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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85)화 (385/1,004)

385화 이게 어디 죄를 시인하는 건가?

월령안은 밑밥을 충분히 깔았다. 유 대인이 그녀의 말에 화를 내거나 저지하지 않는 것을 보고, 더는 망설이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 소 승상이 상소문을 올려 사직하자, 폐하께서는 그 자리에서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소 승상은 제게 막료를 보내, 자신을 위해 일하라고 협박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저희 나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리께서는 몸이 편찮으셔서 관직을 그만두겠다고 하신 겁니다. 폐하께서 허락하셔서, 나리는 기뻐하셨습니다.”

소씨 가문 집사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황제가 그 자리에서 소 승상의 사직을 허가한 일에 대해 월령안은 그다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앞뒤 말을 결합하면, 그 속뜻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소 승상은 황제가 자신을 붙잡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직을 허락하는 바람에 전혀 그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며 불만을 품고 있다고 암시한 것이었다.

물론, 소 승상이 분명 불쾌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었고, 언급조차 할 수 없었다.

월령안의 이 말은 소 승상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소씨 가문 집사는 눈빛으로 월령안을 진작에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눈빛만 가지고는 사람을 죽이기는커녕 다치게 하지도 못했다.

월령안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말했다.

“소 승상의 막료가 찾아왔을 때, 저는 당연히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대장군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건 소인배나 하는 짓이라면서 경고했습니다. 이럴 때 제가 소 승상에게 돌을 던지면 남의 눈에 저는 오만방자하고, 소 승상은 가련하고 약해 보일 뿐이니까요.

당당한 전임 승상이 일개 여자 상인에게 수모를 당하다니. 제가 그렇게 했다가는 소 승상 문인들의 반감과 혐오를 살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정의 모든 관리와 선비들의 혐오와 불만을 사게 될 겁니다.

제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나이가 들면 은퇴할 때가 옵니다. 만약 조정의 관리가 은퇴하여 일개 상인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면, 조정의 체면이 서겠습니까?

저 같은 하찮은 상인이 어찌 조정 관리들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건 압니다. 대장군께서 아무 이유 없이 저를 저버리기는 했어도, 대단히 훌륭한 분이고 나라를 지킨 대영웅이라는 걸요.

그런 분께서 일개 상인인 저를 농락하지는 않으시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장군의 조언에 따라 소 승상에게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월령안이 한 말은 날카로우면서도 단호했다. 그러나 유 대인을 비롯해 대리시, 추밀원, 종인부에서 파견한 관리들은 저도 모르게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월 가주는 말솜씨가 너무 좋구먼.’

‘대장군이 아무 이유도 없이 저를 저버리기는 했어도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다? 이건 무슨 소리야?’

‘대장군을 칭찬하는 게 맞나?’

‘대장군의 전처는 과연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군. 기회가 있으면 육 대장군이 이유 없이 아내를 저버린 일을 꺼내 추궁하고 비꼬잖아.’

이쯤 되면 육 대장군이 좀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작 월령안은 공당에 있는 여러 관리에게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평온하기만 했다.

그녀는 ‘날카롭고 단호하게’ 진술을 마쳤다. 그러나 갑자기 어조를 바꾸어 무기력하게 말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소씨 가문에서 제가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소씨 가문에서는 소 승상이 제 어머니와 협의 이혼을 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니의 관을 월씨 가문 묘지로 이장하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세상 뜬 지 삼 년이니 되었지만, 소씨 가문에서는 아직도 제 어머니를 매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소씨 가문 사람들은 늘 제 어머니를 업신여겼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가고 싶었습니다. 제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있는 집으로 모셔가고 싶었습니다. 그 집에 살아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하더라도요.”

월령안의 꼭 감긴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흐느끼는 소리도 없고, 미친 듯한 울부짖음도 없었다. 다만 소리 없이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눈물뿐이었다.

그때 공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월령안이 왜 재가한 어머니를 반드시 집으로 데리고 가서 아버지와 합장해야 하는지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자, 저도 모르게 탄식을 금치 못했다.

월령안은 계속 슬퍼하지는 않았다. 곧 감정을 추스르고 눈물을 훔치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다음은 여러분이 보신 그대로입니다. 저는 제 어머니의 자유를 위해서, 제 어머니와 소 승상의 인연을 끊기 위해서, 제 어머니를 청주로 모시고 가 아버지, 오라버니와 합장하기 위해 소씨 가문의 요구를 승낙해 힘닿는 대로 소씨 가문을 욕보였습니다.

저는 사람을 시켜 소 승상에게 불리한 소문을 떠들썩하게 퍼트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장군이 제게 품은 약간의 자책감을 이용했습니다. 대장군에게 가주 부인을 위해 준비한 예물을 육씨 가문에서 저희집으로 보내게 했고, 저를 위해 기러기를 사냥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소 낭자에게 쏠릴 관심까지 가로챘습니다. 변경 사람들에게 저 같은 일개 상인이 설쳐대서 소 승상마저 감히 모욕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월령안은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진술 하였고, 말이 빠르지 않았다. 소씨 가문의 집사는 몇 번이고 그녀의 말을 끊으려 했지만, 결국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는 눈을 뻔히 뜬 채 그녀가 소 승상에게 누명을 씌우는 광경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녀는 매우 시원시원했다. 말을 마치자, 두 손을 가슴 앞에 평평히 놓고, 무릎을 굽히며, 고개를 숙이고 대례를 올렸다.

