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화 황성사의 칼이 피를 볼 때가 되었군
조계안은 입궁해서 황제에게 보고한 다음, 바로 황성사로 갔다.
막 자리에 앉아서 일처리를 시작하려 할 때였다. 시위가 보고하러 왔다.
“대인, 최 대인의 측근이 뵙고자 합니다. 아주 긴급한 큰일이라고 합니다.”
“긴급한 큰일? 데려오너라.”
조계안은 냉소를 지었다. 기분이 썩 좋지 못한 게 분명했다.
시위는 급히 물러가서 최일의 측근을 데리고 들어왔다.
“대인, 대리시에서 월 낭자를 잡아들였습니다.”
최일의 측근은 초조한 표정이었다. 다급히 예를 올리더니, 서둘러 말했다.
“우리 공자께서는 예부시랑 가문에서 벌어진 사건에 발목이 잡히는 바람에 당분간은 몸을 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인이 대리시에 가서 물었는데, 대리시 사람들한테 쫓겨났습니다. 우리 공자께서는 몸을 뺄 수도 없으시고, 또 월 낭자가 대리시에서 험한 일을 당할까 걱정이 되니, 대인께 도움을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대인께서 대리시에 가셔서 월 낭자를 데리고 나와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대리시에서 월령안을 잡아들였다고? 그들이 무슨 죄목으로 사람을 체포했는지 아느냐?”
조계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몸에서는 음산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 이 시각 육장봉은 성 밖에서 양국 비무를 주관하고 있었다. 그러니 당분간 성안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런데 대리시에서 이런 때에 월령안을 잡아들였다. 고의가 아니라고 해도 믿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최일의 발목까지 잡아 두고 있지. 정말 신경을 썼군. 하지만 그 멍청이들이 변경에서 월령안을 보호할 사람이 육장봉 하나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최일의 측근은 깜짝 놀라 흠칫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정서 장군과 연관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소인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정서 그 개자식이? 내가 찾아가지 않았더니 먼저 찾아왔군그래.”
조계안은 냉소를 지었다. 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여봐라.”
“대인.”
문밖에서 지키고 있던 시위가 공손하게 들어왔다.
조계안은 냉혹한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통보해라. 일각 뒤에 움직인다!”
‘양국 비무가 끝난 다음 그 개자식을 혼내려고 했더니만, 그 개자식이 제 발로 죽으려고 찾아왔구나. 그렇다면 나도 사양할 것 없겠지. 황성사의 칼이 피를 볼 때가 되었군!’
* * *
이어서 시합에 참가한 북요의 전사들은 잇달아 패배하며 처참하게 죽었다. 주나라는 드디어 사 연승을 거두었다. 실로 커다란 승리였다.
잇달아 네 번, 북요의 전사들은 모두 피를 모조리 흘리고 죽었다. 하지만 주나라의 전사들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비무가 끝난 뒤, 비무대에서 홀가분하게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네놈들이…….”
북요인은 갑자기 실력이 일취월장한 주나라 병사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주나라의 관리를 가리키며 욕을 퍼부으려고 했다.
하지만 입을 열려는 순간, 육장봉이 말을 막아 버렸다.
“우리 병사들이 귀국이 말하는 천신의 선택을 받았군!”
이 말 한마디가 북요인의 불평을 전부 잠재웠다. 북요의 관리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나 감히 육장봉에게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북요의 관리는 육장봉과 실랑이할 수 없었지만, 대황자 야율융진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육장봉, 우리는 이 네 번의 시합을 인정할 수 없다. 다시 겨루자.”
야율융진은 건방진 얼굴로 으스대며 말했다.
육장봉은 그를 힐끗 보고 냉소를 지었다.
“대황자, 멍청한 척도 오래 하면 진짜로 멍청이가 되는 법이오. 내가 모두를 대표하여 말해 드리리다. 대황자가 정말로 멍청하든, 아니면 멍청한 척하는 것이든 내 앞에서는 모두 소용없소!”
