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화 관리가 사람을 팬다!
저벅저벅.
육장봉은 군화를 신고 있었다. 밑창이 공원 밖의 돌바닥에 부딪혀 묵직하고 탁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박자감이 풍부했다. 순간 현장에 있는 모두의 주의력을 집중시켰다.
“대장군?”
육장봉이 나타난 것을 보자, 대리시 시경 안과는 사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양국 비무가 코앞인데, 육장봉은 성 밖 병영에서 마지막 점검과 배치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 와서 뭘 하려는 거지?’
“안 대인.”
육장봉은 그를 침착하게 훑어보았다. 그의 앞으로 다가가 공원 입구에서 정좌하고 농성하는 서생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가 상인 월씨를 엄벌하라고 요청한 자들이냐?”
“그렇소!”
소란을 피우던 서생들은 관리들 앞에서도 기고만장해서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육장봉이 차분하게 묻자, 어쩐지 겁먹은 티가 났다. 그들도 더는 목청을 돋우고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대장군.”
육이가 어느새 홍목으로 만든 의자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대리시 시경 안과를 힘껏 밀치고 육장봉의 뒤에 의자를 갖다 놓았다. 그리고 육장봉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군, 시위보군사(侍衛步軍司)의 사람이 일각 뒤에 도착한답니다.”
육장봉은 보지도 않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서생들에게 물었다.
“고소장은 어디 있느냐? 증거는?”
“우, 우리는…….”
서생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변명하기 전에, 육장봉이 유유히 질문했다.
“고소장도 없고, 증거도 없이 맨입으로 관아에 사람을 처리하라고 하다니. 너희는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느냐? 신이라도 되느냐?”
“대장군, 그 월씨는…….”
앞쪽에 앉은 간이 큰 서생이 변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을 열자마자 육장봉에게 가로막혔다.
“너희는 과거에 합격했느냐?”
“우리는 모두 과거에 합격한 몸이오. 모두 거인(舉人 – 향시에 합격하고, 진사시를 볼 자격이 있는 사람)이오.”
신분 이야기가 나오자, 서생들은 바로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거인은 관직을 가질 수 있는 신분이다. 주나라는 학문을 숭상하고 무예를 홀대했다. 조정은 문관들의 텃밭이었다.
거인들은 자신의 신분 이야기가 나오자 더없이 거만하게 굴었다. 육장봉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옅어졌다.
육장봉의 기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문관의 지시를 받는 일개 무식쟁이일 뿐이다. 그들이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육장봉이 다시 입을 열자, 금방 살아났던 자신감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
“거인이면 사람 말을 알아듣겠지. 내 물음에 대답해라. 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모르지는 않겠지?”
육장봉이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자, 강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 위엄이 하늘을 찔러,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겁을 먹었다.
“우리는…….”
서생들은 변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육이에게 말했다.
“저자들의 이름, 본적, 공부한 서원, 또 어느 해에 과거에 급제했는지까지 전부 기록해라.”
“네, 장군.”
육이는 몸에 지니고 다니던 막대 숯과 백지를 엮어 만든 책자를 꺼냈다. 그리고 서생들 사이로 가서 그들을 이끄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성명, 나이, 어느 해에 과거에 급제했느냐? 본적지는 어디냐? 어느 서원에서 왔느냐? 스승은 누구냐?”
“너, 너 뭘 하려는 거야?”
그도 나름 오랫동안 글공부를 한 사람이었다. 육이가 이렇게 자세하게 묻자, 소란을 피우던 서생들도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묻는 말에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거인 나리께서는 사람 말을 못 알아듣습니까?”
육이가 비꼬았다.
“고발하겠다는 사람들이 자기 신분도 밝히지 못하나? 왜, 떳떳하지 못해서?”
“우리는 거인이다. 너 같은 말단 병사가 감히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하느냐?”
육이에게 질문을 받은 서생은 속으로 당황했다. 그래도 억지로 침착한 척하며 육이에게 고함을 질렀다.
