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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05)화 (405/1,004)

405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육장봉이오

배나무 숲에 도착하자, 월령안은 또 배나무 위로 올라가겠다고 했다. 배나무 위에서 춤을 추겠다는 것이었다.

“너무 늦었소. 너무 위험하오. 우리 내일 갑시다. 내일 당신을 데리고 가겠소.”

육장봉이 그녀를 설득하려고 하는 순간, 월령안은 그의 옷자락을 잡고 살며시 흔들었다.

“싫어요. 저 가고 싶어요. 지금 바로 가고 싶단 말이에요.”

여기서 육장봉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월령안을 안고 배나무 가지로 몸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의 지휘 아래, 배나무 숲을 여기저기 쉬지 않고 누비며 달빛 아래서 춤을 췄다.

월령안이 즐겁게 소리를 질렀다.

“날았다!”

“바람을 잡았어!”

“육장봉, 좀 더 빨리요. 저 별을 곧 잡을 것 같아요.”

“육장봉, 제 손바닥에 뭐가 있는지 아세요? 별이에요. 멍청하기는. 이것도 몰라요?”

월령안은 나뭇가지에 서서 육장봉의 품에 기댔다. 그리고 주먹을 펼쳤지만, 아무것도 없는 손바닥이 보였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멍해졌다.

“어라, 내 별은?”

“날아갔소.”

육장봉은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월령안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월령안의 웃음소리는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월령안의 쾌활한 웃음소리는 한 줄기 빛처럼 그의 마음을 비췄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의 모든 안개를 몰아냈다.

* * *

배나무 숲에서 육장봉은 월령안과 함께 한 번, 또 한 번 날았다. 전혀 싫증 내지도, 지치지도 않고 때로는 솟구쳤다가, 때로는 곤두박질치며 배나무 숲을 누볐다.

배나무 숲 밖에 있던 노인은 바퀴 의자에 앉아 공중에 수시로 나타나는 그림자를 바라보고, 숲에서 들려오는 맑은 웃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우리 꼬마 령안이에게 앞으로 함께할 사람이 생겼구나. 잘됐어.’

* * *

육장봉이 월령안과 함께 배나무 숲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육일은 말을 재촉해 명월산장으로 달려왔다. 이미 야심한 시각이었지만, 개의치 않고 세차게 문을 두들겨 문지기를 깨웠다.

“대장군께서는 어디 계시냐? 얼른 뵈어야겠다.”

“대장군께서 오셨나요? 소인은…….”

문지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일은 그의 곁을 지나 본채 방향으로 달려갔다.

‘장군께서 심야에 명월산장에 오신 걸 보면, 반드시 월 낭자를 만나려는 걸 거야. 본채로 가는 게 맞아.’

육일은 목표를 확실히 하고, 바로 명월산장의 본채로 달려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은밀하게 숨어 있던 암위에게 가로막혔다.

“장군께서는 배나무 숲에 계십니다.”

‘지금은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암위는 뒤의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의미심장하게 육일을 힐끗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했다. 육일은 그의 눈빛을 볼 수가 없었다.

암위의 말을 듣자, 육일은 어리둥절해졌다.

“대장군께서 야밤에 배나무 숲에 가셔서 뭘 하신단 말이냐?”

하지만 암위는 육일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귀신처럼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육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돌아서서 배나무 숲으로 달려갔다.

배나무 숲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은방울이 구르는 듯한 맑고 생동감이 넘치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 웃음소리는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적어도 육일은 이러한 웃음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육일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우리 장군이 이렇게까지 양심이 없는 건 아니겠지? 야밤에 다른 여인과 월 낭자의 정원에서 노닐다니. 월 낭자께 미안하지도 않으신가?’

육일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서둘렀다. 멀리서 보니 남녀 한 쌍이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 자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친근해 보였다.

육일은 순간 긴장하고 말았다.

“대장군…….”

