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화 내가 가 보겠소
“그게…….”
집사는 발걸음을 옮겨 물러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육장봉이 그렇게 말하자 물러가기도, 물러가지 않기도 어중간해져서 월령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몰래 육장봉을 흘겨보고 말했다.
“대장군께서 남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아닌 걸세. 무슨 일인지 말하게.”
‘이 남자는 변덕이 여자보다 더 심하잖아. 혼자서 언짢아하다가 또 괜찮다고 하면 어느 장단에 맞추라고.’
육장봉은 지위가 높고 권력이 강했다. 게다가 여우처럼 꾀도 많았다. 이런 능력들로 그녀를 억누르지만 않았다면, 월령안은 대면조차 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순천부의 사람들이 왔습니다. 아가씨를 데려가서 심문하겠답니다.”
집사는 말을 마치고 또 서둘러 덧붙였다.
“사람들이 가쇄(枷鎖 - 죄인의 목에 씌우던 칼과 발목에 채우던 쇠사슬)와 수갑을 가지고 왔습니다. 기세가 흉흉한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집사도 실례를 무릅쓰고 월령안이 육장봉을 접대하고 있을 때 불쑥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천부에서 가쇄와 수갑을 가지고 날 잡으러 왔다고?”
월령안은 자신을 가리키며 화가 나 실소했다.
‘유 대인이 지금 한가해서 환장한 건가?’
집사가 순천부의 사람이 가쇄와 수갑을 가지고 월령안을 잡으러 왔다는 말을 하자, 월령안뿐만 아니라 육장봉도 꽤 놀랐다.
유칙은 강직하여 아첨할 줄 모르지만, 아둔하지도 않았다. 그는 남에게 밉보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쉽사리 밉보이는 법도 없었다.
유칙에게는 특유의 원만함과 노련함이 있었다. 조정에서의 인맥이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아주 나쁜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그가 누군가와 철천지원수가 되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관졸에게 가쇄와 수갑까지 들려 월령안을 잡아 오라고 한 것은 유칙답지 않았다.
‘이 사건이 유칙의 손에서 벗어났다면 모를까.’
육장봉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조금 전까지 눈에 넘치던 따뜻함이 바로 사라지고, 차갑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변했다.
“내가 함께 가지.”
“아니…….”
월령안은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육장봉이 먼저 발을 옮겨 화청으로 가고 있었다.
“뭐하지? 어서 따라오지 않고.”
“육장봉은 정말 자기가 남이 아닌 줄 아나 보네.”
월령안은 몰래 중얼거리고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
육장봉이 관여하고 싶으면 그냥 그렇게 하도록 놔두면 된다. 그녀는 지금 양국 비무에 관련된 중임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육장봉도 그녀가 순천부에 끌려가게 놔두지 않는 것이리라.
* * *
“지금 시간을 끄는 것이냐?”
“소용없어! 그 월씨 계집은 상부에서 원하시는 사람이다. 내 오늘 기필코 그 계집을 끌고 갈 테다!”
“어서 월씨를 부르지 않고 뭘 하느냐! 이 어르신은 공밥 먹는 사람이 아니다. 감히 죄인을 감싼다면 황실 별원이든, 황실 별장이든 전부 부숴버리겠다.”
“이 계집은 왜 아직도 안 와? 당장 오지 않으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 벌거벗겨서 끌고 갈 줄 알아!”
육장봉이 화청으로 다가가자, 안에 있는 관졸들이 물건을 부수며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같이 기고만장했고, 입에서는 욕설이 그칠 줄 몰랐다.
관졸들이 끊임없이 내뱉는 욕설을 듣자, 육장봉은 머릿속 이성의 끈이 뚝 끊겼다.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화청에 들어섰다. 화청의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 월령안을 벌거벗겨 끌고 가겠다고 했던 그 관졸을 순식간에 걷어차 버렸다.
“으악……!”
그 관졸은 높이 붕 떴다가 한쪽 벽에 부딪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혼절하고 말았다.
