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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02)화 (402/1,004)

402화 여기는 주나라입니다

“아니야. 우리는 그런 게……. 대장군은? 대장군을 만나야겠다.”

은타는 그녀들보다 더 당황했다. 육삼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대장군을 만나게 해 주세요. 대장군이 절 속량해 주셨다고요. 저는 대장군의 여인이라고요.”

육삼은 사정없이 뿌리쳤다.

“무슨 생각이냐? 너희 같은 것들이 어떻게 감히 대장군의 여자가 되겠느냐. 우리 장군께서 보는 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은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감히 울부짖지도 못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육삼에게 끊임없이 절을 했다.

“아니, 아니……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장군, 살려 주세요. 살려만 주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다시는 그런 짓 안 할게요.”

“주인을 배신한 자들이다. 허튼짓 못 하게 철저히 감시해라!”

육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장 몸을 돌려 말에 올라타더니 재빨리 떠나갔다.

‘월 낭자를 배신할 때부터 자기가 어떻게 될지 생각을 했어야지.’

“제가 아니에요. 소씨 가문, 소씨 가문이…….”

뒤쪽에서 은타와 기녀들이 오열하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육삼이든, 그녀들을 데리러 온 병사들이든 모두 굳건했다. 그녀들의 울음소리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 * *

주나라는 학문을 숭상하고 무예를 무시했다. 덕분에 북요와 여러 번 전쟁을 치렀지만, 진 적이 더 많았다. 지면 크게 지고, 이기면 작게 이기는 식이었다.

매번 전쟁에 패하니, 주나라는 자세를 낮춰 화해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재물과 식량으로 북요를 달래곤 했다. 설령 이기더라도, 똑같이 돈과 식량으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 북요가 주나라 변방을 어지럽히는 것을 방지하려는 차원이었다.

이런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니, 북요도 주나라의 이런 방식에 익숙해졌다.

북요에서 보는 주나라는 뒤뜰에서 기르는 돼지였다. 먹고 입을 게 부족해지면, 병사를 끌고 주나라를 한 바퀴 휘젓다가 잡아먹으면 그만이었다.

북요는 주나라 앞에서 늘 고자세를 유지했다. 그들은 주나라와 교류할 때, 한 번도 상식적으로 행동한 적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바로 빼앗고 보았다. 어차피 주나라에서도 그들을 어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야율융진도 이런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주나라 사람들이 추어올리는 데 익숙해졌고, 주나라 사람들의 양보와 아부에 익숙해졌다. 주나라에 국가 협상을 위해 왔으면서도, 패전국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그는 물론, 북요 사람들에게도 저번 전쟁에서의 패배는 예상 밖이었다. 주나라가 이긴 건 어쩌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두 나라가 다시 비무를 하기만 하면, 반드시 이길 거로 여겼다.

야율융진뿐만 아니라, 사절단의 모두가 패자라는 자각이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이 더욱 높은 위치에 있다고 여겼다. 주나라에서 예전처럼 아부하고, 무릎 꿇고 설설 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주나라에 온 뒤에도 겸손할 줄 몰랐다. 심지어 겁쟁이 같은 주나라에 패한 게 못마땅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예전보다 더욱 방자했고, 더욱 거리낌 없이 선을 넘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이 맞다고 현실이 증명해 주었다. 오는 길 내내 주나라의 관리든, 백성이든 모두 그들을 윗사람으로 대접해 주었다. 설령 그들에게 얻어맞더라도 찍소리도 못 냈다.

하지만 막상 변경에 도착하자 예상과는 달리, 좌절만 맛보고 있었다.

변경 사람들과 주나라의 황제는 예전처럼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육장봉에게 던져져 혼절한 대황자를 보자, 야율융진과 함께 있던 시위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들은 이런 일을 전혀 겪어 보지 못했다.

‘주나라 놈들이 반항하는 건가?’

육장봉 일행이 행화루 밖으로 나오자, 야율융진과 함께 있던 북요 시위들은 하나같이 분노에 찬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육장봉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차를 찾아다 이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라. 비무 전까지 나는 성안에서 이자들을 보고 싶지 않다.”

“육 대장군, 우리는 북요의 사절단이오. 당신네 주나라는 사절단을 이렇게 대접한다는 말이오? 당신들은 예의 바른 나라라고 자부하지 않았소?”

북요의 시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는 손등의 핏줄마저 불거질 정도로 칼자루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언제든지 칼을 빼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너희에게 예의를 갖춰 이야기한들, 너희가 알아듣기나 하느냐?”

육장봉은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힐끗 보더니, 훌쩍 말에 올라탔다.

북요의 용사는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육이가 그들의 앞길을 막아 버렸다.

“여러분이 우리 주나라가 대접을 제대로 못 했다고 여긴다면, 일단 싸워 봅시다. 우리 주나라가 예의를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는 싸우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시죠.”

그들은 문관이 아니었다. 야만인과는 예의를 따지지 않았다.

“네놈들이…….”

북요의 무사는 생각지도 않고 칼을 뽑았다. 그러나 움직이자마자 육이에게 손이 잡혀 저지당했다.

“우리 대장군의 말씀을 못 들으셨습니까? 주나라에서는 주나라의 규칙을 따르셔야 합니다. 우리 주나라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시겠다면, 우리는 지킬 때까지 매로 다스릴 겁니다.”

퍽!

육이가 앞으로 다가가 어깨로 북요 시위를 밀침과 동시에 칼을 빼앗아 옆으로 던졌다. 그리고 몸을 돌려 마구간 쪽으로 걸어갔다.

