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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96)화 (396/1,004)

396화 대장군, 위풍당당하십니다

“젠장,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매를 버는구나!”

문관들은 분노만 했지만, 무장 중 하나는 참지 못하고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들려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그를 잡아당겼다.

“두(杜) 장군, 여긴 대전일세. 소란을 피우지 말게.”

싸우려던 무장은 황제를 살짝 올려다보더니 잠깐 멈추고 씩씩거리며 손을 내렸다. 하지만 야율융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발했다.

“싸우려고? 자, 그럼 내게 한번 보여주시오. 주나라의 사내들이 모두 약골인지 아닌지 좀 봐야겠소.”

“싸우면 싸우는 거지. 내가 네놈을 두려워할 것 같으냐!”

그 무장은 자기가 야율융진의 적수가 아님을 알면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죽게 놔둘 수는 없는지라, 기어이 막아 나섰다.

“두 장군, 자네를 일부러 도발하는 걸세.”

“이거 놓으시게! 내가 오늘 저놈을 때려눕히지 못하면 성을 갈겠네!”

격노한 무장은 동료들의 저지를 무릅쓰고 몸부림을 쳤다.

야율융진의 눈에는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바로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덤비시오. 오늘 내가 기회를 주겠소. 당신네 주나라 무장들에게 됨됨이를 가르쳐 드리리다.”

황제는 줄곧 냉정하게 방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안색이 조금 차가워졌다.

야율융진의 이 말 때문에라도, 주나라는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져서는 절대 안 되었다.

황제는 힘이 넘치는 야율융진의 근육을 힐끔 보았다. 그리고 두 장군을 보았다. 단련을 소홀히 한 탓에 살이 쪄서 퉁퉁한 몸매를 보고는 마음속으로 탄식하고 말았다.

굳이 겨뤄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두 장군은 절대 야율융진의 적수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와 세 수 이상을 겨루기도 힘들 것이다.

황제는 입을 열어 이 불필요한 기 싸움을 무마하려고 했다. 이때, 한쪽에 서서 시종일관 입을 열지도 않고, 야율융진을 안중에 두지도 않던 육장봉이 일어섰다.

“싸울 거라면 내가 상대하겠다.”

황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살짝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찌푸렸던 미간이 펴지며 얼굴에는 미소까지 떠올랐다. 앞으로 기울였던 몸도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장봉이가 나섰으니 그냥 구경만 하면 되겠군.’

“육장봉!”

야율융진의 시선은 당장 육장봉에게로 옮겨 갔다. 그다음 그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쓸데없는 말을 이렇게 늘어놓은 것은 바로 육장봉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였다.

주나라에서는 육장봉을 제외하면, 누구도 그의 적수가 될 자격이 없었다. 오직 육장봉을 이겨야만 그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었다.

주나라의 대전은 바로 그가 육장봉을 위해 고른 싸움터였다.

“싸울 건가?”

육장봉은 담담한 표정으로 한 손을 뒷짐 지고 있었다. 야율융진을 아예 안중에 두지 않는 태도였다.

“여기서 싸울 셈이냐?”

야율융진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당장 공격할 자세를 잡았다.

“저들을 물러가라 하고 자리를 비우는 건 어떠한가?”

“필요 없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육장봉이 앞으로 돌진했다. 야율융진도 달려들더니 쇠몽둥이 같은 팔을 들어 육장봉을 내리쳤다.

하지만 그는 육장봉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육장봉이 언뜻 사라지나 싶더니 어느새 바로 그의 뒤에 나타났던 것이다.

야율융진이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육장봉은 한 손을 들어 자신과 키가 비슷하고 덩치가 반은 더 큰 그를 들어 올리더니 냅다 던져 버렸다.

쾅!

야율융진은 허공을 날아 밖의 계단에 떨어지더니, 강력한 충격의 여파로 계단에서 나뒹굴었다.

