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이젠 실컷 놀았어
북요의 관리들은 주나라의 관리들이 그들 앞에서 굽신거리며 아부를 떠는 데 익숙했다. 그래서 그들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주나라의 관리들이 계속 그들을 떠받들 줄 알았다.
그런데 주나라 관리들이 반박하고 나서자, 바로 화가 치밀었다. 말싸움으로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싸움이라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맞고 싶나?”
북요의 관리는 두말하지 않고 앞에 놓인 탁자를 발로 뒤엎으며, 기세등등하게 뛰쳐나왔다. 그리고 두 손을 주나라 관리 앞의 탁자에 짚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금방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듯한 흉악한 기세였다.
“다, 당신들 지금 뭐 하는 짓이요? 지금은 양국 비무 중이오.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할 것이지 이게 무슨 짓이오.”
주나라의 관리는 겁을 먹고 안색이 새하얘졌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억지로 제자리에 앉은 채로 버텼다.
아니, 사실은 도망치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일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하!”
앞으로 뛰쳐나온 몇몇 북요의 관리는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주나라의 관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양국 비무인지 뭔지는 관심이 없어. 오늘 꼭 너희들을 이 주먹으로 때려야겠다면 어쩔 테냐? 너희 주나라…….”
챙!
갑자기 찻잔이 깨지는 맑은소리가 울렸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북요인이 휘둘렀던 주먹은 그대로 멈춰 버렸다. 인제 와서 주먹을 거두기도 그렇고, 거두지 않자니 그건 그것대로 아닌 듯했다.
“왜 계속하지 않나?”
육장봉은 자기 조각을 매만지며 냉소를 지었다.
“육, 육 대장군, 당신네 사람들이 반칙을 했소이다.”
몇몇은 주나라 관리들을 때리기 바로 직전, 그들의 코앞에 주먹을 내밀고 있었다. 그러나 감히 더는 주먹을 내리꽂지 못했다. 그 장면은 아무리 봐도 우스꽝스러웠다.
“우리는 반칙을 한 적이 없다.”
주나라의 관리는 겁을 먹고 오줌을 쌀 뻔했다. 바로 지척에 다가온 주먹을 보자 울음이 나오려 했다.
하마터면 끝장날 뻔했다.
북요인은 역시 야만적이었다. 주나라에서는 예전에 북요인들을 항상 굽신거리며 대했다. 과한 요구를 해도 최대한 만족시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북요인은 전혀 인정을 베풀지 않고, 툭하면 손을 쓰려고만 한다. 앞으로 다시는 이 북요인에게 굽신거리지 않을 것이다.
“반칙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시합이 끝나면 자연히 판결이 나겠지.”
육장봉은 손에 들고 있던 자기 조각을 튕겨 냈다.
“지금은 제자리에 앉아 조용히 시합을 보자고.”
북요의 관리들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 육장봉이 자기 조각 하나로 동료를 죽이던 장면이 떠올랐다. 손을 거두고 터덜터덜 돌아가 제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신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조용히 육장봉을 바라보다가 툭 불거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예전의 그는 육장봉을 거만하게 무시했지만, 지금 그에게는 의심과 경계의 기색이 더욱 드러났다.
이제야 신호는 육장봉이라는 적수를 똑바로 보기 시작했다,
육장봉도 무언가를 느낀 듯, 덤덤한 얼굴로 신호를 힐끗 쳐다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 * *
이때, 비무대 위의 북요 용사는 온몸이 피로 물들었다. 동작이 느려졌다. 휘두르는 주먹도 나른하고 힘이 없었다. 그의 몸집도 전보다 훨씬 작아졌다.
날씬해진 것이 아니라 작아졌다. 그의 몸집은 여전히 건장했다. 다만 전처럼 작은 산을 떠올리게 하는 거구는 아니었다.
“이젠 실컷 놀았어!”
