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네요
소함연은 젊은 관졸이 줄곧 자신을 지켜보자, 혐오감을 금치 못했다.
‘저 천박한 놈이 무례하게 감히 누굴 쳐다봐!
두고 보자. 이 망할 곳에서 나가기만 하면 네놈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줄 거야!’
소함연은 원망을 가득 품고서 관졸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관졸이 월령안의 감방처럼 편안한 감방을 마련해 주리라 여겼다.
그러나 관졸은 더럽고, 어수선하고, 비좁은 감방 앞에 멈췄다. 그가 열쇠를 꺼내 들고 자물쇠를 열었을 때, 소함연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금 저더러…… 이런 지저분한 곳에 있으라는 건가요?”
감방 안에는 십여 명의 여인들이 꽉 차 있었다. 하나같이 눈에 독기가 서린 것이, 척 보기에도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사람이 사는 곳인가? 아까 월령안이 내준 한쪽 구석만도 못하잖아!
순천부 관졸 놈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내 신분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젊은 관졸은 소함연의 아름다운 얼굴이 마구 일그러진 모습을 보았다. 깜짝 놀라 쭈뼛거리며 말했다.
“소 낭자, 이 방이 싫으시면 옆방에 가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 방은…….”
“입 닥쳐! 당신네 부윤 어디 있어? 당장 만나야겠다.”
소함연은 순간 아버지가 감옥에서 얌전히 있으라던 당부를 잊어버렸다. 지금 그녀는 농락당하고, 모욕당한 분노로 끓고 있었다.
‘순천부 놈들, 해도 너무하잖아. 날 진짜 죄수 취급해!’
“소, 소…….”
젊은 관졸은 흠칫 떨더니 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떨어뜨렸다.
“꺼져!”
소함연은 약이 바싹 올랐다. 당장 그를 밀쳐 내고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관졸 정씨가 걸어오더니 그녀의 앞을 막아 나섰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알랑거리는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소 낭자, 왜 그러십니까? 저희 대인께서 배정해 주신 방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너희 대인은 어디 있느냐? 와서 날 보라고 해라.”
소함연은 또다시 손을 들어 사람을 때리려 했지만, 이번에는 실패했다. 그녀가 손을 들자마자, 정씨는 바로 손을 들어서 막았다.
“아악!”
소함연은 눈앞의 하급 관졸이 자기에게 감히 맞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생각 외의 힘에 튕겨 나와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바닥에 넘어지자 얼떨떨했지만, 당장 눈을 부릅뜨고 사납게 외쳤다.
“감히 날 때려? 너희는 내 아버지가 누구신지 아느냐? 더는 살기 싫은 모양이구나!”
하지만 정씨는 요지부동이었다. 젊은 관졸에게 눈짓했다.
“뭘 멍하니 서 있어? 소 낭자가 감방을 바꿔 달라고 하셨잖아. 어서 빨리 감방을 바꿔 드려라.”
“정씨 아저씨?”
젊은 관졸은 놀라서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아저씨가 미쳤나? 이 아가씨는 소 승상의 딸이잖아. 비위를 맞추기는커녕 오히려 미움을 사다니. 죽을까 걱정도 안 되나?’
“소 낭자가 먼저 감방을 바꿔 달라고 했잖아. 우리는 말렸지만 소용없었고. 우린 다만 소 낭자의 요구대로 한 것뿐이야. 어쨌든 소 낭자의 아버지는 승상이셨으니까 밉보일 수야 없지.”
정씨는 조금 전까지 알랑거리던 모습을 거두고, 음산하게 웃었다.
“뭐 하는 짓이냐? 우리 아버지는…….”
소함연은 화가 나서 정씨를 노려보았다.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정씨가 퉁명스레 말을 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낭자의 아버님은 소 승상이시고, 낭자는 그냥 형식적으로 왔을 뿐, 내일이면 나가니까 난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요.”
부승은 소함연을 보낼 적에 일부러 당부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 감옥에서는 그의 말이 법이었다.
“알고 있다면 어서 비켜라. 난 여기서 나갈 것이다!”
