비무에서 지더라도, 국가 협상 자리에서는 우리가 또 이길 수 있네. 북요는 여전히 주나라에게 굽신거리겠지. 예전에 체결한 조항들도 전혀 변함이 없을 거야. 하지만 그 공로는 더는 육장봉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 되겠지!”

정서가 오만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월령안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여기에는 월 가주의 공로도 있지.”

“당신들처럼 파렴치한 인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월령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를 악물고 정서를 바라보았다.

“그 아둔함에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먼저 대가를 치러야 할 사람은…….”

퍽!

대리시 밖에서 울린 굉음이 정서의 말을 끊었다.

“무슨 일이냐?”

대리시 소경은 기척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불안하게 공당 밖을 바라보았다.

‘설마 무슨 변고가 생긴 건가?’

대리시 소경은 이렇게 생각하자 더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가 나가서 살펴보려 할 때, 정서가 한발 앞섰다.

“내가 나가 보겠소.”

월령안은 심상치 않은 기척을 듣고도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다만 곧게 편 허리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금도 흔들리거나 조급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게 없어!’

정서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문턱을 넘자마자 빨간색 배자(背子 – 관복 위에 걸쳐 입는 소매가 짧고 품이 넉넉한 상의)에 검은 허리띠를 맨 황성사 시위들이 보였다. 그들은 위풍당당하게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가장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은 검은색 바탕에 이무기가 수 놓인 옷을 입고 가면을 쓴 남자였다.

그 남자는 기세가 평범하지 않았다. 좌우에 있는 시위들이 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정서는 그 사람을 보고 멍해졌다. 감히 앞으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속으로 당황해했다.

‘서, 설마 그분은 아니시겠지?’

그가 당황해 멈춘 새에 그 남자는 황성사 시위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가 정서의 맞은편에 섰다. 그는 정서를 흘깃 쳐다보더니 오만함과 경멸을 담아 입을 열었다.

“네놈이 정서냐?”

‘이 사람은 조계안이잖아!’

“네.”

정서는 가슴이 떨려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대인은 조…….”

조계안은 정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손을 들어 옆에 있는 시위에게 명령을 내렸다.

“데려가라.”

두 시위는 앞으로 다가와 정서를 잡아들였다. 정서는 그래도 무장인지라 재빨리 반응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난 조정의 관리다. 너희는 날 건드릴 권리가 없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우리 황성사가 건드리지 못할 사람은 없다.”

명령을 받고 정서를 잡아들인 시위는 차갑게 대꾸했다.

정서는 속으로 불안했지만, 여전히 발버둥 쳤다.

“황성사는 이미 폐지되었다. 네놈들은 가짜 황성사의 명령을 받든 게 아니냐.”

“입을 막아라.”

조계안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긴 다리를 뻗어 정서의 옆을 지나갔다.

정서를 누르고 있던 시위는 정서에게 주먹을 한 방 먹였다. 정서를 쓰러뜨리자 바로 그의 입을 막고 옆으로 끌고 갔다.

남은 시위들은 조계안의 뒤를 바싹 따랐다. 공당에 들어서자, 그들은 양쪽으로 나뉘어 줄을 섰다. 그 모습은 엄숙하면서도 기세가 비범했다.

“너, 너희는…….”

대리시 소경은 이미 일어서 있었다. 그는 원래 나가 보려고 했지만, 얼핏 ‘황성사’라는 세 글자를 듣고 또 머뭇거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황성사는 이름밖에 남지 않은 속 빈 강정인데, 무슨 일을 하겠어?’

조계안의 옆에 서 있던 시위가 영패를 꺼내 대리시 소경 앞으로 내밀었다.

“황성사가 공무를 집행 중이니 소경께서는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성사가 무슨 일을 한다고 우리 대리시까지 와서 조사한단 말이냐?”

대리시 소경은 조계안 일행의 기세에 겁을 먹었다. 하지만 상대가 황성사라는 말을 듣자, 순간 용기가 생겼다.

이 몇 년 동안, 그들 문관이 빈틈없이 억누른 덕분에 황성사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진작 유명무실해져 실권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나는 조씨다! 그런데 대리시에 와서 조사할 수 없다고?”

