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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04)화 (404/1,004)

404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월 삼낭이 어디서 들은 정보인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월씨 가문은 해외에 금광을 갖고 있지 않아요. 이건 제가 확신해요.”

적어도 월령안이 아는 것 중에는 없었다.

“월씨 가문이 청주에 금괴를 어느 정도 모아둔 건 사실이지만, 그 금괴는 월씨 역대 가주들이 조금씩 모은 것이에요. 해외에 한 작은 나라가 있는데, 거기에서는 황금이 아주 많이 나요. 그곳에서는 황금이 귀중하기는 해도, 희귀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월씨 가문의 가주는 해외에 나갈 때, 사적으로 물건을 조금 가져가요. 그 작은 나라에 가서 그 물건을 황금으로 바꾸는 거예요. 그리고 황금을 녹여서 금괴로 가지고 오죠.”

월령안은 육장봉이 손에 든 술동이를 흔드는 것을 보고 그가 다 마셨음을 알아챘다. 그녀는 손에 든 술동이를 그에게 넘겨주고 계속해서 말했다.

“대장군도 아실 거예요. 월씨 가문은 대를 이어 황실을 위해 재물을 모았어요. 해마다 황실에 바쳐야 하는 돈만 은 백만 냥에 가까워요. 그 액수도 해마다 증가하고요. 하지만 장사라는 게 매해 돈을 벌 수 있다고, 매해 작년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다고는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월씨 가문의 역대 가주들이 여유가 있는 상황에는 몰래 금을 모아둔 거예요. 언제든지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요. 그 금은 들어올 때도 있고, 나갈 때도 있어요. 제 손에 들어왔을 때는 이십만 냥 남짓하게 있었어요. 일전에 황금당의 살수를 고용하면서 다 써 버렸지만요.”

월령안은 홀가분하게 말했다. 그녀가 쓴 게 황금 이십만 냥이 아니라 동전 스무 개인 것처럼, 전혀 황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육장봉은 그런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그녀가 건네준 술동이를 자연스럽게 받았다. 그러나 술동이를 열어 마시는 대신, 월령안에게 건네주었다.

“월씨 가문이 후손에게 목숨을 지키는 데 쓰라고 남긴 돈을 그렇게 써 버렸단 말이오?”

월령안은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술동이를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 다 마시고 난 다음에야 정신이 들었지만,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도 주량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한두 모금 마신다고 해서 쉽게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돈은 원래 쓰라고 있는 거잖아요. 남겨 둘 게 뭐가 있겠어요. 제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이걸 몰랐다니까요. 그 돈을 아까워서 쓰지 못하시고, 돈 때문에 북요에서 목숨을 잃으셨죠. 두 사람은 그 돈을 쓰지 않기 위해 북요에서 목숨을 잃었고, 저는 그 돈을 북요인을 죽이는 데 썼어요.”

술을 마셔서일까. 월령안의 말속에는 그녀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원망과 자책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돈이라는 건 태어날 때 갖고 나오지도 못하지만, 죽을 때도 갖고 가지 못해요. 저 혼자서 얼마나 쓰겠어요. 사실 삼 년 전, 제가 변경에 있느라 청주에서 움직이기 힘들지만 않았어도, 돈 버는 재주를 드러내지는 않았을 거예요. 청주에 있던 그 돈을 가져다가 전선을 지원했겠죠.”

솔직히 말해, 삼 년 전에 그 돈을 쓰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손댈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때는 인생과 미래에 기대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월씨 가문의 가주들이 대대로 몰래 돈을 모아 후손들에게 남겨 주었던 것처럼, 그녀도 그 돈을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과 육장봉의 아이에게 남겨 주고 싶었다.

그때는 늘 그녀와 육장봉 사이에서 생길 아이를 상상하고는 했다.

만약 여자애라면 곱게 키울 생각이었다. 딸에게는 엄청난 혼수를 마련해 줘서, 조금도 서러움을 겪지 않게 하려고 했다.

