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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15)화 (415/1,004)

415화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셨습니까

육장봉이 난각으로 들어서자마자, 유칙과 안과가 황제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황제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기세였다.

황제는 얼굴에 노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육장봉의 눈에 비웃음이 스쳤다.

‘이자들은 폐하를 못살게 구는 재주밖에 없구나.’

“폐하, 대장군께서 오셨습니다.”

이반반은 육장봉보다 한걸음 먼저 황제의 옆으로 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는 고개를 들었다. 육장봉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그에게 몰래 눈을 부릅떠 보였다.

그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육장봉이 앞으로 걸어오더니 포권하며 예를 올렸다.

“신, 폐하께 문안드립니다.”

황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육장봉이 또 말했다.

“폐하, 신은 대리시 시경 안과와 순천부윤 유칙이 직책을 다하지 못하고, 직무를 소홀히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이들은 북요인에게 매수되어, 북요 간첩과 내통하고 무고한 백성을 해친 혐의가 있습니다.”

유칙은 너무 화가 나다 못해 실소했다.

“육 대장군, 여기는 어전입니다. 저희도 대장군께서 멋대로 모욕하고 구타하며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는 공원 밖의 서생들이 아닙니다. 대장군께서 마음대로 트집을 잡아 뒤집어씌울 수는 없습니다.”

“대장군, 대장군께서 심보를 좀 곱게 쓰시기를 권합니다. 장군께서 조정 관리를 함부로 능멸하신다면, 소관이 비록 관직은 낮으나 대장군을 탄핵할 수 있습니다.”

대리시 시경 안과는 저도 모르게 비웃었다.

‘육장봉은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무식쟁이가 감히 문관 흉내를 내서, 우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다니. 조정에서 자기편을 들어 줄 사람이 있는지 생각이나 해 봤는지 모르겠군.’

남의 도움이 없이 혼자서 말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육 장군, 공원 밖에서 벌어진 사건을 짐에게 해명해라!”

황제는 암시하듯 육장봉에게 눈을 부릅떴다. 육장봉에게 먼저 코앞의 골칫거리를 해결하라는 의미였다.

공원 밖에서 호위병이 서생을 구타하도록 방관하고, 또 사사로이 병사를 동원해 서생들을 잡아들였다. 이 모든 일에는 증인과 증거가 있었다.

육장봉이 만약 합리적인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황제가 감싸 주고 싶더라도 어느 정도 벌을 받아야만 했다.

“폐하, 신이 입궁하기 전에 황성사에 다녀왔습니다. 황성사에서 공원 밖에서 소란을 피운 서생들을 데려갔습니다. 황성사에서는 북요 간첩이 서생들을 선동하여 소란을 피운 일을 전면 인수하여 조사할 것입니다.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신은 이번 사건에 개입하지도, 따져 묻지도 않을 것입니다.”

육장봉은 살짝 고개를 떨구고, 시선에 섞인 비웃음을 감췄다.

“황성사? 정말로 그 서생 중에…….”

황제는 깜짝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

육장봉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은 북요인과 오랫동안 전쟁을 치렀으니, 북요인의 사소한 수작을 잘 압니다. 분명히 소란을 피우던 거인 중, 우리 주나라에 숨어든 북요 간첩이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대리시 시경 안과가 벌떡 일어나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자들은 전부 우리 주나라의 거인입니다. 어떻게 북요인이 섞여 있겠습니까?”

안과는 옆에 꿇어앉아 있던 유칙이 바닥에 주저앉은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신랄한 말로 기세등등하게 육장봉을 가리켰다.

“육 대장군, 책임을 회피하시려고 다른 사람을 물어뜯다니요. 심지어 악명 높은 황성사로 평범한 서생들을 대적하시다니, 천하의 선비들이 대장군을 어떻게 볼 것 같습니까? 이런 신하를 두었으니, 천하의 선비들이 폐하를 어떻게 볼 것 같습니까?

육 대장군께서는 처사가 음흉하고 악독하시군요.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으십니다. 실로 무섭기 그지없습니다. 소관은 머리에 쓴 관모를 벗는 한이 있더라도 대장군을 탄핵하겠습니다!”

육장봉은 비꼬듯 피식, 웃었다.

“그자들이 자기가 거인이라 했다고, 진짜로 거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그들의 이름과 호적을 조사한 적이 있소? 그들이 어느 해에 과거를 보았는지, 어느 서원을 다녔는지, 스승은 누구인지 알아본 적 있소?”

“그…….”

안과는 그제야 육장봉이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호위병에게 서생들의 개인 정보를 물어보라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육장봉이 호위병에게 주시하라고 했던 거인들은 어떠했던가. 그들은 호위병과 충돌을 일으키는 한이 있어도 개인 정보를 말하지 않았다.

아까 그는 이런 것들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 서생들은 육장봉이 나중에 보복할까 두려워한다고만 여겼다. 그러나 지금 잘 생각해 보니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은과가 열린다는 소식은 진작 퍼졌다. 그 서생들이 공원 입구에서 정좌한 것은 자기의 명성을 떨치기 위해서였으리라.

육장봉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물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으니, 육장봉도 그들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찔리는 구석이 없었다면,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안과는 여기까지 생각한 순간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대번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들은…….”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중에는 북요 간첩이 있었소. 내가 지목하여 호위병에게 물어보라고 한 자가 바로 우리 주나라에 잠입한 북요의 간첩이오.”

“대장군, 우리를 이토록 감쪽같이 속이셨습니까!”

안과는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당장 돌아서더니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울먹이며 사죄했다.