쿵쿵쿵!

대전 안에 있던 모두는 근육으로 이루어진 몸뚱어리가 계단에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을 동반한 욕설을 들을 수 있었다.

“육장봉, 이 비열한 소인배!”

“전하.”

“전하!”

“당신네 주나라는……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는 게 아닌가!”

북요 사절단의 부책임자인 상장군 소영화가 당황해서 소리치며 대전을 재빨리 뛰쳐나갔다.

북요의 다른 사신들도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일제히 대전에서 나가 야율융진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북요의 사신들이 나가 버리자, 대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육장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줄곧 진중하고, 남 앞에서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장 부승상도 순간 아연실색했다. 자신이 본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거대한 체구의 야율융진을 들어 아무렇게나 올려 병아리를 던져 버리듯 대전에서 내던지다니.

‘육장봉은 도대체 힘이 얼마나 센 거야?’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말자.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쫙 나네.’

‘무시무시하군!’

한차례 놀라움이 지나가자, 대전의 신하들은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그러다 보니 벌린 입은 다 다물어졌지만, 감히 입을 다시 여는 사람도 없었다. 숨마저도 조심스럽게 쉬다 보니, 온 대전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적막했다.

대전을 가득 메운 대신들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였다. 최일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서 육장봉에게 공수하고 웃는 듯 마는 듯하며 말했다.

“대장군, 평소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가 입을 열자,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렸다. 특히 얼마 전에 육장봉을 탄핵했던 어사 몇몇은 덩달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대장군, 평소엔 관대히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육 대장군이 괴력을 타고났으며, 자신보다 더 건장한 남자를 아무렇게나 내던질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

만약 어느 날 육 대장군이 언짢으면, 그들을 내던지는 것쯤은 장난이 아니겠는가.

이 순간 그들은 육 대장군이 그래도 도리를 지키는 사람임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는 탄핵당했지만, 주먹 대신 말로 따졌던 것이다.

“그, 그렇지. 대장군, 평소에 많이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른 문관들도 뒤이어 정신을 차리고 너도나도 우스개로 한마디 했다.

반면, 무장들은 농담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 모두는 두 눈을 반짝이며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에게 어떻게 저런 힘이 있는지 알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대장군, 위풍당당하십니다.”

어느 무장이 소리쳤다. 이 소리를 들은 황제도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짐의 대장군이 정말로 위세가 대단하구나.”

지금 황제의 심정은 마치 칠월의 무더운 날씨에 얼음 한 개를 입에 머금은 듯 시원했다.

‘장봉이의 이 공격은 참 시원하구나. 속이 다 후련하네. 싸우긴 뭘 싸워. 싸워 이기더라도 밉살스러운 야율융진을 내던지는 것만큼 나라의 위엄을 떨치진 못할 텐데!’

“대장군, 위풍당당하십니다.”

황제가 인정하자, 다른 무장들도 따라 외쳤다.

“대장군, 위풍당당하십니다.”

최일 역시 웃음을 머금고 한마디 외쳤다.

육장봉은 오늘 시종일관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 행동 하나로,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육장봉은 확실히 위풍당당했다.

“대장군, 위풍당당하십니다.”

야율융진은 소영화의 부축을 받으며 어렵사리 대전에 들어섰다. 그때 육장봉을 칭찬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듣게 되었다.

야율융진은 험상궂은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육장봉!”

그의 외침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중단되었다.

조금 전, 흥분해서 싸우려다 동료에게 붙들려 손을 쓰지 못한 두 장군이 눈을 들더니,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대황자였군. 왜, 더 싸우려는 거요? 우리 주나라 사람들에게 당신네 북요 용사들이 얼마나 잘 구르는지 보여주게?”

야율융진은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대신 사나운 눈빛으로 육장봉을 노려봤다.

“육장봉, 사내라면 정면 승부를 하자! 기습하는 게 무슨 재주란 말인가?”

