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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19)화 (419/1,004)

419화 아직 사흘의 시간이 있다

육장봉은 손에 든 약 한 병을 황제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을 시험해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만약 소문이라도 새어 나간다면 우리에게 불리합니다.”

황제는 약병을 받아 들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약병을 챙겨 넣었다.

“일이 끝나면 송 원정에게 넘겨줘야겠다. 그더러 검사를 해보라고 해야겠구나.”

그는 육장봉의 뜻을 알아챘다.

이런 약은 그들 손에 움켜쥐고 있어야 했다. 매번 남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손불사가 지은 약이 있으니, 일차전에서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참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황제도 잔뜩 긴장했던 신경이 조금 느슨해졌다. 육장봉이 바친 약을 이반반에게 보관하라고 했다. 그리고 또 다급히 물었다.

“병기의 개조는 진척이 있느냐?”

육장봉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그런 셈입니다.”

육장봉은 공숙무가 개조한 두 병기를 떠올렸다. 한순간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월령안이 참 대담한 발상을 했고, 공숙무도 과감하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육장봉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다. 약간 재촉하듯 물었다.

“그런 셈이라는 게 무슨 소리냐? 천궁각의 사람이 칠연발 쇠뇌를 만들지 못했다는 뜻이냐?”

“칠연발 쇠뇌를 제작하는 공정은 복잡합니다. 하루 사이에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공숙무가 칠연발 쇠뇌를 만들어낸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공부에서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백 대가 넘게 만들어, 비무에 참가하는 장사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수는 없습니다.”

육장봉은 여유롭게 말했다.

황제는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자기가 모든 무거운 짐을 육장봉에게 던져 준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또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위로했다.

“괜찮다, 우리에게는 이차전이 있지 않으냐? 앞의 두 경기에서 이기더라도 똑같다.”

“대신 공숙무는 다른 병기를 개조했습니다.”

육장봉은 고개를 젓고 말했다.

“공숙무는 화살과 장창, 방패, 쇠사슬을 이용해, 방어용 병기와 공격용 병기를 하나씩 만들었습니다. 신이 보았는데, 제법 괜찮았습니다.”

“그걸로 무얼 만들 수 있느냐?”

황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상상이 가지 않는 게 분명했다.

육장봉도 뜸을 들이지 않았다.

“공숙무는 화살로 뼈대를, 장창을 손잡이 삼아 쇠로 된 우산을 제조했습니다. 이 철 우산을 펼쳐서 끊임없이 회전하면, 상대방이 화살 일곱 대를 잇달아 쏘더라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철 우산에 박힌 화살을 모은 뒤, 하나하나 발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사정거리는 멀지 않지만, 상대방을 교란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공격과 방어 기능을 겸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무에 쓸 만합니다.”

“들어 보니 쓸 만하긴 하구나.”

황제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머릿속에 철 우산의 모습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다만 철 우산의 모습을 상상하자, 황제는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철 우산은 아무리 봐도 칠연발 쇠뇌만큼 놀라움을 주지는 않았다. 칠연발 쇠뇌보다 정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쓸 만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신이 시험해 보았는데 쓸 데가 많았습니다. 철 우산은 분해하여 가지고 오게 했습니다. 나중에 은밀한 곳을 찾아 시험해 보실 수 있습니다.”

화살로 골격을 아주 빽빽하게 만들었으니, 빠른 속도로 돌릴 필요도 없었다. 펼치기만 해도 상대방의 칠연발 쇠뇌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월령안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철 우산을 펼치고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면, 거북이가 등껍질을 이고 다니는 것처럼 안전하다.

만약 재료를 바꿔서 더욱 가볍게 만든다면, 여인도 잇달아 쏘아지는 화살을 막을 수 있었다.

월령안의 발상은 참 기상천외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월령안처럼 쇠뇌에 반항할 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야 이런 병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육장봉이었다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어떤 방어 무기도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장봉의 말을 듣자, 황제는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바로 생기를 되찾고 말했다.