“신이 잘못했습니다! 소란을 피우던 서생 중에 북요 간첩이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다니. 다행히 대장군께서 현명하셔서 제때 간첩을 적발한 덕에 북요인의 음모가 먹히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부디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신이 황성사와 협력하여 이번 사건을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공을 세워 잘못을 만회하겠습니다.”

“신도 잘못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유칙도 머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겉으로는 사죄하는 척하며 실제로는 공로를 빼앗으려 하는 안과의 행동과 비교하면, 좀 더 진실해 보였다.

유칙의 말에 황제도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육장봉은 이를 힐끗 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유칙과 안과 두 대인은 옳고 그름을 묻지도 않았고, 진실과 거짓을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서생들의 말만 듣고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관졸에게 가쇄와 수갑을 들고 가서 사람을 잡아들이라고 명했습니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명성과 관직만 있을 뿐, 백성은 없었습니다. 이들이 이토록 백성을 무시하는 걸 보니, 신은 이들의 덕(德)이 그 위치에 걸맞지 않는다고 여겨집니다. 폐하께 이들을 해직하시고 사건을 조사하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안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장 울부짖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폐하, 신은 북요인과 접촉이 많지 않아, 그 서생 중에 북요 간첩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서생들이 공원 밖에서 소란을 피운 것은 순천부윤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입니다. 신은 단지 유 대인과 함께 서생들을 달랬을 뿐입니다. 구체적인 것은 모두 유 대인의 뜻이었습니다.”

“폐하,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관졸에게 가쇄와 수갑을 가지고 사람을 잡아들이라고 한 사람은 안 대인입니다.”

육장봉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뼛골을 파고드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안 대인이 순천부의 포졸에게 사람을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포졸들은 안 대인이 그 사람의 옷을 벗겨서 성으로 압송하라고 했답니다. 폐하, 이들은 월령안을 핍박해 죽여 공을 세우려 하는 겁니다.”

육장봉의 이 말은 그야말로 작정하고 그의 속을 까발린 셈이었다. 주나라가 북요에게서 거둔 승리에서, 월령안의 공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안 대인이 이때 월령안을 핍박해 죽이려 한다면, 이건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뜻일까?

안 대인은 순간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는 계속해서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 신이 아닙니다. 신은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신은 관졸들에게 월령안을 체포해서 심문하겠다고 명령했을 뿐입니다. 절대 월령안을 핍박해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폐하, 그 서생들이 공원 입구에서…….”

황제는 그의 변명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끌어내라!”

“네, 폐하.”

문밖의 시위는 명령을 듣자, 바로 난각으로 들어와 안 대인을 끌어냈다.

안 대인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그는 처참하게 소리를 질렀다.

“폐하, 신은 정말 월령안을 핍박해 죽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신도 그런 명령을 내린…….”

곧, 안 대인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안 대인이 끌려갔지만, 난각 안의 분위기는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긴장되어 있었다.

유 대인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의 이마는 바닥에 찰싹 붙었다. 그는 조금도 움직일 엄두를 못 냈다. 또 감히 용서를 구하지도 못했다.

‘육 대장군은 진작 대책을 마련해 두었구나.’

안 대인과 손을 잡고, 황제에게 고발하려고 선택한 순간부터 그는 육장봉에게 졌던 것이다.

유칙은 마음속으로 황제의 처분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실망스럽다는 어조로 말했다.

“유칙, 짐은 너무 실망했다.”

유칙의 마음속은 여전히 괴로웠다.

“신이 폐하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유칙의 몸은 더욱더 낮아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섞인 자책이 들어 있었다.

그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다. 그가 오늘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선황과 현 황제가 친히 발탁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황제의 기대를 저버렸다. 결국 조정의 그 문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엿한 순천부윤이 몇몇 서생에게 당하다니. 그 순천부윤 노릇은 하면 할수록 점점 퇴보하는구나.”

황제는 정말로 실망했다. 그래도 유칙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가서 사죄하는 상주서를 올려라.”

유칙은 황제의 말을 듣자,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감사하려고 때, 육장봉이 먼저 입을 열었다.

“폐하, 신은 유 대인이 순천부윤의 관직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 육장봉의 반박에 기분이 언짢아진 게 분명했다.

육장봉은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폐하, 유 대인은 강직하며 아첨할 줄 모르고,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좋은 관리입니다. 하지만 유 대인의 출신이 큰 약점입니다. 변경은 세도가들이 득실대는 곳입니다. 바른 기운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신은 폐하께서 유 대인을 지방으로 발령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발령을 보내? 어디로 보내라는 말이냐?”

황제는 퉁명스럽게 냉소를 지었다.

만약 평범한 관리였다면 이런 순간에는 겁을 먹고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육장봉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강남, 순염어사(巡鹽御史 – 소금과 관련된 감찰을 하는 직무)입니다.”

“순염어사라고?”

황제는 사색에 잠긴 얼굴로 팔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마음이 움직인 게 틀림없었다.

유칙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머리를 더욱 낮게 파묻었다.

‘육 대장군은 지금 나를 돕는 것인가? 아니면 괴롭히는 것인가?’

변경은 세도가가 득실대는 곳이었다. 그처럼 한미한 출신의 관리가 순천부라는 자리에 있기가 고달픈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강남도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곳은 변경보다도 더욱 혼란스러웠다. 강남에 가면 편히 지내지 못할 게 뻔했다.

“순천부윤은? 마땅한 후보가 있느냐?”

황제가 물었다.

“최일이 이 자리를 감당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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