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자기가 만든 재난은 피할 수 없다
하늘이 만든 재난은 피할 수 있지만, 자기가 만든 재난은 피할 수 없다.
서로 자기가 죽겠다고 나서는데, 육장봉이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월령안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처럼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육삼, 가서 처리해라.”
육장봉은 쌀쌀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육삼은 명령을 받고 앞으로 나섰다. 영영이 움직일 기색이 없자, 그는 예의를 차려 한마디 재촉했다.
“안내하시게.”
“육…….”
영영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유경장이 다가가서 그녀를 잡아당겼다.
“영영, 어서 가세.”
영영은 유경장의 손에 이끌려 안뜰로 걸어갔다. 그녀가 화가 나서 유경장을 욕하려던 순간, 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영영, 소씨 가문에 매수된 몇몇 기녀의 노비 문서도 꺼내서 함께 육삼 장군께 드리게.”
“경장, 무슨 말이에요?”
영영은 그 자리에서 굳어져 어리둥절했다.
“영영, 육 대장군은 평범한 남자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나. 저 분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네.”
유경장은 가볍게 한 번 웃었다. 그 시원한 눈매에는 다정함이 흘렀다.
“……제가 지금 가지러 갈게요.”
영영은 그를 흘끔 바라보더니, 재빨리 고개를 돌려 거의 도망치다시피 가 버렸다.
유경장은 영영의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의 미소가 점점 옅어졌다.
영영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육삼은 유경장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얼굴을 돌려 아무것도 못 본 척했다.
‘사랑에 빠진 남녀들이란! 그래도 우리 장군이 진국이지. 좋아하면 쟁취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건드리지 않는단 말이야.’
영영은 곧 은타를 포함한 여덟 명의 기적(妓籍) 문서를 가져왔다. 그녀는 육장봉의 의도를 알고 기어이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육삼은 확고한 태도로 기적에 적힌 금액에 따라 몸값을 주고, 새 계약 문서를 작성했다.
“영영 낭자, 바쁘지 않으면 잠시 후에 저희와 함께 관아에 가서 등록해 주십시오.”
주나라에서 노비계급의 매매는 법으로 허용되어 있다. 다만 시장에 가서 거래하되, 관아에서 허락한 사람만 매매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매매한 사람은 관아에 등록해야 했다. 사적인 매매는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조작의 여지가 아주 많았다. 행화루에 있는 기녀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거래한 게 아니었다. 사람을 산 뒤 연줄을 이용해 관아에 가서 수속을 보완했을 뿐이다.
이런 과정 때문에 소씨 가문에서는 월령안을 사사로이 노비를 매매 했으며, 양갓집 여인을 핍박해 기녀로 만들었다고 고발했다. 은타 등 몇몇이 나서서 월령안의 죄를 증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은타를 비롯한 그녀들에게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육 대장군은 절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을 테니까.
육삼과 영영이 다시 나타나자, 모든 일은 끝이 났다. 육삼은 문서를 들고 은타를 비롯한 기녀 여덟 명의 이름을 불렀다.
“나, 나, 나도 있네.”
호명된 기녀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호명되지 않은 기녀들은 전혀 부러워하지 않았다. 한쪽 옆에 서서 은타를 비롯한 기녀를 경멸의 눈초리로 냉랭하게 바라보았다.
호명된 기녀들은 그런 시선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은타의 주위에 둘러서서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바빴다.
“은타 언니, 정말 감사해요. 정말 훌륭한 분이세요. 자매들을 불구덩이에서 구해 주셨군요.”
“내게 감사하다고 하지 마. 대장군께 감사드려라. 대장군께서 우리를 불구덩이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어.”
은타가 여덟 명의 기녀들 한가운데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뭇 별들이 달을 에워싼 듯했다. 은타는 애정이 넘치는 눈빛으로 대장군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육 대장군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오히려 소란스럽다며, 육삼에게 그녀들을 전부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어디로 데려가는지에 대해서는 그가 신경 쓸 게 아니었다.