“쇠사슬과 방패로는 또 무엇을 만들었느냐?”

“살상력이 아주 큰 병기입니다.”

육장봉은 잠시 멈칫하더니 간단하게 소개했다.

“공숙무는 방패를 둘로 쪼개, 크기가 다른 고리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고리 중간에는 날카로운 칼날 두 개를 숨겼습니다. 위쪽에는 덮개를 씌운 뒤 쇠사슬로 고정했습니다.

칼날은 장치로 조작해서 조일 수도, 펼칠 수도 할 수 있습니다. 쇠사슬을 이용해 이 고리를 날려 보내게 되면 칼날이 펼쳐집니다. 또 고리가 사람의 머리에 씌워졌을 때, 쇠사슬을 잡아당기면 사람의 목숨을 쉽게 빼앗을 수 있습니다.”

황제의 두 눈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육장봉은 그가 살상력이 강한 병기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육장봉은 화제를 돌려 황제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개조한 뒤의 방패는 살상력이 대단히 강력합니다. 공격용 무기로는 적당하지요. 하지만 이걸 쓰려면 조작하는 사람이 뛰어나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시간이 너무 짧아, 우리가 능숙하게 조작할 수 없습니다.”

육장봉 자신도 한두 시진이 걸려서야 겨우 조작법을 익혔다. 다른 사람에게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군대에 있는 장사들은 주로 힘을 이용해 싸웠다. 그런데 이 원반형의 무기는 손재주가 있어야만 익힐 수 있었다.

“이 무기는…….”

황제의 반짝이던 눈이 곧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계안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이 무기는 암살에 더 알맞겠군요. 황형, 제가 시험해 보겠습니다.”

황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짐도 이 무기는 암살에 더 알맞은 것 같구나.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공격하는 데 더 적합해.”

육장봉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암기는 원래 암살에 적합했다. 천궁각이 만든 것은 암기지 병기가 아니었다. 철 우산도 암살에 더욱 알맞았다. 전장에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황제는 육장봉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그가 이 두 무기를 비무에 쓸 수 있다고 하자, 황제는 절대적으로 믿었다. 심지어 시험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친동생이 입을 열고 시험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니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육장봉에게 명령해서, 조계안이 두 무기의 위력을 시험해 보게 할 수밖에 없었다.

육장봉이 이 무기들을 가지고 성에 들어온 것은 바로 황제가 위력을 시험해 보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야 황제도 자신감이 더 붙을 것이다. 싸우기도 전부터 지레 겁부터 먹어, 아랫사람의 사기까지 떨어지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조계안이 시험해 보겠다고 하자, 육장봉도 이견이 없었다. 바로 육이에게 준비하라고 했다.

철 우산은 특별한 점이 없었다. 힘만 있고 조준만 잘한다면, 조금만 연습해도 금방 손에 익었다.

조계안은 잠깐 시험해 보더니 바로 옆으로 던졌다. 별다른 기술도 없고, 단순히 방어 작용만 하는 무기에는 흥미가 없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원반형 무기에서는 손을 놓을 줄 몰랐다. 게다가 조작법이 손에 익자, 이 무기가 사람을 암살하는 데에 아주 쓸 만하다고 여겼다. 그들 암부에게는 딱 알맞은 무기였다.

조계안은 손에 든 고리 무기를 던졌다. 고리는 슉,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더니 달리는 늑대의 목에 씌워졌다. 그다음 조계안이 쇠사슬을 거두어들였다.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고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 늑대도 머리통을 잃고 바로 땅에 쓰러졌다.

늑대의 머리가 순식간에 짓이긴 고깃덩이가 되어 버렸다. 황제는 이 광경을 보자, 놀라서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마터면 구토할 뻔했다.

반면 조계안은 두 눈을 반짝거렸다. 심지어 먼저 요청했다.

“이 무기는 사람마다 하나씩 가지고 비무에 참가하기에는 알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을 죽이는 데 쓰면 안성맞춤입니다.

