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화 황성사의 부활
소씨 가문 대공자의 혼롓날. 소씨 저택은 등롱을 달고 오색 천으로 장식해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띠었다. 혼례 날짜를 서둘러 정하고 촉박하게 치렀지만, 그래도 축하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찾아온 손님들은 모두 빈손으로 오지 않고 후한 선물을 가지고 왔다.
그들은 문지기에게 선물을 건네 기록을 마친 뒤, 하인의 안내를 받아 자리로 갔다. 그러나 시종일관 소씨 가문의 주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찾아온 손님들은 전혀 뜻밖으로 여기지 않고 여전히 즐거워했다.
소씨 가문 집사는 입구에 서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서는 손님들을 지켜보았다. 얼굴의 미소가 점점 굳어지더니 거의 무너질 정도에 이르렀다.
혼례 시각까지는 아직 일각이 남았다. 그러나 찾아온 이들은 품계가 낮은 사람들뿐이었다. 육부의 총책임자는 고사하고, 육부의 시랑(侍郞 – 육부 총책임자의 부관) 중에서도 찾아온 사람이 없었다. 기껏해야 집사를 통해 선물을 보내는 정도였다.
‘사람들이 너무 현실적이구먼.’
소 승상이 벼슬을 그만둔 지 지금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이다. 소씨 가문 대공자가 혼례를 치르는데도 하객 중에 소 승상의 문생(門生 – 여기서는 소 승상이 과거 시험을 주관했을 때의 급제자를 가리킴)을 빼면, 오품 이상의 관리가 한 명도 없었다.
이 일이 알려지면 남들이 소씨 가문을 얼마나 비웃을지 몰랐다.
소씨 가문 집사는 근심스러운 기색을 보이다가 끝내 참지 못했다. 다른 하인에게 그 자리를 맡기고, 본채로 소 승상을 찾아갔다.
“나리, 오늘 찾아온 손님들은…….”
“됐다, 다 알고 있느니라. 나를 부축해라.”
소 승상은 손을 들어 집사의 말을 끊어 버렸다. 그러더니 집사의 팔을 잡고 겨우 일어섰다.
여러 날 몸조리한 덕에 소 승상의 상처도 많이 나았다. 그러나 의원은 여전히 소 승상에게 일어나 걷지도 말고, 과로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평소에는 늘 의원의 분부에 따라 건강을 몹시 챙기던 소 승상이었지만, 이번에는 의원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의원에게 강력하게 요구해, 사람들 앞에서 걸어 다닐 수 있게 진통제를 처방하게 했다.
오늘은 그가 퇴직한 다음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날이었다. 그는 쇠잔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특히 이런 때일수록 몸이 못 버티는 걸 보여주어서는 안 되었다. 억지로 버티는 한이 있더라도 원기 왕성하고, 몇십 년은 끄떡없을 듯한 정정함을 보여주어야 했다.
소 승상은 짙은 붉은색의 비단옷으로 바꿔 입고 얼굴에도 분을 좀 발랐다. 촛불 아래 드러난 얼굴에는 제법 생기가 돌아 보였다.
집사의 부축을 받으며 소 승상은 유유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얼굴에는 적절한 미소를 띠어 점잖음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
그가 앞뜰에 나타나자, 하객이 모두 일어나 소 승상에게 인사했다.
“승상, 축하드립니다!”
“오진(吳眞) 오 대인, 와 줘서 감사하네.”
“초용(肖用) 초 대인.”
소 승상은 일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또한 사람을 지나칠 때마다 그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렀다.
몇몇이 용감하게 앞으로 나서더라도 소 승상은 화내지 않았다. 웃으면서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가 하면, 심지어 상대방의 한두 가지 일화를 말하기도 했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과분한 대우에 놀라는 한편 감격해 마지않았다.
소씨 가문 잔치에는 중요한 대신이 찾아오지 않았지만, 손님과 주인이 모두 즐거워하는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썰렁하거나 몰락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 * *
조계안은 황성사에서 온종일 인명부와 공문을 보느라 피로한 나머지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가면을 벗어 던지고 미간을 문질렀다.