조계안은 상대방의 몸에 수많은 칼자국을 냈다. 이 북요 전사가 피를 많이 흘린 뒤에는 보통사람들과 다른 점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 사람의 살이 너무 두터워, 단도로는 깊게 찌를 수 없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육장봉처럼 목을 긋는 것이었다.
조계안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상대방의 속도가 느려지는 순간, 몸을 기울여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단도를 휘둘러 상대방의 목을 베었다.
“쿨럭, 쿨럭…….”
새빨간 피가 그의 목에서 솟구쳤다. 그는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선에도 의아함이 가득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죽는 것을 몰랐다.
“어떻게 죽을 수가 있지?”
비무대 위를 보던 북요의 관리들은 입술을 달싹였다.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아목달은 천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잖아. 그런데 어떻게 죽을 수 있지? 그것도 왜소한 주나라 놈의 손에? 이건 너무 무서운데!’
“참 슬픈 노릇이군.”
조계안은 손을 거두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쓰러진 상대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대는 아픈 줄도 모르고, 외부의 충격에 대한 반응도 둔했다. 이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야수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이런 놈들을 비무에만 쓰고 전장에 보내지 않더라니.’
전장에서는 이처럼 제한된 전투력을 가진 사람들은 천군만마의 공격을 당해 낼 수 없다.
한편, 북요인들은 천신에게 선택받은 그들의 용사가 주나라 사람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상대방이 꼼수를 부려 반칙을 했다고 우겨댔다.
하지만 반칙을 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주나라 사람이 반칙했다고 증명할 수 없었다.
그 왜소한 주나라 사람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단도로 천신의 선택을 받은, 칼도, 창도 뚫을 수 없는 용사를 죽였다.
북요인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육장봉이 있는 이상, 감히 억지를 부릴 수는 없었다.
북요인은 하는 수 없이 다음 시합에 희망을 걸었다.
“이건 분명히 사고다! 여섯 번째 시합에서 해 보자고. 우리는 주나라와 여섯 번째 시합을 치르겠다.”
“찰기격(紮其格)한테 나가라고 해. 주나라 놈이 우리 북요 용사를 또 이길 순 없겠지!”
육장봉은 의견이 없었다. 여섯 번째 시합이 바로 시작되었다.
* * *
비무대에서 내려온 조계안은 북요 용사의 약점을 남은 선수들에게 제일 먼저 알렸다.
“저자들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피를 흘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단 피를 흘리면 모든 유리함을 잃게 된다.
확실히 저들은 힘이 아주 세다. 하지만 그 힘에는 한계가 있지. 너희가 해야 할 것은 저자들의 힘을 천천히 빼는 것이다. 그다음 상대를 베어서 상처를 내라. 놈들이 계속 피를 흘리게 해야 한다. 맞서 싸우게 되거든 반드시 명심해라. 절대로 주먹에 맞아서는 안 된다. 일단 맞으면 끝장이니까.”
조계안은 말을 마치고 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휙 던져버렸다. 그리고 중간에 놓인 탁자로 다가가 그 위에 놓인 가면을 썼다.
“자네 대단한데. 단도의 칼날이 다 휘어 버렸어. 저 괴물을 몇 번이나 찌른 거야?”
여섯 번째 시합에 참가하는 병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조계안의 옆에 모여들어 온갖 찬사를 퍼부었다.
그러나 조계안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가면을 쓰고 밖으로 걸어 나가 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멍하게 있다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저 자식 너무 건방진 거 아니야?”
“재주가 있는 사람은 당연히 건방지게 굴 자격이 있는 거야. 내가 만약 저놈처럼 강하다면 나도 저렇게 거들먹댈걸.”
“시합 한 번을 이겼을 뿐이잖아. 앞으로 우리도 이길 거야.”
“우리가 이기더라도 남의 힘을 빌려서 이긴 거고, 다른 사람이 알려 준 요령으로 이긴 거지. 저놈은 자기 능력으로 이긴 거잖아.”
“난 저자가 건방지든 말든 상관없어. 기씨의 복수를 해 줬으니 이제 저놈은 내 친구야. 내가 목숨을 걸 만한 친구라고!”