“너…….”
야율융진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놀랍고 화가 나서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의 아둔함은 우리 주나라와는 상관이 없지. 우리 주나라도 네가 멍청하다고 예우해 주지는 않을 테니.”
육장봉은 여전히 담담하고 여유롭게 말했다.
“지금, 북요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패배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겨룰 것인가.”
“만약…….”
야율융진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예전처럼 계속 횡포를 부리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신호가 벌떡 일어섰다.
“연속 여덟 시합을 치르다 보니 비무대가 전부 피로 물들었소. 비무대의 피도 지울 겸, 반 시진 휴식할 것을 요청하오. 어떻소?”
신호는 왕방울만 한 두 눈으로 육장봉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육장봉이 대답하기 전에 그는 또 눈을 휘며 웃었다. 그리고 이상야릇한 말투로 말했다.
“다섯 번째 시합은 아주 굉장했소.”
이것은 협박이었다. 또는 거래라고 할 수도 있었다.
육장봉은 신호를 힐끗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좋소! 반 시진 뒤에 다시 만나지!”
신호는 자기가 원하던 답을 듣자,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
관람석의 북요 관리들은 멍하게 있다가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
소영화는 야율융진이 제자리에 선 채 육장봉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몰래 한숨을 내쉬고는 야율융진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전하, 그만 가시지요.”
주나라는 이미 예전의 주나라가 아니었다. 그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횡포를 부리면 물러서던 주나라가 아니었다.
그들이 예전으로 돌아가려면 비무에서 반드시 상대방의 위세를 꺾어야 했다. 다른 속임수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육장봉! 두고 보자고!”
야율융진은 자신의 거만함을 거두고 입꼬리를 슬쩍 올려 육장봉에게 냉소를 지었다. 그 표정이 더욱 잔혹해 보였다.
육장봉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덤덤하게 일어나 막사로 들어갔다.
육장봉이 떠나자, 주나라의 관리들도 분분히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각자 자기 막사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육장봉의 막사와 문관들이 휴식하는 막사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곧 육장봉과 떨어져서 걸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은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육장봉의 뒤를 따라갔다.
“조(曹) 대인, 어디 가시나?”
함께 길을 가던 문관들은 누군가 그들 무리를 떠나 무장인 육장봉을 따라가는 것을 보았다. 조 대인을 불러 세우려고 했지만, 조 대인 옆의 한 관리에게 옷이 잡혔다.
“부르지 마시오. 조 대인은 육 장군께 감사 인사를 하려는 것이오.”
“그러게. 여러 번 하려고 했지만, 결국 감사 인사를 할 기회를 찾지 못했잖나. 지금 따라가지 않는다면 인사할 기회가 더 없을 테니까. 이번 휴식 이후에 마지막 비무잖소.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조 대인이 대장군 쪽으로 넘어간 줄 알겠구먼.”
조 대인은 여러 번 일어났지만, 결국 감사 인사를 할 적절한 때를 잡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았던 관리는 참지 못하고 농담을 했다.
육장봉이 야율융진의 칼을 쳐내지 않았더라면, 조 대인은 그 칼에 죽었을 것이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그 장면이 떠올랐다. 하나같이 이 상황을 이해했다.
“조 대인은 대장군께 감사 인사를 제대로 드려야겠구먼. 대장군이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북요 대황자가 하는 꼴을 봐서는 조 대인이 죽었더라도 북요인들은 기껏해야 미안하다 한마디 하고 끝났을 걸세.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신분만 고귀한 얼간이와 따질 수 있겠는가?”
“북요의 그 대황자는 참……. 얼간이 노릇을 제대로 하더구먼. 나는 그자가 멍청한 척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네. 진짜로 멍청이인 줄만 알았지.”
주나라의 관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얼굴에서는 으쓱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북요인이 그들 앞에서 멍청한 척할 필요도 없었다. 진짜로 횡포를 부렸을 것이다.
