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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95)화 (395/1,004)

395화 북요 사절단의 접견

월령안이 돈으로 북요, 금나라의 관리를 매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주나라의 관리도 매수할 수 있을 것이다.

조계안은 눈을 반짝였다.

“황형, 정말 끼어들지 않을 거죠?”

황제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경고했다.

“너도 끼어들지 마라.”

“제가 끼어들 게 뭐가 있다고요? 북요의 그 상장군은 친필 편지로, 자기와 소함연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고 인정했습니다. 또한 직접 공당에 나가 증언하겠다고 했고요. 황형,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절대 끼어들지 않을 겁니다.”

조계안은 심술궂은 표정으로 황제에게 마지막 한 방을 먹였다.

황제는 얼굴을 돌리고 부자연스럽게 말했다.

“계안아, 이 일은 네가 처리해라. 짐은 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구나.”

어찌 되었든 소함연과 육비우의 혼사는 그가 내린 것이었다. 만약 소함연이 북요의 귀족과 친밀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 폭로되면, 체면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예전에 유칙에게도 암시했다. 그러나 유칙의 겁먹은 모습을 보아하니, 도움도 안 되고 압력을 이겨내지도 못할 인물이었다.

“황형, 분명 끼어들지 말자고 하셨잖아요?”

조계안의 얼굴이 금세 차가워졌다.

“황형,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만은 인정해야 합니다. 월령안이 없었다면 청희 장공주가 격노하여 황성사를 동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희 장공주가 황성사의 사람을 쓰지 않았다면, 황형도 황성사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황성사를 다시 쓸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요. 그랬더라면 암황령도 영영 찾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암황령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월령안의 공로도 있습니다.”

“지금 월령안에게 상이라도 내리라는 소리냐? 월령안에게 무슨 공로가 있단 말이냐? 기껏해야 소란 피우기를 좋아하는 것뿐이 아니냐.”

‘우연히 얻어걸린 걸 가지고 무슨 공로 타령인가. 계안이가 그야말로 월령안에게 중독된 것 같군.’

조계안은 어두운 얼굴로 엄숙하게 말했다.

“잘못이 있으면 벌을 주고, 공로가 있으면 상을 내려야죠. 월령안이 신경을 썼든 안 썼든 간에, 결과적으로 공을 세운 셈이 아닙니까. 다른 건 저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소씨, 월씨 두 가문의 사건은 끼어들지 마십시오. 월령안을 좀 공평하게 대해 주세요, 네?”

“짐이 언제 다른 일에 끼어든 적이 있더냐?”

그는 단지 추문 하나를 덮어 감추려는 것뿐이었다. 그게 어찌 월령안에게 공평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조계안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종실 사람을 보내 공당에 가지 말고, 소영화에게 찾아가 물어보라고 하시지요. 만약 사실이라면 황형도 결단을 내려야 할 겁니다.”

“됐다, 됐어. 네 말을 들으면 될 거 아니냐.”

소함연과 정분이 났다는 그 북요 귀족의 이름은 소영화였다. 황제는 결국 조계안에게 질 수밖에 없었다. 퉁명스럽게 허락했다.

“감사합니다, 황형.”

목적을 달성한 조계안은 황제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곧 긴 팔을 쭉 뻗어 암황령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벌떡 뛰어 일어나 황제에게 손을 흔들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황형도 일찍 주무세요.”

“참 다 큰 어른이 되어서는.”

황제는 우스운 듯 고개를 저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그의 친아우이니 오냐오냐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위에 쌓인, 아직 결재하지 않은 공문들이 얼핏 보였다. 그래도 조계안이 떠나기 전에 한 말이 떠올라, 결국 책상 앞으로 가는 대신 난각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내일은 북요 사신을 접견해야 했다. 확실히 일찍 쉬면서 기운을 차릴 필요가 있었다.

“폐하.”

이반반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황제가 나오자 당장 허리를 굽히고 다가갔다.

“태후 마마께서 저녁 무렵에 사람을 보내 전갈하셨습니다. 태후 궁의 사람이 신기한 음식을 가져왔는데 아주 맛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여, 내일 점심때 폐하와 함께 수라를 들고 싶다는 전갈입니다.”

“알았다.”