이 기녀들은 월령안이 악랄해서 양갓집 여인을 기녀가 되도록 핍박하고, 불구덩이에 살게 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 행화루는 인간 지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녀들에게 어떤 게 진정으로 악랄한 일인지, 어떤 게 진정한 불구덩이인지, 어떤 게 진정한 인간 지옥인지를 보여줄 셈이었다.
육삼이 사람을 데려가려 하자, 야율융진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가 부하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부하가 당장 육삼의 앞을 막아 나섰다.
육삼이 따져 묻기도 전에 야율융진이 불만을 터뜨렸다.
“육장봉, 무슨 수작이냐? 네 부하가 저 여자들을 데리고 갈 수 있다면, 내 사람은 왜 안 되나? 육장봉의 돈만 돈이고, 나 야율융진의 돈은 돈이 아니란 말이냐?”
육장봉은 말없이 육이를 힐끗 바라보았다.
육이가 앞으로 나아가 논리적으로 말했다.
“대황자, 주나라에서 매매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강매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대황자께서 여인들을 데려가도 괜찮습니다. 단, 본인이 원한다면 말입니다.”
거기에 육장봉이 한마디 덧붙였다.
“나와도 같이 가겠다고 하지 않는데, 대황자와 같이 가려고 하겠소?”
야율융진은 분노해서 살인이라도 저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눈이 시뻘겋게 변해 곧 피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영영은 겁이 났지만,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저 여인들은 자발적으로 대장군을 따라가는 겁니다. 책임자인 저도 허락하는 일이고요.”
“비천한 년!”
야율융진이 욕설 한마디를 뱉었다.
영영은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겼는지 맞받아쳤다.
“그래! 이 비천한 년도 너 같은 건 눈에 차지 않거든!”
“이년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야율융진은 갑자기 손을 뻗어 영영을 후려치려 했다.
영영은 새하얗게 질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몸이 굳어져 꼼짝달싹 못 했다.
“영영…….”
유경장은 깜짝 놀라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순간 앞으로 나아가 영영의 앞을 막아 나섰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사람이 있었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에 앉아 있던 육장봉이 재빨리 일어서서 야율융진의 손목을 잡았다.
“대황자, 주나라에 있는 한 주나라의 규칙을 지켜야 하오.”
“무슨 얼어 죽을 주나라의 규칙 말이냐? 내가 규칙을 지키지 않겠다면?”
야율융진은 와락 힘을 썼다. 그러나 육장봉은 그 보다 말라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힘은 전혀 약하지 않았다. 야율융진은 육장봉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대황자가 규칙을 지킬 때까지 매로 다스려야지.”
육장봉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바로 다음, 그는 손을 번쩍 들었다.
쾅!
사람 하나가 휙 날아가는가 싶더니, 곧 커다란 소리가 행화루 밖에서 울렸다.
야율융진은 이렇게 사람들의 눈앞에서 날아가 버렸다.
그가 데려온 부하들은 대경실색했다. 당장 재빠르게 뛰어나갔다.
“전하! 전하!”
“전하……!”
영영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유경장이 받쳐 주지 않았더라면 쓰러졌을 것이다.
육 대장군은 나서지 않으면 몰라도, 나섰다 하면 조금도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었다.
영영은 우르르 나가는 북요인들을 바라보며 불안한 듯이 물었다.
“대장군, 저, 저 무슨 문제는 없겠죠?”
육장봉은 대답하지 않고 돌아서서 나가 버렸다. 영영에게 대답한 사람은 육이였다.
“영영 낭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처음도 아닙니다. 북요 놈들도 익숙해졌을 겁니다.”
“대장군은 참 대단하시구나.”
은타와 기녀들은 입구에 서서 용맹스럽고 당당한 육 대장군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두 눈을 반짝이는 게,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였다.
특히 은타가 육 대장군을 바라보는 눈빛은 열정적이고 거리낌 없었다. 얼굴에는 득의양양함이 은은하게 서려 있었다.
‘이렇게 용맹스러운 육 대장군도 결국 내 치마폭에 감겨들었네.’