만약 사내아이라면 분명 육장봉처럼 용맹하고 싸움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금은을 잔뜩 모아두었다가 아들에게 물려주리라 생각했다. 절대 돈 때문에 얽매이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때는 그 금을 쓰기가 아까웠다. 그저 천진난만하게 자기 아이에게 물려줄 생각만 했다.

하지만 기다린 끝에 받은 것은 육장봉의 이혼장이었다. 그제야 과거의 모든 환상과 바람이 전부 이루어질 수 없는 물거품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 돈을 전부 쓰면서도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그 돈은 이미 존재의 의미를 잃었다.

월령안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속에서는 씁쓸함과 떨떠름함만이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술동이를 들어 올려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걸로 마음속의 씁쓸함을 억누르려 했다.

“콜록콜록…….”

너무 급하게 마신 탓에 사레가 들렸다.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기침하는 바람에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그녀는 술동이를 들어 올리더니 육장봉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어찌 됐건 간에 그래도 육 대장군께 감사드려요. 셋째 언니는 똑똑한 사람이에요. 전 언니보다 못해요. 월씨 가문 사람들은 집안싸움에 강하거든요. 언니가 폐하의 신임을 얻었다면, 청주의 가주 쟁탈전에서 제 적수가 하나 더 늘게 되겠네요. 심지어 그 쟁탈전 때문에 언니가 먼저 절 죽일 수도 있겠어요.”

“마시지 마시오.”

육장봉은 월령안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그녀의 손에서 술동이를 빼앗았다.

월령안은 딸꾹질을 하더니 육장봉에게 바보처럼 웃어 보였다.

“안 마셔요.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조금 마시는 건데, 그런데…….”

월령안은 실실 웃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가슴팍을 부여잡고 망연한 얼굴을 했다.

“마시니까 기분이 더 안 좋네요. 자꾸 안 좋은 일들이 떠올라서……. 여기가 더 아파…….”

투둑, 투둑…….

아무런 예고 없이, 월령안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지붕의 기왓장으로 떨어져 무수한 꽃잎으로 부서졌다.

“어어……. 비가 오네.”

월령안은 손을 들어 얼굴을 훔쳤다. 눈물은 더욱 펑펑 쏟아졌다.

“비가 아닌 것 같네. 내가 우는구나.”

월령안은 피식 웃더니 고개를 기울여 육장봉의 어깨에 기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육장봉, 그거 알아요? 방금 당신 어머니가 북요에 계신다고 했을 때, 사실 속으로 아주 부러워했어요. 어찌 되었건 당신 어머니는 살아 계시잖아요. 하지만 저는요? 아버지도, 오라버니도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돌아가셨어요. 영감님도 일 년밖에 못 사신대요. 전 항상 혼자였어요. 늘 외톨이였어요. 그런데 간도 작아서 혼자 지내는 게 무서워요. 특히 밤이 되면, 자꾸 악몽을 꿔요. 깨날 때마다 항상 혼자예요.”

“당신, 취했소.”

월령안이 먼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자, 육장봉은 그녀가 분명 취했다고 생각했다.

그와 조계안이 배나무 아래에 묻은 술은 모두 오십 년 이상 묵은 것이었다. 월령안이 그렇게 서둘러 빨리 마셨으니 취기가 쉽게 올랐을 것이다.

아까 그는 기분이 우울해서, 이 술이 독하다는 걸 말해 주는 것을 잊고 말았다. 물론, 월령안이 이토록 술을 시원하게 들이켤 줄도 몰랐다.

“취하지 않았어요. 안 취했다고요. 전 멀쩡해요. 전 당신이 육장봉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육장봉! 세상 누구도 당신보다 더 얄미운 사람은 없어!”

월령안은 자신이 취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고 육장봉을 밀쳤다. 그리고 허리를 곧게 펴고 바로 앉으려고 했지만, 휘청거리는 바람에 어떻게 해도 똑바로 앉을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뾰로통하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녀는 앞쪽을 가리키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 명령이야! 움직이지 마! 움직이지 말라고, 못 들었어! 왜 아직도 움직여? 움직이지 마!”