육이는 코웃음을 치며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물어보려는 말만 다시 한번 반복했다.
육이도 이들의 입에서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장군이 이 거인들에게 질문하라고 한 것은 이 상황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보군사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심산이었다.
보군사의 사람들이 도착하면, 이들은 말하기 싫더라도 말을 해야만 할 것이다.
육이는 아주 인내심이 있었다. 이들과 실랑이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 앞에 서서 한 번, 또 한 번 그 질문만 반복했다.
그들도 첫 번째 질문은 무시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들으니 조금 불안해졌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육이의 목소리가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들을 바라보는 눈빛도 점점 더 싸늘해졌다.
그들은 속으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것이냐? 우리는 거인이다. 죄인을 심문하듯 물어볼 권리가 없다.”
“넌 누구냐? 너도 저 벼슬아치처럼 부자 상인과 한통속이냐? 너도 월씨의 돈을 받고, 월씨를 도와 우리처럼 가난한 백성을 괴롭히는 거냐?”
몇몇 우두머리는 주도권이 자기들 손에서 벗어난 걸 알아차렸다. 육장봉을 몰래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대장군은 예전에 돈 때문에 월씨를 맞아들였지. 어쩌면…….”
철썩!
육이는 손에 들고 있던 책과 막대 숯을 던지고, 그 서생의 따귀를 때렸다.
“내가 필기구나 들고 있다고 겁쟁이인 줄 아느냐? 감히 우리 대장군까지 욕을 해!”
그러나 정좌하여 항의하던 서생들은 육이가 뭐라고 하던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단지 육이가 때린 것만 보고, 약삭빠른 자들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을 친다! 사람을 쳤어……. 병사가 사람을 패네.”
“병사가 서생을 팬다!”
그들이 소리만 지른 게 아니었다. 서생들을 이끌고 소란을 피우던 몇몇 우두머리는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사람을 팬다. 도망치자! 얼른 도망쳐. 병사가 사람을 팬다.”
대장군이 그들에게 이름, 본적지, 다니는 서원 등을 물어보는 게 아무래도 좋은 의도는 아닌 듯싶었다. 그들은 육 대장군에게 맞먹을 힘이 없자, 일단 도망치기로 했다.
나중에 육 대장군이 병사를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서 북요와 비무를 치를 때 다시 돌아와서 소란을 피우면 된다.
소란을 피우던 서생은 백 명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구경하던 백성들은 제법 많았다.
몇몇 서생이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자, 현장에는 육이 말고 관졸 몇몇밖에 남지 않았다. 그 관졸들은 유칙이 질서를 유지하려고 데려온 이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현장이 어지러워지자, 사람들을 안정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서생들에게 손을 대기도 전이었다. 서생들은 소리를 높여 울부짖었다.
“관리가 사람을 때린다! 관리가 서생들을 때린다!”
“관리와 상인이 결탁해서 사람을 때린다!”
또 몇몇 서생은 적절한 때에 비명까지 질렀다.
그들이 이렇게 소리를 지르자,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관리가 사람을 때린 줄 알고 따라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공원 밖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국자감의 좨주들은 한숨을 내쉬며 끊임없이 말했다.
“이걸 어쩌지? 이제 어쩐단 말이오!”
“어찌 선비를 때릴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선비에 대한 모욕이오! 정녕 치욕이 따로 없구나.”
이로 보건대, 국자감의 좨주들은 육장봉에게 불만이 있고, 서생들 편인 게 확실했다.
대리시 시경 안과는 육장봉에게 밀려나자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그러나 관리 사회에서는 품급이 한 급만 높아도 그 기세는 사람을 압도한다. 그는 비록 구경(九卿 – 고급 관직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육장봉은 무려 초품 대장군이었다.
안과는 사람들 앞에서 육장봉에게 맞설 수 없어, 옆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소란을 피우던 서생들도 육장봉이 오자마자 기에 눌려 숨도 못 쉬는 것을 보자, 속으로 울적해진 참이었다.