문득, 오늘이 바로 소 승상 아들의 혼롓날임을 떠올렸다. 가면을 다시 쓰고 부하를 불렀다.
“소씨 가문의 잔치에 삼품 이상의 관리는 누가 참석했느냐?”
“없습니다, 대인. 소 승상의 문생 몇을 제외하면,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의 관직은 오품을 초과하지 않습니다. 몇몇 대인이 하인을 시켜 예물을 보낸 정도입니다.”
소 승상은 암부에서 중점적으로 감시하는 관리였다. 그의 아들이 혼례를 치르자, 암부에서는 이미 사람을 파견해 감시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주 순식간에 돌아섰구나.”
조계안이 비웃었다.
“소 승상의 상태는 어떠하더냐?”
“소 승상은 부축을 받아 걸어 다녔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하객들과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잔치를 제법 떠들썩하게 치렀습니다.”
물론, 그 하객 중에 중요한 손님은 없고, 오직 소식이 느린 별 볼 일 없는 인물만 모였다는 사실을 뺀다면 말이다.
“소씨 저택을 지켜봐라.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조계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하게 분부했다.
소씨 가문은 이미 지는 해에 불과했다. 이변이 없는 한, 이번이 소씨 가문이 마지막으로 누리는 성황일 것이다.
조계안은 황성사에 온종일 머물며 공무를 보았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일이 많았지만,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손을 저어 부하를 물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갔다.
그때 문을 나서자마자 누군가 길을 막아 나섰다.
“대인!”
“너는 문지기가 아니냐?”
이자는 황성사의 하찮은 인물이었다. 조계안이 매일 들락날락한다 해도, 그의 앞에 얼굴조차 내밀지 못할 존재였다. 그러나 조계안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소인에게는 일찍이 관산(關山)이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조계안을 막아선 절름발이 노인은 평소 주눅 들었던 모습에서 벗어나 있었다. 대단히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이었다.
“관산이라고? 너는…….”
조계안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사람들 틈에 던져두면 쳐다보지도 않을, 눈앞의 평범한 절름발이 노인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네. 소인은 암부의 관산으로, 옛 주인님의 사사입니다.”
절름발이 노인 관산이 조계안에게 선뜻 대답했다.
“설마 황숙께서 아직 살아 계신단 말이냐? 어디 계시지?”
조계안의 눈은 이상할 정도로 빛을 뿜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담담했다.
“모릅니다. 저도 십 년 전에 옛 주인님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관산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그럼 어째서 지금 나타났느냐?”
조계안은 순간 찬물 한 대야를 머리에 뒤집어쓴 듯했다. 마음속 기대가 모두 씻겨 내려간 것처럼 느껴졌다.
황숙의 소식이 끊기면 암황령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조계안이 실망한 바로 그때, 관산은 나무함을 꺼내 그의 앞에 올렸다.
“옛 주인님께서 떠나기 전에 분부하셨습니다. 젊은 주인께서 황성사를 다시 움직이시거든, 이 물건을 가져다주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암황령……?”
조계안은 나무함을 열어 그 안에 든 영패를 보았다.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암황령이 줄곧 네 손에 있었단 말이냐?”
“네.”
조계안이 화낼 것을 알면서도, 관산은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 정말 잘 숨겼구나.”
조계안의 눈에 순간 살의가 스쳐 지나갔다. 지금 온몸에서는 음침하고 차가운 기운이 확 풍겼다.
십여 년 동안 찾아다녔던 암황령이다. 암황령을 찾으려고 수많은 사사를 북요에 파견했고, 수많은 고수를 북요에서 잃었다.
그러나 암황령은 변경, 바로 그의 눈앞에 있었다.
“옛 주인님의 명령을 저버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관산은 조계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평온한 말투에는 아무 기복이 없었다.
조계안은 암황령을 움켜쥐었다. 관산의 말을 떠올리고 마음속 노기를 억눌렀다. 그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암황령 말고, 황숙이 따로 분부한 일은 없느냐?”
“옛 주인님께서 젊은 주인께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훗날 젊은 주인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관산은 등에 지고 있던 보따리를 끌렀다. 안에 든 장부를 드러내 보이며 조계안에게 넘겨주었다.