소함연은 순간 자신감이 생겼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오만방자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벌써 잘 말해 두셨구나. 난 무사할 거야.’
정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얼굴의 미소가 더욱 차가워졌다.
“소 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낭자의 승상 아버님께서 데리러 오시면 꼭 보내드릴 겁니다. 하지만 오늘 밤은 그냥 이곳에 얌전히 머무르십시오.”
“너, 너희가…….”
소함연이 아무리 미련해도 알 수 있었다. 이 늙은 관졸은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씨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더니 음산하고 악랄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 낭자, 어서 들어가시죠.”
“아니, 아니야…… 안 바꿔. 안 바꿀 거야.”
소함연은 연신 뒷걸음질 쳤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당황해서 말했다.
“월령안과 같은 방에 있겠다. 바꾸지 않겠어.”
“소 낭자, 뭐라고요? 못 들었는데요?”
정씨는 이상야릇한 웃음소리를 내며 과장되게 귀를 후벼 팠다. 그리고 양쪽 감방에 있는 여자 죄수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들리냐?”
“아니요. 저희는 못 들었어요!”
오늘 이곳에 갇힌 여자 죄수는 죄다 장군왕부가 아니면 정씨 가문, 육씨 가문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녀들은 여기 들어오기 전에 주인이 누차 당부했기에, 당연히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정씨는 이상야릇하게 웃으며 앞으로 다가갔다. 밖으로 나가려는 소함연을 홱 잡아채더니 음산하게 말했다.
“소 낭자, 보시죠……. 낭자께서 월 가주와 한 방에 있기 싫다고 옆방으로 옮겨 달라고 했잖습니까. 낭자께서 해달라는 대로 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안 돼. 건드리지 마……. 이 더럽고 천한 놈이! 건드리지 말라니까!”
소함연은 당황해서 비명을 질렀다. 이젠 겁이 더럭 났다. 정말로 무서웠다.
‘여긴 사람이 있을 데가 아니야. 여기 있기 싫어!’
“나갈래! 빨리 날 풀어줘! 난 여기 있지 않을 거야. 내 말 안 들려? 빨리 나를 풀어줘……. 내 아버지가 소 승상이시다. 너희가 날 이렇게 대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월령안! 월령안! 너 당장 날 풀어달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모두에게 알릴 거야. 넌 예전에 능욕당하고 순결을 잃은 지 오래라고! 넌 육 대장군에게 시집갈 자격이 없어. 월령안, 안 들려? 저 사람들한테 날 당장 내보내라고 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에게 알릴 거야. 네가 열한 살 때……!”
“저 여자의 이를 부러뜨려 주세요.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네요.”
월령안은 움직이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한마디 했을 뿐이다.
“네, 월 낭자.”
정씨는 소함연 앞에서 보이던 오만방자한 행동을 거두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소함연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아악!”
소함연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입을 벌리고 피를 토하자, 새하얀 이 두 개가 핏물과 함께 흘러나왔다.
“월…… 헉…… 헉…….”
소함연은 더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숨을 거세게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정씨는 소함연의 뺨을 한 대 때려 그녀를 고분고분하게 만들었다. 그다음 젊은 관졸을 부르는 대신, 직접 소함연을 와락 잡아채서 정씨 가문의 여병들이 있는 감방에 던져 넣었다.
“이 사람을 자네들에게 맡기겠네. 죽이지만 않으면 어떻게 해도 상관없어. 거물이 뒤를 봐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소 낭자를 잘 모시겠습니다.”
정씨 가문 여병들은 모두 정 장군 부부가 정 낭자를 위해 훈련한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은 월령안이 손 신의에게 부탁해 정 낭자의 고질병을 고쳐 주었다는 사실을 안 뒤로, 월령안을 은인으로 여겼다. 그리고 은혜 갚을 기회가 왔으니 절대 사양하지 않았다.
“아니, 안 돼……. 제발, 헉…… 나는…….”
소함연은 그제야 정말로 겁을 먹었다. 정씨의 옷자락을 죽기 살기로 잡아당겼다.
“제발, 제발…… 그래, 돈, 관직을 올려 주고…….”
