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화 그 여인의 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반면 육장봉은 드물게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합니까?”
“지금은 월 삼낭의 말밖에 없다. 그래서 짐은 사람을 보내 조사해 보고 싶다. 계안아, 네 부하가 청주에 들어가기 어려운 건 안다. 하지만 짐은 네 사람을 청주에 보내 사실 여부를 조사했으면 싶다. 가능하다면 청주의 일을 많이 조사해 보아라. 청주의 그들이 종자를 숨긴 걸 보면, 분명 보통 일을 꾸미는 건 아니란 뜻이다.”
황제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눈에는 살의가 떠올라 있었다.
만약 월 삼낭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황제는 그녀가 가지고 온 종자만이 아니라 그녀가 가져온 정보에 더욱 관심이 많음을 알았을 것이다.
“좋습니다.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조계안의 눈빛이 살짝 깊어졌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종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또한 청주에서 숨기고 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청주에 있는 그들의 야심은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육장봉은 황제와 조계안이 청주에 관한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이것이 해외에서 왔다고 하니, 사람을 시켜 그림을 그리게 하십시오. 출항하는 배편에 보내 해외에 가서 알아보라고 하는 게 어떻습니까.”
“짐도 그럴 생각이다. 월 삼낭이 말한 것처럼 묘당 수확량이 천 근까지는 아니더라도, 먹을 수 있는 종류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주나라의 백성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황제도 마음속에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월 삼낭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월 삼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뻔히 알고 있었다. 물론, 태후가 무슨 속셈인지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좌우지간 모두 그의 용상 옆자리를 넘보고 있었다.
황제가 조계안과 육장봉을 찾은 이유는 월 삼낭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나라와 북요의 비무에 대해 의논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장봉아, 싸움을 코앞에 두고 지휘관을 바꾸는 것은 전장의 금기다. 삼차전에 임시로 네가 나서도 문제가 없겠느냐?”
황제는 북요에서 올린 명단을 보았다. 북요에서는 그들의 주장이었던 노장 신호(申虎)를 부장으로 바꾸었다.
육장봉은 담담하기만 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야율융진의 명성은 북요인들이 허풍을 떤 것입니다. 게다가 그자는 부상을 당한 뒤에는 더욱 신중해져 예전의 용맹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신호가 이(李) 장군과 맞붙는다면, 신은 우리가 삼차전에서 질까 걱정됩니다.”
“북요의 노장 신호도 명단에 있다. 신호는 노련하고 주도면밀하며 수단이 악랄하다. 너는 신호하고 겨룬 적이 없잖느냐. 짐은 네가 고생할까 걱정이구나. 비무의 승패보다도 짐은 네가 무사하기를 바란다.”
북요에서 양국 비무의 명단을 건네자, 황제도 명단의 사람들을 조사해 보았다. 당연히 상대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신호는 워낙 강골이라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주나라에서 처음 선발했던 이 노장군도 신호를 상대로 승산이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이 노장군은 죽을 각오를 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육장봉은 국경에서 북요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으나, 너무 젊고 경험이 부족했다. 신호와 같은 노장과 대적했을 때,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폐하, 야율융진은 자부심이 강하고 오만방자해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신호가 강하게 나올수록 야율융진은 더욱 불만을 품게 될 겁니다. 북요에서 신호를 야율융진의 부장으로 삼은 것은 그들의 큰 실책입니다. 삼차전에서는 신이 반드시 이길 겁니다.”
황제는 알지 못했다. 육장봉은 이미 신호와 겨룬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 번만이 아니었다.
변경에 오기 전에 그의 복부에 입은 상처는 바로 신호가 남긴 것이었다.
십 년 전, 그와 조계안이 북요에 잠입했을 때 바로 신호에게 발각되었다. 그들이 북요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던 것도 역시 신호가 놔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와 신호 사이에는 피맺힌 원한이 있었다.
