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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25)화 (425/1,004)

425화 육씨 가문 출입 금지

육비우라고 그러기 싫었던 게 아니었다. 그럴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만약 그가 명월산장에 꿇어앉아 월령안을 협박한 걸 형님이 알게 된다면, 그를 죽일 수도 있었다.

지금 그의 형님이 월령안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사실을 육씨 가문 전체가 알고 있었다. 그는 육씨 가문에서 내쳐졌고 장군부에도 들어갈 수 없었지만, 두 저택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그에게 눈과 귀가 뻔히 달렸는데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예전에 월령안을 안중에 두지 않고 마음껏 모욕했던 것도, 형님이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아내로 취급하지 않은 걸 믿고 벌인 짓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육비우는 죽어라 문턱을 잡고 있었다. 두 손에서는 핏자국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 내쳐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령안이 다시는 그를 만나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월령안에게 용서를 받지 못하면, 형님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반드시 소함연을 맞아들여야 했다.

‘그럼 내 누이동생도 분명…….’

육비우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앞섰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형수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형수님, 제발 부탁드려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네?”

육비우는 소리를 지르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눈물, 콧물을 짜며 말했다.

“형수님, 제발 형님 체면을 봐서라도 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형수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형수님께 무례하게 굴지 않겠어요. 형수님…….”

월령안은 아직 멀리 가지 못했다. 육비우가 어머니라도 잃은 듯이 통곡하는 소리를 듣자, 저도 모르게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떻게 기절시켜서 내던져야 할지도 모르나? 시끄러워 죽겠네.”

“내가 가마.”

수횡천이 한쪽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형부에서 나온 뒤,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월령안의 신변을 보호했다. 암위보다도 더 열심이었다.

“오라버니가 가셔도 소용없을 거예요.”

월령안은 조금 씁쓸하게 말했다.

“한 번 내던져도 다음에 또 그럴 거예요. 육비우는 곱게 자라 버릇이 잘못 든 도련님이거든요. 세상에 빌어도 해결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모르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계속 소란을 피울 거예요. 지금 육비우는 소함연과 혼인하기 싫어하죠. 그럼 저나 육장봉이 물러설 때까지 계속 난리를 칠 거예요.”

수횡천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럼 저놈더러 육장봉을 찾아가라고 해야겠구나. 너와 육장봉은 아무 연관이 없는데, 저놈이 왜 널 찾아와 난리를 친단 말이냐? 육씨 가문 사람들은 애초에 널 쫓아낼 때 네가 육씨 가문 부인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잖아. 인제 와서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형수라고 부르다니. 참 가식적이구나.”

월령안은 자조적인 미소를 띠었다.

“그러게요. 그럼 수고스럽겠지만, 수 오라버니가 육비우를 장군부로 데려다주세요. 그리고…….”

“아가씨, 육일 장군께서 만나 뵙기를 청하십니다. 아주 급한 일이라고 합니다.”

명월산장의 집사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조급한 얼굴을 한 육일이 따르고 있었다.

육일은 월령안이 묻기도 전에 급히 말했다.

“일차전에 참가한 선수 중 두 명이 자결했습니다.”

비무에 참가한 주나라 병사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 월령안의 낯빛이 변했다.

“그리고 우리 약에 누군가 손을 썼습니다. 첫 번째로 출전하는 병사가 약을 복용한 뒤, 경련이 계속 일어나 제대로 걷지도 못했습니다. 만약 역전할 방법이 없다면, 일차전에서 우리가 손도 못 쓰고 지게 될 것입니다.”

“제가 뭘 해야 하죠?”

월령안은 얼굴을 굳히며 먼저 물었다.

약은 그녀가 준 것이었다. 그런데 약에 문제가 생겼다.

만약 범인을 찾지 못한다면, 이 죄는 그녀가 뒤집어쓸 가능성이 아주 컸다.

“대장군께서 약 오 인분을 더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일차전에서 주나라와 북요는 각각 아홉 명씩을 출전시킬 것이다. 앞의 네 차례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육일은 그전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후반부에 남은 다섯 차례의 시합에서 역전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제가 지금 손불사를 찾아가죠.”

월령안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았다. 곁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육일은 시간을 지체할까 봐 월령안의 뒤를 바싹 따라가며 이야기했다.

“약뿐만 아니라, 대장군께서는 수 맹주를 한 번 빌렸으면 하십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저희도 절대 맹주께 시합에 나가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자는 겁니다.”

이번에 손을 쓴 사람은 그들 주나라 사람이 틀림없었다. 자국인이 그들의 대장군이 이기기를 바라지 않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는 대장군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오직 월령안 옆의 사람만 믿었다.

월령안은 바로 승낙하지 않았다. 대신 수횡천을 바라보았다.

“수 오라버니, 어떠세요?”

“그러지.”

조정의 큰일 앞에서는 개인의 은원은 따질 가치가 없었다. 수횡천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

“수 맹주, 감사합니다.”

육일은 수횡천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긍정적인 대답을 듣자, 육일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수 맹주는 강호인이면서도 조정의 이익이 무엇보다 위라는 것을 알잖아. 그런데 왜 조정의 녹봉을 받는 대신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우리 장군을 억압하고, 조정의 이익을 무시할까? 참으로 슬픈 일이군.’

오는 내내 긴장한 탓인지 육일의 안색은 먹처럼 어두웠다. 손불사가 다시 지은 약을 주자, 그제야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손 신의께 감사드립니다.”

“나한테 감사할 것 없어. 난 사람들이 내가 지은 약에 문제가 있다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서 시끄러워지는 게 싫을 뿐이니까.”

손불사는 도도하게 코웃음 쳤다.