육일은 다급히 인기척을 내서, 여기는 월 낭자의 명월산장이라고 일깨워 주려고 했다. 바로 그때, 장군의 품에 안긴 여인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육장봉, 전 저 꽃이 가지고 싶어요. 위에 빨간 점이 있는 것 말이에요. 찾았나요?”

‘이 목소리는 월 낭자 같은데? 근데 월 낭자가 언제 우리 장군과 이렇게 가까워졌지? 자기가 먼저 장군을 안은 건 둘째 치고, 장군에게 애교를 부리다니. 이건 너무 월 낭자답지 않은걸.’

육일은 멀찍이 서 있을 뿐,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육장봉은 육일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알아챘지만, 상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육일이 그를 부르려고 하자, 손짓만 해 보였다. 나중에 말하라는 뜻이었다.

육일은 입을 달싹이다가 묵묵히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내가 때를 잘못 맞춰 온 것 같군!’

* * *

육일을 보낸 뒤, 육장봉은 월령안을 계속 달래고 있었다.

술에 취한 월령안은 어린애보다 다루기 어려웠다. 육장봉은 그녀의 어떤 요구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의 요구대로, 나무 위에 올라가 꽃을 세 번이나 따다 주었다. 그러나 모두 그녀가 원하는 꽃이 아니었다.

월령안은 절반쯤 시들어 버린 배꽃 세 가지를 들고 뾰로통해서 말했다.

“왜 이렇게 멍청해요? 말했잖아요. 중간에 빨간 점이 있는 꽃을 갖고 싶다고요. 이건 다 빨간 점이 없잖아요. 하나도 안 예뻐요.”

‘이 야밤에 중간에 빨간 점이 있는 꽃을 찾기는커녕 활짝 핀 꽃 두어 가지 찾기도 힘든데.’

월령안을 하룻밤 동안 달랜 육장봉은, 주정뱅이와는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우쳤다.

그는 상냥하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데려다줄 테니, 어느 꽃인지 말해 주겠소?”

“됐어요. 이젠 필요 없어요. 이 꽃 세 가지는 병에 꽂아둬야겠어요. 내일 영감님께 보여 드릴래요. 이건 비밀인데요, 영감님은 배꽃을 좋아해요. 전 명월산장에 배나무 숲이 있다는 것을 알고 줄곧 명월산장을 사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명월산장은 황실 별장이라서 돈이 있어도 살 수가 없었죠. 정말 너무 짜증이 난다니까요.”

월령안은 마치 보물이라도 손에 넣은 듯, 꽃가지를 손에 소중히 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육장봉은 시선을 내리깔고 월령안을 안은 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배꽃을 영감님께 드리면, 나는? 나한테는 뭘 주겠소?”

“당신? 당신이 누군데요?”

월령안이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흐리멍덩한 것이 초점이 없어, 순진한 기색을 드러냈다.

육장봉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육장봉이오.”

“안 줘요. 안 줄 거야!”

월령안의 올라갔던 입꼬리가 순간 아래로 처졌다. 축 처진 그녀의 모습에서는 언짢은 기분을 엿볼 수 있었다.

“왜?”

육장봉은 기뻐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월령안은 그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그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줘도 안 볼 거잖아. 줘도 안 가질 거잖아. 줘도 안 쓸 거잖아. 줘도 안 아껴 줄 거잖아. 육장봉은 나쁜 놈이야. 세상에서 제일 나빠. 내가 준 물건을 몽땅 버려 버렸어. 다 버렸어.”

월령안은 바보처럼 웃었다.

“내가 직접 만든 옷, 직접 짠 매듭, 직접 쓴 편지, 직접 주문한 종이, 직접 구한 병기, 그리고 육장봉을 위해 단장한 집까지. 그 사람을 위해 준비한 모든 것이……. 와르르, 하고 다 없어졌어. 그 사람 친위대도 날 우습게 봐……. 다들 날 비웃어. 나보고 염치가 없다면서 비웃었어.

그치만 그들이 맞는 말을 했지.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염치가 없었어. 그 사람이 날 좋아하지도 않는데, 나는 왜 계속 매달렸을까? 정말 염치가 없었네.”