정씨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소함연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 내더니, 그녀를 감방에 처넣고는 돌아서서 가 버렸다. 소함연이 감방에서 어떤 괴롭힘을 당하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면, 월령안 앞에 가서는 싸늘한 표정을 거두고 공손하게 말했다.
“월 낭자, 놀라셨지요? 조 대인께서 소인더러 낭자께 안부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조 대인?”
월령안은 손에 든 책을 내려놓고 정씨를 바라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눈은 고요하고 음산했다.
“오늘 일은 그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았으면 해요. 조 대인도 포함해서요. 알겠나요?”
“소, 소인, 알겠습니다!”
정씨는 놀라서 흠칫 떨었다. 당황하여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를 똑바로 마주 보지도 못했다.
월령안 뒤에 있던 두 어멈도 그에게 전염된 듯, 월령안이 그녀들에게 경고한 것도 아니었는데 절대 말하지 않겠다며 당장 다짐했다.
게다가 그녀들의 관찰에 따르면 월 낭자는 아직 처녀였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는 법이다.
* * *
정씨 가문 여병들은 감옥에 수년, 수십 년 갇혀 있던 죄수가 아니었다. 그녀들도 원체 꼬인 데 없이 명랑한 소녀들이라, 남을 괴롭히는 수완이라고 해 봤자 별것 없었다. 기껏해야 소함연을 따돌리고 거들떠보지 않는 정도였다.
하지만 소함연은 그 정도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밤새 눈을 붙이지 못했다.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른 채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월령안을 포함한 이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천했고, 그녀의 원수였다.
‘죽여 버릴 거야. 이 천한 것들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 두겠어. 네년들 입에서 차라리 죽겠다는 말이 나오게 해 줄 거야!’
정작 그때 소함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감옥 안의 모두는 월령안만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부윤이 공당에서 사건을 심사하기에 앞서, 관졸이 월령안을 공당으로 압송하려 했다.
관졸이 말을 끝내자, 최씨 가문의 두 어멈은 걱정스레 말했다.
“월 낭자, 괜찮겠습니까?”
“월 낭자, 아니면 몸이 불편하다고 하세요. 저희 군왕께서 다른 종친을 찾아가서 월 낭자를 위해 나서 달라고 하실 거예요. 월 낭자는 그냥 몸이 불편하다고 하고, 오늘 재판에는 나가지 마세요. 시간을 끌 수 있는 데까지 끌어 봅시다.”
장군왕부의 사람은 관졸이 자리에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놓고 말했다.
정씨 가문에서 보내온 여병도 이에 뒤지려 하지 않았다.
“월 낭자, 우리 도련님께서 어제 마님께 전갈을 보냈습니다. 마님께서는 오늘 당장 돌아오실 겁니다. 마님께서 돌아오기만 하면, 정서 장군을 한바탕 두들겨 절대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게 할 거랍니다.”
월령안은 서로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다들 걱정 말게. 나는 무사할 거야. 이 사건은 하루이틀 안에 끝날 게 아니거든.”
‘재판한다고? 뭘 가지고 재판할 건데?’
순천부윤이 소씨 가문에서 제출한 그 정도 증거를 가지고 그녀의 죄를 확정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결국 서로 입으로 물고 뜯는 일이잖아? 내가 언제 말솜씨로 누굴 무서워했다고?’
월령안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걸어 나와 관졸들과 함께 공당으로 갔다.
이 사건은 파급력과 영향력이 커서, 순천부는 공개 재판을 하지 않았다. 공당에는 순천부의 관졸, 그녀를 고발한 소씨 가문 집사와 대리시, 추밀원, 종인부에서 파견한 관리들만 있었다.
공당 안은 엄숙하고 장중한 분위기였다. 모두가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숨 막히는 억압적인 분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겁을 먹고 불안에 떨게 했다.
월령안은 순천부에서 그녀를 기선 제압하려는 걸 알고 있었다. 안됐지만 순천부윤의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그녀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별의별 인간, 별의별 일을 다 보았다. 고작 이 정도로는 놀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