조계안은 긴 탁자 앞까지 걸어갔다. 손을 들어 탁자 위에 놓인 문진을 들어 올리더니 탁자 위를 거세게 내리쳤다.

대리시 소경은 깜짝 놀라서 몸을 움찔했다. 탁자 모서리를 제대로 잡지 않았더라면 바로 넘어졌을 것이다.

“조, 조, 조왕 전하?”

늘 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는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바로 황제 폐하가 직접 책봉한 조왕의 모습에 딱 들어맞았다.

‘내가 어쩌다 이 염라대왕을 잊고 있었지?’

“이제 내가 사람을 데려가도 되겠느냐?”

조계안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대리시 소경을 바라보며 윗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바로 이 작은 동작 하나만으로 대리시 소경의 다리가 덜덜 떨리게 만드는 건 충분했다.

옆에 서 있던 월령안은 시선을 내리깔아, 눈에 깃든 웃음기를 감췄다.

‘역시, 악당은 악당이 잡는다니까.’

“저, 전하께서 데려가십시오…….”

조왕 전하가 직접 사람을 잡아들인다. 그것도 황성사가 조사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허.”

조계안은 코웃음 치고 손에 든 문진을 내던졌다.

콰당, 소리와 함께 옆에 놓인 병풍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

대리시 소경은 자기가 아끼던 매란죽 삼군자(梅蘭竹三君子) 병풍이 망가지자, 마음이 아파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또 아무 말도 못 했다.

단지 조계안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그가 자신을 난처하게 만들까 봐 겁이 났다.

비록 조왕을 만난 적은 없어도, 조왕의 위세는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이 번개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조왕을 아는 사람은 아주 많았지만, 실제로 만났다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조왕은 앞서 추밀원을 관리했었다. 이분의 성격이 대단히 변덕스럽다며, 추밀원 전체가 입을 모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술잔을 들고 즐거움을 나누다가도 바로 사람의 머리를 날려 보낸다고 했다.

조계안이 갑자기 변덕을 부릴까 두려워, 대리시 소경은 감히 한 글자도 더 말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 몸을 더 웅크리지 못하는 게 못내 한스러웠다.

조계안은 그의 겁먹은 모습을 보자, 더는 말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다. 몸을 돌려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도 진작 일어서 있었다. 조계안이 그녀를 쳐다보자, 바로 예를 올렸다.

그녀도 조왕이 변덕을 부릴까 두려웠다.

“같이 데려가!”

조계안은 변덕쟁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월령안의 앞으로 다가가서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뒤에 서 있던 시위는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빨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정서를 체포할 때처럼 월령안을 잡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예의 바르게 말했다.

“월 낭자, 가시지요.”

월령안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그 시위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 시위는 여전히 몸을 수그리고, 눈꺼풀도 들지 않았다. 이게 더없이 평범한 일이라는 듯했다.

“실례하지요.”

월령안을 사위를 바라보다가 또 그녀의 앞에 서 있는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웃음소리를 내더니, 협조적으로 시위를 따라 밖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조계안 옆을 지날 때였다.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붙들더니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조심해.”

월령안은 조계안에게 당겨져는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다리가 중심을 잡지 못하자, 상체가 조계안의 어깨에 기대졌다.

“대인, 감사합니다.”

그녀는 조계안에게 새하얀 이가 드러나게 웃어 보였다. 어쩐지 이를 악문 듯한 티가 났다.

“주나라의 백성을 보호하는 건 황성사의 의무지.”

조계안은 월령안을 풀어 주고 몸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건들거리는 말투는 전혀 건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입으로는 건실한 말만 내뱉었다.

월령안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내가 널 다시 믿으면 월령안이 아니라 바보천치다!’

“됐다. 가자.”

조계안은 손을 털더니 몸을 돌려 걸어갔다. 황성사를 데리고 소란을 피운 일을 조정 대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화, 황성사?”

조계안이 사람을 데리고 가자, 대리시 소경은 더는 버티지 못했다. 너무 놀라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폐하께서 다시 황성사를 쓰시려는 건가? 왜 우리는 사전에 낌새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지?’

대리시 소경은 벌떡 일어났다. 밖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마차를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마부에게 최대한 빨리 황궁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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