월령안은 손짓까지 곁들여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웃다가, 웃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몸이 나른해진 모양인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두 팔로 다리를 껴안고 불쌍한 모습으로 웅크렸다.

“아, 또 좀 괴로워졌다. 원래는 괜찮았는데. 다 내려놨었는데. 고작 남자 하나 가지고 왜 그래. 나 월령안은 젊고, 예쁘고 또 돈도 많잖아. 어떤 남자인들 못 갖겠어? 그런데 그 사람이 또 와서 날 건드려. 난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말 너무 힘들다고!”

월령안은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육장봉은 그 자리에 멍하니 굳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월령안을 안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품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심지어 품에 남았던 마지막 온기까지 밤바람에 날려갔다.

그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울음소리조차 내지 않는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입술을 살짝 움직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육장봉은 웅크리고 앉더니 월령안을 살며시 건드렸다.

“령안, 취했소. 내가 방으로 데려다주겠소.”

툭!

육장봉이 살짝 흔들었을 뿐인데 월령안이 쓰러졌다. 다행히 육장봉은 반응이 빠르고 팔이 길었다. 그녀가 거의 바닥에 닿으려는 순간, 다시 안아 올릴 수 있었다.

“후우…….”

월령안은 마치 오뚝이처럼 휘청거리다가 육장봉의 품에 쓰러졌다. 그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육장봉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 마음을 한참 동안 어지럽히고 정작 당사자는 잘 자고 있군.’

육장봉은 이런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내가 당신에게 빚진 것을 갚는 셈 쳐야지.”

육장봉은 월령안을 두 팔로 안아 올려 배나무 숲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육일의 곁을 지나칠 때, 발걸음을 멈추더니 그에게 눈짓했다.

육일은 마음속의 초조함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뒤로 한걸음 물러선 채, 밖에서 육장봉을 기다렸다.

* * *

일각 후, 육장봉은 명월산장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은 냉혹했고, 온몸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아까까지 월령안을 달래던 인내심과 부드러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육일은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마음속의 호기심을 거두었다. 당장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대장군, 북요 쪽에서 최신 정보가 건너왔습니다. 이번 비무와 연관이 있는 정보라고 합니다. 폐하께서 함께 상의하여야 하니 대장군께 서둘러 입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밤에 황궁에서 갑자기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편전(偏殿) 한 곳에서 불이 났는데 화공 두 명, 내관 네 명, 궁녀 여섯 명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폐하께서 이 일을 아시고는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소식은, 제가 당장 알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알아볼 필요 없다. 성으로 돌아가자.”

육장봉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암위가 건네주는 고삐를 받고 말 등에 훌쩍 올라타더니 채찍질해서 떠났다.

그 말은 육일이 타고 온 말이었다. 육일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육일은 몸을 숨기려는 암위를 불러 세우더니 이를 악물고 물었다.

“내가 탈 말은?”

‘난 오늘 말하고 원수라도 진 건가?’

“대인, 대장군께 말을 준비해 드리라고 하셨잖습니까?”

암위는 돌아서서 의아한 얼굴로 육일을 바라보았다.

육일은 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 *

육장봉이 성으로 돌아왔을 무렵에는 하늘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 서둘러 입궁하는 대신, 먼저 장군부에 들러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나서야 황제를 만나러 입궁했다.

황제는 육장봉을 하룻밤 동안 기다렸다. 드디어 뒤늦게 나타난 육장봉을 보자, 그가 예를 올리기도 전에 선수를 쳐서 굳은 얼굴로 물었다.

“어젯밤에 어디에 갔었느냐? 짐이 널 하룻밤이나 찾았다!”

“신은 성 밖에 있었습니다.”

육장봉은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해명했다.

황제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성을 나갔는데, 하룻밤이나 돌아오지 않을 만한 사정이 있었단 말이냐?”

“있었습니다.”

육장봉은 엄숙하고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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