조계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부를 집어 들고 흐릿한 빛 아래에서 펼쳐 보았다.
그는 대충 두어 장을 훑어보고 장부를 덮었다. 음험한 눈에 요사스러운 빛이 번뜩였다.
“황숙께서 신경을 아주 많이 쓰셨군.”
이 선물은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 후한 선물이 있으면, 황성사는 또다시 문무백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수 있었다.
* * *
황제는 손에 든 암황령을 보고 한동안 넋이 나갔다.
“이게…… 진짜가 맞느냐?”
암황령을 이렇게 찾았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암황령은 유일무이합니다. 어찌 가짜가 있겠습니까.”
조계안은 오만하게 황제에게 눈을 흘겼다.
“황형, 고작 암황령 가지고 그렇게까지 놀라실 필요가 있습니까?”
지금의 조계안은 자기가 조금 전에 얼마나 놀라고 기뻐했는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십 년 전, 선대 암황이 실종되었고, 암황령도 사라져 찾을 수가 없었다. 장장 십 년을 찾아다니다가 이제야 암황령을 손에 넣었다.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황제는 암황령을 이리저리 여러 번 들여다보다가 아쉬워하며 내려놓았다. 그제야 중요한 일이 생각났다.
“황숙은? 황숙의 소식은 없느냐?”
“관산의 말로는, 황숙은 십 년 전에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이건 황숙이 실종되기 전에 관산에게 남겨 준 임무라고 합니다. 관산은 이 임무 때문에 계속 황성사에 남아 있으면서, 제가 황성사를 다시 움직이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관산의 말을 떠올리자, 조계안은 자신의 행운을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어리석음을 욕해야 할지 몰랐다.
황숙은 황성사의 중요성을 십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야 그걸 깨달았다.
월령안과 청희 장공주의 사건이 없었더라면, 황성사가 언제 다시 빛을 보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심지어 폐지될 가능성도 있었다.
“짐이 황숙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황제는 너무 부끄러웠다. 예전에 황성사를 폐지하려 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음이 떠올랐다. 마음속으로 자책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시 생각하면 무섭기도 했다.
만약 그가 황성사를 폐지했다면, 암황령은 영영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조계안은 황제의 말을 받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의 장부를 가리키며 물었다.
“황형, 이건 언제 손쓸 겁니까?”
황제의 시선이 장부에 떨어졌다. 줄곧 온화하던 눈에 노기가 스쳐 지나갔다.
“북요의 사신이 오늘 역참에 들었다. 그들이 간 다음에 보자꾸나.”
이 일은 어쨌든 나라 망신이었다. 외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손을 쓰기는 곤란했다.
“그러지요. 그사이에 제가 증거를 수집하겠습니다. 이 장부들은 모두 베껴 쓴 것이라, 직접적인 증거로는 쓸 수가 없습니다.”
조계안도 이견이 없었다. 장부를 챙겨 두고 화제를 바꾸었다.
“황형, 소씨, 월씨 두 가문의 고발 사건에서 정서는 월령안을 지목한 중요 증인입니다. 그놈이 계속 얼쩡거리게 놔둘 건가요?”
황제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월령안이 정서에게 뇌물을 먹인 건 사실이 아니더냐?”
‘이 녀석은 하루라도 월령안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안 되나?’
조계안은 언짢아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황형은 정서, 그 개자식의 말을 믿습니까? 그놈이 자기는 육장봉이 월령안과 이혼한 것을 몰랐고, 월령안이 집으로 돌아온 부군을 서둘러 만나려는 줄 알고 편의를 봐주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시켜 월령안을 보호해 앞쪽까지 비집고 가게 해 주기는 했지만, 월령안이 뛰쳐나갈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 개자식이 결백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짐은 황제지 순천부윤이 아니다. 사건을 어떻게 판결할지는 순천부윤에게 맡길 것이다. 짐이 끼어들지 않겠다고 했으니, 절대 끼어들지 않겠다.”
황제는 언짢았다. 월령안의 결백 여부를 조계안이 모를 리가 없었다.
‘과연 월령안이 돈을 써서 길을 튼 적이 이번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