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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20)화 (420/1,004)

420화 내 입막음 비용은 아주 비싸다고

정 장군은 자기 아들이 최일과 동년배인 걸 깜빡한 모양이었다. 둘이 의형제를 맺으면, 정 장군의 아들들은 최일을 뭐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게다가 월령안은 정 부인을 숙모라고 부르는데, 둘이 의형제를 맺으면 그녀는 최일을 숙부라고 불러야 했다.

최일을 숙부라고 부를 생각을 하자 월령안은 소름이 끼쳤다. 도저히 그렇게는 못 부를 것 같았다.

“맞아, 네 숙모와 이야기해야지. 네 숙모더러 좋은 날을 고르라고 해야겠구나. 최일 아우, 오늘 의형제를 맺는 건 너무 서두는 것 같구먼. 하지만 자네는 내가 아우로 인정했네. 앞으로 무슨 일이든지 이 형님을 찾으라고. 이 형님이 절대로 모른 척하지 않을 테니까.”

정 장군은 가슴팍을 두드리며 열정적으로 말했다.

최일도 사양하지 않고 공수하며 말했다.

“그럼 정 형님께 감사드립니다.”

“에이, 절대 사양하지 말게. 자, 우리 집사람이 손님이 심심할지도 모르니 나보고 나가 보라던데, 지금 월 낭자가 왔군. 둘이 할 이야기가 있을 테니 방해하지 않겠네. 나 먼저 가네. 최일 아우, 나중에 우리 제대로 한잔하세나.”

정 장군은 일견 거칠어 보이지만 사실 세심한 면이 있었다. 그는 최일에게 옛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을 느꼈다. 그래서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정 부인의 당부를 떠올렸다.

정 장군에게는 정 부인의 말이 성지보다 더 강력했다. 그는 황제의 말은 거역할 수 있어도, 부인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정 형님, 살펴 가세요.”

최일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평소보다 더욱 따뜻했다. 그는 정 장군을 문 입구까지 배웅했다.

이 상황을 보건대 최일은 일부러 정 장군과 교분을 쌓으려 했고, 거기에 넘어간 정 장군이 그를 옛 지기처럼 여기게 된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최일도 정 장군을 속이지 않았다. 적어도 정 장군을 바보 취급을 하며 갖고 논 것은 아니었다.

월령안은 이 상황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정 부인이 있으니, 정 장군이 최일과 의형제를 맺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관계가 애매해지기 때문이다.

월령안은 최일에게 다시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녀는 정 장군과 그의 일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최 대인께서 용건이 없이는 찾아오지 않으셨겠지요. 절 찾아오신 걸 보니 급한 일이 있는 거죠?”

“용건 없이는 보러 오면 안 되나요? 령안의 집에 불이 났는데, 친구로서 보러 오는 게 당연하죠.”

최일도 월령안 앞에서는 군자의 품위를 유지하지 않고 편하게 간식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는 하룻밤을 꼬박 새웠을 뿐만 아니라, 온종일 식사도 하지 못한 참이었다.

아까는 다른 사람이 있었으니 최 공자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월령안 앞에서는 굳이 피곤하게 긴장하고 싶지 않았다.

“식사를 안 하셨나요?”

월령안은 그 모습을 보고 그가 심하게 허기졌다는 걸 눈치챘다.

최일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 입안의 간식을 삼키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제 저녁 식사 말인가요? 아니면 오늘 아침 식사와 점심 말인가요?”

“어엿한 최 공자께서 굶고 다니시다니. 너무 딱하네요. 잘됐어요. 저도 마침 식사를 하지 않았는데, 같이 드실래요?”

월령안은 꼬르륵거리는 자신의 배를 만져 보았다. 최일에게 말하고 싶진 않았지만, 자신도 그보다 별반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육 대장군 덕이지요. 저는 지위가 낮아 아무 힘이 없거든요. 별수 있겠나요.”

최일은 일어나 웃는 얼굴로 농담을 건넸다.

“지위가 낮아 아무 힘도 없는 최 공자라고요. 기억해 뒀어요.”

