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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78)화 (378/1,004)

378화 저 대신 지켜봐 주세요

월령안은 시원스레 승낙하며 전혀 내숭을 떨지 않았다. 육이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만에요. 전부 장군의 명령입니다.”

그는 두 사람 사이가 틀어졌으니, 월령안이 육장봉의 성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릴까 봐 두려웠었다.

다행히 월 낭자는 아주 이성적인 분이라, 경중을 분별할 줄 알았다.

육이는 뒤에 있던 관졸에게 감옥 문을 어서 열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월령안이 감방을 나서는 순간, 포졸 복장을 한 관졸이 재빨리 달려왔다. 월령안과 육이가 아직 자리에 있는 것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 폐하의 어명입니다. 누구도 범인 월령안을 보석할 수 없으며, 사건 조사가 끝나기 전에는 감옥을 나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범인이라고?”

월령안은 눈썹을 찌푸렸다.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보석할 수 없다고?”

육이도 경악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무슨 말이냐? 폐하께서 이런 사소한 사건까지 어떻게 따져 물으신단 말이냐?”

포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숨을 헐떡였다.

“소인도 모릅니다. 조금 전에 황궁의 내관이 폐하의 구두 명령이라고 전갈했습니다. 그래서 유 대인께서 특별히 월 낭자를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가 제때 왔으니 망정이었다. 둘이 나간 다음에 왔더라면 일이 아주 번거로워질 뻔했다.

황제가 끼어들자, 육이도 월령안을 데리고 나갈 수 없었다. 설령 월령안은 지금 용의자일 뿐, 아직 죄가 확정된 건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관리를 매수하고, 무장에게 뇌물을 준 것은 큰 죄였다.

게다가 여기에는 조정의 대신까지 관련되어 있었다.

유칙이 조서를 전달해 월령안을 관아에 불러 심문하지 않고 바로 가둔 이유는 바로 이 두 가지 죄목 때문이었다.

지금 이 사건은 아직 심리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니 월령안도 용의자였다. 만약 관직이 있는 사람이 보증을 서 준다면, 보석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나중에 관아에서 조서를 전달할 때 그녀가 관아에 오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황제가 입을 열었다. 이 사건의 재판이 끝나고, 결백하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절대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육이는 황제에게 대적할 힘이 없었다. 황제의 뜻을 확인하자, 월령안에게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월 낭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당장 장군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장군께 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육이 장군,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월령안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육이의 근심 어린 눈초리에 그녀는 느긋하게 말했다.

“그보다 제가 육이 장군께 폐를 좀 끼쳐야 할 것 같네요.”

“월 낭자, 말씀하시지요.”

육이로서는 월령안의 부탁을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이나 대장군을 남 취급하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육이 장군께서 저 대신 지켜봐 주세요. 순천부가 정말로 누구나 똑같이 대하는지 말이에요. 황제 폐하일지언정 법을 어겼을 때 백성과 똑같이 취급하는지 지켜봐 주세요.”

월령안의 말투는 가볍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예리한 눈빛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육이는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그러나 감옥을 나오자, 손에 고발장을 들고 신문고를 울리는 월씨 가문 집사를 보게 되었다. 그는 그제야 그녀가 이미 손을 써 두었음을 알게 되었다.

월씨 가문 집사는 고발장과 증거를 가지고 왔다. 소 승상이 소금을 밀수하고 금나라 귀족과 왕래가 있는 것을 보니 적국과 내통하는 거로 의심된다고 고발했다.

그 증거로는 소씨 가문 상단의 진술과 강도에게 빼앗긴 상단의 재물이 있었다.

또한 소씨 가문의 큰 아가씨는 북요의 귀족과 친하게 지냈으며, 두 나라가 전쟁을 하는 기간에도 편지 왕래를 끊지 않았다. 이로 보건대 나라를 배반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고발했다.

그 증거는 소함연이 북요 귀족에게 보낸 편지 한 통과 그녀가 북요 귀족에게 남겨둔 속옷 한 벌이었다.