“대장군…….”
은타는 육 대장군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당장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마자, 육삼에게 가로막혔다.
“장군께서는 낯선 사람이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나, 난 낯선 사람이 아니야!”
은타는 그녀의 앞을 지나치는 육 대장군을 보고 조급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육삼을 밀쳐 내려고 했지만, 도저히 밀어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화가 나서 육삼에게 언성을 높였다.
“썩 물러나지 못해! 대장군께서 내 몸값을 치르고 속량해 주셨어. 지금부터 난 살아서는 대장군의 사람이고, 죽어서는 대장군의 귀신이 될 거다. 네가 감히 나를 막으면 대장군에게 일러바칠 거야.”
육삼은 은타를 흘겨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은타 등을 막아서서 그녀들이 육 대장군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은타는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육 대장군이 멀어지는 모습을 눈 뻔히 뜨고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어쩐지 마음속에 불안감이 번졌다.
육 대장군이 멀리 가 버리자, 육삼은 그제야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마차를 찾아오더니 은타와 기녀들에게 타라고 했다.
은타는 기분이 언짢았다. 그러나 가까스로 육 대장군이라는 줄을 잡았으니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잔뜩 화난 얼굴로 육삼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두고 보자. 내가 대장군의 총애를 받기만 해봐. 반드시 육삼이라는 저 하인을 혼내 줄 거야.’
은타는 마차에 올라타기 전에 육삼을 한껏 노려보았다. 정작 육삼은 무표정했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득의양양해 했다.
‘흥, 이 하인이 날 감히 어쩌지 못할 줄은 진작 알았지.’
불러온 마차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여덟 사람이 앉자 대단히 비좁았다. 은타는 언짢았지만, 육삼의 차가운 얼굴을 떠올리고 끝내 참고 말하지 않았다.
은타가 화내지 않자, 다른 기녀들도 모두 입을 다물고 내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두 시진쯤 달렸을까. 길이 점점 황량해졌다. 이 광경을 본 기녀들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은타 언니, 어쩐지 이상하지 않아요?”
“은타 언니, 우리 병영에 온 것 같아요. 대장군이 우리를 저택으로 데려가는 거 아니었나요?”
“설마. 대장군이 일 년 내내 병영에 계시니 우리를 병영에 데려온 걸 거야.”
단순한 사람은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었다.
“병영에 왔다고?”
오는 내내 울적해 있던 은타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서둘러 창가에 앉은 기녀를 밀어내고, 차창을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얼굴빛이 점점 더 나빠졌다.
‘이게 아닌데!’
은타가 더 생각할 새도 없었다. 마차가 멈춰 서더니 육삼이 마차의 문을 두드렸다.
“내려!”
은타는 서둘러 마차에서 내렸다. 말끔하고 고운 얼굴에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녀는 절박하게 육삼의 손을 잡았다.
“우,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물론 병영이다.”
육삼은 역겹다는 듯이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은타는 더는 다가가지 못하고 불안하게 물었다.
“우리를 병영에 데려와서 뭐 하려고요? 대, 대장군은 어디에 계시지? 대장군을 만나야겠어요!”
“너희는 이제 대장군의 노비가 되었으니 병영의 잡일을 도맡아야 할 것이다.”
육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병사에게 말했다.
“이 여자들에게 병영의 가장 혹독한 잡일을 배정하거라. 여자라고 봐줄 필요가 없다.”
“알겠습니다, 육삼 장군님.”
병사들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어떤 관리가 재산을 몰수당했나 봅니다. 잡일을 할 만한 여인들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저희가 정말 그런 노역을 시켜도 될는지…….”
육삼은 그녀들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당장 그녀들의 과거를 폭로했다.
“기루 여인들이다. 이자들은 심보가 못돼서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을 모함했다. 대장군께서 의로운 일을 하신 거야. 절대 달아나지 못하게 잘 지켜봐라.”
“으, 은타 언니…….”
이 말을 듣자, 기녀 몇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끝장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