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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16)화 (416/1,004)

416화 제가 순천부윤 직을 맡겠습니다

최일은 호부에서 삼 년 있었다. 그의 경력과 배경으로는 진작 위로 올라갔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젊었다.

나이는 최일의 약점이었다. 황제가 최일을 승진시키고 싶어 할 때마다, 조정의 대신들은 그가 너무 젊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최일이 더 높이 올라가려면 반드시 내세울 만한 성적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조정 대신들의 입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육부에서는 눈부신 성적을 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각 부의 상서들의 몫이었다.

최일이 나이는 어렸지만, 실력이 약하지는 않았다. 육부에서 경력을 쌓으며 기다리느니 지방에 가서 직무를 담당하는 편이 더 나았다. 최일이 지방에서 성적을 낸다면, 그의 승진을 막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육장봉은 따로 속셈이 있었다. 최일이 순천부에 있다면 누가 월령안을 고발하더라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월령안이 청주로 가면, 육장봉은 다시 최일을 청주 순무(巡撫 – 군정, 민정을 담당한 대신)로 전근시킬 것이다.

“최일이라…….”

황제는 육장봉이 추천한 후보를 듣고, 다시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당장 결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짐이 생각을 해보겠다.”

그러나 육장봉은 황제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폐하, 북요인들은 월령안을 큰 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 같은 일이 또다시 없다고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유 대인이 이렇듯 몇몇 서생의 압박도 견디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압박을 견디겠습니까?”

유칙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도대체 뭘 어쨌다고? 육 대장군이 날 이렇게까지 싫어할 필요가 있나?’

황제는 꿇어앉아 꼼짝도 못 하는 유칙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됐다. 최일에게 잠시 순천부윤의 자리를 대리하라고 해라.”

황제에게는 청주의 그 늙은이들을 대적할 월씨 가문 사람이 필요했다.

월 삼낭은 믿을 수 없으니 마음 편히 쓸 수도 없었다. 쓸 만한 사람은 월령안밖에 없었다.

그들을 해치우기 전까지는, 월령안이 무사해야만 했다.

* * *

육장봉은 황궁에서 나왔지만, 서둘러 성 밖으로 나가는 대신 호부에 잠시 들렀다. 그리고 최일에게 곧 순천부윤으로 승진할 거라는 ‘좋은 소식’을 알렸다.

“순천부윤이라고요?”

최일은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제가 대장군께 추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드려야 합니까?”

그는 육장봉이 찾아온 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최일의 말속에 숨은 비꼼을 알아듣지 못한 듯, 육장봉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고마워 할 것 없네. 최 대인의 능력이 탁월하여 폐하의 눈에 들지 않았더라면, 내가 아무리 추천하더라도 소용이 없었겠지.”

“제가 그 자리를 욕심냈다면, 과연 대장군께서 추천해 주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최일은 손에 든 찻잔을 육장봉의 얼굴에 집어 던질 뻔했다.

‘이 인간도 참, 조정의 그 나이 든 문관들과 맞먹을 정도로 염치가 없군. 뻔뻔한 것은 물론이고, 속마저 시커멓구나.’

육장봉은 해명하지 않았다.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여방은 자결한 거네.”

최일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자결이요?”

“음.”

육장봉은 거의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월령안이 곧 변경을 떠날 걸세. 소 승상이 자기 아들을 위해 복수를 하려면, 손쓸 시간은 지금 이 기간뿐이네. 그러니까 순천부윤은 자네여야만 하네.”

자식을 잃은 아비의 한을 우습게 볼 수는 없다. 소여방의 죽음은 월령안이 직접 손을 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월령안이 간접적으로 연관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소 승상은 조계안을 찾아가 복수할 능력도, 재주도 없었다. 그래서 그 원한을 모두 월령안에게로 돌릴 가능성이 컸다.

월령안이 변경에 있는 이 시간이, 소 승상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다. 특히 육장봉이 양국 비무 때문에 성안을 비우는 기간이, 월령안에게 손을 쓰기에 가장 적합한 때였다.

육장봉은 이를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순천부윤 직을 맡겠습니다.”

최일의 표정도 엄숙해졌다. 그는 육장봉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육장봉이 말하기 전에 먼저 약속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월령안에게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겁니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서 떠나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또 자리에 앉았다.

“소여방이 최근 몇 년간 변경의 어느 집 공자들과 가까이 지냈는지, 그 공자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아보게.”

“소여방을 조사하려고요?”

최일도 의심이 들었다.

육장봉은 시원하게 인정했다.

“맞네. 상세한 정보를 원하네.”

십 년 전, 북요에서 돌아온 뒤로는 대부분을 병영에서 보냈다. 변경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에 주목한 적이 거의 없었다.

다른 일이라면 모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칠 년 전에 벌어진 황제와 연관된 사건은 상황이 특수했다. 그가 직접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다가는 황제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최근 십 년이면 되겠습니까?”

최일이 물었다.

육장봉은 모호하게 대답했다.

“그 정도면 되네.”

“알겠습니다.”

최일은 더는 묻지 않고 적정선에서 멈췄다. 이 일이 월령안과 관련이 있음은 묻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거래가 끝났다. 육장봉은 가기 전에 한마디 덧붙였다.

“유칙은 순염어사를 맡아 당장 강남으로 부임할 걸세. 그리고 대리시 시경의 자리가 비었으니, 최씨 가문에서 뜻이 있다면 한번 도모해 보게.”

최일은 떠나가는 육장봉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참 애매하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신세를 진 건지 모르겠군.”

