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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29)화 (429/1,004)

429화 드디어 피를 보는구나

퍽!

비무대 위에 선 북요의 산 같은 전사가 조계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주먹이 곧 조계안의 얼굴을 강타하려는 순간이었다. 그가 갑자기 뒤로 넘어갔다.

쿵, 하는 소리가 울리며 그는 비무대 위로 넘어졌다. 그 바람에 비무대 전체가 흔들렸다.

그러나 조계안은 여전히 제자리에 선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북요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네놈들이 사기를 친 거야!”

콸콸콸…….

야율율진은 여전히 찻주전자를 들고 입에 들이붓는 동작을 유지하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말았다.

찻주전자를 든 손이 비틀리자, 찻물의 그의 얼굴 위로 쏟아져 버렸다.

뜨거운 찻물이 얼굴 위로 쏟아지자, 야율융진의 낯가죽이 아무리 두꺼워도 순간적으로 빨갛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으악……!”

야율융진은 물에 데자 바로 뛰어올랐다. 손에 든 찻주전자를 던지고 얼굴을 움켜쥔 채, 왁왁 소리를 질렀다.

“앗, 뜨거! 뜨거워…….”

얼굴뿐만 아니라 혀도 데었다. 말도 하기 힘든 상태였다.

“전하…….”

‘왜 또 망신을 자초하는 거야?’

소영화는 욕을 할 뻔했지만, 그래도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걱정스럽게 물으며 야율융진의 주위를 맴돌았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물…… 얼음…… 얼음을…….”

야율융진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아픈 것만 느낄 뿐이었다. 입안은 더욱 아팠다.

“어서, 어서……. 찬물을 가져오너라.”

소영화는 얼굴을 움켜쥐고 펄쩍거리는 야율융진의 모습을 보자, 창피해 죽을 것만 같았다.

심지어 맞은편의 주나라 관리들을 쳐다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주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비웃고 있을 게 분명하다는 것쯤은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전하, 어떻습니까?”

소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관리들도 야율제의 이런 모습이 너무 창피했다. 곁에 다가가기도 싫었다.

제 손으로 자기 얼굴에 뜨거운 물은 붓다니. 이보다 더 창피한 노릇이 어디 있겠는가.

주나라의 관리들은 두어 걸음 거리를 사이에 두고 북요인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다섯 번째 시합에서 역전하자, 그들은 경악한 나머지 아직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다. 그런데 야율융진의 이런 멍청한 모습을 보자, 하나같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웃음을 지었다.

아주 통쾌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물을 대령했습니다. 비켜 주십시오.”

야율융진은 자기의 멍청한 행동 때문에 화상을 입었으니, 주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주나라의 영역이니만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주나라의 병사는 일부러 야율융진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실컷 구경한 뒤, 그가 물에 머리를 넣어 식힐 수 있게 바로 물을 떠 왔다.

또 물 말고도, 최대한 빨리 화상용 연고를 가져왔다.

“이건 우리 군에서 자주 쓰는 화상약입니다. 상장군께서 쓸 수 있을지 한번 보시겠습니까?”

“고맙네.”

소영화는 마음속으로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품을 유지하며 감사를 표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단지 이런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약을 가져온 병사는 야율융진을 힐끔 보며 말했다. 그 표정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북요 대황자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자기에게 뜨거운 물을 직접 부은 거로도 모자라, 그토록 오래 붓다니…….’

따지고 보면 이 대황자는 운이 나빴다. 그의 탁자와 의자, 그리고 차는 모두 새로 바꾼 것이었다. 특히 그 차는 금방 끓인 물로 우린 것이었다. 그런 차를 직접 얼굴에 바로 부었으니 말이다.

북요인들은 추위 덕에 워낙 살가죽이 두꺼워 망정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차가 조금만 튀어도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아니면 잠시 자리를 옮겨 정리할까요?”

소영화는 연고를 들고 있었지만, 야율융진에게 바로 발라 주지는 않았다. 이렇게 큰 망신을 당했으니 주나라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지 않도록, 뒤쪽으로 잠시 피해 당분간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야율융진은 소영화의 이런 마음을 몰라 주었다. 그는 물에 얼굴을 잠깐 담갔다가 통증이 사라지자, 물통을 걷어차 버렸다. 그리고 데어서 벌게진 돼지머리 같은 얼굴을 들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럴 것 없다! 나는 저 주나라 놈들이…… 하나하나 비무대에서 처참하게 뒈지는 모습을 똑똑히 봐야겠다!”

“대황자, 먼저 약을 바르시지요.”

소영화는 그런 야율융진을 어쩌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약을 그에게 쥐여 주었다.

“난 필요 없다.”

야율융진은 소영화가 손에 든 약을 쳐서 날려 보냈다. 그리고 자리에 털썩 앉아, 비무대를 살기등등하게 바라보았다.

비무대 위에서 갑자기 넘어졌던 북요의 용사는 바닥에서 기어 일어났다.

조계안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넘어진 상대방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 고상하면서도 거만한 태도로 서 있었을 뿐이다. 상대를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

북요의 용사는 완전히 화가 났다. 그는 조계안에게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바람이 일어났다.

“주나라의 기생오라비, 죽어라!”

북요의 병사는 잇달아 여러 번 주먹을 휘둘렀다. 잇달아 강한 바람이 일어났다.

그러나 여러 번 주먹을 날려 보아도 조계안의 머리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두 다리는 움직이지도 않고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런데도 북요의 용사는 한 방도 때릴 수 없었다.

그는 아무리 애를 써도 조계안을 때리지 못하자 조급해졌다. 주먹을 휘두르는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더욱 어지러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 소용도 없었다. 여전히 조계안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맹렬한 공격을 한차례 펼친 뒤, 숨결이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주먹을 휘두르는 속도도 점차 느려졌다. 주먹에서 일어나는 바람도 점점 약해졌다.

