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화 형수는 어머니와 같다
소 집사는 조심스럽게 설득했다. 마음속으로 조마조마했다.
이부 우시랑의 차남이라면 인간이 덜된 놈이었다. 소여방보다도 질이 나빴다.
이런 사람의 중매를 선다면, 사돈이 되기는커녕 원수가 되고 말 것이다. 다른 집 아가씨의 일생을 망치는 일이었다.
만약 평범한 집안의 아가씨라면 시집을 간 것으로 끝날 것이다. 친정이 능력이 없으면, 뒷마당에서 죽어도 소리를 낼 사람이 없으니까.
하지만 소 승상이 말한 사람은 무려 육 대장군의 사촌 누이였다. 육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라도 육 대장군이 절대 모른 척할 리가 없었다.
소 승상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혼인 같은 큰일은 부모의 명령을 따르고 중매의 말을 들어야지. 게다가 지금은 양국 비무를 치르는 중요한 시기다. 육장봉이 무슨 여유가 있어 다른 사람의 혼사에 관여하겠느냐? 양국 비무를 치를 때 두 가문의 혼사를 정하면 그만이다.”
“예, 나리.”
소 집사는 놀라서 몸을 떨면서도 더는 설득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묵묵히 대답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한참 생각해 보았지만, 더는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소 승상과 함께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소 집사는 생각해 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리, 아기씨께서 계속 우시면서 어머니를 찾습니다. 나리, 아니면 아기씨를 한 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아기씨께서…….”
그러나 말을 잇던 소 집사는 실망하고 말았다.
소 승상은 아들을 잃고 난 뒤, 남은 유일한 핏줄을 전혀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차갑게 말했다.
“고향으로 보내라. 더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소 집사는 나리가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일단 함연 아가씨가 시집가면 나리께서도 더는 걱정할 일이 없으시겠지. 앞뒤 가리지 않고 육 대장군, 월령안과 끝까지 싸우실 게 분명해.’
소 집사의 마음속에는 온통 두려움과 불안뿐이었다. 그러나 뭐라 말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소 집사는 문을 나선 뒤, 밖의 눈부신 햇살과 마주했다. 그러나 전혀 따스함을 느낄 수 없었다. 이 커다란 소씨 저택이 음산하고 무섭게만 느껴졌다.
그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소씨 가문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지?’
* * *
영문을 알 수 없는 건 육비우도 마찬가지였다.
당당한 육씨 가문 칠공자이자 육씨 가문 소년 장군인 자신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육비우는 육씨 저택 대문 밖에 무릎을 꿇어앉아, 친위대에 둘러싸여 나오는 육장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후회가 그를 곧 집어삼킬 것 같았다.
예전의 육비우는 화려하고 빛났다. 늘 넷째 형님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서, 사람들의 동경과 흠모의 시선을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장군부의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넷째 형님을 한 번 더 만나는 것조차 사치였다.
“날 만나려고 했느냐?”
육비우가 정신이 팔린 틈에 육장봉은 그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육비우를 내려다보는 차가운 얼굴에는 온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형님…….”
육비우는 울먹거렸다.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불쌍한 눈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무력하고 막막했다.
육장봉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말해라. 무슨 일이냐?”
육장봉의 차가운 말투에 육비우는 깜짝 놀라 몸을 흠칫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육장봉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 저, 저는 혼인하기 싫어요. 전 다시 군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형님, 제발, 절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보장할게요. 앞으로 순순히 말을 잘 들을게요. 다시는 제멋대로 결정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굴지도 않을게요.”
그는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다. 제아무리 자기가 육씨 가문의 칠공자라도, 아무리 군대에서 지위가 있더라도, 육장봉의 신임을 잃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혼인하고 싶다면 하고, 안 하고 싶다면 안 할 수 있는 것이냐? 너는 미래의 아내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렇게 제멋대로 휘두를 수 있는 개라고 생각하는 거냐?”
육장봉은 은색 갑옷을 입고 육비우 앞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 같았다. 그는 신이 내려다보듯 육비우를 차갑게 보았다. 그의 눈에서 따스함이라고는 조금도 볼 수 없었다.
육장봉은 말을 마치고, 육비우를 둘러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늘은 양국 비무의 첫날이었다. 그는 아주 바빴다. 더는 육비우와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
육장봉이 떠나려고 하자, 육비우는 조급해졌다. 생각도 하지 않고 앞으로 몸을 날려 육장봉의 다리를 붙들었다.
“형님, 한 번만 도와주세요. 마지막이에요. 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보장할게요.”
“난 네게 신경 쓸 시간이 없다.”
육장봉은 육비우를 보더니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걷어차 버렸다.
“형님…….”
육비우는 땅에서 두어 번 뒹굴었다. 다시 쫓아가고 싶었지만, 육장봉은 말에 올라타서 고삐를 당기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육비우는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다.
“형님, 제발요! 부탁드려요…….”
육장봉은 고개를 돌려 육비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온몸에 먼지를 가득 묻히고 볼썽사나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순간 육장봉의 머릿속에는 넷째 숙부의 멋지고 명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또 그의 숙부가 죽기 전, 우울하고 절망에 차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묵묵히 눈을 감았다.
‘육비우는 넷째 숙부를 좀 더 닮았지. 육십이 그 멍청한 녀석보다 더 닮았어.’
육장봉은 몰래 한숨을 내쉬고 차갑게 말했다.
“형수는 어머니와 같은 법이다. 네가 찾아가야 할 사람을 찾아가거라.”
육장봉은 마지막 말을 마치고 채찍을 휘두르며 떠나갔다.
* * *
“형수는 어머니와 같다고요?”
육비우의 말에 월령안은 너무 화가 나서 도리어 실소할 뻔했다.