하지만 친구 사이란 게 원래 이런 법이다. 너무 정확하게 따지면 오히려 재미가 없었다.

육장봉이 호부를 떠나자마자, 이부의 사람이 최일을 찾아왔다. 그는 최일에게 곧 승진할 것이라고 넌지시 암시했다.

조정에는 비밀이 없었다. 이부의 사람이 가자마자 호부의 사람 모두가 알게 되었다.

‘최일이 승진해서 순천부윤의 자리를 맡게 된다.’

호부의 관리들은 이 일을 알고 나자,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든, 겉으로는 너도나도 다가와서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최일이 누구의 줄을 잡았길래 갑자기 승진할 기회가 생겼는지 슬그머니 떠보려고 했다.

최일은 열여섯 살에 장원 급제한 뒤, 본인의 능력과 가문, 황제의 발탁으로 연달아 승진해 현재 종사품(從四品)에 이르렀다.

하지만 승진은 종사품에서 멈췄다. 그는 종사품의 자리에서 무려 사 년이나 머물렀다. 조금도 승진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승진해서, 그것도 실권 부문에 발령이 났다니. 이 소식은 당연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최일이 도대체 누구의 줄을 탔길래, 황제의 심복인 유칙까지 밀어냈을까?’

최일은 축하하는 말을 모조리 받았다. 그리고 그를 떠보는 말은 모조리 무시하고 못 들은 척했다. 승진했다고 거만한 기색을 보이지도 않고,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었을 뿐이다.

호부상서는 안쪽 방에 앉아 창문을 통해 의기양양한 최일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 있자니 표현하기 힘든 기분을 느꼈다.

그들은 결국 최일을 누르지 못했다. 최일이 높이 올라가, 젊은 나이에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이런 기분은 대단히 불유쾌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최일은 출신이 좋을 뿐만 아니라, 능력도 뛰어났고, 황제의 총애도 받았다. 그들은 최일을 잠시 누를 수 있어도 평생 누를 수는 없었다.

최일 같은 사람에게는 기회가 부족한 것뿐이었다. 기회가 오면, 그는 육장봉처럼 하늘로 훨훨 날아갈 것이다. 그들 같은 사람들로서는 영원히 닿지 못할 높이에 오를 것이다.

호부상서는 그렇게 생각하자, 그다지 괴롭지 않아졌다.

그는 자신의 하얀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최일 옆에 있던 사람들이 흩어지자, 호부상서도 걸어 나갔다. 그리고 최일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최일도 이 상사가 평소 자신을 얼마나 억눌렀는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거만하지도 않았고, 아첨하지도 않았다.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호부상서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최일, 이 친구 성미를 보니, 애초에 관리 노릇을 할 그릇으로 타고났군.’

* * *

순천부에는 처리해야 할 사무가 산더미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급한 것은 서생들이 공원에서 정좌한 사건이었다.

육장봉은 간단하면서도 거친 방법으로 모두를 잡아들였다. 이제 더는 소란을 피우는 서생이 없었다. 황제에게도 해명했다.

하지만 그는 천하의 서생과 선비에게는 해명하지 않았다.

육장봉은 서생들이 자기를 어떻게 욕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조정으로서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조정은 선비들에게 잔혹하고 제멋대로 예법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조정에서는 반드시 선비들이 조정에 품은 오해를 풀게 해야만 했다. 그래야 백성들도 조정에 불만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유칙은 이 일을 해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최일은 서둘러 이 일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순천부의 잡다한 사무에 머리를 파묻었다. 최일이 겨우 실마리를 잡았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문 뒤였다.

고개를 들자,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이 보였다. 최일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문지르고 있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지? 내가 멀쩡하고 편한 자리를 놔두고,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거지?’

* * *

한편, 최일 뿐만 아니라 조계안도 분개하고 있었다.

조계안은 암황령을 얻자마자, 암부 세력을 정리하기에도 바빴다. 그 와중에 또 정서와 관리들이 부패한 사건도 조사해야 했다. 그는 야율융진 무리가 떠나기만 하면, 정서 일당을 뿌리 뽑으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동안 조계안은 바빠서 눈을 붙일 시간조차 없었다. 월령안을 찾아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겨우 일이 좀 풀려서 한숨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육장봉이 또 서생을 한가득 던져 주며, 북요의 간첩인지 뭔지를 조사하라고 했다.

육장봉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조계안은 사위에게 보군사와 서생들을 내치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우리는 황성사지, 잡무를 처리하는 데가 아니란 말이다. 별 쓸데없는 일까지 다 던져 주지 말란 말이다!’

이런 일은 대리시나 형부에서 다루면 될 일이었다. 지금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자는 꼴이었다.

그러나 이 서생들의 사건에 최일이 순천부윤으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가 달려 있었다. 또 월령안이 변경에 있는 동안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지도 달려 있었다.

조계안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이 사건을 인수했다. 바로 밤새 이 서생들을 심문했다. 반드시 날이 밝기 전까지 결과를 내야만 했다. 그래야만 최일도 이 서생들에게 답변을 하고, 천하의 선비며 백성들에게 해명할 수 있었다.

이날 밤은 아무도 잠들 수 없었다.

최일은 순천부에서 하룻밤 내내 공문서를 읽었다. 그리고 날이 밝기 전에 순천부의 사무를 전반적으로 파악했다.

조계안은 하룻밤 내내 서생들을 심문했다. 그리고 날이 밝기 전에 간첩과 배후의 주모자를 알아냈다.

육장봉은 월령안과 함께 있었다. 그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하룻밤 내내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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