게다가 문제의 북요 귀족은 곧 변경에 도착할 참이었다. 그가 편지 한 통을 써 보냈다. 소함연은 예전에 자신에게 몸을 맡겼고,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편지로 많은 군사 기밀을 전달해 주었음을 증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월 낭자께서 미리 준비해 두신 건가?”

월씨 가문 집사의 진술을 듣자, 육이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곧 미친 듯이 기뻐했다.

월령안의 이번 반격은 정말 멋있었다.

소씨 가문의 뺨을 후려쳤을 뿐만 아니라, 황제에게도 한 방 먹인 셈이었다.

황제는 월령안이 관리를 매수하고, 뇌물을 먹였다는 구실로 남이 그녀를 보증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월령안은 바로 소 승상과 소함연이 적국과 거래했다고 고발하며 증거를 제출했다.

소씨 가문 부녀의 죄는 아무리 보아도 관리에게 뇌물을 먹인 죄보다 훨씬 더 엄중했다.

만약 월령안을 보석할 수 없다면, 소 승상과 소함연도 보석으로 나갈 수 없었다.

소 승상은 남자라서 감옥에서 며칠 지내도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소함연은 달랐다.

감옥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섞이는 곳이니,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었다. 소함연은 미혼 여성인 데다가 며칠 있으면 혼례를 치러야 했다. 심지어 그 혼사는 황제가 내린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 감방에서 지내다가 시집가게 할 수가 있겠는가.

황제가 육씨 가문 일곱째 도련님에게 이런 신붓감을 맺어 주었다. 그러면 육씨 가문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게다가 황제는 이런 문제 있는 여자와 육씨 가문을 한두 번 맺어 주려 한 것도 아니었다.

육이는 손으로 입술을 누르고 손가락을 꽉 깨물어서야 겨우 웃음을 참을 수 있었다.

‘지난 삼 년 동안 장군이 월 낭자를 조금도 지지해 주지 않았는데도 월 낭자는 스스로 육 부인이라는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육씨 가문 전체를 고분고분하게 길들였지. 월 낭자는 정말 너무 대단해. 건드리면 안 되는 분이야.’

육이는 기쁜 마음을 진정시켰다. 상석에 앉아 표정이 굳은 유칙을 보며, 고소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유 대인, 용의자를 가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 대인께서 바쁘시면 제가 대신해 드리겠습니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결정할 걸세.”

유칙은 어두운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월령안과 관련된 사건이면 간단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월령안은 벌써부터 많은 일을 만들었다. 이건 그더러 죽으라고 하는 셈이었다.

“대인, 용의자가 적국과 내통한 혐의가 있습니다. 이건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대인께서 즉시 사람을 보내 체포하지 않아, 만약 용의자가 도망가거나 죄가 두려워 자살하면 그 결과는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육이는 먹구름이 드리운 유칙의 얼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유칙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오전에 소씨 가문에서 보낸 고발장을 받자마자, 사건이 심각하며 증거가 충분하다는 이유로 일단 월령안을 가두었다.

그런데 지금 월씨 가문에서 제출한 증거도 마찬가지로 심각했다. 게다가 소씨 가문에서 저지른 일은 더욱 심각했다. 그가 만약 소씨 부녀를 가두지 않는다면, 눈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월령안을 불공평하게 핍박했다고 생각하리라.

그는 월령안이 불만스러워하거나, 복수할까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육 대장군은 두려웠다. 더불어 직위가 높고 권력이 강한 장 부승상에게 밉보이기는 싫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전성기를 누리는 육 대장군에게도 미움을 사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유칙은 잠깐 망설였지만, 포졸에게 용의자를 잡아 오라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 육 대장군의 호위병이 지켜보고 있었다. 감히 불공평하게 처리할 수 없었다.

“네, 대인.”

순천부의 관졸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찡그리고 맥없이 대답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대인, 제가 따라가서 식견을 넓혀도 괜찮겠지요?”

풀이 죽은 관졸들의 모습을 보자, 육이는 그들이 소 승상을 상대할 배짱이 없음을 짐작했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나섰다.

