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381)화 (381/1,004)

381화 육장봉은 어디 갔느냐?

황제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침울했던 기운이 많이 사라졌다. 그는 눈을 감고 말했다.

“계안아, 이 일에 대해서 제삼자가 아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알겠느냐?”

‘설령 육장봉이라도 안 된다.’

“알겠습니다.”

조계안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눈 속의 씁쓸함을 숨겼다.

황제는 이 모습을 보면서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도리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봉에게 가서 철광산에 관한 일을 더는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어라.”

육장봉이 월령안을 좋아한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그는 모르는 척할 것이다. 그다음 암암리에 그들을 갈라놓을 생각이었다. 이 세상에 떼려야 뗄 수 없는 남녀 사이는 없다.

조계안은 황형이 왜 사사건건 월령안을 노리는지, 왜 다른 모두에게는 관용을 베풀면서 유독 월령안에게만 악의를 품었는지 줄곧 궁금했다.

오늘 드디어 알게 되었지만,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 황형과 월령안 사이의 원한을 해결할 방법이 없음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조계안은 난각에서 나와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황궁이 너무 춥고 커서 더없이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내관이 등롱을 들고 길을 안내하겠다는 것을 거절했다. 홀로 어두컴컴한 회랑을 걷고 걷다가 황궁 입구까지 걸어갔다.

“나는 역시 여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조계안은 고개를 들어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춘 궁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저 없이 담을 넘어갔다.

궁중의 금군과 어두운 곳에 숨어 있던 황궁의 고수들은 조계안의 모습을 보고는,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조왕 전하는 황궁을 언제든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왜 쓰지 않으실까?’

‘왜 황궁을 출입할 때마다 늘 담을 넘어 다니지?’

‘이렇게 궁중의 경비를 무시하고 우리의 방어 능력을 시험하시면,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시는 건가.’

황궁의 금군과 고수들은 의기소침했다. 그래도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고 다들 정신을 바싹 차렸다.

조왕 전하가 언제 담을 넘어 입궁할지도 몰랐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나중에 한바탕 두들겨 맞아야 했다.

* * *

조계안은 황궁을 나와 곧장 장군부로 갔다.

장군부에 도착하자, 역시 정문을 거치지 않고 장군부의 경비를 피해 갔다. 육장봉의 호위병이 그를 발견하였을 때는 벌써 육장봉의 서재 밖에 서 있었다.

“전하.”

육이는 조계안을 보고 굳은 얼굴로 예를 올렸다.

‘조왕께서 장군부에 문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셨나?’

조왕이 갑자기 나타났다. 조왕이 서재 입구에 도착해서야 그들이 발견한 걸 대장군이 알게 되면 벌을 피하기 어려웠다.

‘우리를 그냥 놔둬 주시면 안 되나? 우린 이미 사는 게 정말 힘든데.’

“육장봉은?”

조계안은 어두컴컴한 서재를 보고 바로 육장봉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장군께서는 성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육이는 방금 소식을 듣고, 고작 하루 만에 장군이 팔백 리 밖까지 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장군께서는 하루에 말 몇 필을 지쳐 죽게 하면서까지 서둘러 어디로 간 걸까?’

“성 밖으로 나갔다고?”

조계안의 안색이 흐려졌다. 그는 언짢다는 듯 말했다.

“언제 갔단 말이냐? 폐하께서 너희 장군더러 집에서 반성하라 하시지 않았느냐?”

“오늘 아침 일찍 장군께서는 공무를 처리하러 가셨습니다. 다른 건 저도 모릅니다.”

육이는 고개를 숙이고 조계안을 보지 않았다.

지금 날이 어두워서 정말 다행이었다. 조왕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월령안에게 일이 생긴 걸 너희 장군이 모르느냐?”

조계안은 지나가는 말투로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러나 육이는 순간 정신을 바싹 차렸다.

“저희 장군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원래는 저를 순천부에 보내, 월 낭자를 보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순천부에서는 폐하의 명령을 받고, 아무도 월 낭자를 위해 보증을 서지 못하게 했습니다.”