전승국이 되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 싸움은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육 대장군의 손에 든 권력도 계속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조정에서 그들처럼 공부만 한 선비들이 나설 여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 * *
이때 주나라의 관리들이 으쓱한 만큼, 북요의 관리들은 침울했다.
그들은 막사로 돌아온 뒤, 하나같이 노기를 띤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히 화를 내지도 못했다. 그저 야율융진과 신호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전하, 대원수, 앞으로 우리는 어떡합니까? 주나라 놈들이 분명 새로운 약을 구한 겁니다. 우리 용사들은 저놈들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어쩌긴, 뭘? 주나라가 반칙을 한 거다. 비무 전에 전사들에게 약을 먹였어. 우리 북요는 인정할 수 없다.”
야율융진의 얼굴은 뜨거운 물에 데는 바람에 아직도 붉게 부어 있었다. 그는 약 한 병을 들고 바르면서 욕을 했다.
신호는 야율융진을 힐끗 보고 말했다.
“전하, 전하의 그 수법은 주나라 놈들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육장봉이 진작 전하의 연기를 파악했지만, 계속 까발리지는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멍청한 척하고 횡포를 부리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이건 전부 전하의 행동으로 자기들의 위세를 세우려고 한 겁니다. 주나라 놈들에게 우리를 예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전하를 이용한 겁니다.”
야율융진은 냉소를 지었다.
“내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면, 너희 방법은 통했느냐? 내가 그들과 이치를 따지려면 그 주나라 놈들과 마찬가지로 황공하다느니 황송하다느니 하며 자세를 낮춰야 할 것이다. 주나라 놈들을 예우해 주면, 너희가 지금처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내가 일이 없어서 멍청한 척하고 횡포를 부리는 줄 아느냐! 주나라 놈들은 줄곧 약한 자를 괴롭히고 악한 자를 무서워했다. 우리는 애초에 패자의 신분이다. 강경하게 나오지 않는다면 분명 저놈들 손에 괴롭힘을 당하다 죽었겠지.”
야율융진은 씩씩거리며 손에 든 약병을 바닥에 내쳤다. 그리고 분노에 차 소리를 질렀다.
“주나라 놈들은 줄곧 가식적이었다. 예의를 아는 나라라고 자부하면서 우리를 야만인 취급했지. 우리가 비무 자리에서 강경하게 나갔지만 주나라의 그 관리들은 그때도 은근히 우월감을 뽐냈지. 그자들은 우리 북요인을 사지만 달리고 머리는 없는 멍청이로 안다는 말이다.
지금 그들은 기고만장해져서 우리를 더욱 안중에 두지 않고 있다. 내가 멍청한 척을 하지 않았다면, 그 주나라의 문관들이 어떻게 나를 찾아와서 우리와 협력하겠다고 했겠느냐? 우리가 또 어떻게 앞의 네 번의 시합에서 이길 수 있었겠느냐?”
북요의 관리들은 야율융진의 말을 듣고 침묵을 지켰다.
그들은 반박할 수 없었다.
* * *
이 무렵, 주장 막사 안에서 조(曹) 대인의 말을 들은 육장봉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조 대인은 말을 마치고 한참이나 기다렸지만, 육장봉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육장봉이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여기고 서둘러 장담했다.
“대장군, 제가 말한 모든 말은 전부 사실입니다. 절대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육 대장군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찾아왔다. 하지만 목숨을 구해 준 은혜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로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 앞이라면 북요 대황자처럼 멍청한 척하며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로 넘어갈 수 있었다. 육 대장군이 그와 같이 별 볼 일 없는 인물은 상대하지 않을 거라는 이유를 댈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없는 자리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만약 감사 인사를 하려면 스스로 성의를 보여야 했다.
조 대인은 생각해 보았다. 대장군이라면 금은보화를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유일하게 내놓을 수 있고, 또 육 대장군에게 쓸 만한 것은 딱 하나뿐이었다.
그가 예전에 알아낸, 육 대장군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알려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