월령안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평범한 월 낭자, 기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지위가 낮고 힘이 없지만, 내뱉은 말은 인정합니다.”

최일은 환하게 웃었다. 눈에 드리웠던 피곤한 기색도 사라졌다.

월령안은 너무 웃느라 한참이 지나서야 웃음을 그쳤다.

“우리 일단 식사부터 하죠. 계속 이야기하다가는 웃음으로 배가 부를 판이네요.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대인의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전 가리는 음식이 없습니다.”

최일은 몸을 일으켜 월령안과 함께 식당으로 갔다.

명월산장의 하인들은 일 처리가 아주 빨랐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하인이 따끈한 요리를 올렸다.

식사 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떠들지 않는 게 예의다. 그리고 최일과 월령안은 확실히 배가 고팠다. 둘은 말 한마디 없이 고개를 숙이고 식사에 열중했다.

식사를 마치고, 월령안은 하인에게 정자에 다구를 가져다 두라고 했다. 그리고 최일과 함께 정자로 자리를 옮겼다.

최일은 그제야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어제 공원 밖에서 벌어진 일은 당신도 알 겁니다. 그 일은 이미 해결되었어요. 북요의 간첩이 선동한 거예요. 몇몇 주동자를 제외하면, 거인의 신분은 그대로 유지될 겁니다. 단지 십 년 안에는 과거를 볼 수 없을 뿐이죠.”

월령안은 찻잔을 들고 최일에게 권했다.

“최 대인께서는 공정하시고 청렴하시지요. 변경 백성의 복입니다.”

“저에게 고마워하지 마세요. 이 사건은 육 대장군이 혐의를 발견하고, 조 대인이 증거를 찾은 거예요. 저는 단지 그 서생들에게 선고했을 뿐입니다.”

최일은 손을 내저으며 공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생들이 소란을 피운 일은 잠잠해졌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북요 간첩을 제외하고 서생들을 선동해 소란을 피운 서생이 네 명 있습니다. 그들은 거인 자격을 박탈당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그만두지 않고 행화루 밖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요. 낭자에게 자기들을 맺어 달라며 고함을 지르고 있죠.”

“맺어 달라고요? 뭘요?”

월령안은 어리둥절했다.

최일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그들의 약혼녀는 행화루의 기녀예요. 당신이 행화루 배후의 주인인 것을 알고, 행화루 밖에서 무릎을 꿇어앉아 당신에게 약혼녀를 돌려 달라고 빌고 있어요. 그들의 사랑을 이루어 주어, 가족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요.”

“하!”

월령안은 화가 나서 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들 정말 우습네요. 겉으로나 사적으로나 행화루는 저와 상관이 없어요. 저와 상관이 있다 하더라도, 행화루의 기녀들은 모두 돈을 내고 산 거예요.

능력이 있으면 자기들이 돈을 내고 기녀들을 속량해 주면 되잖아요? 그런데 저한테 맺어 달라고요? 뭘 맺어 줘요? 글만 읽다가 바보가 된 거 아녜요? 세상 사람이 모두 자기네 부모도 아닌데, 울고불고 빌면 다 되는 줄 아는 거예요?”

“당신이 그들을 맺어 주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행화루 밖에서 무릎을 꿇겠다고 했어요. 행화루는 번화가에 있어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죠. 그 몇몇 서생은 소란을 피우는 게 아니라, 무릎을 꿇고 있는 것뿐이라서 관아에서도 잡아들이기 난감해요.”

잡아들이자면 잡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일은 월령안과 행화루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 몰랐다. 게다가 그녀가 걱정되어 찾아온 것이었다.

“작작 좀 하라고 하세요. 다 큰 어른이 어린애들 수법으로 누굴 협박해요?”

월령안은 비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에게 무릎을 꿇고 그들을 맺어 달라고 빈다고요? 그래서 될 거였으면, 저도 육장봉한테 미련이 남았다고 한번 빌어볼까요? 그럼 누가 맺어 준대요?”