육이는 묵묵히 조계안 앞에서 황제를 고자질했다.

주나라에서 황제에게 원칙 없이 양보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조계안뿐이었다.

예전 같으면 조계안은 분명 언짢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침묵만 지켰다.

황형은 월령안에게 이미 아주 관대하게 대했던 거였다. 여기서 더 양보하라고 할 염치가 없었다.

잠시 후 조계안이 말했다.

“너희 장군은 너희가 월령안을 빼내지 못한 걸 알고 있느냐?”

“알고 계십니다. 이미 장군께 전갈을 보냈고, 조금 전에 답장을 받았습니다.”

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조계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육장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

“저희 장군께선…….”

육이는 입을 벙긋거리기만 할 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장군이 좀 쓰레기 같다고 말해도 되려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 낭자에게 그렇게 잘해 주더니, 막상 월 낭자에게 일이 생기자 장군은 결정적인 순간에 성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반응도 어찌나 냉담한지 호위병인 자신마저도 차마 봐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육장봉이 뭐라고 했느냐?”

조계안은 인내심도 없이 연신 따지고 들었다.

육이는 피하지 못할 것을 깨달았다. 떨떠름했지만, 목소리를 최대한 낮게 깔아 말했다.

“장군은 답장에 ‘그래’라고 써서 보냈습니다.”

조계안은 그 대답을 듣고 말았다.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육이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그래’라고 답장했다고? 육장봉은 무슨 생각이라더냐?”

“네.”

육이는 억지로 대답했다.

“언제 온다는 말은 없었느냐? 어떻게 사람을 빼내라는 말도 없었단 말이냐? 너희더러 나서서 월령안을 보호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소씨 가문에게 경고하라고 하지도 않았어? 월령안을 위해 사정하라고 하지도 않았단 말이냐?”

조계안은 그 대답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잇달아 몇 가지 질문을 퍼부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장군이 좀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다.

월 낭자가 이런 큰일을 당했는데, 장군은 그에게 한 번 다녀오라고만 했다. 그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자세히 적어 장군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도 장군은 돌아오지도 않고, 이에 대처할 방법도 있어 보이지 않았다.

‘장군도 너무 무정하시지.’

“육장봉은 어디 갔단 말이냐? 뭐 하러 간 거냐? 너희는 아느냐?”

조계안은 화가 치밀어 발밑의 흙을 발로 걷어찼다.

황형의 비밀을 알게 된 이상, 예전처럼 월령안을 도우라고 황형을 닦달할 수는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 월령안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육장봉밖에 없었다. 만약 육장봉이 외면한다면, 월령안의 힘으로는 소 승상이라는 늙은 여우와 싸워서 이길 수 없었다.

소 승상은 수십 년 동안 관리 사회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어 왔다. 관리 사회의 겉으로 보이는 규칙, 보이지 않는 규칙을 월령안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월씨 가문에서는 소 승상과 소함연을 고발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논리도, 증거도 갖추고 있지만, 정말 사건을 다루게 되면 월령안이 꼭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앞서 심민이 심씨 가문을 고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증인과 증거가 확실하게 있는데도, 결국 사건이 뒤집히지 않았던가.

게다가 월령안이 고발해서 이긴다고 해도 어떻게 되겠는가.

소 승상도 마찬가지로 월령안을 여덟 가지 죄로 고발했다. 그쪽 역시 논리도, 증거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소 승상은 문인이었다. 그쪽 일파는 죄명을 뒤집어씌우기를 가장 좋아했다.

월령안과 소씨 가문의 가장 좋은 결말은, 쌍방이 다 피해를 보는 것이었다.

소씨 가문 하나 때문에 양쪽이 다 피해를 보는 건 정말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조계안은 원래 육장봉과 의논해, 육장봉이 소 승상에게 손을 떼라고 위협하게 하려고 했다. 쌍방이 모두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테니, 이번만큼은 서로 한발씩 물러서도록 말이다.