“당신네 대황자를 부축해서 따라오십시오. 우리 장군께서 당신들을 매로 다스리게 하지는 마십시오.”

북요의 시위는 주나라에서 이런 수모와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더덕더덕 살이 붙은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 모습이 야수처럼 흉악하고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육장봉에게 나가떨어져 혼절한 야율융진이 눈에 들어왔다. 결국 마음속의 들끓는 화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육장봉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북요도 다시는 주나라와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북요는 저번 전쟁에서 손해가 막심했다. 그들은 주나라처럼 부유하지 않았다. 주나라에서 이득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몇 년 동안 국력을 회복할 수 없었다.

지금은 화가 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만하기만 하던 주나라가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강해졌을까.

분명 예전의 주나라는 이기더라도 기개 없이 굴었다. 그들이 이득을 어떻게 갈취하든 두고 보기만 했다.

“태양신이여, 부디 당신의 백성들을 보우하여 주시옵소서.”

북요의 시위는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땅에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이마를 땅에 대고 소리 없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육이가 마차를 몰고 오다가 그들의 행동을 보고 비웃었다.

‘이 북요 놈들, 고작 이까짓 거에 충격을 받다니. 벌써 이러면 어쩌려고 그러지? 우리 대장군께서 계시는 한, 북요 놈들의 좋은 세월도 이제는 끝났어.’

육이도 그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이 일어나고 나서야 야율융진을 마차로 옮기라고 했다. 그들이 직접 마차를 몰아 성 밖으로 나가게 하고, 육이는 뒤를 따라가며 감시했다.

북요의 시위들은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는지, 아니면 조금 전 신에게 기도하여 마음이 굳건해졌는지,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묵묵히 야율융진을 마차에 싣고, 그중 한 사람에게 마차를 몰게 했다. 나머지는 마차의 옆을 보호했다.

“장군의 말씀이 맞아. 사람이 말을 안 들으면 두어 번 패 주면 그만이야. 두 번 때려서 안 되면 세 번 때리면 되지. 순순히 말을 들을 때까지 때리는 거야.”

눈앞의 ‘고분고분’한 북요 시위를 바라보는 육이의 눈에는 비웃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문관들은 맨날 이치로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말하지. 우리더러 무력을 남용하여 전쟁을 일삼고 백성들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다고 말이야. 하지만 북요의 야만인하고는 이치를 따져도 소용이 없어.’

예전에도 여러 해 동안 주나라는 북요와 이치를 따지긴 했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그들은 대량의 식량을 북요로 보냈다. 주나라의 수많은 여인이 북요인들에게 짓밟혔다. 주나라의 수많은 남자가 북요에 노예로 보내졌다.

주나라는 한 해, 또 한 해 거듭하며 수많은 재물을 퍼부어 자신의 적을 강하게 키운 셈이었다. 그러나 얻은 것은 결국 북요의 경멸뿐이었다. 그들은 주나라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보라. 대장군이 이치를 따지지 않자, 북요인들은 오히려 고분고분 말을 들어, 이치를 따질 수 있게 되었다.

육이는 북요인 특유의 강한 자를 두려워하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성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길을 가는 내내 죄인을 감독하듯 북요인들을 사납게 대하며, 성 밖 북요 사신이 주둔하는 영지로 데리고 갔다.

육이는 북요 사절단에게 사람을 넘겨준 뒤에도, 경고를 잊지 않았다.

“우리 대장군께서는 귀국 대황자께서 성 밖에 조용히 머무르시면서 사흘 뒤의 비무를 준비하시기 바라신답니다. 중요한 용건이 없으면 성안으로는 들어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성안에는 부책임자가 계시니, 무슨 일이 있으면 부책임자와 소통할 겁니다.”

“우리 대황자를 치고 그냥 가려고 하다니. 주나라 놈들이 너무 방자하군. 가고 싶다면 네 다리는 내놓고 가라.”

북요 사절단이 주둔하는 영지에 도착하자, 그들은 흉흉한 기세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기골이 장대한 사내 일고여덟 명이 육이를 둘러쌌다. 손은 일제히 칼자루에 둔 모습이, 협박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육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오만하게 말했다.

“여기는 주나라입니다. 우리 장군께서 주나라에서는 우리 주나라의 규칙을 따르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규칙을 지킬 때까지 매로 다스릴 겁니다.”

육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말을 채찍질하며 떠나갔다. 북요인들의 협박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태도였다.

예전 전장에서도 이 북요의 야만인들을 두려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은 두려워할 필요가 더더욱 없었다.

북요인들은 주나라 사람을 안중에 둔 적이 없었다. 당연히 육이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이 쫓아가려는 순간이었다. 등 뒤에서 나이가 들었지만,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오너라!”

“대원수.”

북요의 병사는 바로 돌아섰다.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음으로써 존경을 표시했다.

이 사람은 바로 북요의 노장수 신호(申虎)였다.

신호는 키가 작고 몸집이 다부졌다. 두 팔과 가슴은 근육으로 부풀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커다란 혹 두 개를 몸에 달고 있는 듯했다.

그의 얼굴은 늙은 나무의 메마른 껍질처럼 주름이 가득했다. 눈은 마치 소의 눈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흰자위가 검은자위보다 커서 더없이 추해 보였다.

하지만 이토록 더할 나위 없이 추한 남자가, 바로 북요 병마의 삼 분의 일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십 년 전에는 무려 북요의 천하병마대원수(天下兵馬大元帥)였다.

“대황자를 모시고 영지로 돌아가거라.”

신호는 야율융진이 제멋대로 자기를 부장으로 강등한 일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야율융진에게 호감이 없었다. 야율융진이 고생하더라도 그를 위해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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