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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86)화 (386/1,004)

386화 령안이는 계획이 다 있구나

변경의 수많은 권력자가 소씨 가문이 월령안을 고발한 사건을 주목하고 있었다.

유칙이 공당에서 퇴장하자마자, 그들은 각자 소식을 전해 들었다.

월령안이 공당에서 손해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소 승상에게 한 방 먹였다는 소식을 듣자, 기뻐하는 사람도 있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재미나게 구경이나 하려는 사람이 더 많았다.

최일은 소식을 듣자마자 책상 위에 놓아둔 편지 한 통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역시 사람은 자기 수준에 맞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니까. 그렇지 않으면 너무 피곤하거든.”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 대공자는 여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월령안 때문에 전례를 깨뜨려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녀의 손에 비장의 무기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소 승상이 이번에는 정말 잘못 건드렸어.”

최일은 고개를 저으며 감개무량한 듯 탄식했다.

* * *

조계안은 아직 황성사에 있었지만, 그의 정탐꾼은 온 변경에 널려 있었다.

그가 월령안의 일에 신경 쓰는 것을 부하들도 다 알고 있었다. 유칙이 공당에서 퇴장하자, 심리의 상세한 과정이 모조리 조계안의 손에 들어갔다.

조계안은 보고서를 두어 장 넘겨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눈에는 자랑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눈길이 ‘열한 살’이라는 세 글자에 떨어진 순간,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저도 모르게 똑바로 앉았다.

“열한 살이면 칠 년 전이군!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조계안은 손가락으로 그 몇 글자를 더듬었다. 눈빛이 어두워졌다.

“칠 년 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월령안은 또 무슨 일을 겪은 거지?”

그는 한 번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황형은 칠 년 전 일을 남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 일은 자신이 직접 조사해야만 했다.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죽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탁!

조계안은 사건부를 덮은 뒤,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온몸에서는 사람을 억누르는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가 가는 곳은 시위들이 너도나도 피해 다녔다.

* * *

장군왕부에서도 소식을 받았다. 장군왕 세자는 당장 감옥으로 면회를 하러 가려고 했다. 그러나 막 출발하려 할 때 장군왕이 저지했다.

“유칙은 지금 한창 머리가 아플 거다. 네가 지금 순천부에 가면 월령안의 편이 되어 주는 게 아니라 되려 번거롭게 하는 거다.”

장군왕 세자는 하는 수 없이 집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정 부인은 아침 일찍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서둘러 월령안을 만나러 가지는 않았다. 대신 사건의 경과를 알아본 다음, 곧바로 정서의 저택을 찾아갔다.

정서는 정 장군과 동본(同本)은 아니지만, 같은 정씨여서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편이었다. 정서는 평소 정 부인을 만나면 형수님이라고 부르며 예의를 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 부인이 찾아갔는데도 정서는 그녀를 피하며 만나 주지 않았다. 심지어 문지기는 정 부인을 들여놓지도 않았다.

화가 난 정 부인은 마차를 정서 장군부 밖에 세워 놓게 하고 호통을 쳤다.

“그래. 정서, 자네 참 잘났네. 감히 날 문전박대 해? 좋아, 오늘 아무 데도 안 가고 문밖에 지키고 있을 테다. 정서 네놈이 언제까지 밖에 나오지 않는가, 한 번 두고 보겠네.”

정서 저택의 하인은 정 부인이 떠나려 하지 않자, 즉각 들어가 보고했다.

정서는 금세 얼굴이 굳어졌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뭐라고? 평소 체면을 좀 봐준답시고 형수라고 불렀더니 정말로 내 앞에서 형수 행세를 하려고 해? 밖에서 기다리고 싶다면 그냥 기다리라고 해라.”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정서 저택의 하인들은 모두 정 부인의 존재를 무시했다. 대문을 닫아걸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또한, 저택의 하인들은 정서의 부인과 정 부인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고, 일부러 이 소식으로 정서의 부인에게 환심을 사려 했다.