“됐어. 약을 받았으면 얼른 꺼지라고. 내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육일은 성 밖의 군영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했기에 오래 머무를 시간도 없었다. 그는 손불사에게 포권하고 돌아서서 떠나갔다.

“잠깐만요, 육비우를 데려가세요!”

월령안이 갑자기 입을 열어 육비우를 불러 세웠다.

“육비우가 소함연과 혼인하기 싫다는데, 저한테 사정해도 소용없어요. 육비우를 데려가세요. 기회를 줄지 말지는 당신네 장군더러 결정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저 월령안은 저자의 형수가 아니고, 당신네 육씨 가문 사람도 아니에요. 앞으로 육씨 가문 집안일로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육씨 가문 출입 금지’라고 명월산장 밖에 현판을 걸어 둘 거예요.”

“네, 월 낭자.”

육일은 입가가 실룩거렸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월령안이 정말 ‘육씨 가문 출입 금지’라는 간판을 건다면, 대장군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됐어요. 빨리 가세요. 양국 비무가 급하잖아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싫은 기색을 팍팍 내면서 육일을 쫓아냈다.

육일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떠날 때, 수횡천뿐만 아니라 육비우도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육비우는 끌려가는 순간까지 버둥거리면서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형수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수횡천이 시끄럽다며 그를 바로 기절시켜 버렸다. 그제야 겨우 조용히 데리고 갈 수 있었다.

육비우의 귀를 찌르는 고함이 사라지자, 명월산장도 예전의 고요함을 되찾았다. 월령안도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조용해졌네.”

그녀는 정원 안에 서서 대군이 주둔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속으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를 기도했다.

이번 비무에 주나라가 앞으로 북요를 어떤 자세로 대할지가 달려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조정에서의 육장봉의 위치가 어떻게 될지도 달려 있었다.

주나라가 이긴다면, 앞으로 다시는 북요에 공물을 바치지 않아도 될 테니, 해마다 대량의 재물과 양식을 보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북요를 대할 때, 주나라도 강경하게 대할 수 있으리라.

주나라가 이긴다면, 육장봉의 대장군 자리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황제가 육장봉을 믿지 않아 그의 권한을 빼앗지 않는 이상, 조정의 그 누구도 육장봉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주나라가 진다면, 주나라와 육장봉의 처지는 모두 예전보다 어려워질 것이다.

주나라와 육장봉은 그 저력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들의 적인 북요와 육장봉이 권력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대신들은 여지없이 주나라와 육장봉을 짓누를 것이다.

그러니 이번 비무에서 주나라가 져서는 안 되었다.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또 마음이 약해졌느냐?”

월령안이 먼 곳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을 때였다. 노인이 바퀴 의자를 밀고 월령안의 곁으로 왔다.

월령안은 노인을 힐끔 바라보고 고개를 저었다.

“마음이 약해진 것은 아니에요. 다만 주나라를 위해 힘을 썼던 장사들이라면 다들 존중을 받을 만한 거죠. 전 육비우의 됨됨이를 좋아하지 않고, 돕지도 않겠지만, 비열하게 깔아뭉개지는 않을 거예요.”

“결국은 마음이 약해진 거지.”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월령안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녀는 노인의 등 뒤로 가서 바퀴 의자를 앞으로 천천히 밀었다. 그러면서 자조적으로 말했다.

“죽고 못 살 큰 원수를 진 것도 아닌데요, 뭐. 전 육장봉도 용서했잖아요. 왜 이용당하고도 모르는 바보와 실랑이하겠어요.”

“넌 왜 육장봉 때문에 그놈을 봐주는 거라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거냐?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건 좀 어리석지 않으냐?”

노인은 바퀴 의자에 기대어 가볍게 웃었다.

“영감님, 제 모든 일을 육장봉과 엮지 말아 주실래요?”

월령안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육장봉 때문인 게 사실이잖아. 네 마음속에 아직 육장봉이 있고, 아직도 육장봉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워?”

노인이 웃으면서 물었다.

월령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노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노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영감님, 전 요즘 영감님이 아무리 봐도 심상치 않아요.”

“어떻게 심상치 않은데?”

노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더욱 홀가분하게 웃었다.

“요즘 기회만 잡았다 하면 저와 육장봉을 엮잖아요. 혹시 그 작자한테서 뭔가 이득이라도 본 건 아니죠?”

월령안은 성이 나서 뾰로통해졌다.

노인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놈이 나한테 무엇을 줄 수 있는데? 내가 돈을 바라겠냐, 벼슬을 바라겠냐.”

‘나는 네가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네가 평생 평안하고 즐겁기만 하면 족해.’

“그래서 심상치 않단 말이에요. 왜 자꾸 저와 육장봉을 엮으시는데요? 월씨 가문의 규칙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청주의 범씨 가문 사람들과 가주 쟁탈전을 벌여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데릴사위를 맞아들이지 시집갈 리가 없잖아요. 자꾸 저와 육장봉을 엮어서 뭐 하시게요? 육장봉이 월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올 수나 있겠어요?”

월령안은 자신이 가주 쟁탈전에서 진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절대 지지 않을 테니까.

“아, 일리가 있구나. 하지만 그건 십 년이나 지난 다음의 일이잖아. 그렇게 먼 미래까지 신경 써서 뭐 할 거냐? 그때그때 즐기면 좀 좋으냐? 육장봉이 몸집도 큰 게, 척 봐도 몸이 좋잖니. 네가 손해 보지는 않을 거야.”

노인은 싱글벙글거리며 권유했다.

“영감님, 지금 저한테 육장봉을 덮치고 책임도 지지 말라고 바람 넣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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