“육 대장군께서 들으시면 아주 기뻐하시겠네요.”

‘하지만 다른 한 분이 들으시면 속상해하시겠군.’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새까매졌다.

“말실수예요! 잊어버리세요!”

최일은 찻잔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비록 지위가 낮고 아무 힘이 없지만, 거짓말은 안 합니다.”

‘내 입막음 비용은 아주 비싸다고.’

월령안은 최일과 처음 교류하는 게 아니었다. 최일이 단정하게 앉아 엄숙한 얼굴을 한걸 보니, 그가 또 짓궂게 놀리려는 것을 눈치챘다.

월령안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말씀하세요. 제가 어떻게 해야 못 들은 것으로 하실 건지.”

그녀도 자기가 왜 그런 말을 내뱉었는지 알 수 없었다. 말을 마치고 나서야 어마어마하게 부끄럽다고 느꼈다.

“그렇게 선뜻 인정해 버리면 제가 좀 민망한데요.”

최일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영리한 사람과 말을 섞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의도를 드러내기 전에 간파당하면, 성취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으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월령안은 바로 말했다.

“그러면 없던 일…….”

“없던 일로는 못 하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최일은 일부러 엄숙하게 얼굴을 굳혔다. 아주 쩨쩨하고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거절했다.

“그러죠.”

최일이 농담하는 걸 알고, 월령안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최 대인께서는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최 대인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반드시 해 드릴게요. 다만 아량을 베푸셔서 소녀의 목숨만은 살려 주세요. 제발 비밀을 지켜 주세요.”

최일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릴까 봐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엄숙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최 대인은 아직 생각을 못 했으니, 일단은 미뤄 두지요. 나중에 생각이 나면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럼 최 대인께서는 이번 일을 잘 기억해 두세요.”

최일은 웃음을 꾹 참았지만, 월령안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월령의 웃음에 최일도 더는 참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햇살보다 더욱 환하게 웃었다.

한바탕 웃고 난 뒤, 최일은 또 월령안과 본론을 이야기했다.

“당신이 행화루와 연관이 없다고 했으니, 그럼 저도 걱정할 게 없겠군요. 돌아가면 그 서생 넷을 잡아들여 당분간 가둬야겠습니다. 또 소란을 피우지 않게요.”

“가둔다고요? 얼마나 가둘 수 있겠어요? 그들은 법을 어긴 것도 아니잖아요. 대인께서 그들을 가두자마자 누군가 바로 빼낼 수도 있어요.”

소란을 피우는 그 서생들은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게 분명했다. 그런 식으로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관아에서도 그들을 제압할 수가 없었다.

“가능한 한 가두어 두는 거죠. 이런 사람들은 악랄한 짓을 많이 했을 겁니다. 잡아들이면 분명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겠죠.”

일단 관아에 잡혀 들어가면, 정말로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관아에서 결정할 일이다.

“절대 그러지 마세요.”

월령안은 다급히 최일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인간쓰레기들 때문에 손을 더럽힐 필요 없어요. 그럴 가치도 없고요. 능력도 없으면서 벼락출세를 노리는 서생들이라면, 저는 대적할 방법이 아주 많아요.”

최일은 순천부윤이었다. 그가 이 몇몇 서생을 상대하기란 더없이 쉬웠다. 하지만 그가 순천부윤이기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됐다.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최일은 최씨 가문의 대공자였다. 그의 개인적인 명성과 관리로서의 명성 둘 다 대단히 중요했다.

월령안은 최일이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약점이 잡히게 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최일은 묻고 나서야 월령안이 야율제를 대적했을 때의 과격한 수법이 떠올랐다. 그는 넌지시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령안, 살인은 범죄예요. 청부 살인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놈들을 상대하는데 살수를 고용하는 건 너무 아까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전 선을 지킬 거예요. 법을 준수할 거예요.”

월령안은 그 서생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상업계에서는 장사를 가로채기 위해 온갖 역겨운 수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이 서생들의 수단은 명성을 대단하게 여기는 선비나 관리에게나 먹히지, 그녀에게는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자업자득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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