그의 몸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바닥에 엎어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것들이 감히 공격을 해? 지금 반항하는 거냐? 이놈들이…….”
다른 관졸들은 이 장면을 보자,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났다. 당장 살기등등하게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공격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자, 하나같이 깜짝 놀라서 칼도 제대로 쥐지 못했다. 칼이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대, 대…… 대장군!”
“반항이라고? 나보고 한 말이냐?”
육장봉은 관졸의 곁을 지나쳐서, 옷자락을 걷고 상석에 앉았다.
월령안은 육장봉보다 한걸음 늦게 화청에 도착했다. 관졸들이 하도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는 바람에, 육장봉보다 뒤쳐져 있었던 그녀에게도 다 들리고 말았다.
그녀는 화청에 들어서자, 아직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관졸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는 약간 차가운 기색을 풍겼을 뿐,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대신 침착하게 앞으로 나가 왼쪽에 앉았다. 전혀 죄인이라는 자각이 없어 보였다.
이제 그 관졸들은 기고만장하던 기세가 싹 사라졌다. 그들은 덜덜 떨면서, 자기 칼을 주워 칼집에 꽂았다. 관졸 둘은 지나치게 겁을 먹어서 한참 몸을 덜덜 떨고 나서야 칼날을 칼집에 제대로 넣을 수 있었다.
그들은 칼을 넣은 뒤, 굽실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장군, 저, 저희는…… 명, 명령을 받고 죄인 월씨를 잡아들이러 왔습니다.”
“누구의 명령이냐?”
육장봉의 표정은 차가웠다. 온몸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굳이 눈으로 볼 것도 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육 대장군의 기분이 대단히 언짢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월령안은 한쪽에 굳은 얼굴을 하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줄곧 잘 웃던 그녀였지만, 지금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차가운 살기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도 지금 아주 불쾌한 게 분명했다.
육장봉의 위세에 관졸은 덜덜 떨며 말했다.
“대, 대리시 시경(寺卿 – 대리시의 장관) 안(顔) 대인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언제부터 순천부가 대리시의 개가 되었느냐? 유칙은 허수아비냐?”
육장봉은 조금도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순천부의 관졸 앞에서 그들의 상사인 유칙의 이름에 경칭조차 붙이지 않고 부름으로써 그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관졸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하나같이 덜덜 떨며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바라보았다. 바닥에 기어들어 갈 만한 틈이 없는 게 한스러울 정도였다.
탕!
육장봉은 그들을 순순히 놔주지 않았다. 바로 거세게 탁자를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말해라. 변경에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대리시 시경은 장 부승상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늘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평소의 일 처리도 공평한 편이라, 절대 시비에 휘말리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가 직접 입을 열어 월령안을 잡아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그만한 구실이 있다는 뜻이었다.
육장봉은 화가 나기는 했어도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관졸은 겁을 먹고 그 자리에 털썩 꿇어앉았다. 그리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대, 대장군…….”
“말해라.”
육장봉의 목소리는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아 아주 가볍게 들렸다. 하지만 바닥에 꿇어앉은 관졸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상부의 명령대로라면 월령안이 그 어떤 상황도 알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들은 몸을 떨면서 입을 열었다.
“대, 대장군……. 소씨 가문 대공자의 부인이 된 한(韓)씨가 대리시에 가서…… 월, 월 낭자가 자기 남편을 죽였다고 고발했습니다. 또 월 낭자가 자기를 납치하고 매수하여, 소 대공자를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대리시에서는 이 사건을 접수했습니다.”
“고작 그것 때문이냐?”
육장봉은 미간을 찌푸리고 음산한 말투로 물었다.
소여방의 아내가 월령안을 고발한다. 이건 절대 소 승상의 수법이 아니었다.
소여방의 죽음은 소씨 가문에 유리했다. 이 사건을 조사했다가 뭐라도 밝혀졌다가는, 쥐는커녕 쌀독을 깨먹을 판이었다.
