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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06)화 (406/1,004)

406화 우리에게는 승산이 전혀 없구나

“이…….”

황제는 육장봉을 가리키며 화가 나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게 어디 신하로서의 태도란 말인가. 너무 오만방자했다.

육장봉은 황제인 그를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자신이 오냐오냐해서 버릇을 잘못 들인 탓이었다.

황제로서는 참는 수밖에 없었다.

“네가……. 됐다. 북요 사절단이 변경에 도착한 뒤로는 너무 비정상적으로 구는구나. 짐도 네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육장봉은 사람들 앞에서 감정의 변화를 드러낸 적이 매우 적었다. 그래도 황제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특히 어제 삼차전 비무의 주장을 바꾼 이야기를 꺼내자, 육장봉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육장봉의 이런 태도는 아마도 십 년 전, 조계안과 함께 몰래 북요에 갔던 일과 연관이 있으리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단 조계안이든, 육장봉이든 둘 다 십 년 북요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지 않으려고 했다. 묻기만 하면 얼굴을 굳히고 입을 닫아 버렸다.

그래서 이상한 반응을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모르는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한걸음 물러서자, 육장봉이 먼저 말했다.

“폐하, 월 삼낭이 바친 종자가 불에 탄 게 맞습니까? 그림도 없어졌겠지요. 종자를 본 황궁의 시종들이 모두 죽었습니까?”

“너도 알았구나.”

황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황궁에 불이 났다고 들었습니다.”

황궁에 불이 나 궁녀와 내관이 죽는 일은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종자를 그렸던 화공이 둘이나 죽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봐도 뜻이 분명한 움직임이었다.

“그놈들은…… 정녕 미치광이가 아니냐! 그들이 어찌 감히? 어찌 감히 짐의 눈앞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냐!”

황제는 주먹을 움켜쥐고 탁자를 거세게 내리쳤다.

“짐이 마침 월 삼낭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더라면, 월 삼낭도 살해당했을 거다.”

“폐하, 이 일은 월 삼낭이 모르게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월 삼낭이 겁먹지 않게요.”

월 삼낭은 대담하게 청주를 배신했지만, 이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물론, 이것이 황제의 신임을 얻기 위한 보여주기식의 속임수일 가능성도 있었다.

“짐은 이미 월 삼낭을 비밀 감옥에 넣었다. 월 삼낭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월 삼낭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 두었다.”

황제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폐하께서는 그 종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십니까? 그 종자가 정말 묘당 천 근씩 생산이 가능하다면, 반드시 우리 주나라의 백성들에게 큰 복이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 따로 이 종자를 그리셔서, 출항하는 선원에게 넘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이 해외에서 비밀리에 찾다 보면 수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육장봉은 황제처럼 분노하지 않았다. 대신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황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짐은 지금 월 삼낭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한 묘당 천 근씩 생산한다는 종자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 종자의 일은 월 삼낭이 청주의 사람과 손을 잡고 꾸민 일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그들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종자를 구실로 월 삼낭이 짐에게 접근하게 했겠지. 그리고 종자를 없앤 뒤, 입막음하려는 척한 것일지도 모른다. 짐이 월 삼낭을 믿게 하려고 말이다.

종자는 이미 없어졌다. 청주 쪽에서도 분명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해외로 그 품종을 찾으러 가고, 그게 묘당 천 근씩 생산되는 게 맞는지 확인하려면, 여러 해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정도 시간이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의 뜻에 공감을 표했다.

“월 삼낭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경계하시는 것도 지당하신 일입니다. 그래도 종자는 사람을 보내 찾아보게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만약 진짜라면, 우리는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짐이 시박사의 사람들에게 해외로 나가는 배에 사람을 파견하여, 비밀리에 해외에서 종자를 찾아보라고 명령을 내리겠다. 그리고 월 삼낭의 일을 통해 짐이 깨달은 것도 있다. 해외에는 우리 주나라에는 없는 게 많이 있을 수도 있겠더구나. 묘당 천 근씩 생산되는 종자를 찾지 못하더라도, 다른 것을 찾으면 역시 좋은 일이지.”

‘예를 들어 금광이라든가.’

“폐하, 현명하십니다.”

육장봉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황제의 말속에 숨겨진 뜻을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했다.

국고는 너무 빈곤했다. 황제가 받는 압박도 지나치게 컸다. 그러다 보니 애가 타는 것도 당연했다.

황제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해라. 짐에게 아부할 필요 없다. 네가 짐에게 현명하다고 하면, 요즘 짐이 뭘 했는가 하고 돌이켜보게 된단다.”

황제는 웃다가 갑자기 그치더니, 머리를 탁, 치며 당황하며 말했다.

“네게 화가 나서 그만 중요한 일을 잊고 말았구나. 장봉아, 현음 고모께서 급하게 밀서를 보내왔다. 이번 양국 비무와 관련된 내용이다.”

황제는 말하면서 탁자 위의 상자를 열어 안에 들어 있던 서신을 꺼냈다. 그러나 육장봉은 서신을 받지 않았다.

“현음 장공주는 오로지 폐하만을 따르지요. 그분의 밀서는 폐하께서만 보실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신이 알아야 하는 부분만 알려 주십시오.”

“이 편지에 네가 알면 안 되는 일은 없다.”

황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강요하지 않았다. 단지 편지를 탁자 위에 두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현음 고모께서는 비밀 정보를 받으셨다고 했다. 북요인은 이번 비무에 반드시 이기려고 작정했다고 하더구나. 일차전에서 내보내는 아홉 명의 용사는 모두 비약(秘藥)으로 몸을 단련했다고 한다. 그들의 몸은 보통 사람들보다 맷집이 훨씬 강하다. 심지어 평범한 칼과 창으로는 그들의 몸을 꿰뚫을 수 없다더구나.”

