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제가 지금 당장 실토하지요
월령안은 관졸의 재촉을 받으며 얼굴에 미소를 띠고 공당에 들어섰다. 공당의 여러 사람을 재빨리 한번 훑어본 뒤, 무릎을 꿇고 절을 하려 했다.
“소녀 월…….”
그러나 예상외로, 지난번에는 공당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하던 순천부윤이 이번에는 그녀가 꿇기도 전에 말했다.
“서서 대답해도 좋다.”
재판을 시작하기 전, 추밀원 관리가 월령안에게는 아직 일품 장군 부인의 고명이 있다고 귀띔했기에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소녀가 대인을 뵙습니다. 감사합니다.”
월령안은 자신을 혐오하는 유 대인이 왜 갑자기 이렇게 우호적으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녀와는 무관한 일이 분명했다.
월령안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유칙은 그 모습을 보자, 자신이 기껏 조성한 위엄 있는 분위기로도 그녀를 압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유칙의 얼굴빛이 잔뜩 흐려졌다. 그는 경당목(驚堂木)을 힘껏 내리치며 위엄 있게 말했다.
“죄인 월씨, 네 죄를 알겠느냐?”
“소녀는 죄를 시인합니다.”
월령안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네가…… 뭐라고?”
혀끝까지 밀려온 말이 월령안 때문에 막히고 말았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월령안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월령안이 방금 뭐라고 했지? 죄, 죄, 죄를 시인한다고?’
유칙뿐만 아니라, 황제가 파견한 대리시의 관리들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월령안은 까다로운 상대라고 하지 않았나? 이게 어디가 까다롭다는 거지?’
월령안은 고개를 들지 않아도 공당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알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입가의 미소가 점점 더 진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떨어뜨린 채 침착하게 말했다.
“소녀는 확실히 변경 백성들에게 돈을 써서 소 승상이 복직하고, 소씨 가문에서 또 다른 승상이 나올 거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유칙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인지라 재빨리 냉정함을 되찾았다. 다시 경당목을 두드려 모두의 주의력을 집중시킨 뒤,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월씨, 너는 백성들을 속여 돈을 갈취하고, 관리를 매수하고, 조정 대신들에게 뇌물을 먹였다. 또 적국과 왕래하고, 적과 내통하여 나라를 팔아먹었으며, 황실 공주를 능멸하여 윗사람을 거역했다. 네가 저지른 죄는 만 번 죽어도 씻기 어렵다. 어서 실토하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월령안은 유 대인에게 장단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대인, 만약 제가 공범을 지목하면 죄를 감경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무슨 공범이란 말이냐? 월씨, 남을 함부로 모함하면 안 된다.”
유 대인은 월령안이 수작을 부리려는 것을 직감했다. 당장 그녀의 말문을 막고 싶었다. 그러나 대리시, 추밀원 관리가 있었고, 종인부에서도 사람을 보내왔기에 저지할 수 없었다.
이 세 사람에게 사건을 심사하고 질문할 권리는 없지만, 감독권이 있었다. 만약 그가 일부러 월령안을 제압하여 그녀의 발언을 마치지 못하게 해 보자. 그들이 상부에 고발하기라도 하면 부윤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대인, 공범이 없다면 저처럼 하찮은 상인이 어찌 감히 소 승상의 험담을 퍼뜨릴 수 있겠습니까.”
월령안은 고개를 쳐들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허면 네 공범은 누구냐? 월씨, 어서 실토하지 못할까!”
소씨 가문 집사는 월령안의 허물을 잡았다 싶어 얼른 입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순천부윤이 월령안이 공범을 지목하는 것을 저지할까 두려웠다.
“제가 지금 당장 실토하지요…….”
월령안은 소씨 가문 집사를 돌아보며 얄밉게 웃었다.