“육 칠공자, 형수가 도대체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드릴까요?”
“형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육비우는 웃통을 벗고 싸리나무 한 묶음을 등에 진 모습으로 월령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의 윗몸에는 온통 빨갛게 부어오른 채찍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빨간 흔적 아래는 얼기설기 얽힌 옅은 흉터가 가득했다. 전부 육장봉과 함께 전쟁을 치렀을 때 생긴 흉터였다.
육장봉 곁의 호위병들 몸에도 모두 이런 흉터가 남아 있었다. 흉터는 특히 육장봉의 몸에 가장 많이 남아 있었다.
월령안도 막상 육비우의 몸에 남은 흉터를 보니 마음이 조금 심란해졌다. 그녀는 시선을 돌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댁이 잘못한 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말끝마다 형수라고 하지 마세요. 전 댁의 형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요. 댁이 소함연을 맞이하든지 말든지, 저와는 상관이 없어요. 혼사를 무를 거면 직접 찾아가서 무르세요. 댁이 혼사를 무르는 걸 막지 않는 게, 내가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선의니까.”
그녀는 주나라를 위해 피를 흘린 모든 군인을 존경했다. 만약 육비우가 비열한 수단으로 일을 매몰차게 처리하지만 않았다면, 그녀에게 다른 길을 찾을 시간을 주기만 했으면, 그녀도 홧김에 육비우와 소함연을 엮지는 않았을 것이다.
월령안은 육비우를 소함연과 엮고 난 뒤로는 그에 대한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시 그에게 복수할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심지어 육비우가 여러 번 찾아와 도발했어도, 단지 그가 돈을 좀 잃게 했을 뿐이다. 그의 명성을 망가뜨리거나, 그의 목숨을 노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만하면 육비우에게 자비를 베풀었다고 여겼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인간은 염치도 없이 소씨 가문과의 혼사를 물려 달라고 했다. 또 ‘형수는 어머니와 같다’는 말로 그녀를 억압하려고 했다.
정말 우습기 짝이 없었다.
‘하나같이 날 잡아먹으려 드는군.’
월령안은 화가 나서 말도 하기 싫었다.
“형수님, 형님이 찾아가라고 하신 거예요. 그러니 형수님은 제 넷째 형수님이 맞아요. 넷째 형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거예요.”
월령안은 육비우의 하나밖에 없는 구명줄이었다. 육비우는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육비우는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던졌다. 무릎을 꿇은 채 월령안의 앞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등 뒤에서 가시가 돋친 길고 가는 싸리나무 한 가지를 꺼내 두 손으로 받들고는 월령안에게 들이밀었다.
“형수님, 절 때리시든, 욕하시든 다 좋아요. 제발 절 내버려 두지 마세요.”
월령안은 육비우의 고육지책에도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바로 비웃으며 일어났다.
“일이 있으면 육씨 가문 부인이고, 일이 없으면 월령안이지. 일곱째 도련님, 저는 한낱 상인 집안 출신 여인이에요. 저는 당신네 고귀한 육씨 가문에 어울리지 않아요. 어서 썩 멀리 꺼져요. 사람을 불러 끌어내게 하지 말고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자마자 육비우를 돌아서 밖으로 걸어갔다.
“형수님!”
육비우는 감히 쫓아가지도 못했다. 두 손으로 싸리나무를 떠받든 자세로 몸을 돌렸다.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한 번, 또 한 번 좌절을 맛보았다. 깨달은 시점은 어머니에게 한 번, 또 한 번 속고 난 뒤였다. 그제야 자신이 정말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저자를 내다 버려라. 말을 듣지 않는다면 때려서 기절시킨 뒤, 멀리 내던져.”
월령안은 입구까지 걸어가더니, 문밖에 있던 하인에게 말했다.
하인은 잠깐 멍해졌지만 바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두 하인은 월령안이 떠나가는 모습을 눈으로 배웅했다. 그다음 방 안으로 들어가서 육비우에게 예의 바르게 말했다.
“육 칠공자, 우리 아가씨의 말씀을 들으셨지요. 저희를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나는…….”
육비우는 눈을 붉히며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하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잘못했다는 말 외에는, 무슨 말을 하든지 다 잘못한 것 같았다.
“육 칠공자?”
하인은 또 떠보듯 불렀다.
상대는 어쨌든 육씨 가문의 공자였다. 그들의 아가씨는 체면을 봐주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감히 손을 쓸 수 없었다.
육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바닥에 죽어라 꿇어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난 안 가. 형수님께서 용서하실 때까지 여기서 꿇어앉아 있겠다.”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기회였다. 절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육 칠공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인들은 하는 수 없이 육비우를 끌어냈다. 하지만 육비우도 필사적이었다. 그들이 겨우 육비우를 입구까지 끌어냈지만, 육비우는 문턱을 꽉 부둥켜안았다. 어찌나 힘이 센지, 그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육비우를 문턱에서 떼어 낼 수 없었다.
“난 안 가! 때려죽여도 안 간다!”
육비우는 문턱을 손으로 잡고 있었다. 손톱에서 피가 흘렀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공자님, 차라리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게 마당 안에서 꿇어앉는 것보다 더 낫지 않겠어요? 공자께서 우리 아가씨께 용서를 구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안다면, 아가씨도 부담스러워 용서해 주실지도 몰라요.”
하인은 몇 번 잡아당겼지만 그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노파심으로 충고할 수밖에 없었다.
육비우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다. 입구에서 무릎을 꿇고 있으면 형수님께서 날 더 싫어하실 거야. 날 더욱 용서해 주시지 않을걸. 난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러 온 거지, 형수님을 협박하러 온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