황제와 태후의 관계는 그래도 친한 편이라, 가끔 함께 수라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태후가 먼저 초대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황제는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그래도 승낙했다. 태후의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참, 그렇지. 태후궁의 그 월 삼낭은 조용히 지내느냐?”

황제는 요즘 너무 바빠 하마터면 월 삼낭을 잊을 뻔했다. 이반반이 태후를 거론하니 비로소 그녀를 떠올렸다.

“그렇게 조용하지 않습니다.”

이반반은 쓴웃음을 지었다.

“태후 마마께서 말씀하신 신기한 음식은 바로 월 삼낭이 내놓은 것입니다. 월 삼낭은 요즘 기발한 물건들을 많이 내놓아 태후의 총애를 크게 받고 있습니다. 태후를 모시는 이들의 말에 따르면, 태후께서 월 삼낭을 수양딸로 맞아들일 생각이라고 합니다. 월 삼낭을 위해 황궁에서 연회를 열고, 수도에 있는 귀부인들에게 소개하려고 한답니다.”

“월 삼낭이 정말로 재주가 좋구나. 그러니 장 부승상이고 월령안이고 모두 그 여인의 손에 졌지.”

황제는 금세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런 사람을 더는 남겨둬서는 안 되겠군!’

* * *

북요 사절단은 대황자 야율융진을 총책임자로, 상장군 소영화를 부책임자로 삼았다. 또한 사신과 용사 몇몇과 함께, 오백여 명의 큰 사절단을 구성했다.

하지만 입성한 사절단은 백 명도 안 되었다. 나머지 사백여 명은 성 밖에 남게 되었다.

그 사백여 명은 이번 양국 비무에 참석하는 북요 용사로, 모두 대단히 용맹스러웠다. 그들은 법에 따라 성 밖에 주둔했다.

삼황자 야율헌일과 오공주 야율아한은 사절단 명단에 포함됐지만,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사절단을 따라 놀러 온 셈이었다. 그러니 협상 임무를 지고 있지 않았다.

조회 접견 시에도 북요 삼황자와 오공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직 야율융진과 소영화만이 북요를 대표하여 문관을 거느리고 나타나, 황제에게 협상을 위한 국서를 제출했을 뿐이었다.

대황자 야율융진은 거칠고 우람한 체구를 자랑했다. 온몸이 근육으로 다져져 무척 용맹해 보였다.

그의 이목구비는 뚜렷했으며, 특히 눈매가 매서웠다. 또한 구레나룻으로 뒤덮인 얼굴은 야성이 흘러넘쳤다. 겉으로 보면 한 나라의 황자가 아니라, 오히려 전장의 도살자 같았다.

황제는 야율융진을 접견할 적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주나라와 북요는 사 년 넘게 싸웠다. 처음에는 대황자 야율융진이 군사를 거느렸었다. 그러나 두 나라의 군대가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유감스럽게도 야율융진의 지병이 재발했다. 그는 수도에 돌아가 휴양할 수밖에 없었다.

야율융진은 떠나기 전에 병권을 자신과 같은 일파인 전임 남원대왕 야율제에게 넘겨주었다.

야율제가 육장봉에게 패한 뒤, 북요에서는 한동안 이런 소문이 돌았다. 만약 야율융진의 고질병이 재발하지 않았다면 북요는 절대 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바로 이 때문에 북요는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설사 항복했다 해도 협상을 통해 체면을 되찾으려 했다.

양국 장병들의 비무는 바로 북요에서 제안한 것이었다.

처음에 주나라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승전했으므로 이긴 것이었다. 이긴 뒤에 또 겨룰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능력이 있으면 싸움터에서 실력을 보이면 그만이다.

북요에서는 주나라의 동의를 얻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다.

첫째, 주나라에서 잡아간 평민 만육천여 명을 석방한다.

둘째, 북요 공주는 화친을 위해 주나라의 귀인(貴人)과 혼인한다.

셋째, 북요 황자를 주나라에 인질로 보낸다.

주나라와 북요가 여러 해 동안 싸웠지만, 주나라의 공주가 북요로 시집간 일은 있었어도 반대는 없었다. 북요가 공주를 주나라에 시집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는 주나라에게 있어 역사적인 승리였다. 승낙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더욱이 북요가 잡아간 주나라의 백성을 석방하겠다는 약속까지 얻어냈다. 그 만여 명의 백성을 위해서라도 승낙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양국의 비무가 정식으로 결정되었다.