“제 공범은 소 승상입니다! 그분이 저더러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제게 시킨 일입니다. 소 승상은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자,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심을 이용해, 폐하께서 타협하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어명을 거두어들이고, 소 승상이 계속 승상 자리에 머물 수 있도록 말입니다.”
“허튼소리! 월씨, 우리 나리를 헐뜯지 마라!”
소 집사는 안색이 돌변했다. 당장 고함을 지르며 월령안을 때리려고 앞으로 달려 나왔다. 그러나 한쪽에 서 있던 관졸에게 가로막혔다.
월령안은 그거로도 모자라, 불 난 데 기름을 부었다.
“너희 소씨 가문은 제 발이 저리니까 나를 죽여 입을 막으려 했잖느냐. 그러다가 안 되니 나를 고발하고 꼬리를 끊어 내려는 게 아니냐? 꿈 깨시지! 일전에 너희 소씨 가문 막료(幕僚)가 우리 월씨 저택에 찾아온 것을 육 대장군께서 목격했다. 소씨 가문에서 날 잘라내고, 나 한 사람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을 것 같으냐!”
소씨 가문 집사는 눈이 뒤집혔다. 당장 월령안에게 덤벼들려고 발버둥 쳤다.
“저 천박한 년, 저게…….”
“공당에서 함부로 떠들지 마라!”
유칙은 월령안의 말을 듣자, 도리어 평정심을 되찾았다.
어차피 월령안이 만만한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더욱 껄끄러운 인물을 끌어들이지 않고 오직 소 승상만 말하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어차피 월령안과 소씨 가문의 송사는 짧은 시간에 끝내기는 글렀다. 쌍방이 천천히 기 싸움을 하게 둘 수밖에 없었다.
“대인, 그런 게 아닙니다.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이 천박한 계집이 허튼소리를 하는 겁니다. 저희 나리와 저 계집이 원수지간이라, 저희 주인 나리를 헐뜯는 겁니다. 저희 나리께서 어찌 유언비어를 날조해서 자기를 해치겠습니까. 대인…… 제대로 조사해 주십시오.”
유칙이 고함을 지르자, 소씨 가문 집사는 침착해졌다. 더는 월령안에게 덤벼들지 않고 재빨리 반박했다.
“옳은지 아닌지는 내가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월씨, 네 말이 진실임을 증명할 수 있느냐?”
유 대인은 시종일관 침착하고 여유로운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다시 월령안에게 도발 당해 분통을 터뜨리는 소씨 가문의 집사를 지켜보았다. 속으로 탄식이 나왔다.
‘소 승상이 이번 수를 잘못 쓴 거 같군. 월령안을 꺾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괜히 화를 자초한 거 같은데.’
월령안은 소씨 가문과 공당에서 맞서는 걸 걱정한 게 아니었다. 입을 열 기회가 없을까 걱정이었다.
관아에서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는 수작을 부릴 여지가 너무 많았다.
소 승상은 수십 년간 관리 사회에서 산전수전을 겪었기에, 그들의 규칙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녀가 감옥에서 돌연사하게 만들거나, 그녀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지도 않고 그냥 죄를 시인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추밀원, 대리시, 종인부의 관리들이 공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 대인이 내키든 내키지 않든, 월령안에게는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생겼다.
그녀는 당연히 그 기회를 사양하지 않았다. 월령안은 여러 관리에게 읍을 하고는 적당한 속도로 말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소 승상은 제 계부였습니다. 하지만 저희 사이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지요.
어쩌면 여러분은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잘못이 없으며, 자녀라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시겠지요. 제가 그분과 사이가 나쁜 것은 제가 윗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효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기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소 승상은 제 계부일 뿐, 저와는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잘못이 없다지만, 계부까지도 그렇다고는 못 하시겠지요.”
월령안은 ‘계부’라는 두 글자를 말할 때마다 마음속으로부터 혐오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남에게 지적받지 않으려면, 또한 이야기를 이어가려면 아무리 싫더라도 소 승상을 계부라고 지칭할 수밖에 없었다.