안 그래도 육장봉은 어떻게 하면 신호를 주나라에서 죽일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이었다. 지금 기회가 왔으니 절대 놓칠 수가 없었다.
조계안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내가 너의 부장으로 나설까?”
황제는 육장봉과 신호의 은원을 모르지만, 조계안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는 육장봉이 신호를 상대하다가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못할까 걱정되었다.
“괜찮아.”
육장봉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강인한 눈에는 아무런 흔들림도 없었다.
조계안은 걱정스러웠지만, 황제의 앞이라 더 묻기도 어려웠다. 그는 황제가 계속 물을까 봐 얼른 화제를 돌렸다.
“참, 황형. 월 삼낭이 청주에서 훔친 종자를 바쳤는데 상으로 무엇을 주렵니까? 태후는 그 여인을 황형의 침상에 올려보낼 계획이었던 것 같은데 조심하십시오. 그 여인의 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황제는 조계안을 노려보고는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짐은 월 삼낭을 잡아들였다.”
“잡아들였다고요? 황형, 농담은 아니시죠? 그 여자는 요염하게 생긴 데다가, 태후가 옆에 끼고서 황형에게 잘 보이게 기회까지 만들어 줬는데요. 무슨 속셈인지 누가 모르겠습니까. 태후가 그렇게 애를 써서 겨우 적당한 사람을 찾았는데, 어찌 월 삼낭을 잡아 가두게 가만있었습니까?”
공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으므로, 조계안은 나른하게 의자에 기대었다.
황제는 살짝 차가워진 얼굴로 불쾌해서 말했다.
“월 삼낭이 가져온 종자는 해외의 것인데 시박사에 등록하지 않았다. 이건 분명 조정의 율법을 위반한 것이다. 짐이 왜 가두지 못한단 말이냐?”
“태후가 뭐라고 하지는 않던가요? 월 삼낭이 그래도 공을 세운 셈이니 태후가 감싸기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요.”
조계안은 아무렇게나 손에 들고 있던 과일을 도로 던졌다.
황제는 뚱한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짐이 유씨 가문 낭자를 골라 입궁시키라고 했다.”
태후는 월 삼낭을 지키려고 했지만 황제의 태도가 단호함을 보고 양보했다.
태후가 한 걸음 물러섰으니 그도 당연히 답례해야 했다.
“비를 들이기로 했습니까?”
조계안은 짓궂게 웃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가 적장자를 낳았으니 태후가 유씨 가문 낭자를 입궁시키려고 하면 들어 주어야지.”
황위를 노리지 않는 한 그는 항상 너그러웠다.
태후는 유씨 가문의 장래를 걱정했다. 그렇다면 황제는 태후가 더는 월 삼낭 같은 인물을 들이지 않도록, 마음을 놓을 수 있게 해야 했다.
“황형은 진작에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일찌감치 유씨 가문 낭자를 비로 맞아들였으면, 월 삼낭의 일은 생기지도 않았을 거예요. 태후가 월 삼낭을 보호하지 않겠다니 그럼 제게 맡기세요. 제가 심문할 겁니다.”
조계안은 얼굴에 얄미운 미소를 띠었으나, 중요한 일은 잊지 않았다.
황제가 막 승낙하려 할 때였다. 이반반이 서둘러 뛰어 들어왔다.
“폐하, 월 삼낭이 말하기를 월씨 가문이 해외에 금광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폐하를 직접 만나야만 금광의 위치를 말하겠다고 합니다.”
“금광이라고?”
황제가 미처 말하기도 전에 조계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황형, 저 여인은 모조리 거짓말뿐입니다. 절대 믿지 마세요. 저에게 맡겨 주시면 무슨 비밀이든 전부 이실직고하게 만들 겁니다.”
이반반은 고개를 숙이고 한마디 덧붙였다.
“폐하, 월 삼낭은 월씨 가문이 청주에 금을 숨겼다고 했습니다. 월령안이 애초에 황금당의 살수를 고용할 때 그 금을 썼다고 합니다. 폐하께서 믿지 못하시겠거든, 먼저 청주에 있는 금의 위치를 알려줄 수 있답니다. 하지만 금이 아직 남아 있는지, 없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조계안은 아차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황형, 그 여인을 믿지 마십시오.”