황형, 삼차전에 제가 나가게 해 주세요. 제가 그들의 군마를 전부 책임지지요.”

“장난치지 마라. 삼차전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양국의 병사뿐이다. 넌 군적(軍籍)에도 오르지 않았는데 끼어들어 뭘 하겠느냐? 북요인이 알아내면 우리가 사기를 친다고 할 거다.”

황제는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

양국 비무는 대단히 위험했다. 특히 삼차전은 더욱 위험했다. 비록 규칙으로야 진 걸 인정하고 투항할 수 있다고 했지만, 양국의 체면이 걸린 비무에서 누가 진 걸 인정하겠는가.

삼차전은 한쪽이 모조리 죽어야 승부가 날 게 뻔했다.

그러나 조계안은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형, 전 황성사의 지휘사입니다. 저도 군적에 올랐습니다.”

“아무나 꽂아 넣을 수 있다면 차라리 수횡천을 꽂아 넣고 싶구나. 수횡천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지지 않을 테니까.”

황제는 조계안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육장봉을 끌고 난각으로 걸어갔다.

“황형…….”

조계안이 쫓아갔지만, 황제는 못 들은 척하고 육장봉에게 말했다.

“장봉아, 비무는 내일 시작이다. 삼차전은 마지막이니, 우리에게는 아직 사흘의 시간이 있다. 짐은 공부에 말해 이틀 동안 최선을 다해 철 우산을 제조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척이 이렇게 크면, 북요인도 알 게 뻔하다.”

육장봉이 냉소를 지었다.

“북요인이 알면 또 어떻습니까? 시간이 너무 짧아 좋은 대책을 생각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주나라입니다. 우리의 세력 범위라는 말입니다. 북요인이 우리 손에 무기가 있는 것을 알더라도, 망가뜨릴 능력이 없을 것입니다.

여기는 주나라였고, 육장봉의 구역이었다. 북요인이라도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월령안은 육장봉을 배웅한 뒤, 처소로 돌아와서 밀린 잠을 잤다. 오후가 되어 하인이 최일, 최 대인이 찾아왔다고 보고할 때야 겨우 눈을 떴다.

“최일이? 그 먼데 있는 사람이 여기까지 왜 찾아왔지?”

월령안은 어리둥절했다. 그제야 육장봉이 앞서 최일이 승진하여 지금은 순천부윤이 되었다고 귀띔한 게 떠올랐다.

“그러면 좋은 일은 아니겠구나.”

월령안은 웃더니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그리고 하녀에게 자기를 치장하게 했다.

일각 후, 월령안은 몸단장을 마쳤다. 배가 꼬르륵거리는 것도 개의치 않고, 하녀와 함께 화청으로 갔다.

화청에 가까워지자, 최일과 정 장군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정 장군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더니 점점 더 흥분하는 게 들렸다.

월령안은 입구에서 잠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정 장군이 흥분해서 최일과 의형제를 맺으려고 하자, 서둘러 인기척을 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정 장군, 최 대인…….”

정 부인이 자기에게 그렇게 살갑게 대해 주는데, 그녀로서는 정 장군이 최일에게 놀아나서 팔려 가는 광경을 눈을 뻔히 뜨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비록 최일이 정말로 정 장군을 팔아넘긴다고 하더라도, 좋은 가격에 팔아야 했다.

“월 낭자, 마침 잘 왔네. 내가 최 형제랑 의형제를 맺으려고 하는데, 증인이 되어 주게.”

정 장군은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며 최일을 끌어당겼다.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의형제를 맺지 못하는 게 한스러워 보였다.

최일은 옆에 서서 말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승낙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았다.

월령안은 정 장군의 성격을 잘 알았다. 그녀는 설득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정 장군, 의형제를 맺는 것은 큰일인데 애들 장난처럼 할 순 없잖아요? 좋은 날부터 잡아야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인께 말씀 한마디 하셔야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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