월령안이 그더러 지켜보라고 했으니, 꼭 대신 잘 지켜보아야 했다.

“육이 장군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입궁하여 폐하를 만나야겠소.”

‘그러니까 이제 나를 난처하게 하지 마시오. 이 사건을 어떻게 결정하고, 또 어떻게 심리할지는 폐하의 뜻에 따를 것이니까.’

“대인, 잘 다녀오십시오. 저희 장군께서 오랫동안 이반반, 이 총관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인께서 이 총관을 만나시거든, 저희 장군 대신 안부 좀 전해주십시오.”

‘그러니 유 대인, 절대 폐하 앞에서 함부로 말하거나, 소씨 가문 편을 들어 월 낭자를 밟지는 마시오. 유 대인이 황궁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우리 장군께서 다 알 것이오.’

육이는 뒷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눈치 빠른 사람은 말속의 협박을 알아챌 수 있었다.

유칙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곧장 옷소매를 떨치며 떠나갔다.

‘난 아무도 건드린 적이 없는데! 내가 명색에 삼품 고관인데 어찌 이렇게 치이는가!’

유칙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답답해도 이 일이 그에게 맡겨진 이상 떠넘길 수도 없었다. 그저 울며 겨자 먹기로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 * *

월령안은 감옥에 갇혀 있기는 해도 소식이 아주 빨랐다.

다름이 아니라 감방을 지키는 간수가 그녀와 ‘첫눈에 의기투합한’ 덕분이었다. 월령안은 밖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고 살짝 말을 꺼냈다. 그러자 간수는 월씨 가문 집사가 소 승상과 소함연을 고발한 일을 몰래 말해 주었다.

월씨 가문 집사가 소씨 가문을 고발한 것은 월령안이 손을 쓴 것임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이 일은 굳이 간수가 말해 주지 않더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색낼 기회가 있는데 안 할 이유도 없었다.

월령안은 이야기를 듣고 나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못내 의문스러웠다.

집사가 이 시점에 소 승상과 소함연을 고발한 것은 그녀가 지시한 게 맞았다.

그녀와 소씨 가문은 원수지간이었다. 소 승상이 몰래 그녀의 범죄 증거를 수집했듯, 그녀 역시 소씨 가문의 범죄 증거를 수집했었다.

월령안은 소씨 가문에서 밀수한 사실에 관해서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함연에 관한 일은 알고는 있었지만, 증거를 손에 넣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집사가 어디서 증거를 찾아온 거지?’

* * *

수도에는 고위 관리와 귀족들이 넘쳐났다. 유칙은 수도의 관리로서 매일 다루는 사건이 부지기수였다. 그를 압박하거나 청탁하는 권력자들은 더욱 많았다.

유칙이 고집이 세기는 해도, 부윤의 자리에 굳건히 앉아 줄곧 남에게 밀리지 않은 것은 자기 나름의 처신 수완이 있었기 때문이다.

월씨 가문이 소 승상을 고발한 사건을 떠맡게 되자, 유칙은 이 두 사건이 예전에 겪었던 여느 사건들보다 더 처리하기 어려움을 알아차렸다.

유칙은 자신의 목숨과 벼슬길을 지키기 위해 곧바로 입궁했다. 이 행동으로 청탁하는 사람들을 모두 피함과 동시에 자신의 뜻을 표명했다.

이 일은 그를 찾아봤자 소용없다. 황제가 지켜보고 있으니 자신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유칙이 빨리 달아났기에 망정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가는 서둘러 달려온 최일에게 잡힐 뻔했다.

“이미 입궁했다고?”

부승(府丞 – 부윤의 부관에 해당하는 관직)의 말을 듣자, 최일은 입술을 다물고 가볍게 미소 지었다.

“유 대인이 관아에 안 계신다고. 나는 신고할 일이 있어서 왔는데, 누구를 찾으면 되는 건가?”

유칙은 평소와 다름없이 미꾸라지처럼 쏙 빠져나갔다. 하여튼 도망치는 건 제일 빨랐다.

“신고할 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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