예법으로 따지자면, 소 승상은 그녀의 계부였던 게 확실했다.
월령안은 혐오감을 억누르며 무표정하게 진술했다.
“저는 열한 살 때 어쩔 수 없이 소씨 저택에서 나와 혼자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어른처럼 독립하여 가문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열한 살의 어린 소녀에게 엄청난 돈은 있었지만, 아버지와 오라버니도 없었고, 의지할 친척도 없었습니다. 그런 아이가 혼자 독립하여 살아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여러분께서도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때 무슨 방법이라도 있었으면, 저도 부모의 그늘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저의 어머니도 제가 혼자 나가 사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왜 나가 살아야 했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 지나간 일이고, 지금 말해 봤자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어쨌든 전 아직 살아 있고, 또한 잘 살고 있으니까요.”
월령안은 여기까지 말하고 눈시울을 살짝 붉혔다. 목소리에도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애써 미소를 짓는 모습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보이기 싫은 것처럼 보였다.
월령안의 말에 소 집사는 조급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 고함을 질렀다.
“월씨, 다 허튼소리다……. 분명 네년이 우리 도련님을 때려 상처를 입히고 네가…….”
“정숙하라!”
유칙은 차가운 얼굴로 소 집사의 말을 끊어 버렸다.
“내가 발언을 허하지 않았다.”
“대인, 이 월씨는 온통 헛소리만 지껄이며 저희 나리를 헐뜯고 있습니다.”
소 집사는 월령안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눈에는 무언의 위협이 번뜩였다.
월령안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변경에서는 저 월령안과 소 승상이라는 계부가 부녀지간이 아닌, 원수지간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특히 소 승상의 따님이 북요의 귀족과 몰래 도망갔는데 제가 그 딸의…… 빼앗았으니…….”
소 집사도 지지 않고 또 한 번 다급히 변명했다.
“저희 집 큰 아가씨는 사랑의 도피를 한 게 아니라 대장군을 찾으러 변방에 간 것입니다.”
월령안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대장군과 이혼한 다음, 소 승상은 사람을 보내 저의 저택을 때려 부쉈습니다. 당시 제가 관아에 신고했으니 관아에도 사건 기록이 남아 있을 겁니다.
또한 그때 대장군과 그분의 친위대가 모두 있었기에 저는 소 승상에게 이십만 냥을 배상하라고 했었습니다. 대장군은 제게 보상해 주는 의미에서 그때 제 편이 되어 주셨고, 저와 함께 소씨 저택에 가서 돈을 받아 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모습을 봤습니다.
아, 참……. 유 대인께서는 소 승상을 잘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 승상은 한미한 가문 출신인데, 이십만 냥이 어디서 났을까요? 그리고 얼마 전 소 승상의 아들이 길상 도박장에서 십만 냥을 빚지자, 소 승상은 또 당장 돈 십만 냥을 내놓아 소씨 대공자의 노름빚을 갚아 주었습니다.
이 일은 장군왕 세자가 직접 거래했습니다. 제가 모함한 것인지 아닌지는 대인께서 물어보시면 알 것입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소 승상은 준비도 없이 돈 삼십만 냥을 내놓았습니다. 대인께서는 이 수입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소 승상은 제가 조정의 관리를 매수한다고 고발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소 승상이 본인이 바르지 않으니, 누구를 봐도 모두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소씨 가문 집사는 울화통을 터트렸다.
“너 이 천박한 년, 네가 감히…….”
“정숙!”
유 대인은 경당목을 내리치더니 언짢게 말했다.
“잠시 후에 해명할 시간을 줄 것이다.”
소여방이 길상 도박장에 돈을 빚진 사실은 유칙도 알고 있었다. 그 일이 크게 번지는 바람에 장군부와 육씨 가문 넷째 집안까지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육씨 가문 넷째 집안은 그 일로 사부인까지 내쫓았다. 장군부도 그 일 때문에 변경 세도가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