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화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 줄 것이다
장 오공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반박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확실히 아주 매력적이었다. 만약 장소원의 일만 아니었다면, 그도 월령안을 벗으로 두고 싶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 세상에는 ‘만약’이 없었다.
장 오공자는 가슴이 시큰해져서 조금 괴로웠다. 몰래 숨을 들이쉬며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을 억눌렀다.
그는 침울한 얼굴로 장 부승상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장 오공자가 먼저 물어보자, 장 부승상은 매우 기쁘게 대답했다.
“할아비는 네가 적수를 직시하기를 바란단다. 월령안을 한낱 여인이 아닌, 너와 세력이 비슷한 적수로 보려무나.”
장 부승상은 장 오공자를 가르친 지 오래되었다. 그의 손자가 아직 천진난만함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장 오공자는 아직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착한 마음씨와 여인을 대할 때의 군자다운 풍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단호함이 부족했다.
그가 월령안에게 몇 번 손을 쓴 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월령안을 철저하게 망가뜨리거나, 죽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어질고 손이 물렀다. 이건 벼슬길에 올라 출세하려는 남자에게는 지나치게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약점을 일찍 발견했다.
“저는 월령안을 연약한 여인으로 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장 오공자는 소 승상과 손을 잡았지만, 월령안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그 덕분에 월령안이라는 이 적수를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장 부승상은 장 오공자가 눈길을 피하지 못하도록,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할아비는 네게 사사를 다섯 명이나 주었다. 네 생각에는…… 너 자신을 보호하라고 사사를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장 오공자는 잠시 멍해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장 부승상의 시선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장 부승상은 그가 도망치게 두지 않았다. 장 부승상은 장 오공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장 오공자는 장 부승상의 시선에 조금 찔린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월령안, 월령안은…… 폐하께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에요.”
사실은 그도 할아버지가 갑자기 사사를 다섯 명이나 준 것이 월령안을 암살하라는 뜻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줄곧 모르는 척했다.
“그렇다 한들 어떻단 말이냐? 넌 아직 조정에 들어가 관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폐하를 걱정하느냐? 폐하께서 월령안을 필요하다고 하시니, 죽일 수는 없고 단지 억누르고 망가뜨릴 수는 있다고?”
장 부승상은 냉소를 지었다.
장 오공자는 서둘러 해명했다.
“제가 월령안을 억누르려는 것은, 폐하께 월령안에게는 쓸 만한 능력이 없음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면 폐하께서도 월령안을 포기하시겠지요. 나중에는 제가 월령안을 대적하기 더 쉬워질 테니까요.”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해야 하느냐? 바로 월령안을 죽이면 더 쉽지 않으냐?”
장 부승상이 되물었다.
“자기 목숨 하나 지키지 못하는 여인이 무슨 자격으로 폐하께 중용되겠느냐? 폐하는 월씨 가문의 사람을 쓰려는 것이다. 우리가 월씨 가문의 사람을 한 명 폐하의 곁으로 보내지 않았느냐?”
장 오공자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것저것 재고, 우유부단한 게 바로 너의 가장 큰 결점이란다. 만약 네가 할아비와 같은 나이에 이런저런 것들을 살핀다면, 할아비는 아주 기쁠 것이다.
하지만 네가 지금 몇 살이냐? 넌 소년이다. 그 나이대에는 소년다운 혈기와 충동성이 있어야 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용감함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감히 외칠 수 있는 패기가 있어야 한다.”
“할아버지…….”
장 오공자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장 부승상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월령안은 다르단다. 어디 봐라……. 월령안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 어떤 상황에서도 겁을 먹지 않는단다.
남원대왕 야율제를 상대할 때도 방자하게 청부 살인을 했지. 청희 장공주가 황성사를 움직여 잡아들이려고 했을 때도 황성사 시위를 죽였단다. 또 소씨 가문에서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했을 때도 오히려 소씨 가문을 낱낱이 까발려 버렸지.”
장 부승상은 말을 마치더니 장 오공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섯째야, 너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할 용기가 있느냐?”
“저는…….”
“넌 못 하겠지!”
장 오공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장 부승상은 그의 말을 잘랐다.
“하지만 네가 왜 못 한단 말이냐? 월령안도 할 수 있는 일을 네가 왜 못 하겠느냐? 다섯째야, 뭐가 두려우냐? 네게는 하늘이 무너져도 떠받쳐 줄 이 할아비가 있다. 넌 장씨 가문의 적자야, 네가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느냐?”
장 부승상의 시선에 드리운 실망감을 보고, 장 오공자는 눈시울을 붉혔다.
“할아버지, 제게 아주 실망하셨죠?”
장 부승상은 고개를 젓고 자애롭게 말했다.
“넌 내 손자란다. 할아비가 어떻게 자기 손자에게 실망하겠느냐? 네가 어떻게 하든 할아비는 아주 기쁘단다. 할아비는 네가 걱정을 조금 내려놓고, 과감하게 해 보기를 바랄 뿐이란다.”
장 오공자는 씁쓸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전 벌써 가장 좋은 기회를 놓쳤어요. 육장봉이 수횡천을 풀어 주었으니까요. 수횡천이 월령안 옆에 있는 한, 제가 사사를 아무리 많이 보내도 월령안을 죽일 수는 없잖아요.”
“월령안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 옆에 있는 사람을 망가뜨려서 경고해라.”
장 부승상이 이것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월령안에게 손을 쓸 수 없었다.
장 부승상이 손을 쓴다면, 황제는 그가 청주의 그들을 위해 월령안을 제거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그러나 장 오공자가 손을 쓰면 달랐다. 어린애가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의 누이를 위해 복수한 셈이 된다. 여기에는 잘못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장 오공자는 마음이 모질지 못했다. 장 부승상이 사사까지 내주었지만, 장 오공자는 가장 좋은 기회를 놓쳤다.