소여방의 아내는 이용당한 것이 분명했다. 소 승상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당장 고발을 철회하게 했을 것이다. 절대 대리시가 사건을 조사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으리라.
또한, 대리시 시경이 이 사건을 구실로 월령안을 잡아들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끌고 오는 데 가쇄나 수갑까지 동원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었다.
“그, 그리고…….”
관졸은 식은땀이 줄줄 비 오듯 했다. 하나만 말하든, 전부 다 말하든 어차피 말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하기로 했다.
“서생들이 공원(貢院 – 과거 시험을 치르는 장소) 입구에 정좌하고 시위하고 있습니다. 월 낭자가 일말의 양심도 없이, 돈 때문에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그들의 약혼녀를 팔아 버렸답니다. 그들은 관아에서 나서서 악덕 상인 월씨를 처벌하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만약 관아에서 처리하지 않으면, 공원 밖에서 떠나지 않겠답니다.”
“인제 보니 서생들이 저지른 짓이었군.”
육장봉은 가볍게 코웃음 치더니 차갑게 웃었다.
“서생들이 항의한다고요?”
월령안도 웃었다. 육장봉의 냉소와는 달리, 그녀의 미소는 무서울 정도로 찬란했다.
그 관졸들은 더욱 심하게 덜덜 떨었다. 속으로는 몰래 후회가 되었다.
명월산장에 가서 월령안을 체포한다. 처음에는 쉬운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육 대장군이라는 전신(战神)을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거야 정말…….’
관졸들은 바닥에 쓰러져 피를 잔뜩 흘린 동료를 힐끔 바라보았다. 더욱 무섭고 불안해졌다.
‘과연 살아서 명월산장을 나갈 수 있을까.’
관졸들은 덜덜 떨면서 몸을 움츠렸다. 얼굴은 절망감으로 가득했다.
이제는 월 낭자에게 가쇄와 수갑을 채워 끌고 갈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했다. 어떻게 해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만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레 겁을 먹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육장봉과 월령안은 관졸들에게 화풀이할 정도로 옹졸하지는 않았다.
앞서 육장봉이 들어와 그 관졸을 발로 차 버린 것은 그의 입이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했다.
남은 관졸들도 방자하게 굴기는 했다. 그러나 육장봉이든, 월령안이든 모두 자기 신분을 낮추면서까지 직접 그들을 혼낼 리가 없었다.
월령안은 이 관졸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심지어 성안에서 벌어졌다는 일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과감하게 일어났다.
“대리시 시경께서 부르신다니, 제가 다녀오도록 하죠.”
소 승상은 지금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월령안은 소여방의 아내가 그녀를 고발한 일이나, 서생들이 소란을 피우는 일이나, 모두 소 승상이 지시한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북요와 주나라가 협상하고 비무를 치르는 기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아마 소 승상은 그녀보다 더욱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는가.
“워, 월 낭자……. 저, 저희와 함께 가 주신다고요?”
바닥에 꿇어앉은 관졸은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는 멍하니 월령안을 올려다보았다.
‘육 대장군이 감싸 주고 있는데, 월씨가 우리와 함께 가다니.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왜요? 절 잡으러 오셨잖아요?”
월령안을 일어서서 관리가 대충 탁자 위에 던져 놓은 가쇄와 수갑을 훑어보았다.
가쇄와 수갑은 붉다 못해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위에는 채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남아,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대리시 시경이 직접 잡아 오라고 지시했다. 모든 과정은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무슨 수로 거절하겠는가.
육장봉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표정은 더욱 싸늘하고 어두워졌다. 그는 월령안을 힐끔 보고 일어났다. 그리고 긴 다리를 성큼 내디뎌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당신은 갈 필요가 없소. 내가 가 보겠소.”
그가 있는데 월령안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월령안은 무엇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여인은 여인이었다. 일단 대리시에 들어가면 남들이 그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녀를 봐준다고 하더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제대로 반항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