과연 정서의 부인은 듣자마자 좋아했다.

“나리께서는 진작 그러셨어야 했어. 그 여인은 날마다 가주 부인 행세를 하면서, 남의 집안에 손을 뻗치고 남의 집안일에 오지랖을 피우잖아. 정말로 자기가 뭐 대단한 인물이나 되는 줄 안단 말이야.”

정서 저택에서 여주인 노릇을 하는 이는 계실이었다. 말로는 계실이었지만, 실제는 첩이었다. 정서의 정실은 아직 살아 있었다. 단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 시각, 정서의 정실은 작은 불당에 꿇어앉아 묵묵히 잠두콩을 줍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는 백발이었고, 얼굴은 겉늙어 보였다. 정서 장군과 함께 서 있으면 정서의 어머니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녀는 분명 정서의 정실이지만, 저택에서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살고 있었다. 밖에서는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저택의 하인들도 일 년 내내 불당에 머무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정서의 정실 부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녀는 불상 앞에 경건히 꿇어앉아, 잠두콩을 한 알 한 알씩 주웠다. 그 섬세하고 숙련된 동작을 보면, 수도 없이 해 본 게 틀림없었다.

불당 안은 어두컴컴하고 음침했다. 실내를 가득 채운 촛불 연기 때문에 사람을 거의 알아볼 수도 없었다.

바로 이때 문이 열리며 햇빛이 비쳤다. 신선한 공기가 함께 밀려 들어오며 불당의 어둠과 짙어서 가시지 않는 향불 냄새를 걷어냈다.

하인 차림새의 부인 한 명이 조용히 들어와 그녀의 곁에 꿇어앉았다.

“마님, 정 부인이 그 남자를 만나러 왔는데 그 남자가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소인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월 낭자의 뒷배는 육 대장군이랍니다. 그 남자도 이번에는 절대 도망갈 수 없을 겁니다. 우리 두 도련님과 아가씨의 원수는 곧 갚을 수 있을 겁니다.”

“알았다.”

정실 부인은 대답하면서도 계속 잠두콩을 주웠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도, 슬픔도 없었다. 그녀가 모시는 불상처럼 어떤 사람에게도, 일에도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녀의 옆에 꿇어앉아 있던 늙은 하녀는 그녀가 여전히 잠두콩을 줍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마님, 오전 내내 잠두콩을 주우셨습니다. 좀 쉬세요.”

“아니다. 앞으로는 주울 기회도 없을 거다.”

이 저택의 모든 이는 죽어 마땅하다. 그녀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마님…….”

늙은 하녀는 울먹였다. 끝내 더는 설득하지 못하고, 묵묵히 정실 부인을 모시고 법당에 꿇어앉았다. 그녀는 두 손을 합장하고 경건하게 기도했다. 하늘이 굽어보시어, 부디 악인들이 업보를 받게 해달라고 빌었다.

한편, 문밖에 있던 정 부인은 한 시진이 넘게 기다렸다. 그러나 정서는 사람을 보내 문을 열기는커녕 하인더러 물 두 통을 밖으로 뿌리게 했다.

정 부인은 마차 안에 앉아 있어서 물벼락을 맞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 부인을 따라온 하인들은 모두 흠뻑 젖었다.

정 부인은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

“정서, 이 개 같은 놈! 너희가 문을 부숴서 열어라. 내가 정서 그놈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할 작정인지 물어야겠다!”

정씨 가문 하인들도 물에 흠뻑 젖는 바람에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정 부인의 말을 듣자, 너도나도 문 앞으로 달려가 문을 부숴 버리려 했다.

바로 그때 정 대공자가 찾아왔다.

“어머니, 좋은 소식입니다!”

정 대공자는 정 부인에게 월령안이 공당에서 소씨 가문에게 한 방 먹였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정 부인이 금세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이냐?”

“어머니,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정말입니다! 유 대인이 월령안의 말솜씨를 버티지 못하고 심리를 중단했습니다. 어디, 이 소식이 가짜일 수가 있겠습니까?”