‘월 삼낭은 때려잡아도 죽지도 않는 빈대인가? 또 신세를 고치려는 건가?’
“됐다. 이 일은 짐이 결단을 내릴 것이다. 너는 청주의 일이나 처리하려무나. 짐은 북요의 사신이 변경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황제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조계안을 먼저 보내려 했다. 그리고 다시 육장봉에게 말했다.
“맞다, 장봉아. 낮에 대전에서 야율융진이 기루에 가겠다고 했잖느냐. 짐은 그들이 성안에서 소란을 피울까 걱정이다. 짐을 대신해 잘 지켜보거라. 우리 주나라는 대국이고, 예의를 숭상하는 나라답게 손님을 환대해야 한다. 하지만 그 손님들이 주나라 영역에서 함부로 구는 것은 절대 허락할 수 없느니라.”
“신, 어명을 받습니다.”
육장봉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에게 예를 올리고 먼저 물러갔다.
황제는 월 삼낭이 말한 금광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충고를 듣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육장봉, 기다려라. 나도 갈 거야.”
조계안은 육장봉이 한마디도 말리지 않자, 황제를 흘끔 보고는 그를 쫓아 나갔다.
“육장봉, 넌 무슨 생각이야? 월 삼낭, 그 여인은 월령안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어. 만약 그 여인이 다시 살아나면 월령안이 위험해질 거다. 알고 있어?”
“그 여인이 가지고 있는 비장의 패가 너무 많아서 막을 수가 없어. 게다가…….”
육장봉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단호한 눈빛 속에는 음산한 살의가 서려 있었다.
“적이 갑자기 죽기를 기다리느니, 모든 적을 짓누를 수 있을 만큼 자기가 강해지는 게 더 나을 거다.”
조계안은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너 양국 비무를 치를 때 신호를 죽이려고 작정했구나.”
“물어볼 필요가 있나?”
육장봉은 돌아서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놈을 죽이려는 네 결심이 이렇게까지 강렬한 줄은 몰랐지.”
조계안은 빠른 걸음으로 육장봉을 뒤따랐다.
“대전에서 갑자기 손을 써서 야율융진을 대전 밖으로 내던진 거, 야율융진을 도발해서 명단을 바꾸게 한 거. 전부 신호를 죽이기 위한 것이었군. 그렇지?”
“십 년 동안 그놈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육장봉은 눈을 감아 광기 어린 살의를 감췄다.
그는 십 년 전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떠올리는 순간마다, 모든 걸 파멸시키고 싶었다.
* * *
육장봉은 성큼성큼 궁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옷자락은 걸음에 따라 휘날리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신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노니는 듯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온통 음울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온몸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나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길을 가던 금군 병사들과 내관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다가가서 예를 올리기는커녕,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가 멀어지고 나서야, 그들은 겨우 고개를 들었다.
“아이고, 세상에. 대장군이 웬일로 저렇게 무섭게 구신대? 대장군이 저렇게 화를 내는 걸 본 건 승전하고 돌아오신 날 이후로 처음인데.”
“기세가 너무 소름 끼치는데. 왜 싸울 수 있는 북요인들은 다들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고 했는지 알 것 같구먼. 만약 나였다면 대장군과 겨루기는커녕, 말만 걸 수 있어도 대단한 거였겠지.”
내관들은 한데 모여서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하지만 금군은 감히 모여서 소곤거리지도 못했다. 그들은 옆 사람과 한 번씩 마주 보았다. 약속이나 한 듯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지금 대장군이 금군을 관리하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 그들은 고생깨나 했을 터였다.
‘오늘따라 대장군이 너무 무시무시한데!’
육장봉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서 마음속의 폭주할 것 같았던 기운을 가라앉혔다. 적어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