“월령안 옆에는 명이 길지 않은 노인이 하나 있었어요. 그 노인의 무공도 아주 뛰어나요. 그리고 줄곧 명월산장에서 나오지 않더라고요. 월령안은 그 노인을 아주 잘 보호하고 있어요. 그 노인에게 손을 쓰는 게 월령안을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장 오공자는 월령안을 진정한 적수로 여기고,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열심히 조사했다.
“심민.”
장 부승상은 진작 대비해 두었다.
월령안이라는 이 숫돌은 너무 단단했다. 장 오공자는 하늘이 준 좋은 기회가 있는데도, 매번 월령안의 손에서 좌절을 맛보았다.
장 오공자는 겉으로는 여전히 투지를 불태웠지만, 장 부승상은 그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눈치챘다. 심지어 월령안을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지금 장 오공자에게는 자신감을 북돋아 줄 승리가 필요했다.
심민은 장 부승상이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이었다.
심민은 월령안이 중점적으로 키우는 심복이었다. 심민을 망가뜨리는 것은 월령안의 한쪽 팔을 자르는 셈이었다. 그녀에게 간접적으로나마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심민에게 손을 쓰면, 장 오공자가 월령안을 직접 상대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월령안을 억누르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꿩 먹고 알 먹기였다.
“심민이요?”
장 오공자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곧 눈을 반짝거렸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다면 마음껏 해 봐라. 하늘이 무너져도 할아비가 지켜 줄 것이다.”
장 오공자는 아까처럼 침울하지 않고 순간 눈을 반짝거렸다.
장 부승상은 이 모습을 보자, 자기가 한 발 물러서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실망감이 남아 있었다. 그의 손자가 여자 상인 하나의 상대조차 되지 못한다는 게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세상의 일들이 모두 마음에 들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장 오공자는 기운이 샘솟았다. 아까까지의 침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할아비는 네게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단다.”
장 부승상은 장 오공자를 완전히 믿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은근히 일깨워 주었다.
“이 기간에는 모든 사람이 양국 비무에 집중할 거다. 시간은 충분하니 천천히 해라. 서두를 필요는 없단다.”
“반드시 만반의 준비를 다 하겠습니다.”
장 오공자는 자신만만 하게 말했다. 그는 장 부승상의 염려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장 부승상도 더 말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 * *
월령안은 직접 나서서 서생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감추지도 않았다. 알 만한 사람들은 그 서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다. 또 이게 그녀의 작품임을 알고 있었다.
소 승상은 소식을 조금 늦게 접했다. 그는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월령안이 서생들을 개인 소금 광산에 팔아버렸고, 평생 나오지 못할 것을 알게 되었다.
소 집사는 보고를 마친 뒤 한참을 기다렸다. 여전히 소 승상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어보았다.
“나리, 월령안은 이 일을 전혀 감추지 않았습니다. 월령안에게 밉보인 서생 넷이 염전 광산에 팔린 일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이 일이 소문나면 결국 우리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자들을 구해 내야 할까요?”
어쨌든 그들은 소씨 가문을 위해 일을 했다. 그런데 소씨 가문을 위해 일을 한 결과가 이렇다고 알려지면, 앞으로 누가 소씨 가문을 위해 일을 하겠는가?
“구해 낸다고? 소금 광산에서 사람을 구해 낸다고? 넌 가능성이 있다고 보느냐?”
소 승상은 태사의(太師椅 – 팔걸이 의자)에 앉아 어둡고 음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명 환한 햇빛을 받고 있었지만, 그가 내뿜는 차가운 기운을 물리치지는 못했다.
아들을 잃은 그는 걸어 다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아직 소금 광산으로 가는 중이니, 우리가 막을 수 있습니다.”
소 집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 승상은 냉소를 지을 뿐, 말이 없었다.
서재 안에는 적막뿐이었다. 소 집사는 은근히 불안감을 느꼈지만,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무릎만 꿇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소 승상이 입을 열었다.
“함연이의 혼수는 준비되었느냐? 여방이의 아이는? 말썽을 피우지는 않았느냐?”
“나리, 아가씨의 혼수는 진작에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혼인 날짜는……. 육씨 가문 사부인의 뜻으로는 날짜를 좀 더 미루고 싶어 하십니다.”
소씨 가문과 육씨 가문은 원래 한 달 뒤 혼례를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혼인 날짜가 가까워지자, 소함연의 추문이 터지고 곧이어 소여방이 갑자기 죽었다.
육씨 가문의 그 쫓겨난 사부인은 바로 기회를 틈타 이득을 보려고 했다. 원하는 걸 주지 않자, 혼인 날짜를 미루겠다고 난리를 쳤다.
육씨 가문의 사부인이 자기 이익을 챙기는 모습은 볼썽사나웠다. 육비우의 태도도 애매해졌다. 무슨 일이든지 아무 의견도 내지 않았다. 마치 주견이 없는 나무토막처럼 굴었다. 소 집사가 여러 번 육씨 가문과 교섭했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육비우에게 이르거라. 이부 우시랑(右侍郞)의 둘째 아들이 올해 스물셋이 되었는데 은과에 참가한다고. 틀림없이 진사가 될 거다. 내가 나서서 누이동생의 중매를 서 줄 수 있다고 하거라.”
소 승상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소 집사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나리, 이부 시랑의 이공자는…….”
소 승상은 음침하게 소 집사를 바라보았다.
“왜? 육씨 가문의 아가씨와 어울리지 않는단 말이냐?”
“나리, 육 대장군 쪽에…… 말씀드리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