바로 이때, 조계안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계안의 두 다리는 마치 뿌리라도 내린 듯, 여전히 제자리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손에 쥔 단도를 상대방에게 휘둘렀다.

슉슉…….

날카로운 단도가 상대방의 팔을 그었다. 단지 옅은 흔적 한 줄기만 남았다.

조계안이 냉소를 지었다.

“정말 칼과 창으로도 뚫을 수 없군.”

조계안은 잇달아 칼을 휘둘렀다. 여전히 상대방의 살을 베지 못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손에 든 단도를 휘두르며 상대를 찔렀다.

그는 이 세상에 칼도, 창도 뚫을 수 없는 사람이 진짜로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들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 비무에 참가하는 북요인은 칼과 창으로도 그 살을 꿰뚫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힘도 더없이 강하다고 했다.

하지만 조계안은 느낄 수 있었다. 끊임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상대의 숨결이 점차 가빠지고 있었다. 또 힘도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그의 힘이 소모되고 있는 게 뻔했다.

이대로 시간을 끈다면 언젠가는 칼과 창도 통할 것이다. 한 번이 안 된다면 열 번, 열 번이 안 된다면 백 번 도전할 생각이었다.

지금 조계안에게는 시간이 남아돌았다. 이런 조무래기들과는 얼마든지 천천히 놀아 줄 수 있었다.

조계안이 칼을 휘두르는 속도는 아주 빨랐다. 한 번 또 한 번, 게다가 매번 최대한 같은 곳을 그었다.

수십 번을 긋고 나자, 드디어 그 북요 장사의 팔에 피가 보이는 상처가 났다. 상처에서 솟구친 선혈이 비무대에 방울방울 떨어져 혈화를 피워냈다.

‘드디어 피를 보는구나!’

주나라의 병사들은 비무대에 떨어진 선혈을 바라보며 하나같이 눈을 빛냈다.

주나라와 북요는 다섯 시합을 치렀다. 그리고 이 비무에서 처음으로 북요인이 피를 흘리게 했다. 그전까지 비무대에는 주나라 병사들의 피밖에 없었다.

조계안이 거듭 단도를 휘두르자, 북요 장사의 몸에서도 상처가 점점 많아졌다. 선혈이 끊임없이 솟구쳤다.

그리고 상처가 점차 많아짐에 따라, 상대방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신체 능력도 점점 약해짐을 알아차렸다.

원래는 칼을 수십 번 휘둘러야 상대방의 몸에 작은 상처 하나를 낼 수 있었다. 지금은 몇 번만 휘둘러도 상처를 낼 수 있었다.

상대방의 힘은 무궁무진한 게 아니었다. 칼이나 창으로 뚫을 수 있는 게 확실했다. 그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일단 소진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약해질 것이다.

조계안은 상대방의 허점을 발견하자, 더는 북요 용사를 갖고 놀지 않았다. 이제는 상대방의 팔만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발을 움직여 먼저 공격했다. 단도를 휘둘러 상대방의 몸을 한 번, 또 한 번 끊임없이 베었다.

아직도 네 번의 시합이 남았다. 남은 선수들은 그처럼 이렇게 잘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자가 죽기 전, 신체 중에서 가장 약한 부위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손을 쓰기 쉬울 것이다.

조계안의 공격에 따라, 북요 용사의 몸에도 상처가 점점 더 많아졌다. 하지만 그는 마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조계안에게 주먹을 끊임없이 휘둘렀다. 방어도 전혀 하지 않다. 피할 줄은 더 몰랐다.

“아픈 것도 모르다니. 이게 어떻게 사람이야. 괴물이잖아.”

조계안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공격도 더욱 거침없어졌다.

‘이런 괴물을 가만 놔둘 순 없다!’

비무대 위에 있는 북요의 용사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 다친 것도, 자기의 힘이 약해진 것도 몰랐다.

그러나 비무대 아래에 있는 북요인들은 그의 이상함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목달(阿木達)의 힘이 왜 약해지고 있지? 아목달은 천신(天神)께 선택받은 사람이잖아. 어떻게 약해질 수가 있지?”

“피! 아목달이 피를 흘리고 있어. 이건 말도 안 돼! 천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라서 다치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피를 흘리는 거지?”

“반칙이야. 틀림없이 주나라 놈이 속임수를 쓴 거야. 나는 시합 중단을 요구한다!”

“안 들려? 어서 시합을 중단하라고!”

북요인들은 탁자를 내리치고,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맞은편에 앉은 주나라 관리들을 손가락질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단, 고의인지,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북요의 관리중에서 육장봉을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육장봉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도 못했다.

앞서 네 번의 시합에서 연거푸 지자, 주나라의 관리들은 체면이 상할 대로 상했다. 그들은 북요인을 마주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니 그들이 곧 이길 것 같았다. 또 조금 전에 육장봉이 마음껏 위세를 부린 것도 떠올랐다. 이제는 주나라의 관리들도 겁을 먹지 않았다. 하나같이 오만하게 비꼬았다.

“하! 시합을 중단해? 북요인들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나 보군? 왜, 북요인은 이기기만 하고 지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반칙을 했다고? 무슨 반칙을 했는데? 눈이 어디 안 좋은 건가? 당신네 북요 용사의 몸에 난 상처는 우리 선수가 하나하나 그은 거잖소. 우리가 속임수를 썼다고?”

“반칙이라고 하니까 말인데, 우리는 아직 북요가 반칙한 것을 지적하지 않았소. 저 비무대에서 오른 사람들을 보시오. 저들을 사람이라고 할 수나 있나? 저건 괴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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