정 대공자는 득의양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순천부윤을 압박해 심리를 중단시키고, 일찌감치 공당에서 물러나게 한 사람이 그인 줄 알 정도였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령안이는 계획이 다 있구나. 정서, 이놈의 첩 자식이……. 쳇, 오늘 내가 찾아왔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았겠다. 앞으로 네놈이 내 앞에서 빌 날이 올 거다.”

정 부인은 정서에게 욕을 퍼붓고는, 하인을 불러들여 바로 저택으로 돌아갔다.

‘령안이 마음속에는 다 계획이 있어. 소씨 가문은 걔 적수가 못 돼. 정서, 그 개자식이 령안이를 짓밟으려고? 꿈이나 꾸시지! 정서 네놈은 며칠 못 나댈 거다. 내가 조만간 망할 놈과 실랑이할 필요는 없지.’

* * *

소씨 가문의 집사는 땅바닥에 엎드려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이마에서 방울방울 흘러내린 땀방울이 땅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상석에 앉은 소 승상은 사지를 땅에 붙이고서도 여전히 벌벌 떠는 집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아무 감정 기복 없이, 음침한 한기만이 서려 있었다.

한참이 지났다. 집사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나, 나리…….”

그가 입을 열자마자 소 승상은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 집사는 흠칫 놀랐지만, 더는 찍 소리도 내지 못했다. 몸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소 승상의 눈에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그만 일어나라. 순천부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대공자가 혼례를 치르니, 아가씨가 하룻밤만 나올 수 있게 해 달라고 해라. 혼인 잔치가 끝나는 대로 돌려보낸다고 해.”

“나…….”

소씨 가문의 집사는 순천부윤이 동의하겠느냐고 물으려 했다. 그 말이 혀끝까지 밀려왔지만, 깜짝 놀라 억지로 삼켜 버렸다. 급히 대답하고는 몸을 덜덜 떨며 밖으로 나갔다.

집사가 나가자, 소 승상의 곧았던 등이 단번에 무너졌다.

그는 의자의 등받이에 기댔다. 늙고 칙칙한 얼굴에는 쇠잔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두운 두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월령안…….”

그는 입술을 조금 움직여 월령안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뼈에 사무치는 음산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갑자기 소 승상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손수건으로 핏자국을 닦아냈다. 그리고 하인을 불러 그를 옮기게 했다.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아들의 혼례도 아직 치르지 못했다. 딸도 시집보내기 전이었다. 손자도 성인이 되려면 멀었다.

절대로 쓰러져서는 안 됐다. 더욱이 그깟 여자 상인의 손에 거꾸러질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소씨 가문 후손들은 조상이 여자 상인의 손에 패했다는 치욕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 이후 문인들 사이에서 영영 낯을 들지 못할 것이다.

소 승상은 하인에게 들려 서재를 나섰다. 바깥의 햇빛을 바라보는 순간, 소 승상의 어둡던 눈에는 삽시간에 투지가 불타올랐다.

‘내가 질 리 없다!’

* * *

소씨 가문의 집사는 최대한 빨리 순천부로 갔다. 그리고 부승에게 찾아온 뜻을 말했다.

부승은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부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유 대인은 소씨와 월씨, 두 가문의 사건 때문에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부승이 찾아온 이유를 듣고는 하마터면 벌떡 일어나 욕을 퍼부을 뻔했다.

‘이 사람들은 좀 조용히 있으면 안 되나? 좀 사람답게 살 것이지, 나를 그만 괴롭히면 안 되나?’

부승도 찾아오기 싫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관직이 한 등급 높으면 사람을 눌러 죽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책임도 떠넘길 수 있다.

직급이 낮은 그로서는 책임을 떠넘길 수가 없었다.

부승은 울상을 하고서 말했다.

“대인, 소씨 가문 사람들 말로는 소 대공자가 혼례를 치른 뒤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두 남매가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소 낭자가 대공자의 혼례에 참석하고,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대인께서 편의를 봐주셨으면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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