“정면 승부란 게 무엇인가?”

육장봉의 표정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평온했다. 대전에 울려 퍼지는 환호성 때문에 들뜬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당신네 북요 사람들은 손을 쓰기 전에 ‘미안하지만 한 번 때리겠다’라고 말하나?”

“아까 네놈은 그냥 기습했을 뿐이잖나!”

야율융진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예전에 그는 북요에서 주나라가 승리한 건 자기 지병이 발작하여 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가 전장에서 지휘했다면 육장봉은 틀림없이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소문을 계기로, 그는 북요에서 명성을 떨쳤고 많은 용사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 주나라와의 협상이 진행되며, 그가 총책임자를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때마침 공교롭게도 지병이 또 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치욕을 씻으려고 자청해서 나선 야율제를 총책임자로 내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야율제가 주나라에서 너무 날뛰는 바람에 일을 그르쳤다. 마침 그의 지병도 거의 다 나았기에 구실을 대고 회피하지 못했다. 결국 총책임자라는 신분으로 주나라에 오게 되었다.

그는 주나라에 왔을 무렵에는 궁리를 끝냈다.

‘대전에서 육장봉을 도발하여 그놈이 손을 쓰게 한다. 그리고 싸우는 과정에서 주나라의 대전을 계속 부순다. 육장봉은 대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손발이 묶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가 육장봉을 이기든 말든 상관없었다. 승자는 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육장봉의 행동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맞붙는 순간, 그를 내던져 버림으로써 공격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그는 반드시 다시 한번 육장봉과 싸워야 했다. 그러지 못하고 그냥 떠나게 되면 무슨 낯으로 북요에 돌아가겠는가.

반면, 육장봉은 그의 허튼짓에 어울려 줄 생각이 없었다. 야율융진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한 번 더 싸우더라도, 그가 이기면 막무가내인 야율융진의 성격으로 봐서는 여전히 구실을 찾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야율융진이 승리할 때까지 또다시 싸우려고 할 것이다.

야율융진은 그의 적수가 아니었다. 사 년 전 전장에서 둘이 처음 접전했을 때, 야율융진은 이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야율융진이 입을 열기 전에 육장봉이 한발 앞서 말했다.

“대황자께서 나와 정정당당하게 일전을 펼치려면, 삼차전 비무의 주장(主將)을 대황자와 나로 바꾸면 될 것이오.”

“육장봉, 감히 나와 정면으로 맞서지는 못하겠다는 건가. 일부러 구실을 대서 회피하지는 마시지.”

야율융진은 전장에서 다시 육장봉과 겨루고 싶지 않았다.

사 년 전, 전장에서 육장봉의 칼에 상처를 입고 지병이 재발하자, 전장에서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비록 강해졌지만, 육장봉의 실력도 퇴보하지 않았다. 그는 육장봉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삼차전 실전. 싸우려면 싸우고 싫으면 입 다무시지.”

육장봉은 단호하게 말했다.

야율융진은 도발을 애용했지만, 그만큼 본인도 쉽게 도발에 넘어갔다. 육장봉이 도발하자, 그는 얼떨결에 허락했다.

“싸우자면 못 싸울 줄 아느냐.”

“전하.”

소영화는 이 일을 저지해야 했다. 야율융진에게 진정하라고 말하려 했으나 늦고 말았다.

육장봉은 돌아서서 예부상서에게 말했다.

“대황자의 말을 못 들었소? 명단을 수정하시오.”

“먼저…….”

야율융진이 정신을 차리고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던 순간이었다. 입을 열자마자 육장봉이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대황자, 두렵소?”

야율융진의 머리보다 입이 훨씬 빨리 반응했다.

“내가 어찌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야율융진은 말을 뱉은 순간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을 도로 퍼 담을 수도 없었다. 육장봉도 그에게 발언을 취소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대황자의 말을 못 들었느냐? 얼른 고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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