“대인, 이 일은 제가 했습니다. 제 죄를 시인합니다. 하지만 소씨 가문도 결백하지 않습니다. 제 손에는 소 승상이 친필로 쓰고, 지장과 개인용 도장까지 찍은 절연장이 있습니다. 대인께서 현명한 판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이건 그런 일이 아닙니다!”

소씨 가문의 집사는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 옆에 있던 관졸의 옷자락을 힘껏 거머쥐고서야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그는 절연장에 대해 알고 있었다. 자신이 뒷일을 직접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 절연장은 진짜였다.

하지만 그 절연장은 육 대장군이 소 승상을 강요해서 쓴 것이다. 월령안이 말한 상황에서 쓴 건 절대 아니었다. 하필 그 일은 소씨 가문 큰 아가씨의 명성과 관련된 것이라 말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 저 천박한 계집이! 너무 지독하잖아!’

소씨 가문 집사는 월령안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월령안을 당장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공당의 대인 네 명은 서로 마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월령안, 이게 어디 죄를 시인하는 건가. 그냥 커다란 함정을 파서 소 승상을 묻어 버리려는 거잖나.’

그들은 월령안의 말을 다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월령안의 손에 소 승상이 직접 쓴 절연장이 있는 건 분명하다고 믿었다.

당당한 승상이 죽은 부인과 합의 이혼을 하다니. 그것도 조용히, 사적으로 절연장까지 썼다. 그 일에 구린 사연이 없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소 승상이 이번에는 정말로 제 발등을 찍었다.

‘이 사건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구나. 내 감투를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순천부윤 유칙은 몰래 한숨을 내쉬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먼저 오늘 심리부터 끝내고, 무슨 일이든 내일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지금은 머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월령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참, 대인. 제가 시인할 죄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또 죄가 있단 말이냐?”

월령안이 죄를 시인한다고 말하자, 유칙은 더럭 겁이 났다. 분명 예전에는 죄인이 죄를 시인하는 걸 가장 좋아했었는데 말이다.

“어젯밤 저와 소씨 가문 큰 아가씨 사이에 충돌이 있었는데 제가 그녀의 뺨을 때렸습니다. 대인께서 공정하게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월령안은 다시 한번 예를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등을 꼿꼿이 펴고 있었다. 겉으로는 죄를 인정하지만, 속으로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여인들의 사적인 원한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유 대인은 얼굴의 위엄을 흐트러지지 않고 가까스로 유지했다.

그는 월령안 때문에 정말 놀라 죽을 뻔했다. 그녀가 또 누구를 함정에 빠뜨리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럼 이런 일은 누가 맡습니까? 저는 누구를 찾아 죄를 인정해야 합니까?”

월령안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유 대인은 더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경당목을 두드리고, 높은 목소리로 ‘퇴정하라’라고 외쳤다.

그러나 외치고 나자,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소씨 가문에서는 월령안에게 열 가지 죄가 있다며 고발했다. 월령안은 그중에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죄 두 가지만 인정했다. 여덟 가지는 아직 심리하지도 못했다. 그는 심문조차 하지 않고 월령안에게 말려 넘어간 것이다.

유칙은 갑자기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그는 월령안에게 끌려다니고 있었다.

분명 그가 주심이었다. 그야말로 공당의 모든 것을 결정하며, 공당의 규칙과 주도권을 장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 공당에 오르자, 사건 심리를 장악한 건 월령안이었다. 주심인 그조차도 그녀에게 끌려가면서 알아채지 못했다.

‘이건 너무 무서운 일이 아닌가!’

유 대인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당장 다시 공당을 열고 다시 심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빠져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소씨 가문 집사가 보였다. 그가 체면을 살리기 위해 월령안을 제압하려 해도, 소씨 가문에서는 협력할 힘이 없음을 깨달았다.

오늘 월령안의 행동은 그의 사건을 심리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소씨 가문의 계획도 엉망으로 만들었다.

지금 주도권은 소씨 가문이 아니라 월령안이 장악하고 있었다.

유칙은 마음속으로 놀라면서도 화가 났다. 덕분에 얼굴은 우중충했다. 관졸이 월령안과 소씨 가문 집사를 이끌고 내려가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몸을 등받이에 기댔다.

이 사건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었다. 연관된 사람과 일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다. 그로서는 정말 심리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꾀병을 부릴까? 아직 늦은 건 아니겠지?’

대리시, 추밀원, 종인부의 세 관리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앞으로 나가 유 대인의 어깨를 다독였다.

“대인, 몸조심하시오.”

“이 사건은 대장군과 북요 사신까지 관련되어 있구려. 폐하께서 대장군께 사흘간 집에서 반성하라고 하셨는데 내일이 마지막 날이오.

북요 사신이 예부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들도 내일이면 변경에 도착할 수 있을 거요. 이변이 없으면 모레쯤에 대장군과 북요 사신이 공당에 나와 증언할 수 있을 테니 버텨 보시구려. 무너져서는 안 되오.”

“유 대인은 나라의 기둥이시니, 수고하십시오.”

세 사람은 한마디씩 던졌다. 겉으로는 위로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꼴이었다.

‘유칙, 폐하께서 버팀목이 되어 준다고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지. 늘 혼자 공평하고 사리사욕이 없다며 고상한 척했잖나. 공평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자네가 월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사건을 어떻게 판결하는지 좀 보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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