다섯 번째 시합에서는 이겼다. 하지만 앞선 네 번의 시합에서는 전부 패배했다. 그들과 함께 훈련하고 벌을 받던 친구들은 비무대에서 죽었다.
군영 막사 안의 분위기가 굳어졌다. 사람들의 얼굴에도 승리를 거두었다는 희열이 사라지고 무거움만 남았다.
“우리도 기씨를 위해 복수할 거야!”
“아차, 그놈 이름을 물어보는 걸 까먹었네.”
“앞으로 또 기회가 있겠지.”
조계안은 막사 안의 대화를 듣고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런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빛과 정열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오직 어둠과 외로움만이 그의 안식처였다.
여섯 번째 시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조계안은 남지 않았다. 수횡천과 육일이 있으니, 더는 그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성으로 돌아가, 시합 전에 약에 손을 댄 사람을 찾아내야 했다. 이제 남은 두 번의 비무에서는 절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하지 않을 것이다.
조계안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떠났다.
그는 최대한 빨리 성으로 돌아가, 일단 입궁해서 이 일을 보고했다.
조계안이 제대로 말을 끝맺기도 전에, 황제가 화나서 욕을 퍼부었다.
“약에 수작을 부리다니, 미쳤단 말이냐? 양국 비무에 우리 주나라의 체면과 이익이 걸려 있거늘. 어찌 개인의 이득 때문에 조정의 이익을 무시한단 말이냐?”
“북요인이 손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조계안은 황제가 이렇게 화를 낼 줄 몰랐기에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손을 쓸 수 있는 건 우리 편밖에 없다.”
황제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넌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느냐?”
“청주의 그 늙은이들, 영녕후, 장 부승상과 소 승상 일파 관리들…… 그리고 청희 장공주도요.”
자결한 두 선수의 몸에서는 단서를 찾지 못했다. 조계안이 말한 의심스러운 인물들은 모두 육장봉이 무너진다면 가장 큰 이득을 차지할 사람들이었다.
“황형도 아시다시피, 육장봉이 세력을 잡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혔죠. 육장봉이 권력을 잡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너무 많아요. 육장봉을 끌어내릴 수만 있다면 그들은 조정의 이익과 체면을 희생하는 것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아요. 아무튼 비무에서 지면 제일 낭패를 볼 사람은 육장봉이거든요.”
조계안은 홀가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황제는 홀가분할 수 없었다. 그는 얼굴을 굳히고 깊은 사색에 잠겼다.
한참이 지난 뒤, 황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계안아, 짐이 장봉이에게 준 권리가 너무 큰 것이냐? 너무 커서 그자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냐?”
“황형, 그자들이 너무 탐욕스러워 자기의 권력을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게 하는 거라고는 생각 안 하세요? 그리고 이런 일은 육장봉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겪을 일이에요. 새것이 낡은 것을 대체할 때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거든요. 그 늙은이들도 예전에는 이렇게 권력을 쟁탈하지 않았던가요?”
그는 황제에게 육장봉의 권리는 아주 큰 정도가 아니라 지나치게 크다고는 말해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너무 큰 나머지 육장봉이 아니었다면 갖지 말아야 할 야심까지 생길 정도였다.
황형은 누군가를 신뢰하게 되면 완전히 믿어 버렸다. 조금도 경계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믿는 사람이 육장봉이었기에 망정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조계안은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일은 끝까지 알아내라! 어떤 사람이든 절대 봐주지 않겠다.”
“황형이 봐주고 싶다고 해도 제가 못 봐줍니다.”
조계안은 과일 하나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됐습니다. 이걸 알려 드리려고 온 거거든요. 볼 일이 있으니 먼저 갑니다.”
조계안은 말을 마치고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입구까지 걸어가서 발걸음을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손에 들고 있던 과일 씨를 뒤로 던졌다.
탁!
과일 씨가 과일 접시 한복판에 안정적으로 떨어졌다.
황제는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