그러나 이때 서생들이 도망치느라 공원 밖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자, 속으로 몰래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럴듯하게 가식을 떠느라, 입으로만 ‘정숙하라’, ‘뛰지 마라’를 두어 번 외쳤다. 공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아까 혼절했던 유칙은 순천부의 관리들에게 들려 옆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공원 밖에서 이토록 큰 소란이 일어나자, 그 소리에 깨어났다.
깨나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관리와 서생, 백성들이 한데 뒤얽힌 광경이었다.
서생들이 ‘관리가 사람을 팬다’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듣자, 유칙은 또다시 혼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해도 정신을 잃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억지로 버텼다.
유칙은 육장봉의 모습을 보자마자, 지금의 소란은 그가 일으켰음을 생각지도 않고 알아챘다.
그는 육장봉의 앞으로 다가갔다. 자세는 공손했지만, 말투는 따지는 듯했다.
“대장군, 이 일을…… 어쩔 겁니까?”
육장봉은 눈을 들고 유칙을 힐끗 흘겨보았다.
“이 일은 내가 접수하겠네. 그만 가도 좋네.”
“대장군, 이건 순천부의 일입니다!”
유칙은 말문이 심하게 막혔다.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시퍼레졌다 했다. 공손한 자세도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육장봉은 소란을 피우는 서생들을 훑어보던 시선을 유칙에게 돌렸다.
“어엿한 조정 관리가 한낱 서생들 무리에 좌지우지되다니. 저자들이 죄가 있다고 말하면 그자에게 죄가 생긴단 말인가? 저자들이 사람을 잡는 것인가, 자네가 잡는 것인가? 저자들이 도대체 뭐라고, 아직 진사도 급제하지 못한 서생들이 아닌가? 저자들이 죽으라면 죽으러 갈 생각인가? 반역을 하라면 반역을 할 건가?”
유칙은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소란을 피우는 서생들에게도 화가 났지만, 그도 역시 선비였다. 반드시 선비의 체면과 이익을 수호해야만 했다.
그는 화가 나서 말했다.
“대장군, 저들은 선비입니다. 저들에게는 시비를 가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그 시비는…….”
“그래서, 저자들이 자네가 뇌물을 받았다고 하면, 자네는 뇌물을 받은 게 되는가?”
육장봉은 유칙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자네 이 순천부윤이라는 벼슬은 어떻게 얻었는지, 참 의심스럽군.”
그 시선에는 일말의 감정도 담기지 않아, 얼음처럼 차갑고도 깊었다.
유칙은 순간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입술을 한참이나 떨고 나서야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기가 말려든 것 같았다.
‘이번에야말로 큰일이 날 것 같구나!’
육장봉은 유칙을 그저 힐끗 보았을 뿐,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태연하게 일어나 서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육이를 보았다.
“날이 저물기 전까지 오늘 소란을 피운 서생들의 상세한 정보를 알아야겠다. 하나도 빼놓지 마라!”
육장봉은 말을 마치고, 육이가 대답하기도 전에 돌아서서 떠나갔다.
소란을 피운 서생들은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났다. 그러나 자기들이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두려움을 억누르고 소리를 질렀다.
“육 대장군, 이게 무슨 뜻이오? 우리를 위협해서, 권력을 이용해 사사로이 복수하려는 거요?”
다그닥다그닥…….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뒤도 돌아보지 않는 육장봉의 뒷모습과 규칙적으로 울리는 말발굽 소리였다.
소란을 피우던 서생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말발굽 소리가 멈췄다. 긴 칼을 들고 금군 복장을 한 병사들이 공원 입구에 신속하게 도착했다.
육이는 사람들이 온 것을 보자, 혼란스러운 무리에서 빠져나와 금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잡아들여라! 이 안에 북요의 간첩이 있는 거로 의심된다. 반항하는 자는 사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