하지만 지금 육이는 육장봉이 변경에 없다고 했다.

육장봉이 변경에 없으면, 변경에서 소 승상을 물러나게 할 사람은 황제뿐이었다

조계안은 불가능했다. 그는 소여방과 진비 사건의 주모자였다. 그가 나섰다가는 소 승상이 그의 체면을 봐주기는커녕, 월령안을 더욱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계안이 아무리 초조해도 소용없었다. 육이는 육장봉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언제 돌아올지도 몰랐다.

육장봉은 아무에게도 자기 행적을 말해 주지 않았다. 육이가 육장봉이 하루에 거의 팔백 리를 달렸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육장봉이 그들이 배치해 놓은 지점을 이용해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육장봉이 변경에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면 육이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쓸모없는 놈!”

조계안은 육이의 보고를 듣자, 차갑게 그를 쏘아보더니 몸을 돌려 가 버렸다.

육장봉을 믿을 수가 없다. 이젠 같은 문신인 최 여우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최 여우는 좀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군.’

* * *

조계안이 최일을 찾아 어떻게 월령안을 구출할지 의논할 때, 육장봉은 천 리 밖 북요의 역참에 있었다.

그는 검은 옷차림에 얼굴에는 험상궂은 귀신 가면을 썼다. 바람 같은 걸음걸이에, 거침없는 사악한 모습이, 평소 과묵하고 냉담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아무리 친숙한 사람이라도, 이 강한 위압감을 뿜어내고, 거동이 자유분방한 남자를 육 대장군과 연관 지어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육장봉이 찾아간 북요의 상장군(上將軍) 소영화(蕭令和)는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소영화는 그와 여러 번 거래한 남자가 전장에서 그를 설설 기게 만든 육장봉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그렇지 않았다면 소영화는 육장봉을 자리에 앉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하께서 이 깊은 밤에 무슨 일로 찾아왔습니까?”

소영화는 체구가 컸다. 두 눈은 깊게 팼으며 코가 우뚝했다. 칼로 깎아낸 듯한 준수하고 비범한 이목구비는 언뜻 보아도 잊기 힘들었다.

특히 그의 웃음은 시원하고 호쾌했다. 햇살처럼 빛나는 미소는 사람을 녹일 듯해 쉽게 호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육장봉은 그와 여러 번 거래했었다. 소영화의 밝고 따듯함 뒤에 숨겨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함을 잘 알고 있었다.

이자가 정말로 호쾌하고 명랑한 사람이었다면, 소함연을 이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육장봉은 소영화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앞에 있던 편지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열어 봐라.”

소영화는 시원하게 웃고는 편지를 들고 펼쳐 보았다.

한눈에 그의 얼굴색이 바로 변했다.

“내 필적을 위조했잖아!”

편지 위의 글자는 그의 필적이었다. 그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편지는 그가 쓴 것이 아니었다.

그가 아무리 바보라도 자신이 주나라 귀족 여인을 유혹하고, 이용하여 정보를 얻어내는 것을 시인하는 편지를 쓸 리가 없었다.

“이건 두 번째 편지다.”

육장봉은 과감하게 인정하면서 망설임 없이 한마디 덧붙였다.

“첫 번째 편지는 관아에 있다.”

“뭐 하려는 겁니까?”

소영화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대신 음험함과 살기가 드러났다.

육장봉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

“변경에 도착한 다음 관아에서 조서를 보내면, 협조하고 편지에 쓴 대로 말해라.”

“지금 농담하는 겁니까?”

소영화는 울화통이 터졌다.

그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주나라 관아에서 자기가 주나라의 귀족 여인을 유혹했다고 시인할 리가 있겠는가.

‘내가 그래도 북요의 상장군이다. 소문이 퍼지면 낯을 들고 다닐 수나 있겠나?

“나와 처음으로 거래하나?”

육장봉은 나른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온몸에는 무심한 분위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겉으로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영화는 눈앞의 이 남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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