야율융진은 이번에 황제를 알현하며, 양국이 사전에 협의한 국서를 전달해야 했다. 그 외에도 양국 장병의 비무 시간을 결정하고, 참석 인원의 명단을 교환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은 사전에 협의된 것이었다. 황제도 야율융진을 난처하게 하지 않아, 국서를 교환하는 과정은 아주 순조로웠다.

양국 장병의 비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나라 모두 사전에 준비를 끝낸 터였다. 북요에서 비무자 명단을 넘기자 주나라에서도 비무자 명단을 북요에 넘겨주었다.

이번 비무는 총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개인 경기. 양국은 각기 아홉 명의 용사를 파견해 일대일로 겨룬다. 다섯 경기에서 이기면 최종 승리한다.

수렵 경기. 양국은 각기 백 명의 병사를 깊은 산에 보내 사흘을 단위로 하여 사냥감과 최종 생존한 병사의 숫자로 승부를 결정한다. 사냥감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으므로, 단순히 수량만으로는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나라에서도 이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

맨 마지막은 실전 경기. 양국에서 각기 삼백 명의 병사를 파견하여 변경 교외의 밀림을 싸움터로 삼는다. 시간은 무한정으로, 한쪽이 항복하거나 전멸할 때까지 싸우기로 했다.

비무 방식은 북요에서 제기했고, 비무 장소는 주나라에 두었다. 이는 공정함을 위한 절차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사전에 합의된 사항이었다. 양국 모두 이견이 없었다. 인제 와서 이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양보할 수 없었다.

명단을 교환한 뒤, 병부상서는 예의를 차리느라 한마디 물었다.

“귀국 장병들께서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휴식 시간으로는 사흘로 충분한지요? 만약 충분하다면, 비무 시작을 사흘 뒤로 정하겠습니다. 전하의 의견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이 대전에서 유일하게 의논해야 할 게 바로 비무 시각이었다. 시간만 정해지면 나머지는 전부 양국 비무에 따라 진행될 것이었다.

“사흘 뒤로 정하는 데는 이견이 없소. 우리 북요의 병사들은 당신네 주나라 병사와는 다르지. 우리에게는 휴식 시간이 필요 없소. 우리 북요 용사들은 모두 용맹하고, 기운도 넘쳐나지. 오는 내내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기만 했소이다. 이만한 여정은 우리 북요 무사들에게 있어서는 고생이라고 할 수도 없소.”

야율융진은 대전에 들어설 때부터 공격성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사전에 합의된 터라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가 화풀이하려고 해도 기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패전국이고, 이곳은 주나라의 영역이었다. 아무리 내키지 않더라도 참아야만 했다.

그래서 북요 대황자는 어렵사리 잡은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병부상서는 그 말을 듣고는 거짓 웃음을 짓느라 입꼬리만 실룩거릴 뿐, 상대하지 않았다.

‘싸움에서 패한 놈과 무슨 쓸데없는 말싸움을 하겠나!’

하지만 야율융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거드름을 피우며 육장봉부터 시작해 병부상서까지 경멸조로 훑어보았다. 눈에는 사악한 기운이 흘렀다.

“우리 병사들은 오는 내내 줄곧 참기만 했소. 그들이 잘 적응하게 당신네 주나라 여인들이 좀 도와주어야 할 거 같소이다. 듣자 하니 주나라 기루의 기녀가 아주 유명하다고 하던데, 우리가 그네들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모르겠소. 물론, 돈은 충분히 지불할 수 있소이다.”

“뻔뻔스럽군!”

“무례하오!”

“대황자, 말조심하시오.”

대전에 있던 신하들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그중 예부상서와 병부상서의 안색이 가장 어두웠다. 황제의 안색도 매우 좋지 않았다.

모두가 분노하자 야율융진은 오히려 더 기뻐했다.

“왜 그러시오? 주나라 기루의 여자들은 장사하려고 나온 게 아닌가? 따지고 보면 내가 돈을 내겠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쪽을 매우 존중한 거요. 이거 아시려나. 우리 북요의 용사들은 당신네 주나라 여인들과 잠자리를 같이하면서 돈이라고는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소! 또한 그네들의 남편들이 우리를 푸짐하게 접대하게 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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