월령안은 말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육장봉은 깜짝 놀라, 술동이를 옆쪽으로 밀어 놓고 서둘러 그녀를 안았다.

“움직이지 않았소. 이제 안 움직일 거요.”

“거짓말. 계속 움직이면서.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말을 듣지 않는 애는 맞아야 한다고. 내가 가서 때려 줘야지. 그럼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을 거야.”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안겨 있었지만, 조금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바둥거렸다. 육장봉은 그녀를 붙잡느라고 곧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월령안은 개구쟁이 어린애보다 더욱 말썽을 부렸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버둥거렸다.

그녀는 육장봉의 설득으로, 지붕이 자기 말을 듣고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겨우 믿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또 지붕에 서서 별을 따러 가겠다고 난리를 쳤다.

“저기, 별이랑 가까이 있네. 별을 따서 어머니께 드려야겠다.”

멀쩡할 때의 월령안이 이지적이고 냉정한 만큼, 술에 취한 월령안은 딱 그만큼 난리를 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려고 했다. 육장봉이 어떻게 설득을 해도 소용없었다. 기어코 일어나 별을 따러 가겠다고 우겼다.

육장봉이 안 된다고 하자, 그녀는 또 울고불고하면서 그를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고 난리가 났다.

둘은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이러다가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지붕의 맨 꼭대기에 서 있었다.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육장봉을 밀쳐 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두 손을 내밀고 까치발을 했다.

그녀는 기를 쓰며 손을 위로 뻗고는 어린애 같은 웃음을 지었다.

“육장봉, 하늘의 별 좀 봐요. 나뭇가지로 푹 찔러서 난 구멍 같지 않아요?”

“비슷하군.”

육장봉은 더는 감성에 젖어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의 정신은 온통 월령안에게 쏠려 있었다. 그녀가 이러다 떨어질까 불안했다.

월령안은 조금 전까지 어린애처럼 기뻐하더니, 갑자기 또 울음을 터뜨렸다.

“나뭇가지는 하늘을 찢어 버리고 싶었던 거였어. 그런데 결국에는 겨우 작은 구멍 몇 개밖에 뚫지 못했잖아.”

갑자기 월령안은 돌아서더니 두 팔을 벌리고 뒤로 넘어졌다.

“육장봉, 사람이 사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들까요?”

“월령안!”

육장봉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다급히 앞으로 다가가 월령안의 손을 붙잡고, 손목에 힘을 줘서 그녀를 품에 안았다.

“당신, 날 놀라서 죽일 뻔했소.”

“속았죠? 당연히 진짜로 뛸 리가 없죠.”

월령안의 두 볼은 발그스름했다. 그녀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육장봉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대더니 쉿, 하는 소리를 냈다.

“이거 비밀인데, 전 춤출 줄 알아요. 뒤로 허리를 젖힐 수도 있거든요. 제가 넘어지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도 넘어지지 않아요.”

“알았소, 알았소. 당신은 춤을 출 줄 아니까. 하지만 다음번에는 이러지 마시오.”

육장봉은 울다가 웃고, 웃다가 또 난리를 치는 월령안을 보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왔다.

이젠 월령안을 찾아와 함께 술을 마시자고 한 게 잘한 일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분명 기분이 울적한 사람은 그였다. 그런데 어째서 월령안이 그를 위로해 주는 게 아니라, 그가 주정뱅이 월령안을 챙겨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을까.

“육장봉, 저 춤추고 싶어요. 절 배나무 숲까지 데려다주세요. 우리 배나무 숲에서 춤춰요, 어때요? 저번처럼 날 안고 춤추는 거예요.”

월령안은 육장봉의 품에 안긴 채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불쌍한 얼굴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눈물에 씻긴 눈매는 맑고 또렷했다. 그녀는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애교가 묻어 있었다.

육장봉은 자신이 뭐라고 말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가 냉정함을 되찾았을 때는 이미 월령안을 안고 배나무 숲으로 온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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