황제의 얼굴은 온통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그래도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며 육장봉에게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몰래 한숨을 내쉬고 계속해서 말했다.

“이차전에서는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도 이차전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더라. 그들의 계획은 우리가 이차전에서 이기게 하여 경계심을 늦추도록 만드는 거라고 한다. 그와 동시에 삼차전이 순조롭게 진행되게 하는 것이지. 그리고 삼차전은…….”

앞의 두 시합은 그래도 한번 해볼 만했다. 하지만 삼차전은 더욱 어려웠다.

황제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얼마 전에 북요의 장인이 일곱 번 잇달아 쏠 수 있는 쇠뇌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북요에서는 줄곧 비밀로 하고 떠들지 않았지.

심지어 일전의 전쟁에서도 우리에게 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칠연발 쇠뇌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여기서 우리를 노리기 위해서다.

그들은 삼차전에서 우리 주나라의 장사를 짓밟아, 우리 주나라의 사기를 떨어뜨릴 계획이다.”

황제는 여기까지 말하더니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봉아, 이번 비무에서 우리에게는 승산이 전혀 없구나.”

“칠연발 쇠뇌라고요? 북요인도 제법 능력이 있군요.”

갑자기 육장봉의 머릿속에 월령안의 저택에 설치된, 사람이 조작할 필요 없이 자동으로 발사되는 쇠뇌가 떠올랐다. 그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한 줄기 스쳐 지났다.

“그놈들에게 칠연발 쇠뇌가 있다고 한들 어떻습니까? 이번 비무에서 누가 이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장봉아, 짐도 네가 자신감이 넘치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감만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지. 삼백 명이 칠연발 쇠뇌를 모두 장착하면, 한 번에 이천 개가 넘는 화살이 발사된다. 우리가 짧은 시간 안에 칠연발 쇠뇌를 만들지 않는 한…… 아니, 우리에게도 칠연발 쇠뇌가 있다고 해도 겨우 비기기나 하겠지.”

황제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무거운 얼굴로 육장봉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했다.

“장봉아, 짐은 삼차전에 네가 참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는 군사(軍事)를 모르는 제왕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 알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북요는 초원의 민족이었다. 그들은 원래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

기병만 놓고 보면, 주나라는 장비를 갖추어야 겨우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북요인이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들이 북요의 기마병을 이기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황제도 잘 알고 있었다. 제왕인 그가 육장봉에게 삼차전을 포기하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는 육장봉에 대한 모욕이자 불신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나라의 황제일 뿐만 아니라 육장봉의 사촌 형이었다. 사촌 형으로서의 그는 육장봉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주나라의 체면은 대단히 중요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주나라의 체면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육장봉의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설령 북요에 패하더라도, 황제인 자신이 창피를 당하더라도, 조금 밖에 되지 않는 승산 때문에 육장봉이 목숨을 걸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육장봉이 다른 생각을 할까 걱정되어, 황제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

“장봉아, 우리가 승리하더라도 잠깐 지나갈 일이야. 그런 승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전쟁에서 이미 북요를 이겼다. 목숨을 걸고 시합에서까지 승리를 얻을 필요는 없다. 짐은 널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모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우리 주나라는 이미 이겼다. 우리에게 이번 비무의 승패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아니, 주나라에게 양국 비무의 승부는 대단히 중요했다.

북요는 졌지만, 마음속으로는 굴복하지 않고 있다. 주나라 앞에서 여전히 거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주나라는 이겼지만, 조야에서는 저번 전쟁에서 육장봉이 북요를 이긴 게 운이라고 생각했다. 북요는 여전히 강대하다고 여겼다.

그들이 육장봉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주나라는 진정한 의미에서 북요를 이긴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겼다 하더라도 작은 승리를 거두는 정도였다. 매번 작은 승리를 거둔 다음에는, 북요에게 더욱 미칠듯한 괴롭힘을 당했다.

북요의 무력은 강하다. 이건 주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박힌 고정관념이었다. 한 번의 승리만으로는 주나라 사람들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반드시 양국 비무에서 으스대는 북요인의 기를 꺾고, 오만함을 눌러야 했다. 그럼으로써 주나라와 북요의 사람들에게 모두 알려야만 했다.

주나라가 북요를 이긴 것은 운이 아니라, 주나라의 실력이라고.

이렇게 해야만 주나라의 변방은 진정 평화로워질 것이다. 북요도 진정 조용해질 것이다.

북요에서는 앞서 양국이 체결한 조약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북요인은 이치를 따지지 않았다. 약속은 지키는 법은 더욱 없었다. 이점은 야율제와 야율융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북요인이 순순히 말을 듣고 약속을 지키게 하려면 반드시 그들이 두려워할 때까지, 하는 수 없이 규칙을 지킬 때까지 매질을 해야 했다.

이러한 것들은 육장봉도, 황제도 알고 있었다.

황제는 육장봉이 심리적 부담을 가지지 않게 하려고 그리 말한 것뿐이었다.

육장봉도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황제가 이러는 게 자신을 위해서, 걱정되어서 하는 말임을 알고 있었다.

육장봉은 서둘러 황제에게 반박하지도, 섣부르게 무언가를 보장하지도 않았다. 대신 화제를 돌렸다.

“폐하, 천궁각을 아십니까?”

“천궁각이라고? 강호 문파 말이냐?”

황제는 육장봉이 우길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설득할 말을 잔뜩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는 갑자기 낯선 문파의 이름을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황제는 흐름을 놓칠 뻔했다.

“천궁각의 사람은 기계 장치에 능합니다. 앞서 월령안이 명월산장에서 공중에서 날아다니며 춤을 추게 한 것도 천궁각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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